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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한국사회와 가난 ⑦ 교육(하) - 빈곤과 교육, 그리고 불평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6:58
조회
616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톨릭신문 기자


 민수(가명·초4)는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영어 선생님의 모닝콜로 하루를 시작한다. 영어 감각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려는 엄마의 배려다. 아빠 차를 타고 등교해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학원 이야기, 지난 추석 외국을 다녀왔던 이야기, 게임 이야기 등을 나눈다.


 학교 공부는 이미 학원에서 다 배운 터라 수업 시간이 어렵지 않다. 특히, 원어민 영어 선생님께 배운 영어는 친구들에게 실력을 뽐낼 만하다. 방과 후 친구들과 어울려 보습 학원과 미술, 검도, 글쓰기 학원 등 하루 평균 3-5개의 학원을 들른다.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부모님 덕에 민수는 공부 방법과 진로 등에 대해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수현(가명·초4)이는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다. 학습 준비물을 사가야 하는데 새벽까지 술을 드신 아버지가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은커녕 어제 저녁도 못 먹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아버지와 사는 형편이라 집안은 거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오늘 영어로 이야기하는 수업을 한다는데 걱정이다. 알파벳은 겨우 익혔지만 익숙하지 않아 자꾸 까먹는다. 학교에 왔지만 처음부터 수난이다.


 ‘아! 숙제!’ 안 한 것이라기보다 못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가족과 함께 만드는 ‘가족 신문’은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학습 준비물을 안 가져와 내내 아이들 눈총을 받았다. 갈수록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것 같아 힘들다. 방과 후엔 친구들 대부분이 학원에 가버려 함께 놀 친구도 별로 없다. 집 근처 공원을 배회하고 문방구 앞 게임기를 구경하다 집에 돌아온다. 책을 읽고 싶어도 집에 없고, 어디서 빌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빈곤 아동·청소년의 교육 현실


 민수는 잘나가는 강남 8학군 학교에 다니는 부유층 부모를 가진 아이도 아니다. 이미 일반화된 보통 가정의 아이다. 민수와 수현이 같은 아이들의 교육 여건과 환경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강남으로 가면 더 벌어져 비교 대상에 넣을 수조차 없다. 수현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교육을 비롯한 여러 방면의 열세를 극복할 뾰족한 대안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신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아 교육·보육의 지나친 민간 의존으로 출발단계에서부터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기관에 따라 교육의 질과 내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차등 보육료 등 최소한의 보장을 통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100만원을 훌쩍 넘는 영어 유치원부터 그저 돌봐주는 것에 불과한 놀이방까지 큰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경제적 빈곤과 아울러 이로 인한 가정적 결손으로 생긴 가정교육 부재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가족 해체로 가정 내 생활 교육과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알코올이나 가정 폭력, 정신 지체, 만성 질환 등으로 가정교육의 사각지대가 확대되는 등 심각한 폐해까지 나타나고 있다. 빈곤층 아동․청소년의 경우 돈이나 소유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의사소통이나 일상 예절과 상식에서는 매우 더딘 성장을 보이는 의식의 불균형까지 보이고 있다.


 교육에서 지역별 격차도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일례로 지역별 초·중학교의 기초학습 부진 학생 비율이 초등학교 3.7배, 중학교 5배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 진학률도 매년 30-40%의 차이가 드러나 이른바 서울 강남 8학군의 경우에 부진 학생의 비율이 현저히 낮고 대학 진학률도 월등히 높다. 빈곤층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부진 학생의 비율이 높고 대학 진학률이 낮게 나타난다. 가계 소득 최상위와 최하위 간 수능 시험 점수가 30점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는 실정이다.


 서울 강남의 아동들은 평균 5-8개의 학원을 다니고 비강남권의 아동들은 평균 3-5개의 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에 비해 빈곤지역 청소년의 경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부방, 지역 아동센터, 복지관 ‘방과 후 교실’이 전부이며 사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전체 공교육비 가운데 개인 부담 비율이 높은 우리사회의 구조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미 학교 교육이 가정에서의 교육 뒷받침과 사교육을 전제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빈곤 아동·청소년이 발붙이기 어려운 형편이다. 경제 사정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방임으로 학습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는 것은 보통이고, 조손 가정 아동의 경우 학교 ‘알림장’을 제대로 읽지 못해 숙제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아가 경제적 빈곤 때문에 66.5%가 자신이 원하는 단계까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이 매년 4-5만 명(전체 고교생의 1.2%)이나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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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서의 지역별 격차는 더욱 커져만 간다
사진 출처 - 대전일보


 교육 불평등,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교육의 출발선을 동등하게 한다는 의미는 일찍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빈곤으로 인한 문제와 빈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빈곤층의 교육 불평등 문제에 대해 시혜적인 관점으로 대처해온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방향부터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정부와 각 교육청이 내놓고 있는 희망 투자 전략(2004년), 교육 격차 해소 방안(2006년) 등을 지역의 실정에 맞게 반영하고 빈곤 아동·청소년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갈 수 있도록 현실화해야 한다. 또한 2003년부터 시작된 ‘교육 복지 투자 우선 지역 사업’이 시혜적 수준에서 끝나지 않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빈곤지역의 실정에 맞게 학교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빈곤 아동·청소년이 안고 있는 경제적․가정적 빈곤의 문제는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접근을 통해서만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초․중학교 학습 준비물 지원 등과 같은 현실적인 내용도 적극 반영해야 한다. 또한 프레네스쿨(프랑스), 채터스쿨(미국)처럼 빈곤 아동·청소년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학교 설립 등 중장기적인 모색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개별 아동에 대한 일대일 맞춤 교육과 더불어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이 제공될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점차 늘고 있는 빈곤 아동․청소년을 감당하기 힘든 방과 후 교실, 공부방, 지역 아동센터 등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투자를 통해 내실을 기하도록 돕고 아이들 스스로 찾아오는 기관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지역 내 상담 및 사례 관리 기관, 진로 상담 및 취업 지도 기관, 쉼터와 문화 공간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한 다음 세대 위해 마을 전체가 나서야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빈곤지역의 교육 격차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적 대안이나 구체적 방안 마련이 우선이지만 획기적인 대안이나 방안 마련은 쉽지 않다. 오히려 지역 사회와 시민 단체가 함께 나서는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를 동원할 만큼 교육적인 열의를 가진 부모들이 있다면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생각하고 함께 키워나갈 지역 사회의 결단이 필요하다. 즉 마을 전체가 나서서 우리의 아이들을 키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대일 멘토링, 위탁 가정, 대안 가정 등은 우리의 아이들을 사회가 품어 안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가정, 학교, 지역을 잇는 빈곤 아동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빈곤 아동·청소년과 함께 그들 속으로 들어가 활동해 온 시민·종교 단체가 나서서 정부와 더불어 역할을 나누고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빈곤 아동·청소년에 대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의 출발선부터 교육의 결과가 보이는 때까지 지속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울타리가 되어줄 때 건강한 다음 세대가 자라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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