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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6:47
조회
796

서정민갑/ 좌파


 집회때면 꼭 한번은 부르게 되는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사실 이 노래를 부를때마다 노랫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동지는 간데없다? 그럼 동지가 떠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구속되거나 죽음을 맞았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전자의 혐의가 짙었던 것은 이어지는 구절이 바로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동지는 떠났지만 깃발은 여전히 나부끼고 있으니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이런뜻으로 해석이 되면서 뭐랄까, 너무 외롭고 비장한 느낌이었다. 운동하는 이 옆에 수많은 동지들이 넘쳐나도 부족할판에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낀다는 노래를 매번 부른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를 만들었던 이가 나름 선견지명이 있었던것이 아니었나 싶다. 동지라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갈수록 운동을 떠나는 현실을 그는 어쩌면 훤히 내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 구속과 고문, 가난과 편견처럼 운동을 힘들게 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평생 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는가. 평생 운동을 해야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막상 자기 삶의 구체적인 현실로 떨어질때 결단을 내리기는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과거 운동의 최선두에서 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이 아무런 변명도 없이 쉽게 운동을 떠나는 모습이었다. 조국의 민주화와 자주통일, 평등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쳐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던 이들이 조금 세상이 좋아졌다고 금세 양복으로 갈아입고 정권의 요직으로 가는 모습은 정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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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사진 출처 -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마음으로 안에 들어가서 싸우겠다 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군부독재에서 민간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좀 더 우리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정치권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두 번의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동안 소위 평화개혁세력의 힘모으기를 위해 정치권으로 들어갔던 이들은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보수정치권에 완전히 편입되고 말았다. 기대를 모았던 386은 가장 실망스러운 집단으로 전락했으며 시민사회운동 출신자들도 정권의 개혁성을 위장하는 방패막이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그들 자신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이라크에 우리 군대가 갔을때, 그리고 농민과 노동자가 거리에서 맞아 죽고 새만금이 닫혔을때, 한미FTA 협상이 진행될때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때려잡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호랑이를 때려잡기 위해 싸우기는 커녕 깨끗이 때려치우고 나왔다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다. 꿀먹은 벙어리마냥 침묵을 지키던 이들은 계속 자리를 바꿔가며 각종 정부기관들을 맴돌았을뿐 결코 자신이 몸담았던 시민사회운동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떠나가는 동안 남아있는 동지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깃발은 여전히 펄럭이고 있지만 떠난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깃발조차 갈수록 낡고 초라해져버렸다. 한때 함께 이야기했던 반전과 평화, 자주와 평등이 평택에서, 서울역에서, 포항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동안 함께 거리에 섰던 이들은 여전히 처절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부끄럽지 않을까 싶다. 대추리에서 죽겠다는 문정현 신부님의 까맣게 타들어간 얼굴앞에서, 수많은 비정규노동자의 눈물앞에서 정말 가슴을 치며 잘못했다고 빌고 싶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권력의 단맛에 취한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참회를 하고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그들의 운동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남아있는 이들이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노래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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