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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회의 주체로 만들어주는 역사의식’ - 장윤미/국민대 학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11
조회
334

장윤미/ 국민대 학생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마르고 닳도록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책은 한국 다큐멘터리다. 한 기자가 한국현대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실을 과거 청산, 국가폭력, 레드컴플렉스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알고 있던 역사가 어떻게 왜곡됐고 그것들이 현재 우리들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읽다 보면 많이 혼란스럽고 많이 화가 난다. 그러고 보니 가방 안엔 여순사건 관련 논문집에 김원일의 소설 '노을'도 들어 있다. 문학이라는 것은 체험하게 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소설 '노을'은 해방정국 14살 갑수가 겪은 충격적인 일들과 40살이 된 이후에도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다. 읽으면서 당장 몇 십 년 전 한국인들이 겪은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몇 번이고 눈물이 났다.

사실 난 역사엔 문외한이다. 아니 무관심했다는 게 더 맞겠다. 하지만 이번 학기 난 제대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현대사. 연유를 말하자면 평소 흠모하던 국문학과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 수업에서 여순사건을 중심으로 관련 논문과 문학작품을 읽고 역사와 기억의 관계를 고찰해보는 것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 답사까지 한다는 것.

막 개강하고 시작부터 몰아치는 엄청난 공부량 앞에서 따귀 맞듯 정신이 번쩍 드는 건 내가 얼마나 역사의식이 없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역사라 해보았자 중고등학교 때 국사책에서 본 내용이 전부다. 중요한 소설들도 늘 시험용이었다. '여순사건' 에 대해선 교과서에 적힌 몇 줄로 접했던 기억은 난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문장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이제야 나는 배운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함을, 그리고 역사란 것이 얼마나 현재와의 부단한 대화이며 미래의 많은 운명을 결정짓기도 하는 힘이 있다는 걸 말이다. 새삼 국어사전을 팔랑 뒤적여 본다. 역사의식이라. ‘어떠한 사회 현상을 역사적 관점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 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관계를 가지려는 의식!’

대학 초년, 우연히 얻어 읽은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라는 책이 기억난다. 당시 난 ‘드라마 같다, 내가 알던 역사랑 너무 달라' 하면서 읽었다. 그 책 역시 또 하나의 관점으로 쓴 역사겠지만 사실 역사관에 어찌 완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실증주의라는 게 가능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국가‘가 쓴 역사를 그저 읽고 외우기만 했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역사를 배웠다는 것이다. 국가가 쓴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역사 말이다.

알고 있던 역사를 해체하고 다양한 시각을 배우면서 왜곡되고 침묵당한 소리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또 폭력의 주체가 많은 경우 ‘역사를 쓴’ ‘국가’ 였다는 사실이다. 국가란 권력 하에 폭력은 정당화되고 은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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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은 교과서식 정의로 하자면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 좌익계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여기에 이 지역의 좌익계 청년과 주민이 호응한 폭동'이다. 사실 이 한 문장의 정의를 내리기까지도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그저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규정됐었다. 역사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따라 현재의 맥락에서 끊임없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걸 증명한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자기 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이 사건을 왜곡했고 반공정신을 이용해 억울하게 죽은 양민들의 입을 닫아 버리게 했다. 80년 이후에서야 피해자들은 말하기 시작했고 진실규명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엔 사건 당시 반란군 뿐 아니라 정부군경들에게도 학살당했다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국가는 아직 사과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난 역사 사건을 적은 한 문장 속에서 고구마줄기 같은 사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꼼꼼히 공부하면서 역사의식을 기른다. 그러면서 비판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기르려고 노력하게 된다. 당시 '여순사건'은 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지를. 반란을 일으켰던 그들의 목소리는 대체 어디로 가는지를 질문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왜 무고한 양민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기억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을 해체하는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지금 바라보는 하나의 점일 뿐인 현실에서도 양 옆으로 줄기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래야 거시적인 차원에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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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재 2008년이다. 촛불집회가 있었다. 거대한 사건이다. 우린 ‘존재했지만 느끼진 못했던’ '국가'를 인식했다. 그만큼 ‘국가’의 폭력과 비상식적인 일들에 절망해야 했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임시방편으로 자꾸 덮으려고만 했고 그때마다 폭력이 동원됐다. 집회자들의 폭력에 국가의 폭력이 정당화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에겐 뜻 깊은 경험일지 모른다. 역사를 공부하며 느낀다.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구나.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또 다른 얼굴로 다시 드러나게 마련이구나. 지금 여기의 현재는 후세에 어떻게 쓰일까. 이곳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목소리들이 제대로 전달될까. 지금 벌어지는 국가의 폭력 앞에 그냥 흠칫 해버리고 만다면 여전히 악순환이겠지? 안달이 나서 말이다. 역사의 수많은 주름들 속에 있던 힘없고 억압받았던 목소리들이 다림질 당했듯이 지금 여기 한국에서 쓰여지고 있는 역사도 미래에 그렇지는 않을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수많은 기억들이 국가가 쓰는 역사에 의해 쉽게 총체화되지 않도록 우린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나, 겉멋만 들어 타자라거나 오리엔탈리즘 같은 말들을 쓰곤 했지만, 정작 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에 대해선 나와 무관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 80년대에 태어났고 당장 몇 십 년 전부터 꾸준히 일어나고 있던 학살과 전쟁과 항쟁들에 대해선 너무나 표층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역사의식은 없는 채 역사만 알고 있다면 난 지금의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주체로서 깊이 있는 통찰은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는 계속 흘러간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풍부하게 역사를 공부하고 다분히 흔들리면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다독다독 심어나가야 할 것 같다. 그것이 곧 내가 지금-여기에서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사회적 시간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주시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준비해 가기 위한 과거 성찰의 토대는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 " (집합기억의 사회사적 지형과 동학, 김영범) 그래서 난 이번 학기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하며 역사의식을 길러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