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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노동운동에 대한 오해는 푸시라! -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7:28
조회
252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구속노동자후원회]라는 자그마한 인권단체다. 하는 일은 파업투쟁, 노조활동, 정치활동 과정에서 억울하게 구속된 노동자들에게 서신, 책, 영치금 등을 보내며 후원하는 활동을 한다. 올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아주 바빠 질 때는 대부분 안 좋은 일이 터졌을 때이다. 월평균 30명 내외, 많으면 50명 선에 이르던 구속 노동자 수가 올해 들어 100명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다른 어떤 운동보다 여전히 많은 탄압을 받고 있다는 건 구속노동자 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감옥에 있는 양심수 가운데 70% 가량은 언제나 노동자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양심수가 대폭 줄어들었던 김대중 정권 시기에도 노동자는 892명이나 구속되었고 노무현 정권 들어서는 4년도 안돼 868명이나 구속되었다. “민주화 시대”이후에도 연평균 200~300명씩 꾸준히 구속을 당해 온 것이다. 노동운동에 가해지는 의도적인 탄압은 운동 전반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고 있고 “국가 안보”를 빌미로 한 “공안정국”으로의 회귀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이 끝나고 포항건설노동자 58명이나 대거 구속되고 난 뒤 어느 날,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오십 대로 추정되는 어떤 아저씨의 목소리였는데 우리 단체가 발간하는 소식지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내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말 한마디 할 틈도 주지 않고 마구 퍼부어 대기 시작한다. “뭐 이런 놈들을 석방하라고! 대한민국엔 법도 없냐?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순간 ,우리 사회가 온통 집단 마취에라도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루 종일 우울했었다.

바야흐로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위상이 몰라보게 커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70~80년대 학생운동이 가지고 있던 위상을 노동운동이 이어받았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마저도 ‘대기업 노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라!’며 “대기업 노조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노조를 “사회악” “사회적 약자의 탈을 쓴 폭도”라고 매도하는 언론들도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이런 공격은 노동조합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하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면서 군사독재가 자행한 “노조는 빨갱이”라는 식의 참주 선동이 어느 정도 잊혀질 만 했는데, 다시 많은 사람들의 뇌뢰 속에 새로운 편견과 오해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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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들이 노동부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 거점으로 잡은 곳은 민주노동당 당사였다.
사진 출처 - 매일노동뉴스


우선 ‘노조의 파업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노동자들이 오랜 세월 투쟁을 거쳐 국제적으로 공인받게 된 기본권인데 파업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계속 심어줌으로써 파업을 탄압하고 규제하는 정부의 정책을 정당화 시켜준다.

물론 파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산이 중단되고 그로인해 기업의 대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면 소비여력이 생겨나고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내수 부진에 따른 투자위축이라고 많이 들 이야기 하는데 그 책임을 노동자들의 파업권 행사에서 찾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인권을 부정하는 발상이다. 경제 불황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고 사회적 필요보다는 이윤을 좇아 생산하다보니 ‘과잉 생산’은 늘 문제가 된다. 즉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업주들이 시키는 대로 너무 많이 일하다 보니 필요 없는 상품들이 시장에서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은 갈수록 줄어들고 불황은 악순환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대기업 노조는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특권집단이다.’ 노동조합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전부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자기 ‘밥그릇’을 확실하게 챙긴다면 우리 사회 ‘삶의 질’은 확실히 나아질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처럼 약 11% 가량인 소수의 노동자들만 노조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헌법, 노동법쯤은 가볍게 무시하고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려먹기 위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는 식으로 집요하게 탄압하는, 삼성 같은 생각을 가진 기업주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이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면서 어렵게 생존해가는 노동자들이 현실의 장벽을 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소수지만 선두에서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 “대기업 귀족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생활이 향상되거나 더 나빠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대기업 경영자들이 노조에게 양보한 만큼 하청기업을 후려쳐서 결과적으로 하청노동자들이 더욱 어려워진 문제는 대기업 노조가 의도했다기보다는 한국의 잘못된 기업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므로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다. 분명한 건 하청노동자들도 노조를 자유롭게 만들어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만 그들의 현실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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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근 조합원 장례식 날의 모습
사진 출처 - 매일노동뉴스


세 번째 “노조는 사회적 약자의 탈을 쓴 폭도”라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여름 포항 포스코 점거처럼 과격투쟁을 도맡아 하는 것도 민주노총이고, 지난 5년간 100일 넘게 파업한 장기 분규 사업장 54곳 중 51곳도 민주노총 소속”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구속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들이 주장하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죄목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1500만 노동자 가운데 60% 가량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법으로는 노조활동이 보장되어 있지만 노조를 만들어도 친목단체 이상의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업주하고는 교섭조차 할 수 없고 생산라인을 끊는 파업을 벌이거나 공장에서 천막치고 농성하다 보면 “업무방해죄” “폭력죄” 등이 성립된다. 지난 9월 30일까지 집계한 2006년 구속노동자 218명 가운데 86%인 187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사용자들은 법에 어긋난 줄 알면서도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용역깡패들을 버젓이 투입해서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그래도 그들은 구속되지 않는다. 오로지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분에 못 이겨 몇 대 때린 노동자들만 구속당한다.

그래도 “폭력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사용자와 합법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100만원도 안되는 쥐꼬리만한 전임비를 지급받았다는 것 때문에 “공동공갈범”으로 몰려 구속 기소된 한 건설노조 간부의 편지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누군가가 얘기 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건설노동자들은 수십 년 동안이나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회적 냉대와 목숨을 담보로 한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 누군들 세상을 살면서 빡세게 투쟁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억울하게 당하고만 사니까, 하다하다 안되니까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까 투쟁하고 투사가 되어지는 것 아닙니까?.....건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은 정치권으로 수천억씩 흘러 들어가고 정치하는 놈들은 그 돈 받아 처먹고 건설 자본가 놈들 뒤치다꺼리나 해주니까 건설현장이 온갖 부조리와 불법이 판을 쳐도 어떤 놈 하나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불법을 까발려 봤자 결국 자기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별거 아닙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건설노동자들 등골 좀 이제 그만 빼먹고 건설현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시민들이여, 이제는 그만 노동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