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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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 개혁, 손에 잡히는 게 없다 (경향신문, 2020.08.0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8-07 10:27
조회
773

당·정·청이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은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 그리고 국가정보원 명칭 변경이 전부였다. 수사권 조정은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반드시 필요한 분야로 한정’한다지만, 막상 그 범위를 정하는 대통령령은 검사들이 원하는 대로 정해둔 상태다. 법으로 줄인 검사의 직접수사를 시행령으로 늘린 거다. 국정원 이름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건 전형적인 쇼에 불과하다. 국정원의 정치관여야 법률로 엄격히 금지하는 판이니, 이름만 바꿔서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 이래 20년 넘게 별 탈 없이 쓰는 이름을 굳이 바꾸자는 까닭은 뭔가.


자치경찰제 도입이 경찰개혁의 핵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은 지방경찰청과 경찰서, 지구대, 파출소 등 기존 조직은 그대로 국가경찰인데, 그 소속만 시·도지사로 바꾼 것뿐이다. 실질은 그대로 두고 명목만 조금 바꾼 거다. 지방경찰청의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라는 합의제 행정기관을 두는 것은 진전이지만, 지방경찰청장을 경찰청장이 추천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근간은 바뀌지 않았다. 하다못해 지방의회의 임명동의나 청문절차조차 없다. 법률 개정안 취지에서 밝힌 것처럼 “현행 조직체제 변화를 최소화”했기에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명령, 인사, 재정 등 조직을 움직이는 핵심은 여전히 국가경찰 시스템과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무늬만 자치경찰일 뿐이다.


실질적인 개혁은 아예 외면했다. 정보경찰이 대표적이다. 정보경찰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지만,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간다. 달라진 건 법률에서 정보경찰의 역할을 ‘치안정보’라 했던 것을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라고 달리 표현한 게 전부다. 어차피 모호한 건 마찬가지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공룡이 되었고, 그래서 정보경찰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은 온당치 않다. 정보경찰 폐지는 경찰의 공룡화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쓸모가 적으니 없애야 한다는 거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정보경찰이 작성한 보고서를 받아보는 게 유일한 쓸모인데, 3000명 넘는 정보경찰이 청와대 일부 인사들의 호기심 충족에나 동원되고 있다는 건 국가적 낭비다. 정보경찰은 그냥 없애도 아무 문제 없다. 청와대만 결단하면 될 일이다.


경찰위원회도 여전히 있으나 마나 한 유령조직으로 머물러 있다. 고위직 경찰관 출신이 유일한 상임위원을 맡고, 나머지 위원은 모두 비상임, 사무는 경찰청이 담당하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경찰위원회는 독임제 기구의 폐해를 막기 위한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거꾸로 경찰청을 보좌하는 거수기 역할에서 멈출 거다. 1991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3298건의 안건을 다뤘지만, 부결은 모두 3건에 불과한 역사와 전통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다.


경찰에 대한 전문적인 독립 감시기구 설립은 언급조차 없다. 모든 권력에는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상식은 이번에도 외면당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세력이야 경찰을 맘대로 부릴 수 있으니 불편할 게 없겠지만, 경찰의 치안서비스를 받아야 할 시민들 입장은 전혀 다르다. 경찰에 불만이 있으면 청문감사관 등 내부 감시 기능에 호소해야 하지만, 이들은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데는 영 굼뜨기만 하다. 기관장의 지휘권을 위해 직원들의 기강 확립에나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경찰 외부에서, 경찰과 전혀 다른 독립적인 기구가 일상적으로 경찰에 대한 민원을 처리해주고 일상적으로 경찰활동을 감시한다면, 경찰서비스의 수준은 단박에 높아질 거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활동을 정교화하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것이다. 불합리한 명령체계에는 균열이 생기고, 법과 원칙이 우선하게 될 것이다. 경찰의 내부 감사인력은 1800명쯤 되지만, 외부 감시기구라면 300명 정도여도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내부냐 외부냐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좋은 모델이 있다고 십수년째 호소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집권에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태만 또는 오만이다.


아쉽다.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은 권력기관이 정권이 아니라 오로지 국민에게만 충성을 다하도록 만드는 거다. 곧 민주주의 일반 원리가 권력기관의 운영에도 어김없이 관철되어야 한다. 모든 권력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오로지 시민을 위해서만 일해야 한다. 대통령만을 위한 권력기관에서 벗어나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핵심이다. 촛불정부를 자임하지만, 제대로 된 권력기관 개혁은 지금껏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