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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기의 기술 (전국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4:31
조회
227


전국완/ 중학교 교사


 

얼마 전 교내 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출석하여 반 아이에 대해 진술을 했다.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한 그 아이는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아이가 없다보니 늘 움츠러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한 기억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힘들게 하는 요인인 것 같았다. 입을 열어 말을 할 때 욕부터 시작하며, 말에는 늘 분노가 담겨 있다. 이런 행동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듯하다. 자신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친구가 없다 보니 일단 자신감이 없어지고, 또 다른 아이들로부터 공격을 받을까봐 미리 공격적으로 방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소외감이 분노로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들어서 동료교사들과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해가 다르게 심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약을 처방받아 먹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은 부모님, 친구와의 문제이다. 예전에는 주로 1학년 아이들 사이에 왕따 문제가 주로 발생하다가 2학년부터는 차츰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문제가 학년과 상관없이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시절 왕따를 당한 학생은 ‘왕따’였다는 이유로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2,3학년이 되어도 계속 기피대상으로 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삶의 순간에서 ‘친구’란 정말 의미 있는 존재지만, 특히 학창시절에 ‘친구’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환경이다. 몸과 마음에 엄청난 변화를 겪으며 성장통을 앓는 이 시기에 동일한 경험을 하는 또래친구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다.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봐도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중요하지만, ‘친구’야말로 학교생활의 든든한 빽이다. 마음 맞는 친구들의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비로소 자기를 발현할 에너지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중요한 친구 사귀는 방법을,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고 지켜가야 하는지를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예전에는 그래도 그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열 명 가까이 되는 식구들과의 일상 속에서 인간관계의 기본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방과후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은 집에 던져두고 밖으로 몰려나와 온 동네를 쏘다니며 엄마가 ‘이제 그만 들어와 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까지 미친 듯이 놀았던 기억이 난다. ‘만세잡기’, ‘여우야 여우야’, ‘우리 집에 왜 왔니’, ‘망까기’, ‘많은공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놀이를 하며 우리는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매너와 자질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것이다.

물론 요즘 아이들도 학원에서, PC방에서 또래끼리 ‘놀이’를 한다.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고, 게임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 체온이 느껴지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보다는 ‘가상공간’과 ‘가상인물’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또한 3~4명 정도 되는 식구들은 모두 바빠서 한자리에서 식사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이 분명 아이들의 건강한 ‘관계 맺기’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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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10대 소년들의 관계를 날카롭게 다른 영화 <파수꾼>
사진 출처 - 씨네21


거기에다 ‘학교폭력’ 관련 사건이 자주 발생하면서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 일말의 ‘불안’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학교 친구들의 행동을 ‘이건 폭력인가, 아닌가’의 시선으로 보게 되고, ‘피해자, 가해자’라는 단어가 아이들의 일상어가 되면서 친구간의 신의나 우정 대신에 ‘불신’이 자리잡게 된 게 학교 현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되는 학생 사안들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은 ‘아이들을 이대로 놔둬도 될까?’ 하는 위기감이다.

‘관계 맺기’의 미숙함과 실패, 그로 인한 부적응을 사춘기 아이들의 일시적인 성장통으로만 봐선 안 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 직장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 우리 사회에, 그리고 자신의 아이양육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면서 또 다른 갈등과 상처를 재생산해 나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가입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1위), 출산률은 세계 꼴찌’ 등의 지표는 우리 사회의 건강수준이 얼마나 위험수위에 왔는지를 말해 준다.

엊그제 본교 교육과정협의회결과가 문자로 통보되었다. ‘2학기부터 스포츠활동 주당 4시간 의무시행으로 인해 주당 1시간이 증가되어…….’

학교폭력 예방의 일환으로 교과부가 내놓은 대책으로, 또 무작정 밀어부친다. 사춘기 아이들의 에너지를 운동으로 발산시켜 폭력적으로 쓰이는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스포츠시간을 늘리는 것 자체는 일단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좁은 교실에서 바르게 앉아 힘든 교과수업을 받는 것보다는 뛰면서 땀을 흘리다보면 몸과 마음이 맑아질 수 있으니까.

다만 이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교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고민은 진정성 있게 하고 있는 건지..

독일에서는 ‘아이들에게 공부 시키지 않기’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 먼 이야기지만 이게 정답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국영수사과’만 가르칠 게 아니라, 이제 세상살이에 정말 필요한 ‘관계 맺기’에 대한 수업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연중행사로 치러지는 수련회 시간에만 할 것이 아니라, 정규 수업시간으로 설정해서 레크리에이션도 도입하고 공기놀이, 우리집에 왜 왔니 등을 해 보면 안 될까? 노래방도 들여놓고, 춤추는 시간도 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도 실컷 불러보게 하면 안 될까?

몇 년 전부터 교과부가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줄여주겠다며 밀어부친 ‘집중이수제’는 결과적으로 실패다. 진정 학업부담을 줄이겠다면 좀 획기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철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일반교과목수업은 하루 4~5시간만 하고,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을 하게 하면 어떨까? (아이들이 그래도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 동아리활동인데, 주 5일제가 되면서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그리고 학교나 교육당국만이 아니라, 범시민사회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문제를 분석하고 교정하려는 노력이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의 문제는 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이윤창출을 위한 마케팅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물질만능’으로 몰고가는 기업과 이들의 자극적인 상업광고를 무한정 복사해대는 언론매체의 행태는 심각하게 반성해야 될 부분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극도의 경쟁과 불신 속에서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더불어 성장해 가는 ‘친구’로서의 관계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도 좀 ‘운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