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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 주민자치는 있는가?(윤요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23 15:29
조회
637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올해는 지방자치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020년 12월 9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1988년 이후 3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주민주권과 참여확대, 지방의회의 독립성 강화, 중앙과 지방의 협력, 대도시 등의 특례부여 등이 주요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주민자치 원리 강화, 주민참여권 신설, 지자체의 주민에 대한 정보공개 의무규정 신설 등 자치분권 확대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자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맹이가 빠졌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지방분권, 자치분권의 핵심은 ‘주민자치’에 있다. 주민자치(住民自治)는 중앙집권적이며 관료적인 지방자치를 배제하고 주민이 지방자치의 주권자가 되어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영국에서 발달한 제도이다. 지방분권이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의 권한만 강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실제로는 주민의 참여와 권한을 확대, 강화시킴으로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풀뿌리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함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지난 2013년부터 7년간 행안부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과 지방조례에 근거해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하고 있으며 2020년 6월 현재, 118개 시군구 626개 읍면동에 주민자치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이 모두 삭제된 채로 통과되었다. 이번에 정부가 제출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운영과 기능 수행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명확히 하여 현재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인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서 풀뿌리 주민자치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국민을 아직 미성숙하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주민자치에 대한 부동의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는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의 활성화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으로 2020년 7월 전국 최초로 시 출연재단으로 출범하여 민관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주민과 마을, 행정을 연결하고 협력, 협치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춘천시 민선 7기 시정 철학은 ‘춘천, 시민이 주인입니다’라는 슬로건에서 말해주듯이 시민을, 주민을 주체로 세우고 시민의 권한을 강조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민자치회’ 설립과 운영 활성화는 중요 핵심과제 중 하나다. 3월 현재, 춘천시 25개 읍면동 중 13개 읍면동에 주민자치회가 설립되었고 5개 읍면동에서는 주민자치회 전환협의체를 구성하게 된다. 20명에서 50명까지 주민들 누구나가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고 마을의 의제를 공론화, 숙의를 통해 마을계획을 수립하여 실행까지 하는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겠지만 이런 참여와 책임의 민주주의를 풀뿌리에서부터 실천하는 과정을 주민들 스스로 실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매년 마을 의제를 주민들로부터 수렴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각종 자생단체, 모임, 공동체로부터 일반 주민들까지 해결하고픈 문제나 살기 좋은 마을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의제가 읍면동별로 많게는 70~80개씩 쏟아져나온다. 물론 이런 의제들이 다 채택되지는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살피고 생각을 이야기하고 투표와 총회를 통해 총화하는 경험은 시민들이 마을의 정책과정에 참여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신나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몇 가지 넘어서야 할 과제들도 보인다. 자칫 소위 명망가 또는 의회진출을 노리는 몇몇 위원이나 자치회장에 의해 휘둘릴 소지도 있고, 또 다른 기득권 단체로 전락해 완장만 채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도 상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고 지난한 다툼이 있는게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차이와 다름을 숙의와 토론을 통해 마을의 공통의제로 합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한 생활권인 마을에 공존하고 있는 각 종 이해관계자들과 기존의 자생단체, 마을공동체들과의 연계와 네트워킹도 주민자치를 풍부히 하고 성숙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년 마을의제들을 보면 코로나로 인한 아이들과 노인들의 돌봄 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주민들의 관심사로 많이 올라왔다. 또 쓰레기 문제나 환경문제도 주민들이 걱정하는 마을의 숙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주민자치회 단독으로 이러한 의제를 실행하고 의미 있는 결과물로 만들어내기에는 인력도 재원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마을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관심 갖고 활동하고 있던 많은 단체, 공동체들도 있으며 시정부의 행정력과 예산의 뒷받침이 필요함도 느낀다. 주민자치가 스스로 독립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백번 옳지만 고립된 대립 관계가 아닌 민관협력, 민민협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자치(시군)-주민자치(읍면동)-마을자치(통리 등 마을단위)는 ‘국민(시민, 주민)의 주권이 생활터전인 마을에서 실현’되는 가장 확실한 주권행사이며 강력한 방법일 수 있다. 아직은 주민들의 의식도 교육도 경험도 부족하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음을 잊지 말고 골목에서 마을에서 지역에서부터 행복한 꿈을 꾸며 한발 한발 걸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