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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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제대로 먹이는 것부터 시작하자(경향신문, 2020.6.1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6-22 12:59
조회
928


소년원은 감옥처럼 보안시설이다. 본래 기능은 보호지만 담벼락은 높다. 닫힌 공간이라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먹고 자는 것은 어떤지, 시설이나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늘 궁금한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들렀던 한 소년원은 엉망이었다. 사람 냄새라고 하기에는 무척 고약한 냄새가 났다. 겨울인데도 그랬다. 목욕, 세탁, 청소를 자주 하지 않은 탓이었다. 눈 내린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운동장에는 발자국 하나 없었다. 운동장은 운동하는 곳이 아니라, 그저 관상용이었다. 말로는 학교라면서 도서관조차 없었다. 복도 중간에 책장 몇 개 갖다 놓은 게 전부였다. 소년원에선 극구 부인했지만, 소년들에게서 구타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 널찍한 방에 10여명을 한꺼번에 가둬놓고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소년보호혁신위원회 활동을 하며 전국의 모든 소년원을 둘러보고 있다. 흔히 말하는 전수조사다. 전국에는 모두 열 곳의 소년원과 한 곳의 분류심사원이 있다. 시설 등이 여전히 엉망진창인 곳이 많았다. 그런데 여름인데도 냄새가 나는 곳은 없었다. 냄새는 눈에 띄지 않지만 감옥, 군대, 소년원 등의 상태를 간명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표지다. 놀라운 진전은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구소년원장은 전국 소년원을 다니는 소감을 물었다. 늘 비판적으로 보자고 되뇌는데도, 막상 입에서 나온 말은 ‘고군분투’였다. 소년원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고군분투가 맞다. 매일처럼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그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이란 일반적인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사회와 학교, 심지어 가족조차 포기한 소년들이 너무 많다. 가족을 포함해 어떤 관계도 경험하지 못한, 처음부터 배제된 소년도 많다. 정신질환 때문에 또는 도덕적 감수성이 달라서 비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주목할 만한 비행을 저지른 소년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으니,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비행소년들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2년씩 가둬놓는 곳이 소년원이다.


소년원 직원들은 힘이 세다. 사고를 친 소년은 독방에 가둘 수도 있고, 상점이나 벌점으로 퇴원 시기를 밀고 당길 수 있다. 군대나 감옥 등의 닫힌 공간은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하다. 소년의 시간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소년들과 함께 사는 일이 힘만 앞세운다고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다. 질서유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소년원은 모두 ○○학교라 불린다. 한참 성장하고 배워야 할 시기이니 무턱대고 벌만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게 소년원 설립과 운영의 대전제다. 먹이고 재우고, 교과를 가르치고 직업훈련도 시켜야 한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 사회적 관심은 늘 부족하다. 말만 학교일 뿐, 실제로 교과교육을 하는 진짜 학교는 서울, 안양, 전주 세 곳밖에 없다.


당장 먹는 것만 해도 그렇다. 소년원의 한 끼 급식비는 1893원이다. 누구도 이 돈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정도 돈으로 한참 자라는 소년들에게 고른 영양에다 입맛까지 챙겨주는 건 불가능하다. 우유도 매일 먹이지 못한다. 200㎖ 우유 한 개도 400~500원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개쯤 주면 다행이다. 반찬도 국을 빼면 두 가지밖에 차려내지 못하니, 우유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보통의 고등학생들 학교 급식비는 아무리 적어도 3800원이 넘는다. 4000원이 넘는 곳도 많다. 같은 또래지만, 두 배 넘는 차이다. 이건 곧 차별이기도 하다.


군인들의 급식비는 끼니당 2495원이다. 게다가 군인들에겐 매일 1008원의 증식비가 더 붙는다. 그러니 격차는 더 벌어진다. 군대에는 PX라 불리는 매점이 있고, 교도소 수용자들은 ‘자변’이라고 필요한 간식이나 과일, 우유 등을 구입할 수 있지만, 소년원에서는 오로지 급식밖에 달리 먹을 게 없다. 매점조차 없다.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이니 덜 먹여도, 아무렇게나 먹여도 된다고 믿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예산이 아주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1000명 조금 넘는 소년들이 살고 있으니, 파격적으로 한 끼에 500원을 더 올려준다 하더라도 추가예산은 1년에 6억원이면 된다. 그러니 실제로 없는 것은 예산이 아니라 관심일 뿐이다.


사람들이 소년원에 관심을 갖는 건, 뭔가 사고가 터졌을 때뿐이다. 언론은 이례적 사건을 두고 여론을 부채질하곤 한다. 소년범죄가 갈수록 지능화, 흉포화, 조직화한다고 선동하지만, 통계는 거꾸로다. 소년범죄는 갈수록 줄어든다. 이른바 흉악범죄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범죄자가 소년이라도 심각한 범죄라면 형사처벌을 통해 엄한 벌을 준다. 소년이라고 모두 소년원에 가는 게 아니다. 다만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성장기니 비행의 책임을 소년들에게만 물어선 안 된다는 게 소년보호의 핵심이다. 소년의 범죄는 범죄자 본인은 물론 어른들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거다. 해서 소년원은 비행을 저지른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하는 곳이다. 이를 통해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소년법’이 정한 소년보호의 목적이다. 그러려면 잘 가르치고, 무엇보다 잘, 그리고 제대로 먹여야 한다.


부산소년원에서 만난 영양사는 돌아가려는 발길을 잡아 세웠다. 그러곤 호소하듯 말했다. 우유는 칼슘 등이 풍부해 성장기의 소년에겐 꼭 필요한 완전식품이라며, 25세 이전에 우유를 많이 먹어야 나중에 골다공증에 걸리지 않을 거라 했다. 그저 인권단체 실무자에 불과한 나에게라도 호소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에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부디 화답하길 바란다. 제발, 제대로 먹이는 것부터라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