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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10 15:10
조회
705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석샘, 이거 좀 참여해서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비용, 시간 부담 별로 없어요. 한번 봐 주시겠어요?” 평화활동을 하는 이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네 좋은 취지의 활동이니 당연히 함께 해야지요. 신청은 포스터에 있는 대로 하면 되겠지요? 마감이 얼마 안 남아 서둘러야겠네요.” 그저 머리 하나 보태는 마음으로 신청을 마쳤다.


 올해로 23회를 맞는 지학순정의평화상은 故지학순 주교의 정신을 실천하고 정의, 평화, 인권 활동을 하는 이들과 단체를 수상자로 선정해왔다. 1997년 제정된 이 상의 첫 번째 수상자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었다. 이후로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해외 단체를 주로 수상했고, 지난해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 사단법인 저스피스로 새롭게 출범했다. 사단법인 저스피스는 정의평화실천 활동으로 풀뿌리 연대, 여성·성소수자·청년 등 새로운 주인공과의 연대, 생태위기·사회부정의에 대한 대응 등을 새로운 활동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지학순정의평화상은 ‘시민참여형 풀뿌리 일꾼 찾기-시민의 참여와 발굴, 시민의 추천과 선정’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민추천위원단을 구성해 후보 추천을 받고 2차에 걸친 투표 과정을 거쳐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 계획이 있었던’ 저스피스의 큰 그림 속에 덜컥 시민추천위원단으로 참여한 나는 신청서 작성 후 그냥 부담 없이 투표 일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샘, 해외 단체 한 곳도 추천 부탁드려요~~~ 18일 마감입니다.” 마감 이틀 전 이 선생님의 메시지가 당도했다. 난감했다. 베트남과 평화교류 활동을 하고 있지만 베트남은 관 주도의 단체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이 상의 취지에 맞는 곳을 추천하기가 어려웠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던 중 내가 잘 아는 선배의 기사를 만났다. 그렇지. 국제분쟁전문기자인 이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의 전화였지만 안부는 짧게, 바로 상황을 이야기하니 기다렸다는 듯 주저 없이 한 단체를 추천한다. “난 이 단체는 꼭 상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해. 왜 아직까지 이들의 활동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가 관심 갖지 않는지 모르겠어.” 선배가 던져 준 기사와 자료를 보고 추천서를 작성했다.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폭력적 인권상황에 저항하고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 추천서를 작성하고 숙제를 마친 듯 이 선생님에게도 공손히 보내드렸다.


 하지만 추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새로이 관심 갖고 알게 된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이 수상자가 되길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추천한 사람의 책임감도 발동했다. 후보로 올라온 전세계 16개 평화인권 단체들의 활동은 훌륭했다. Avaaz 세계행동, HOPE-말레이시아, TAKAD-말레이시아, Womwn Cross DMZ-미국, FED(교육개발재단)-미얀마, Share Mercy-미얀마, Afghan Peace Volunteers-아프간, HRDF-인도, 피스보트 프로젝트-일본, iLAW 표현의 자유 기록 센터-태국, Thai Lawyers for Human Rights-태국, Sounds of Palestine-팔레스타인, CTUHR-필리핀, MPI-필리핀, GABRIELA-필리핀 모두 후보 단체의 이름이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22명의 시민추천위원이 투표에 참여해 두 개 단체로 최종후보를 가렸다. ‘팔레스타인의 소리’,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이 후보에 올랐다. 최종 후보에 오른 만큼 추천서도 다시 보완해 전달했다. 그리고 총 370명의 투표인단으로 진행된 2차 투표에서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이 제23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단체로 최종 선정되었다.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Jammu Kashmir Coalition of Civil Society, 약칭 JKCCS)은 2000년 설립된 인권단체로 20여 년 동안 카슈미르의 폭력적 인권상황에 대응해 사선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단체이다. 잠무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점령하고 있는 곳으로, 카슈미르인들이 70년 전에 국제사회로부터 약속받았던 자치권을 박탈당하면서 정치적으로 강대국들의 무력개입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JKCCS는 카슈미르인들의 자치를 향한 수년간의 투쟁과 노력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지치지 않고 기록하고 알려왔다. 이 단체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현장에 들어가 고문, 성폭력, 학살과 반인권적 상황 등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알리고 있다.



제23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
사진 출처 - (사)저스피스


 JKCCS 대표 임로즈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광주민주화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불의에 맞서 싸운 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 양심적인 이웃(국가)들, 아시아 친구들이 카슈미르 이슈에 완전히 무관심한 현실은 내게 꽤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내 귓속에 공명을 일으키며 JKCCS의 활동을 추천하고 애쓰게 만들었다. 그의 말이 나와 같은 이를 향하고 있었다. 고통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자 피해자라는 단순 등식만으로도 해명되기 쉽지 않다. 베트남전쟁, 미얀마 군부학살, 카슈미르 인권탄압, 어느 분쟁이든 모종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이 상이 오랜 분쟁의 고리를 끊어낼 수는 없겠지만, 현지 활동가들에 대한 격려를 넘어 작은 금 하나를 내기를 바란다. 그저 머리하나 보태는 일로 시작한 일이 큰 보람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