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22
조회
215

강국진/ 서울신문 기



“이스라엘은 적입니다. 그들은 내 고향인 레바논, 그리고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이웃이 아닙니다.”

와엘 사브 회장은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다. 레바논이 고향이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그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반응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오랫동안 체득한 처세술인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스라엘은 중동 평화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웃나라인 레바논 사람으로서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5월22일부터 28일까지 8일 동안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방문했다. 6주에 걸친 순회특파원 일정 중 첫 단추를 중동으로 꿴 셈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격변과 침묵, 경제적 번영과 답보를 대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만나는 중동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이스라엘과 관련한 많은 질문을 던져보려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만나본 ‘중동’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무력을 앞세워 이웃나라를 힘으로 위압하고 영토를 불법점령하고 수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그런 깡패 짓을 대놓고 하는데도 말리는 건 고사하고 편만 들어주는 미국에 대한 불만이 두 번째였다. 그것은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모든 학생들이 미워하지만 ‘완력’에 밀려, 그리고 학교가 채워준 ‘완장’에 눌려 불만을 삭일 수밖에 없는 학교 규율부장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사업가로 일하는 한 이라크인 알리 가잘은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이건 누구건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에겐 아무 상관없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미국은 십년 넘게 사담과 친구로 잘 지냈고, 그 뒤로도 딴 짓 못하게 막아만 놓고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뒀다. 그러다가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이라크를 난리판굿으로 만드는가. 사담이 대통령일 때 나는 이라크에서 기업하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오히려 사담이 무너지고 나니까 극단주의자들이 내 공장을 불질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이민 올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업관계인 다른 이집트인 이햅 옴란의 말은 더 냉정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나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믿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믿지 않는다. 왜 중동 평화가 안 되는가. 우리는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데 이스라엘이 평화를 원치 않는다.”

두 사람은 종교간 갈등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단호히 손을 저었다. 가잘은 “이라크에 유대인이 많이 산다. 천년 넘게 아무 문제없이 다들 어울려서 평화롭게 살았다. 중동 국가 어디에나 유대인들이 산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은 지금 어떤 처지인가.”고 반문한다.

이집트인 에즈딘 엘하산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이 미국에게도 손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아랍은 원래 상인문화가 발달해서 미국과 정서상 더 잘 맞는 곳”이라면서 “미국이 이스라엘만 옹호하면서 중동권에 반미 정서가 퍼졌고 결국 많은 중동국가가 소련과 가까워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는 “미국은 이스라엘을 얻는 대신 전체 중동권을 잃었다.”는 것이다.

6주간 순회특파원의 핵심 주제는 ‘공공외교’였다. 공공외교는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간단히 말해 ‘상대방 국민의 마음을 직접 얻는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외교가 외교관 대 외교관, 정부 대 정부라면 공공외교는 주체가 정부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일 수도 있다. 대신 대상은 상대국 정부가 아니라 상대국 국민의 ‘이해와 공감’인 셈이다. 문화외교, 학술교류는 물론 개발원조단체들의 활동도 공공외교에 포함된다.

한국 같은 나라에게 공공외교가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4대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분단된 상황에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외교는 물론이고 한류 자랑만 하거나, ‘자랑스러운 1만년 역사’같은 허황된 국수주의 경쟁을 벌이거나, 다른 이웃은 나몰라라 하고 특정 이웃만 ‘편애’하는 행태 모두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란 문제의식 때문이다. 가령 ‘한미동맹’을 되살린다며 남의 나라 대통령 골프차량 운전이나 해주고 쇠고기 받아오는 방식은 접어두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대국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는 걸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각인시킬 것인가, 이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알릴 것인가란 주제로 직결된다. 고민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란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얻어냈다. 이스라엘계 로비단체인 AIPAC는 미국 내에서도 최대 최고 로비단체다. 아무도 이 단체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인들의 ‘불신’을 보면서, 그리고 이집트 다음으로 찾아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한 각국 문화축제에서 팔레스타인 부스 앞에서 땡볕에 길게 늘어서 있는 헝가리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이스라엘 ‘공공외교’의 빛과 그림자를 본다.

20110801web01.jpg
9월 런던에서 열리는 ‘템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YG 가수들의 공연을 촉구하는 영국 팬들의 플래시몹 시위
사진 출처 - YG엔터테인먼트


하긴 멀리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점령’하고 있다는 한류를 통해 달러 좀 더 많이 벌어보겠다고 해외에서까지 ‘K팝 공연 촉구 플래시몹’이란 신종 관제데모까지 만들어내고 한류를 무슨 신성장동력이나 되는 듯이 난리치는 정부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한류에 취한 한국의 슬픈 조급증과 물욕을 본다.

우리는 한류가 세계 만방을 '점령'해서 그 덕에 이수만 같은 사람이 달러 많이 벌어들이는 나라를 원하는건가? 독도 문제를 이슈해 보려는 일본 의원 세 명에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며 군복입은 아저씨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동계올림픽 한다고 개발업자들 배불려 주고 이건희 회장 사면에 면죄부를 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182억원을 들여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건지 물어보는 걸 주민투표랍시고 하는 나라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 것일까. 그게 해결이 안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외국에 알릴지가 해결이 안된다. 그게 안되면 글로벌만이 살길이니 해외 인재 영입해야 한다며 인도 사람 채용해놓고 고작 한국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며 삼겹살에 소주로 밤샘시키는 짓이나 벌이는 어떤 나라 대기업처럼 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