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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추운 날에 거적 같은 글을 쓰는 까닭(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2-05 16:01
조회
123

신종환 / 공무원


속초시 공무원으로서 내 첫 업무는 속초시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노학동 주민센터의 복지 민원대 상담이었다. 주민센터의 별명은 복지 놀이터였다. 시에서 가장 많은 수급자 분들이 거주하는 복지 아파트가 주민센터 바로 건너편에 있어서 수급자 분들이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다. 선임자 분은 전반적으로 착하고 원만하신 분이었다. 그 분께서 인수인계 해주신 내용 중 고령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만 85세 이상 중 특정 조건 충족하는 분들께 드리는 공경봉양수당과 10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수수당 두 가지가 있었다. 장수수당을 설명하시면서 선배는 나에게 위로하듯이 “이제 몇 분 남지 않아서 곧 끝낼 수 있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당시 내 마음속은 거의 아이히만이란 사람을 면밀히 조사해보니 보통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유럽사람들의 그것만큼이나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저렇게 친절하게 민원을 응대하고 사람들을 위해주는 사람이 한편으로는 사람의 죽음을 건조기가 발명되면 덜 귀찮아질 세탁물처럼 희망차게 말할 수 있는건지.


마음이란 어떤 보호막을 벗어나면 빠르게 마모되기 마련이란 걸, 섬세한 마음은 강한 의지로 늘 아픔을 향하거나 아니면 어느정도의 뜻과 그 뜻에 부응하는 사람들이 서로 교응해 서로의 고통을 풀어보고 나누며 해석하지 않으면 덜 힘들기 위해 마음이 뭉툭해지기 쉽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뭉툭해진 마음은 자신에게 물질적인 위로를 건넬지언정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만들어줄지 고민하기에는 적적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도.


임용되고 시간이 약간 지난 지금은 어느새 예전 선임자처럼 모니터 속의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한편 아파서 병가휴직에 들어간 이에게 마음 아파하는 동료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한편 가끔 예전의 마음을 가끔 마주하거나 대학생 시절 쓴 글을 다시 보게 되면 세상을 향한 선명한 태도에 흠칫 놀라고, 이 낯선 사람이 나였다는 게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지금부터 그때까지를 따라가다보면 그 선명한 생각 너머로 물러나면 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래서 그 생각들에 기대 떨림은 가라앉히려는 마음들의 느껴져서 기분이 좀 복잡해진다. 그러다 이제 어느 정도는 남이 되어 버린 그때의 내게 ‘나는 네가 그렇게 경계하던 선명하지 않고 풍화된 나날에 있단다. 이렇게 될 것 같았지. 근데 완전히 망하지는 않고 어찌 어찌 있단다.’ 라고 말을 건넨다.


이런 되새기는 모습과 생각이 스스로도 하잘 없게 느껴지는데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움과 연대가 절실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고, 오랜만에 찾은 내 마음의 한적함이 그들의 절실함을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는 반증 같아서 같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하잘 것 없는 고민과 흐지부지한 생각들을 계속 주워 섬겨야 할 것 같은  같은 이유는 아직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닿는 글을 아직 많이 보지 못한 까닭 같다.


예전 나의 시선으로는 인권연대를 비롯한 곳에서 여러 필자들이 쓰는 글은 그 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약간 재생산되어 서로의 마음을 공공히 하지만 지금의 내눈으로 보면 같은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시선을 견지하지 못하는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세상의 이격됨을 더욱 선명히 하는 것만 같다.


2014년 출간된 각지의 투쟁 현장의 풍경을 엮은 책 ‘섬과 섬을 잇다’는 현장의 화, 눈물, 좌절, 결의를 더욱 세밀하게 그려 전달하면 서로를 이을 수 있을거란 소망을 제목과 내용에서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책들은 그런 절실함을 미처 전달하지 못했다는 반증으로도 보였다.


그래서 엄청나게 몇 달마다 부끄러운 오늘같은 날 오히려 닳을대로 닳은 마음에서 주운 뭉툭한 말들을 억지로 내보이며 글을 쓴다.


섬세한 사람들이 용기내어 벗은 마음으로도 우리를 불러낼 수 없다면, 우리의 뭉툭한 마음 속에 서툰 온기의 씨가 그들의 애환과 같은 것임을 문득 느끼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마모된 생각들로 더듬더듬 만들고 어쩌라는 건가 싶은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런 시도가 서로 뭉툭해진 손가락 같은 마음이 덮지 못해 시려서 마비된 마음을 덮어주면 큰 기쁨이고, 그러지 못해도 덮어주지 못해서 크게 나버린 구멍을 보여주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 때 문득 느낀 한기와 거기서 비롯된 그리움이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으로 말하면 인간-서로와 서로의 관계가 우리의 전부임을 깨닫는 것이고 철학자 한병철이 말한 순식간에 우리를 어느 장소로 보내주는 향기의 단초라고 생각해서 이 찬 시절에 쓸데 없는 소리를 쓰고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