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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과 사기업의 차이(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0-19 10:06
조회
539

신종환 / 공무원


 좋은 공직자는 어떤 사람일까? 1차 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공무원 5대 신조에서 국가에 헌신하고 시민에게 정직과 봉사하고 어쩌고 하던 말은 이제 날리다 만 먼지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충성하고 정직하고 창의적이며 적극적이고 청렴하다. 뭐예요 그런 거 한 번에 다 넣지 말아요. 그런 사람은 생텍쥐베리가 어린왕자를 위해 그려준 상자 안에도 없을 거다. 아니면 영영 잠든 모습으로만 보이거나. 민원인들, 그리고 기관과 연관된 사람들이 좋아하던 동료 내지 선배들을 떠올려 보면 좋은 공직자란 공감 능력 있고 융통성 있는 사람 정도로 이해된다. 그럼 공직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배양하기를 지향하고 있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처럼 배척하지는 않아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권장하는 장면은 아직 보지 못했다.


 작년 여름 즈음에 적극행정을 권장하기 위한 시청 교육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사로 오신 분은 고위공직자로 여러 사업을 추진·성공시켰고 그의 대표적 성공 사업으로는 순천만 생태공원과 국제정원박람회가 있었다. 거대한 사업이었던 만큼 그는 전 세계를 종횡하며 순천만을 어떻게 변모시킬지를 고민했고,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인 찰스 젱스에게 생태공원의 전반적 설계를 부탁했다. 수조 원 대의 예산의 증감(나는 2억 원의 야구 보조금 문서의 최종 처리 버튼을 누르며 심장이 멎을 뻔했다), 주요 공사단계에서 급변하는 기후 등의 다사다난함(야구대회 간 악천후로 몽골 텐트 두 동이 날아갔을 때, 나의 의식도 거의 날아갈 뻔했다)을 겪으면서 최종적으로 생태공원 조성과 국제정원박람회는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무용담 같은 그의 교육 중간 즈음부터 나는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생태공원과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저런 얘기 들으면 이 자리 누군가는 업무에 대한 열의가 생길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의 다음 ppt가 눈에 들어왔다. 5년을 넘어가는 사업에 대한 검찰 조사와 조사 후에는 건설업체와의 민사 소송. 그는 조사 결과는 무죄로 끝났고 인건비와 관련된 민간 사업자와의 민사 소송 또한 자신이 승소했노라고 했고 이런 몇 가지 과정을 견뎌낸다면 성공적인 적극행정 공무원이 될 수 있다며 교육을 마무리했다. 이 교육은 뭐지... 거대한 재미없는 농담인가? 적극행정은 타고난 사람들만의 영역임을 강조하는 건가?


 물론 그 정도 크기의 정책을 다루지 않아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라는 그의 메시지 자체는 어느 정도 이해되고 좋은 취지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직업만 바꾸면 그건 그냥 보상이 없는 대기업 임원이 아닌가.... 공직자로서 우리의 차이점은 뭐지.... 대기업에는 미처 입사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9급 시험 통과하면 우리가 되는건가.... 아니면 태생적으로 존버정신이 강한 사람들이 있어 공무원의 길을 가도록 정해진 것인가...


 강사가 말한 자신이 해낸 사업, 퇴직이 임박한 과장님들이 무용담처럼 얘기해줬던 과거의 고충들... 규모의 차이를 생략하고 동일선상에 놓아보면 ‘비록 개고생했지만 마다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와서 퇴임한다네’라는 내용의 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그들의 가던 길을 가다가 사망하거나 병가휴직 중이거나 그도 아니면 이런저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공직에 대한 인식에서 사기업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점은 몸담은 노조의 요구사항에서도 느낄 수 있다. 급여인상, 퇴직금 인상, 처우 개선, 점심 여건 보장 등 노조의 요구는 급여 개선과 근무여건 개선이 주를 이룬다. 성과급 폐지 등의 주장도 없지는 않지만 명목상 제안사항에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그친다. 봉사자로서의 정체성은 주목받지 못하고 임금노동자로서의 비중이 나날이 늘어간다. 봉사자로서의 보람은 어디서 찾아낼 수 있고 어떻게 보존되고 배양될 수 있을까.


 임용되어 주민센터 복지 민원대에서 뵈었던 민원인 중 몇 분을 기억한다. 장애인 증빙을 위해 병원에 가야 했지만 병원 방문 및 설명이 어려워 주말에 차로 모시고 갔던 어르신, 배우자의 기초연금을 위해 방문 했지만 배우자의 치매 등으로 인해 결국 신청하지 못한 어르신. 첫 번째 어르신과는 병원 진료 대기시간 동안 얘기를 하면서 이 어르신이 신학교를 갔다가 피치 못한 사정으로 그만두고 일하다 장애를 얻어 혼자 사셨다는 걸 알았고 어르신이 고집스레 사주신 바나나 우유를 받아 마셨다. 두 번째 어르신은 어느 날 선물이라며 비타500처럼 보이는 포장 박스를 주셔서 열어 보았더니 양주가 나와서 짧게 적은 편지와 함께 문 앞에 돌려 드렸다. 그러고 한번 점심을 얻어먹으며 다음에는 술을 마시자는 그 분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갈증과 고마움이 섞인 감정을 느꼈다. 그 기억들은 내가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처럼 ‘내가 때려치우면 당신들은 혼자 남기에 나는 때려치우지 않소’라고 되뇔 마음속 움막이 되었다. 하지만 간혹 술자리에 그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나를 착한 미친놈이라고 했다.


 우리가 직장인이고 잘리지는 않지만 박봉이라는 것이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라면 시민을 홀대함으로써 생기는 상황을 어떻게 막을까. 공무원이란 말이 담아야 하는 추상적 온기는 어떻게 보존되고 배양될 수 있을까. 우리는 불가하다는 통보와 소극적이라는 민원으로 서로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엊그제 한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온 올해 신규직원들에게 노동조합 교육을 할 생각을 하며 답 없는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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