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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있는가? (전국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1:34
조회
195

전국완/ 중학교 교사


 

한 해를 마치면서 겨울방학 즈음이면 연례행사처럼 온몸이 아프곤 했었다. 에너지가 소진되었음을 알리는 방학증후군이랄까. 그런데 올해는 그 놈의 행사가 유난히 요란한 것이 근 한 달이나 약을 달고 살았다. 약에 취해 해롱거리면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되다 보니 요란하게 소리치며 새해를 향한 카운트다운을 해대는 TV 속 군중들의 모습이 너무도 생뚱맞아 보였다. 저들은 밝아오는 새해에 대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몸살’ 앓으랴, 학년말 업무하랴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데, 전에 없이 여기저기서 인권연수 듣자는 연락이 오고 부랴부랴 마감직전에 연수신청을 하고는 참가하게 되었다. 와서 보니 왜 이리 아는 얼굴들이 많은지, 지금까지 들은 인권연수 중 제일 많은 ‘우리’들이 모인 것 같다. 이들을 보며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 우리 모두 심각한 위기감에 몰려 발길이 모아진 것이 아닌가 싶다.

시험 때마다 스트레스로 유리창을 깨는 아이들의 유혈이 낭자한 주먹을 보는 일, 지역교육지원청의 채근 탓인지 재학생들로도 성이 차지 않아 인근 초등학생들마저 방과후 수업으로 끌어들여 방과후수업의 새 역사(?)를 여는 중학교,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경기인 지금도 연일 매출액을 경신하고 있는 사교육비에 삶이 파탄 날 지경인 서민들, 막대한 국민혈세를 지원받으면서도 가르치는 일보다는 우수학생 선점에만 혈안이 되어 고등학교 중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대학들, 사교육비에다 천만 원이 넘는 대학등록금 탓에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는 세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 속에서 절대 다수의 시민을 ‘루저’로 전락시키는 괴물인 경쟁과 물신주의…….

이런 비교육적인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불법적인 정치행동으로 매도하여 범법자로 만드는 정권, 여당의원에게 수백만 원을 후원한 교장은 놔두고 야당후보에게 몇 만원의 후원금을 건넨 전교조교사들은 무더기로 해고하려는 정권과 검찰의 후안무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해 온 골수보수언론들이 무더기로 종편채널권자로 선정되는 현실, 도심 한복판에서 무자비한 철거에 저항한 서민들이 폭도로 몰려 불타 죽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을 건 절규가 메아리 없이 스러지는 곳,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75만원에서 1만원 올려달라는 청소부아주머니들의 요구에 해고로 답하는 대학이 있는 나라, 노조 가입했다고 매값 운운하며 야구방망이로 근로자를 패는 CEO가 있는 나라, 어린애들과 장애인 밥그릇 빼앗아서 삽질에 쏟아 붓는 나라, 정권비판하면 언론이든 국민이든 고소고발로 응수하는 무시무시한 나라, 대를 이어 군대 면제받은 사람들이 전쟁부추기는 나라, 그리고 이렇게 속은 곪아 터져서 문드러지고 있는데, ‘G20회의’ 개최를 떠벌이며 ‘국격 향상’ 운운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어느 쪽을 둘러봐도 절망적이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고 비난할 기력도 없다. 지지율 50%에 한껏 고무되어 있는 대통령과 정부여당, 보수언론, 이 사회의 기득권층. 그들은 모두 벽창호들이다. 아니, 우리의 외침에 설득당할 가슴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너무나도 야만적이고 폭력적인데다가 점점 가속이 붙어버린 이 ‘몰상식’과 ‘파렴치’의 급류에 자칫하면 나도 쓸려갈 수도 있겠다는, 아니 이미 쓸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무언가 붙들고 싶어졌던 것 같다. 나름 씩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이런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연수에 참가했지 싶다.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기대했던 ‘희망’의 전조는 찾을 수 없었다. 이 정권을 택한 건 천박한 물신주의와 이기주의의 포로가 된 우리 스스로였다는 통렬한 자책밖에는.

1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칼럼 <‘착한 우리’에 대한 환상 깨기>에서 소중한 힌트를 얻기로 한다. ‘…… 권력자들도 오로지 당장의 사리사욕을 좇고, 대중들도 ‘성공’만 한다면 파렴치한 모리배를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볼 준비가 돼 있는 사회에서는, 권력자들에게의 직간(直諫)이나 그들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도덕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은, 모리배들이 매체를 통해 유포하는 환상에 넘어가고 마는 대중들에게 혹은 대중들에 대해서 바른말을 하는 것이다.…… 이윤만 알고 정의를 모르는 국가인 대한민국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경쟁과 착취에 길들여진 유순한 노예인 우리들의 실제적 상황에 대한 바른말이 대중화돼야 노예상태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경쟁만능의 기조 속에서 각자가 힘없는 개체로서의 삶을 꾸려가느라 일상이 버겁겠지만, 결국 ‘희망’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 자체’일 수밖에 없다는 어느 강사님의 말씀이 현재로선 최선의 답일 듯싶다. 이번 연수를 통해서 우리 각자가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을 밑천 삼아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희망을 만드는 일이리라.

보수언론들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진보언론매체 하나 더 구독하고, 나아가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구독시키자. 자신들이 기득권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이 계급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 강사분이 말씀하신 책읽기 모임을 꼭 시작하자. 우리들이 외면하거나 보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저들이 감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지난할 수밖에 없는 노정 중에 계속 깨어있기 위해서라도.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이지만, 지난해 끄트머리에서 겪어낸 ‘몸살’에 대한 의사의 진단은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온 것이다. 매일 매일의 스트레스가 해결되지 못한 채 누적된 결과,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체내 모든 기관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몸의 건강한 순환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무력감으로 인한 우울과 스트레스 알갱이들이 암덩이로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아 세포증식을 통해 몸 전체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서둘러 해체작업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