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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주인은 누구인가(윤요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11 10:11
조회
301

윤요왕 / 전)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지난달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성지순례나 걷는 것에 대한 간절함은 아니었다. Gap Year로 지내고 있는 올해 우연히 친구로부터의 좋은 제안에 20여일간 순례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가보니 생각지못했던 많은 한국인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정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뒤돌아 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삶의 긴 여정에서 오롯이 걷고 먹고 자는 거에만 집중하며 일상에서의 자유와 일탈을 통해 무언가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이나 삶의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출처 - 한국경제


그런데 나의 눈에는 보통의 순례자들과는 조금 다른 것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길’이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스페인 성지까지 이르는 순례길 전후로 포르투갈의 리스본, 파티마, 포르투 그리고 스페인의 크고 작은 마을과 바르셀로나까지 시골길과 도시의 골목길 그리고 차가 다니는 큰 도로길 등을 걷게 되었다. 평소 비교적 걷지 않았던 내 일상에서 하루종일 두 발로 걸어다녀야 했던 고된 여행길이었다. 어느 도시, 마을을 가나 이 길이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 길(도로)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보게 되면서부터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길의 주인은 너무도 당연하게 ‘사람(보행자)’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 두 나라의 인상깊었던 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출처 - 브런치


첫 번째로 예전의 건물과 그 사이사이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제국주의로 전세계를 지배하며 융성했던 적이 있던 대국으로서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다. 중세시대 그 어느나라보다 번성했을 것이고 당시 건축물과 성당, 주택 등 도시계획에서도 엿볼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골목길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음에 더 놀라웠다. 건물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고 차도를 넓혀 전혀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도시 어디를 살펴봐도 똑같았다. 그 골목길에 차도 다니지만 여전히 골목길의 주인은 걸어다니는 사람이었다. 이런 골목길들이 보존되고 있기에 골목길 곳곳에 상가와 주택가가 존재하고 있었고 여느 유럽풍경하면 떠오르는 인도에 테이블과 식사,차를 마시는 여유로운 공간이 조성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출처 - 저자



출처 - 저자


두 번째로 도로의 구조가 우리와 달랐다. 차도보다 인도, 자전거도로가 더 넓은 곳이 많았다는 점이다. 보통 큰 도시라 할 지라도 편도 1,2차로인데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차도만큼이나 넓고 양옆으로 확보되어 있으니 차를 위한 도로라기보다는 보행자 중심의 길인 것이 확연했다. 몇 차선인지 세기도 힘든 서울 등 대도시의 우리나라와는 비교불가였다. 순간 도시의 풍경속에 이런 도시설계가 현재 살아가는 그들의 안전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가능케하고 그 풍광이 전세계 사람들을 유럽으로 끌어들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시내 곳곳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종종 마주할 수 있었던 점이다. 보호자가 동행하는 모습도 있었으나 홀로 나와 다니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유심히 보니 길의 문제였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일반 보행자 위주를 넘어서 장애인들이 다니기 편한 인도와 신호등 그리고 사람들의 문화가 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횡단보도든 무단횡단이든 무조건 차가 멈춘다. 처음에는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불인데도 사람들이 건너기에 ‘준법정신이 부족한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적인 문화같은 것이었음을 느끼면서 ‘도로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는것이 그들의 문화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러하니 몸이 불편한 장애인분들도 거리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게 아니었을까.


경제적으로는 현재 우리나라보다도 한참 뒤쳐져 있다는 포르투갈, 스페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소위 일부 개발론자들의 경제적 논리로 갈아엎지 않는 행정과 의회의 결단이 부러웠다.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시민력도 작동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길(도로)의 주인은 사람(보행자)임을 잃지않고 있는 도로(길) 시스템은 우리가 눈여겨보고 배워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도로도 건물도 그 나라 국민들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유럽의 ‘길’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