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집에 대해 생각하다 2 (정보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26
조회
208

-한 평의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일생일대 가장 큰 프로젝트인 주택을 구입하고 전면 리모델링에 돌입한 지 두 달째. 우리 부부는 개조하는 면적이 신고에 해당하는 정도여서 리모델링 공사를 건축사무실에 맡기지 않고 직접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여 시공 발주를 했다. 다행히 집 짓는 현장에서 30년 동안 뼈가 굵은 지인이 있어 현장 감독을 맡아 주기로 했다. 38년 된 원래 집의 도면을 그린 뒤 우리 가족이 살기 편한 구조와 공간을 위해 새 도면을 그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기존의 방을 늘리거나 줄여서 새롭게 공간을 재배치하는 구상으로 한 달 여 동안 수첩 한 권 가득 도면을 그리고 또 그렸다. 시공 책임자에게 스케치한 도면을 보여주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면서 최종 리모델링 도면이 완성되었다.


그러면서 집을 짓거나 고칠 때 가장 중요한 과정이 바로 공간 배치 혹은 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공간을 어떤 크기로, 집의 어느 지점에 배치하는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연령대, 취미, 생활 패턴 등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가족들이 주로 어느 시간대에, 어디에서, 함께 혹은 따로 시간을 보내는지, 가족 구성원들의 성격이나 취향은 어떤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을 짓는 경우가 아니라 고치는 수준에서는 적절히 타협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겼다. 어떤 경우는 구조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증축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공간을 만들지 못하기도 했다.


기성품만 쓰다가 자급자족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공간 배치가 이미 다 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건축사도 인테리어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두 개 층의 공간 배치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공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아파트 공간 배치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부엌과 거실이 서로 오픈되어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 음식을 할 때 발생하는 냄새나 열이 거실을 통해 온 집안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 요리할 때 온전히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부엌은 독립된 공간인 것이 좋다. 거실에서 노는 아이를 틈틈이 부엌에 있으면서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오픈형 거실-부엌이 갖는 장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부엌은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거실은 부엌의 소음에서 자유로워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자료들을 보면 요즘엔 아파트뿐만 아니라 주택에서도 부엌을 독립된 공간으로 배치하지 않고 거실과 서로 마주보거나 이어지는 형태로 배치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주택의 공간 구성은 평면적인 아파트보다 다채롭다. 꼭 이층집이 아니어도 낮은 다락이나 지하실이 있을 수 있고, 방과 방을 연결하는 짧은 복도가 생길 수도 있고, 하다못해 대문과 현관 사이 좁은 마당이라도 있을 것이다. 이 역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평면적인 아파트에서는 아무리 벽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다 해도 왠지 숨을 공간이 없는 것 같다. 구성원 간 갈등이 생기거나 혼자 감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평면적인 이동으로는 기분이나 감정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층위가 달라 온전히 몸을 숨길 수 있거나 바깥 공간으로 이동하면 그 꽁무니를 잘라 버리고 뭔가 감정 정리를 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한 뼘이라도 마당이 있다면 더 깊고 크게 한숨을 쉬거나 소리라도 한 마디 질러 볼 수 있지 않을까.


8000833893_20111226.JPG작은 집이 좋아(포복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21


참고로 내게 도움을 준 책들을 정리해 둔다. 『주거해부도감』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 『공간배치의 방정식』을 읽으면서 어떤 식의 공간배치가 우리 식구들에게 효율적인지, 또 세계적인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한 주거 인테리어에서 얻을 점은 무엇인지를 노트했다. 『집짓기 바이블』은 단독주택을 짓는 사람이라면 책 제목처럼 바이블로 여겨도 좋을, 정말로 꼭 필요한 항목들이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다. 『123명의 집』vol.1과 vol.1.5, 『작은 집이 좋아』는 효율적이면서 창의적인 인테리어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작은 집이 좋아』는 몇 해 전 처음 읽었을 때 좁은 공간도 인테리어를 통해서 용도에 맞는 멋진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던 책이다. 이 외에도 여러 책을 참고해서 리모델링 도면을 완성했는데, 책이나 다른 정보들을 많이 접할수록 아이디어는 넘쳐나지만 내 집과 가족 구성원들의 요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 1편 보기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