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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인권교육을 다녀온 후 (정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27
조회
259

정지영/ 전) 서울DPI 회장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인권교육 요청이 왔습니다. 작년에는 5학년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는데 우리를 불러주신 선생님은 올해에는 4학년 수업을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인권의 소중함을 좀 더 일찍 알려주는 일이기에 더 반가웠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부탁한 수업의 주제는 장애의 이해입니다. 통합교육으로 장애학생이 한 반에서 같이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학생들이 장애학생을 따돌리거나 놀리지 않고 같은 반 학생으로 잘 지내길 바라는 선생님의 바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끔 학교의 높으신 분들과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 항상 하시는 말씀은 학생들이 모쪼록 이번 교육을 통해 장애인과 같은 어려운 사람을 잘 도와주는 학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입니다만 저는 항상 ‘인권’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인권을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사람과 사람간의 예의,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하나 들려드린다면, 초등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은 휠체어를 타는 저를 보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바퀴달린 의자를 타고 달린다고 생각하니 왠지 신날 것 같다나요. 그러나 조금 큰 아이들은 저를 좀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생들이 저를 보고 자기들끼리 대화합니다. 앗 장애인이다. 야 그러면 안 돼. 얼마나 힘드신 분들인데 우리가 잘 도와드려야돼. 아이들이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어쩐일인지 어른들이 가진 편견까지도 그대로 배웁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니까요.


4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먼저 학생들에게 ‘인권’이 무엇인지 알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사람이 가진 권리’라고 답을 합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웠냐고 물으니 배시시 웃습니다. 어차피 외울 거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라고 외우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모든 사람’과 ‘행복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은 다른 것과 같은 것 찾기 입니다. 저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좀 더 쉽게 찾아냅니다. 눈으로 보이는 다름 뿐 만아니라 좋아하는 운동도, 연예인도, 재미있어하는 과목도 다르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면 서로 같은 점을 이야기 해봅니다. 아이들은 이쯤에서 벌써 서로 다른 모습과 성격, 취향이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이해합니다. 휠체어를 타도, 공부를 잘 하거나 못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키가 크던 작던 사람은 모두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권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거꾸로 말하면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우와 두루미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맞는 그릇이 필요하듯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해선 각자에게 맞는 그릇이 필요한 것인데 여우네 집에는 아직 두루미가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아이들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권에 대한 이해가 먼저 생긴다면은요.


201504210151_01.jpg제35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예산중앙초등학교에서는 지난 4월 20~24일을 장애이해 주간으로 정해 '장애! 모습은 다르지만 따뜻한 동행, 함께하는 우리'라는 주제로 신문제작 등의 교내 장애인권 교육을 실시했다.
사진 출처 - 중도일보


제가 처음에 장애인권교육을 시작했을 때 저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었습니다. 차별을 중심으로 얘기하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어른들이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장애인과 어울리기도 전에 미리 혼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방학해도 학원 때문에 행복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약자로서의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짓밟고 서야 무시당하지 않는, 어른들의 세상을 벌써 알아버린 듯 한 그 눈빛은 마치 장애인의 인권도 소중하다고 열변을 토하던 제게 ‘그러면 저희에게도 권리가 있나요?’라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인권이라는 말이 예전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긍정적인 느낌보다 알면 알수록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만큼은 인권을 알고 지키면 서로가 행복하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게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