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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56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 - 의미가 실종된 사회… 떠나야 하는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6:58
조회
167

박홍규/ 영남대 교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이제껏 투표를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부끄러워 어디론가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 대선 하루 전날 아예 외국으로 떠날까 싶기도 하다. 정말로 최악의 대선이다.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이번 대선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고 싶지 않고, 학생들 앞에 서야  하는 선생으로서도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기만 하다. 요즘은 세상에 대한 허무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이런 나의 현재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출가는 욕망을 끊어내는 길


 그동안 한국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발언도 해 왔지만, 최근 내가 붙들고 있는 화두는 다름 아닌 ‘출가(出家)’다. 단순히 현실로부터 도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실존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되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출가를 비롯한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내가 부처로부터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부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와 속세에서 말하는 출가의 차이가 무엇일까. 흔히 말하듯 출가는 숭고한 것이고 가출은 천박한 것인가. 오랫동안 불교를 공부했는데, 오랜 의문중 하나가 부처의 출가에 대한 것이다. 재가는 속세에서 불교를 믿는 것이고 출가는 속세를 떠나 불교를 믿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는 16세에 결혼하고 13년 만에 득남을 하고는 자신의 아들에게 ‘나훌라’(악마를 의미함)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아들과 처자식, 부모님을 버리고 도를 닦기 위해 도망을 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부처의 출가가 숭고한 것인가. 그것이 가족파괴는 아닌가.


 그래도 부처의 생애에서 가족의 이야기는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예수의 생애에서는 가족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누가 내 가족이냐? 나의 어머니와 형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다.”라고 언급했을 뿐 아니라, “예언자는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사람이다.” 라고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반가족적인 사람인가 보다. 어찌 보면 예수는 가족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출가하지 않고 속세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저런 패거리를 만들어 살고 있다. 한국적인 패거리 문화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지만, 내 생각에 해결책은 그냥 혼자 살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패거리하고도 관련 없는 모임을 만들어 거기에만 참여하면 된다. 무슨 무슨 단체 등의 높은 자리 따위는 맡지 않아야 한다. 특히 학계의 패거리는 일반인들의 패거리보다 대처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주, 종을 갈라 얽어두는 패거리들이라서 그렇다.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면 학계에서 자발적인 왕따가 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패거리의 반대편에 서야 한다. 내가 시골에서 산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이런 것도 패거리에 섞여들고 싶지 않아서 한 선택이었다.


 현실에서 설 곳이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이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인권, 자유, 평등이라는 말도 그렇다. 10년 전만해도 인권이란 말에 심장이 요동쳤다. 하지만 요새는 인권, 노동이라는 말이 우습게만 들린다. 전공인 노동법은 전태일 열사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그분은 “노동자 자신의 실천적 자각의 표상”이다. 그분의 희생은 낮은 학력을 가진 분이 자신의 노동자로서의 삶, 권리, 책임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된 방법이 분신자살이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밑바닥의 역할을 했었던 노동자 자신이 자각적으로 자기의 권리, 인권을 주장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고, 그만큼 내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게 전태일 열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헌법에는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과연 자유란 무엇인가? 권리란 무엇인가? 오로지 소유권만 권리로 인정되는 사회, 강남에 사는 사람들만의 자유와 권리인 것처럼 여겨진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활동하고 있는데, 나는 ‘국가’와 ‘인권’이 하나의 이름으로 붙어있는 것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국가가 정말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가.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가 진행되었다지만, 내가 보기에 그 민주화는 온통 소유한 만큼의 민주화이고, 그만큼의 인권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처럼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군인들이 심어놓은 말과 체제가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자유, 권리, 평등이란 말을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나는 날마다 괴롭다. 그리고 창피하다. 로스쿨은 교육을 돈으로 사는 것일 뿐


 이런 상황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은 나로 하여금 부처의 출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고 싶은데, 요즘 로스쿨을 둘러싼 정부와 대학의 모습을 보면 가히 ‘미친년 널 뛰듯’ 하고 있다. 물론 이 표현을 통해 여성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로스쿨은 한국 대학의 법학교육을 뿌리 채 흔드는 이상한 짓이다. 돈이 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의학, 법학 등의 분야에 전문대학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자는 것은 미국을 본 뜬 것이다. 그래도 미국은 100년 정도의 역사를 거치면서 드러난 문제점을 많이 보완했다. 그렇다고 우리도 앞으로 100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로스쿨의 설립 취지는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실례를 통해 살아있는 법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돈이다. 정부에서 발표한 기준에 따르면 1년에 3~4,000만 원의 등록금을 내야하고, 그보다 낮은 경우에는 로스쿨이 운영될 수 없다.


 내가 교단에 서서 3~4,000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내는, 그럴 능력이 자신에게든 부모에게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소위 잘 나가는 5% 정도의 계층에게나 혜택이 돌아갈 로스쿨을 통해 나머지 95%는 아예 잘 나가는 직업에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비겁하게 피하기로 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도 로스쿨을 추진하는데, 내가 로스쿨에서 가르칠 자신은 없어서, 법대를 나와 교양과정부로 갔다. 스스로 왕따를 선택했다. 내 식으로 출가를 한 거다.


 로스쿨 문제 말고도 노무현 정권의 실정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진보라는 이름을 내걸고 나온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 거의 사라져간다. 참담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욕망을 잘라내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 부처가 출가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자리에 대학생들도 있는데, 나처럼 늙으면 희망을 찾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하기도 하지만, 20대에는 언제나 희망만 함께하기 마련이다. 희망의 주체인 20대들이 모두 즐겁고 힘차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오늘날의 20대의 희망과 2, 30년 전 20대의 희망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정의, 대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희박해지는 반면 자본, 물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자신의 욕망과 이해에 충실한 것은 좋다. 현실적으로 사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그런 개인의 사적인 이해를 사회의 공공성과 함께 보는 태도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정리: 노은미/ 인권연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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