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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군에 입대한 아들에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6:49
조회
465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제 네가 보여준 미소가 눈에 선하다. 집합 장소로 들어가다가 나를 돌아보며 씨익 웃더구나. “걱정 마세요. 잘 할 테니까.” 그 순간 이 녀석이 그새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남들 다 가는 군대 가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었는데 막상 네가 군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 한 것이 착잡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아들 둔 이 땅의 부모들이 모두 한번씩은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겠지.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얼마 전부터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 정도는 예상도 했던 일이건만 하필이면 아들 군대 보낸 날 그런 뉴스를 듣게 되니 이래저래 기분이 더 착잡해 지더구나. 문득 20년 전 네 첫 돌잔치 때 광경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의 친구들이 모여 축하를 해 주고 함께 술잔을 나누었지. 너도 대강 알겠지만 그 당시는 너희 세대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던 살벌한 시기였다. 멀쩡한 젊은이가 군대에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대학생이 경찰에 고문을 당해 죽기도 하던 그런 때였다. 그날 아빠와 우리 친구들은 네 돌잔치를 핑계로 오래 만에 마음껏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때 아빠 친구 하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하는 듯이 너를 보며 이야기 했었다.


 “그래, 네가 이 담에 어른이 됐을 때는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강제로 군대 끌려가는 일도 없고,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필요도 없는 세상이 와 있을 거다. 꼭 그렇게 만들어 주마.”


 말귀를 알아들을 리 없는 돌배기 어린 아기에게 자못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그 친구를 보고 모두 웃었지만 적어도 그 약속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단다.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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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2006 육군훈련소 국방화보


 그로부터 정말 눈 깜짝할 새에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넌 대학생이 되었고 우리 사회도, 나 자신도, 아빠의 친구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우리가 네게 약속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구나. 전쟁의 위협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이 있고 여전히 젊은이들은 원하건 원치 않건 군대를 가야만 한다. 대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가고 운동이냐 취업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민주주의를 외치며 지금도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고 여전히 젊은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한다. 도대체 지난 20년간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 놓은 걸까. 새삼 이런 질문이 아프게 고개를 내민다. 그래, 우리가 네 돌잔치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는 못한 것 같다. 미안하구나. 어쩌면 다시 너와 네 친구들이 너희의 아들들에게 똑 같은 약속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꼭 그래주길 바란다. 어쨌든 세상은 그런 약속들로 인해 조금씩 좋아지지 않겠니?


 너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이라고 했지만, 난 네가 좀 다르게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늘 하던 이야기 있지 않니?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 이거 말이다. 생각해 보면 군대 생활은 네가 밖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군대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웠을 사람들을 만나 서로를 겪어내는 것도 어쩌면 너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2년 남짓의 기간 동안 졸병에서 고참까지를 압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도 군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중에라도 네 인생의 그 2년이 결코 헛된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너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네가 보낸 이메일이 와 있더구나. 어제 밤 잠들기 전에 보내 놓은 모양이지? 걱정 말라는 이야기, 내 건강 걱정, 그리고 맨 마지막에 써 있는 한 마디, ‘사랑합니다. 아버지.’ 순간 울컥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단다. 이 녀석이 이제 다 컸구나. 자식,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줄도 아네...


 그래. 나도 사랑한다. 너도 잘 지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꾸나.


 아빠가.(넌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난 여전히 아빠란 호칭이 좋단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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