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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의 퇴사일기(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2-20 11:29
조회
248

정한별 / 사회복지사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밝혀둘 것이 있다. 난 퇴사하지 않았다. 아직도 버티고 있다. 소위 고인물이 되었다.


 직업으로서 사회복지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사회복지서비스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관련 공부를 하고, 자격을 취득한 후 대개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 취직을 하고는 한다. 그렇다. 특정한 조건을 갖춰 본인이 직접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운영하지 않는 이상 보통의 사회복지사들은 직장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의 사회복지사들 역시 자신이 다니는 사회복지시설을 ‘회사’라고 칭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자신이 다니는 사회복지시설을 회사라고 칭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기도 했다. 어쭙잖은 소명의식이라고 해야할까. ‘사회복지는 사람을 돕고, 사람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일인데 수익을 추구하는 회사라고 칭하는 게 맞아?’라는 식의 감정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들어차 있었다. 


 


 사회복지사로서 일하게 된 첫 직장에 이제 조금 적응이 됐을까. 나보다 3년 정도 먼저 일을 하기 시작한 선임 사회복지사가 날 불렀다. 조금 차갑다는 평이 있긴 했지만,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없고, 무엇보다 일은 성실히 잘한다는 평을 받던 직원이었다.


“샘, 저 말할 게 있어요. 퇴사하려구요. 더 이상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더 못 할거 같아요. 샘은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만 하면 돼요”


 퇴사 예고를 처음 들은 신입 직원인 나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퇴사하지 말라고 잡는 게 맞는걸까’ 하는 많은 고민들이 찰나의 순간을 채웠다. 이제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입 직원에게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 전에 미리 말을 하는 그 진심이 어디 간단한 마음이랴 하는 생각에 도저히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예... 많이 힘들어하고, 많은 고민 끝에 하신 말 일 테니, 퇴사 응원할게요. 고생 많으셨어요.”


 퇴사 예고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2년 동안 일했던 첫 직장은 나를 포함한 전체 사회복지사의 7할이 퇴사를 했다. 퇴사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너무 힘들다. 더 이상은 할 수가 없다.”라는 것. 박봉으로 유명한 사회복지사의 임금이 영향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더는 할 자신이 없다’라는 것이 퇴사의 공통된 변이었다. 퇴사한 직원의 3분의 1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 자체를 그만두기도 하였다.


 첫 직장에 다니면서, 딱 두 번 퇴사를 고민했다. 취업을 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열심히 한 일에 비난이라는 이자가 붙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을 겪은 후,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는데, 그 ‘사람들의 행복’ 안에 사회복지사의 행복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1년이 지난 가을, 내가 맡지도 않은 일에 또 한 번 비난이 붙어 날 괴롭힌 사건이 있었다. 결국 그해 12월 31일 첫 직장에서 퇴사했다. 퇴사하기 한 달 전, 퇴사 인사를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죄송해요.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올해까지만 일하고 이제 그만두려구요. 다음 직원에게 잘 설명해 놓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퇴사 인사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이럴 줄 알았어... 샘은 좀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정 다 들게 해 놓고 왜 그만두는 거야... 또 속았어...”라며, 눈물을 훔치던 사람들.
“어째 오래 일한다 했어요. 매번 그렇게 바뀌네. 뭐가 문제에요? 돈이 너무 적지? 일은 너무 많고? 내가 어따 좀 말을 해볼까?”


 짧지만 강렬했던 첫 직장에서의 퇴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 이렇게까지 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고 퇴사 인사를 다니는 한 달 동안은 눈물을 흘린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일이 여사였다.


 첫 퇴사 후 아직까지 자발적으로 퇴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수도 없이 떠나는 동료들을 마주했다. 입사 첫날 나를 보며 자신은 퇴사를 한다며 기분 좋게 인사하던 직원부터, 더 같이 있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되어 미안하다며 퇴사는 해도 퇴근은 하지 않던 직원까지(그는 퇴사 일까지 야근을 하는 것도 모자라 퇴사 후에도 출근을 했다). 다들 떠났다. 함께 일하는 직원 중 고민을 편하게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10년 넘게 일을 하는 동안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는 직장동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사회복지시설을 ‘회사’라 칭하던 사회복지사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사회에서 흔히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 좋은 일도 사실은 고용주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 그 어떤 인간에 대한 고귀한 가치나 사회에 대한 가치 이전에 사용자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행하는 노동이라는 것. 노동에 지친 동료들이 현장을 떠나는 동안 내가 아직도 퇴사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고여 있는 것은, 다행히도 내 마음의 우물이 메마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복지사가 사회개혁가는 아니지만, 오늘따라 소로의 말이 더욱 슬프게 들린다.


 “나는 사회개혁가가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곤궁에 처한 동료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라, 비록 그 자신이 신의 가장 성스러운 아이임에도, 개인적인 괴로움에서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


 2023년 12월 18일 12시 32분.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붉어진 눈시울로 퇴사의 변을 말하던 동료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2023년의 마지막 날, 괴로움 끝에 퇴사를 결정한 그가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자신을 소홀히 했던 날들을 떠나보내고, 아주 조금만 더 자신을 챙길 수 있길 바라본다. 말라버린 마음에 다시금 물이 고일 수 있길 바라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