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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달 무슨 달 -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12
조회
408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추석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고 했다.
추석날. 보름달은 구름 뒤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자며 아이들의 약만 올렸다.
아이들이 제풀에 꺾여 잠이 들었을 때에야 가끔씩 맨얼굴을 구름 밖으로 내보이고는 했다. 나는 가만히 달의 맨얼굴을 보며 아이들 몫까지 소원을 빌었다. “다만 평화를”

다음날 아이들과 함께 저녁산책을 나섰다. 맑은 하늘, 둥근 달이 온전히 떠 있었다.
지상의 유혹적인 불빛들과는 무관하게 달은 그곳에 ‘그냥 달’로 머무르고 있다.
아이들은 소원을 빌 수 있는 특별한 추석 보름달이 필요했던 듯 오늘의 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오직 땅을 걷기에만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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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애들아 하늘에 달 좀 봐! 정말 환하고 둥글다” 아이들은 응답한다. “어! 그러네...” 그리고는 이내 또 걷기에 열중한다. 걷다가 뛰다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암산 아래 명암방죽까지의 산책길은 번잡한 상가건물들을 지나야만 한다. 그곳은 어둠이 잦아들 기미가 없는 땅, 조명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주 열심히들 뛰고 걷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달의 존재를 잊은 것 같이 보였다. 나는 때때로 건물에 가리고 전선줄에 의해 조각난 달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이 너무 환한 거야. 밝기가 너무 강해서 사람들은 어둠을 잊은 것 같아. 존재를 잊은 달이 슬퍼할 일이다...”

몇 해 전 가을, 어느 날 늦은 밤. 나는 해남 미황사 뜰에 서 있었다.
참 많이 지쳤었고 아팠으며 분노와 절망감으로 몸과 맘을 학대하다 한줌 남은 기운을 부여잡고 그곳까지 가게 되었다.
깜깜한 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세상에!!" 달과 별이 너무나 가깝게 내 머리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늘 보는 달과 별이었지만 그토록 소름끼치도록 밝게 빛나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었다. 그때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낮에도 별과 달은 떠있고 밤에도 태양은 존재하는데 눈앞의 빛 혹은 어둠에 가려 그러한 존재들을 순간순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의 집착과 편견이 두려움과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을 하게 되자 묘한 충동이 생기게 되고 곧 실행에 옮겼다.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리라 생각하며 절 뒤편의 산길을 걸었다. 깜깜한 어둠이 두려웠지만 평소보다 훨씬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던 같다.

달은 이제부터 점점 야위어 갈 것이다. 실제로 보름달에서 초승달로의 변화는 여기에 사는 우리들의 시야에 드러난 달의 모습 일뿐이다. 달은 언제나 달의 모습으로 존재할 테지만 말이다.
산 아래 방죽에 다다르자 아이들이 말한다. “와아~ 달 정말 크다” 어두움 속에서 은은한 달빛을 의식했나보다. 나는 가만히 나무의자에 앉아 달을 바라보았다. 너무 환하고 밝은 세상에서 달빛에 의지해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그들에게 “다만 평화를, 또한 우리 아이들 가슴마다에 보름달이 오늘처럼 휘영청 빛나기를”

(어제 나무의자에 앉아 휴대폰 문장보관함에 쓴 시입니다)

달빛에 별빛에 온전히 맡겨
어둔 밤길 걸어가면 될 일
자연으로 그냥사람으로
달이 밝다 참

달빛만으로 살았던 사람으로
귀향의 삶으로 살 일이다
자연으로 그냥사람으로
달이 밝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