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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두 개의 탄핵’…오불관언 책임자 탄핵은 사필귀정(박록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2-20 13:58
조회
286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위르겐 클린스만(60)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우리에게는 꼬박 30년 전 이미 선수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1994년 여름이었습니다. 미국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한국 대표팀과 만난 독일 대표팀의 공격수 클린스만은 전반전 12분 만에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골을 넣었습니다. 좁은 공간 수비수 세 명 틈바구니에서 받은 패스를 오른발로 톡 건드리더니 180도 빙그르 돌아서 날린 왼발 발리슛은 최인영 골기퍼의 오른쪽 가장 먼 곳을 파고들었습니다. FIFA랭킹 1위팀의 세계적 선수라는 것이 무엇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게 만든 그림 같은 골이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한 골을 더 넣으며 3-0으로 넉넉히 경기를 이끌었습니다. 1무 1패로 벼랑 끝에 몰린 한국 대표팀은 후반전 황선홍 선수와 홍명보 선수의 멋진 중거리슛으로 1골 차까지 추격하는 등 뒤늦게 분전했지만 패배해 안타까움을 더한 경기였습니다. 어쨌든 이 경기에서 클린스만은 한국 축구팬들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습을 남겼지요.


선수 시절 그는 ‘레전드’라는 평가가 걸맞는, 참으로 화려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만 18세에 분데스리가에서 한 시즌 16골을 넣었고, 1988년 올림픽에서 독일(당시 서독) 국가대표 공격수로서 동메달, 유로대회 4강, 올해의 선수상 등을 받는 등 만 12년 동안 A매치 108경기에서 47골을 넣었습니다. 1990년 10월 ‘통일독일 대표팀 A매치 1호골’도 클린스만이 기록했을 정도로 독일에서 그의 상징성은 큽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감독으로서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독일 대표팀, 미국 대표팀 감독을 했지만 각각 유럽선수권 조별리그 탈락, 월드컵 지역 예선 조 최하위 등 성적을 냈습니다. 결국 2016년 미국팀 감독직에서 경질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맡은 국가대표팀 감독이 2023년 3월 한국입니다. 딱 1년이 지난 현재 그는 사실상 경질됐습니다. 아시안컵 우승 실패라는 결과적 성적표보다는 축구팬들과 소통하는 태도, 업무에 임하는 자세 등에 더욱 큰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아시안컵 4강전 패배 이후 한국 귀국 이틀 만에 미국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일반 축구팬과 언론은 물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축구 평론가, 심지어 정치인 등까지 다수 국민들의 퇴진 요구 목소리만 ‘닭 쫓던 개’처럼 공허히 울려 퍼지게 됐습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경질을 통보하게 됐죠. 이렇듯 마이동풍, 오불관언하는 책임자의 끝은 경질, 탄핵로 귀결되는 것이 사필귀정이지요.


이뿐인가요. 한국 사회에 ‘또다른 퇴임 요구’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대통령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탄핵 집회가 바로 시작했으니 조금 지나친 면이 있는 듯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컸습니다. 시간을 주고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에서부터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정치적 집회 아니냐는 지적까지 우려 섞인 시선들은 충분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2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윤석열 정부 스스로 탄핵의 사유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모양새입니다. 법률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검사 출신의 법률가인 탓인지 그 사유라는 것이 대부분 법의 위반 문제, 법 권능의 과도한 행사와 관련됩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22개월 가까이 되는 동안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으며 일방적 국정 운영을 한 점이 탄핵의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R&D예산 4조 6000억원을 삭감하며 국가의 중장기적 발전의 동력을 훼손한 것이나, 국민과 소통한다면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겨 최소 수천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들게 만든 점, 출근 약식기자회견으로 소통의 모양새를 취하더니 2022년 11월 이후 1년 3개월 동안 언론과 접촉을 아예 회피한 점,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사를 번번이 압수수색하고 기소한 점, KBS와 연합뉴스 YTN 등 공적 언론을 장악한 점, 신냉전적 외교안보정책을 고수하며 1992년 중국과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러시아를 사실상 적대국으로 대한 점, 한반도의 평화체제 관리를 소홀히 해 군사적 대치를 가파르게 만든 점, 전문성과 역량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검사 출신 등을 국정 요직 곳곳에 등용하는 인사 난맥상 등등등도 대통령으로서 능력과 자격이 부족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게 직접적인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무속인 천공의 다양한 가르침 내용을 국정에 적용했다는 일각의 의혹, 혹은 대통령이 되기 전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배우자의 주가조작 가담 의혹, 잦은 지각 출근 의혹 역시 진실을 밝혀야 하며, 그에 따라 비판과 책임을 질지언정 법적 탄핵 사유까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쉽게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면서 삼권 분립의 헌법 체제를 무너뜨린 점이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외압을 행사해 병사 사망 사건 수사 내용과 결과 자체를 뒤집어버렸다는 의혹, 대통령의 장모 소유 땅 앞으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한 것과 관련한 국정농단 의혹, 대통령 배우자의 명품백 뇌물 수수 의혹 등은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을 직권남용에 가깝게 행사하더니 급기야 자신의 배우자 방탄용으로 사용한 점은 감정적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검찰총장 시절 검찰에 비판적인 정치인의 고발을 정당에 사주하며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의 직접적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 역시 간단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 보태 심심찮게 국민의힘 당무 및 공천 과정에 개입하는 언행들이 대통령발로 툭툭 던져지는 것도 매우 위태롭습니다.


사실 이 극단적 대결과 갈등의 시대, 누가 대통령을 한들 중뿔나게 잘할까 싶으니 윤 대통령에게도 어지간하면 잘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자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그런데 너무도 불통입니다. 인사도, 정책도, 정치도, 외교안보도, 경제도 뭐 하나도 국민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안 보입니다. 2월 16일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R&D 예산 복원하라”고 외치던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은 뒤 팔다리를 들고 연행해 경찰에 넘긴 사건은 슬픔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18일 “국정기조를 바꿔라”고 말한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내동댕이친 장면의 재판입니다. ‘입틀막 정권’이라는 비판의 언사조차 온순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남은 시간 3년을 한국사회가 잘 버텨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듭니다. 4월 10일 총선에서 민심이 어떤 형태로든 일단락을 지어주겠지요.


2024년 이렇게 두 개의 탄핵 여론이 뜨겁습니다. 오불관언, 불통의 모양새로 약간 닮은 꼴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하나는 국민적 여론에 밀려 사실상 탄핵, 경질이 이뤄졌습니다. 


까짓것 축구야 우리 삶에 뭐 얼마나 영향이 있겠습니까.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정신적 위안을 받고 만족감을 얻는 정도겠지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민생,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의 위치와 어디 비교할 바나 되겠습니까.


부여받은 책임과 과제, 역할을 마지막까지 제대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국민들의 비판 여론에도 귀를 기울이고, 운영의 기조를 대폭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열정적이면서도 참 착한 사람들인지라 과제와 역할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다면 그 운영 과정에서 벌어지는 작은 실수는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귀를 막고,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일이 반복된다면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부디 두 개의 탄핵 여론이, 두 개의 오불관언이 국민들에게 행복한 결론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