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폭력 악순환,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경향신문, 2020.7.1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7-17 17:06
조회
121


경희대 태권도학과. 역사와 전통에 빛나며 태권도를 이끌어간다는 자부심도 크다. 태권도 시범단을 운영하면서 세계 곳곳을 다니기도 했다. 선망의 대상이었고,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만 단원이 될 수 있었다. 빛이 크다고 꼭 그림자도 클 필요는 없는데, 이 학교 시범단에서 폭력사건이 터졌다. 선배들의 구타를 견디지 못한 피해 학생들이 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지간한 주먹질과 발길질은 참으려 했단다. 하지만 정도가 심했다.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몽둥이로 때리는 구타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때리는 이유도 황당했다. 기강이 해이하다거나 손발이 맞지 않는다고 때렸고, 격파용으로 사온 사과가 예쁘지 않다고 때렸다. ‘선착순 집합’은 보통 2~3㎞씩 달리게 했다.


학교당국은 꿈쩍도 안 했다. 폭행을 훈련 과정에서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처럼 여겼다. 교수들은 선배 학생들의 구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저 뒤로 물러서 있었다. 문제는 가해 학생들이었다. 뭐라 이유를 대든 폭력은 범죄일 뿐이니, 당장 학사징계와 형사처벌을 받게 될 처지였다. 가해자들은 급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앞길까지 막힐 판이었다. 가해자들은 필사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매달렸다. 용서해 달라, 합의해 달라며 피해자와 그 주변을 압박하는 건 전형적인 2차 가해였다.


곤혹스러웠다. 상처를 보듬고 달래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가해자였지만, 학교 선배들이 청하는 용서를 계속 외면하기도 힘들었다. 잘못은 컸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학생들이었다.


한 피해 여학생의 아버지가 특히 그랬다. 그는 교사였다. 누구보다 학교폭력의 구조와 양상을 잘 알고 있었다. 옛날 군대가 그랬듯, 학교체육에서도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었다. 가해 학생들도 지난해까지는 피해자였다. 폭력에 길들여지면서 강도는 점점 세졌고, 때려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을 갖기도 했다. 일정한 실력을 요구하는 교수들의 주문도 무섭기만 했다. 그래서 가해 학생 몇 명을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교수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뒷전으로 빠져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용서하되, 교훈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태권도학과 교수와 학생들을 모아놓고 폭력예방, 인권교육이라도 듣게 하고 싶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 생각할 기회라도 주고 싶었다. 폭력의 구조를 본 건 놀라운 직관이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모두 이렇게 성숙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교육자였던 그 아버지가 그랬다는 거다.


그 아버지가 마련한 인권교육을 맡게 되었다. 체육대학 학장실에 들렀다가 학장과 함께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장이 복도로 나오자, 교수와 학생들이 부지런히 오가던 복도에서는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는 것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모두들 복도 양쪽으로 붙었다. 학장이 가는 길에 거치적거리지 않으려는 몸에 밴 ‘배려’였다. 무슨 신흥종교 교주의 행차를 보는 것 같았다. 2010년 11월25일, 경희대 태권도학과에서 겪은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인권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폭행이 범죄라는 인식을 공유했고, 사람을 때리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 때문인지, 그제라도 교수들이 폭력 단속에 나선 때문인지, 후배들을 때리는 일은 사라졌다고 한다. 경희대 태권도학과의 고질적인 폭력 악순환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이젠 폭력 때문에 고통받는 학생들이 없는지 정말 궁금하다.


10년 세월이 흘렀다. 모세처럼 체육대학 복도를 갈랐던 체육대학 학장은 국기원 원장이 되었다. 대학 총장은 학교법인 이사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닦은 터전이어선지 모두들 자연스럽게 여겼다. 이사장의 형은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다. 학교폭력의 악순환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모두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태권도를 포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군의 실력이었다. 시범단에서 활동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지만, 실력을 꽃피울 수 없었다. 마치 최숙현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가 체육계를 떠나는, 아니 쫓겨나는 상황은 어제오늘이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모든 게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몇 달 동안 호소했지만 귀담아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를 호소하는 게 더 큰 피해를 불러오는 것 같았다. 흔히들 ‘극단적 선택’이라지만, 뭐든 꽉 막힌 상태에선 달리 선택할 게 없었을 거다. 쫓겨나듯 그런 선택으로 내몰린 거다. 스물두 살 청년을 극단으로 내몬 건 직접 가해자들만이 아니었다. 경주시와 경상북도, 철인3종협회와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경찰까지 그가 피해자로서 도움을 받아야 할 곳들은 모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는 다짐은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해결책도 책임 있는 사람들만 마련할 수 있다. 구타와 가혹행위, 성폭력이 일어나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단호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피해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풍토는 체육계와 체육팀을 운영하는 학교, 기업,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 폭력예방교육과 인권교육은 수시로 진행해야 하고, 체육계 폭력에 대한 감시 프로그램도 작동시켜야 한다. 대통령,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이 답해야 한다. 이미 나와 있는 답은 챙기고, 부족한 부분도 챙겨야 한다. 어떤 종목이든 폭력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 종목 자체를 영구 추방하겠다는 자세로 폭력 근절에 나서야 한다. 책임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제 제2의 피해를 막을 준비는 되었는가. 오늘은 어제와 달라졌는가. 최숙현 선수는 마지막 희생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