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식당에 ‘이모’가 많은 이유(주윤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0-12 15:17
조회
448

주윤아 / 교사


 


 딸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주문하려고 종업원을 부르려는 순간 망설였다.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은데, 그럼 뭐라고 불러야 적절할까?’ 사실 이런 식의 고민을 이번만 한 건 아니어서 얼마 전부턴 ‘사장님’으로 종종 부르기도 했다. 실제 주인이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느낌에 기분도 좋아지고 계속 듣다 보면 주인의식? 비슷한 마음도 우러나지 않을까 혼자 오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장님’으로 부를 때도 입에서 겉도는 느낌이고, 종업원 여럿이 돌아다니거나 진짜 사장님이 계산대에 있거나 하는 등의 상황도 있고 어쨌든 이 단어도 썩 내키지는 않는다. 어떤 표현이 더 좋을지 이야기하는데 딸이 이런 질문도 했다. 길거리나 식당 출입문에 ‘주방 이모님 구함’이라는 공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진짜 구직 조건에 ‘중년(’님‘을 붙인 것을 통해)’ 즈음의 연령대와 ‘여성(이모라는 구체적 단어 적시를 통해)’이라는 성별을 특정한 것인지, 아니면 의례적으로 쓰는 표현인 건지 궁금했단다.


 

출처 : 27일 신촌역 인근 한 식당에 구인공고가 붙어 있다. 2022.9.27/뉴스1 김예원 기자©news1


 


 요즘의 대학가에서도 ‘이모(라는 단어가 들어간) 식당’이라는 간판도 적지 않고, 단골 학생들이 자연스레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식당에서의 이 호칭은 사전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마치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유구한 전통처럼 보인다.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가족 관계 호칭(이모 외에 고모, 엄마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을 사용하며 그 식당 안의 모두가 갑자기 가족이 되어 버리는 이 풍경을 외국인이 본다면 어쩌면 이모(친족)가 일하시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물론 친근함을 전하는 익숙한 표현일 뿐이라며 유난스럽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손님뿐 아니라 종업원도 불쾌해하는) 종류의 호칭 사용*으로 인해 갈등이 불거진 사건들이 잊을만하면 보도되고 있고, 성 고정관념도 강화하며, 그들의 노동을 제대로 정의(평가)도 하지 못하는 단어라면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출처 : 2018.7.9.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호칭 논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또 다른 단어 중 하나로 '아줌마'가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결혼한 여성을 의미하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표현인데다 '나이 든(늙었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며)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확장되면서 누구든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되어버렸다. 공사 현장 등에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김 씨’, ‘이 씨’처럼 성으로만 부르거나 ‘삼촌’, ‘아재’ 등으로 무명씨로 뭉뚱그려 하대까지 하는 상황도 비슷한 예일 것이다. 학교에서도 교직원들이 청소 노동자를 공공연하게 ‘여사님’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젠가 학생들까지 이렇게 부르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마찬가지로 급식 노동자에겐 ‘아줌마’, 경비 노동자는 ‘아저씨’,‘할아버지’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보니, 성 역할 고정관념 없이 직무 특성을 반영한 적절한 호칭이 절실하다.


 어휘력이 떨어지는 건지, 창의력이 부족한 건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집에 와서 검색 등으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십여 년 전부터 국립국어원에서 관련 연구가 있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식당 노동자 호칭 공모 대회 등을 통해 ‘차림사’라는 새 호칭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국립국어원의 한 관계자는 직원의 지위나 성별과 상관없이 ‘종업원님’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강산이 한번 바뀌도록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일부 식당들처럼 종업원들의 명찰(이름이나 닉네임)을 보고 부르거나, 적잖이 사용하는 ‘여기요, 저기요(서양의 ‘excuse me’의 의미와 유사한)‘ 등을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말의 힘은 매우 강하며 대중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새 언어로 선택되어 바뀌기도 한다. 욕설을 일상으로 사용하는 무리와 자주 어울리거나 혐오를 목적으로 조직된 모임에 속해 있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저도 모르게 차별과 혐오의 언행이 반복되어 일상이 되다가 곧 나의 정체성이 돼버린다. 수년 혹은 수십 년간 사용하던 말이나 습관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결심한다고 하루아침에 존중과 배려의 언어가 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내가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받길 원하듯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인식이 갖추어져야 지혜로운 단어를 선택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능력도 생길 것이다. 요즘 ‘미망인’이나 ‘정상인’이라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이가 부쩍 줄어든 것처럼 식당에서 ‘아줌마’라고 부르는 풍경이 기묘해질 그날을 위해 익숙한 단어와 헤어질 결심을 하자!


 에필로그 : 이 글을 작성한 후에도 중년 남성이 식당 아르바이트생에게 ‘아가씨’라 불러 갈등을 겪은 사건 보도와 ‘사실 식당 (여)종업원들은 호칭보다 반말과 성추행 등이 더 괴롭다’라는 내용을 다룬 기사들을 연이어 접하며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또 다른 답답함이 밀려온다.


*대민 업무를 주로 하는 관공서와 식당과 같은 서비스·판매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손님의 호칭에 대한 불쾌감을 묻는 질문에는 ‘아저씨·아주머니(아줌마)’ 등으로 부르는 경우 절반 가까이(46.6%) ‘불쾌하다’고 응답했다. ‘아가씨·총각’으로 부르는 경우 역시 불쾌하다는 응답이 35.4%였다.

 출처 : 화성시여성가족청소년재단 양성평등 이슈레터(2021년 11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