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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꿈 (정보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56
조회
435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 조카가 인사차 찾아왔다. 이 조카는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안정된 직장(특급호텔 외식사업부)의 정규직을 그만두고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언니네 부부는 반대했지만 사표는 수리된 뒤였고 조카는 이미 서울에 있는 직장 두 군데서 오퍼를 받은 상태였다. 낯선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에 애가 적응하기 힘들까봐 내게 몇 달 동안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20대 중반의 조카는 중학교 때부터 바텐더를 꿈꾸어왔고 국내에서 경력을 쌓아 싱가포르나 대만에서 바텐더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꿈을 갖고 키워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해 보였고 나는 그 꿈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카는 오후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힘든 업무를 자신의 꿈과 경력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그야말로 버틴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교대근무도 아니라 매일 야간 시간에 일을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야간 근무는 낮과 밤을 구분해서 살아온 신체의 생체리듬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오래한다고 해서 적응이 돼 밤에 일하는 게 덜 힘들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조카는 어느 날 갑자기 잘렸다. 업소가 무리하게 확장을 한 탓인지 불경기 때문인지 사장이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직원들을 내보낸 것이다. 몇 달 후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부르겠다는 얘기만 남기고. 다른 업소에 취직을 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던 한 달을 보내고 조카는 다시 그 업소로 돌아가 1년 가까이 일을 했다. 채 일 년이 되기 전에 이미 그 업소에선 가장 고참이 되었다 한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자 작년 이맘때 벌어졌던 구조조정 분위기가 다시 조성되었다. 작년 일을 경험한 직원은 조카뿐이었다. 조카는 매해 사장이 경력이 짧은 직원들을 구조 조정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같은 경우를 당하고 싶지 않아 사표를 냈다.

사표를 수리하면서 사측은 ‘우리 회사는 퇴직금을 퇴사 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준다’고 했단다. 이미 사표를 내기 전에 월급도 밀린 적이 있어서 신용교통카드가 정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모한테 연락하지 그랬어? 라고 말했지만 중요한 건 당장의 차비 얼마가 아닌 걸 조카도 나도 안다. 그녀가 바텐더로서의 경력을 무사히 국내에서 쌓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어야 할까?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쉽게 격려할 수 있을까? 조카를 보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같은 업계의 후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들이 아직 위에 많이 있으니 제 또래에는 관리자로서의 비전을 갖기 힘들어요.”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는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IMF 이후인 것 같은데) 신입보다는 경력자를 주로 고용해오고 있다. 알고 보니 꼭 이 업계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꾸리고 있는 대다수 70년대 학번 사장들은 출판이 호황일 때 회사를 차렸고 그나마 대부분 내 나이 때거나 더 젊을 때 사장이 되었는데, 앞으로 후배들이 그렇게 사장으로 기반을 가지거나 사내에서 임원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고. “여러분들도 열심히 하면 이 자리에 올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발언은 정말 무책임한 거라고. 나는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50대들을 보고 얘기한 것이었고 30대인 후배는 여전히 회사에서 윗사람인 40대 선배를 두고 한 얘기이다.

조카 얘기를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후배 얘기를 들었을 때도 할 말이 없었다. 조카에게 무슨 근거로 노동조건이 그야말로 후진 그 바닥에도 볕 들 날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겠나. 후배에게 그래도 너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20대들보단 나은 처지 아니냐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이를 불문하고 세대를 불문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처지에 모두들 놓여 있는 것 같다.

둘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 개개인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정말이지 혼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 많다. 말이 연대지 불법해고에 맞서 같이 나서자고 하기엔 개인적으로 처해 있는 조건이 너무 다양하다. 어쩌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뭔가 상식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건일 때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에 아는 분이 회사의 비상식적인 고용조건을 거부하고 퇴사한 뒤에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맞습니다. 배부른 선택입니다. 저는 당분간 사직을 해도 먹고사는 데는 당장 큰 걱정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배고프고 힘들 땐, 원칙적인 선택을 하기 힘듭니다. 아니 더 순종해야 합니다.

최근 국회 청소노동자 한 분이 비정규직에게 노동 3권 보장하면 나라가 어찌되겠냐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자근자근 짓이겨버린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봤습니다. 배고파서 원칙 못 지키는 것도 서러운데 그나마 배부른 상태에서조차 원칙을 못 지키면 그 땐, 원칙은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