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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식민지다” (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21
조회
237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최근 당진지역의 가장 큰 이슈는 매립지 관할권을 둘러싼 평택시와의 분쟁이다. 두 지방자치단체 해상 경계에 매립한 토지를 어느 지자체에 귀속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충청남도 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는 아산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평택·당진항을 개발하면서 이곳 아산만에 제방을 쌓고 땅을 매립해 왔다. 1990년대 말, 당시에 매립한 토지를 등록하기 위해 평택지방항만청은 평택시에 토지등록을 신청했고, 이곳은 평택시로 등록됐다. 그러나 매립지는 해상경계상 충남도계 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당진시(당시 당진군)는 이에 반발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당진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소송을 내고 4년여 간의 지루한 법정 싸움을 이어간 끝에 해당 매립지가 당진시 관할이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헌법재판소는 관습적으로 수백 년간 지켜온 해상경계를 확정하면서 당진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에 매립된 토지와 제방 등은 헌재 판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진시에 등록돼 당진시가 관할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평택시는 다시 이 문제를 두고 행정자치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에 관할권 청구 심판을 요청했다. 평택시는 2009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2009년 이후에 매립된 토지에 대해서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해당 매립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택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연접성·행정의 효율성 등을 근거로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행정자치부는 평택시의 주장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한 매립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평택시 관할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당진시는 땅을 빼앗긴 억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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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당진시대


행정자치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여러 가지 오류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몰지각과 지역이 계속해서 소외되는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한 국가에는 그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영해·영공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의 행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간 경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는 이 같은 경계를 무시하고, 단지 지리적인 연접성과 접근성, 편의성 등을 근거로 해당 매립지를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고 결정 내렸다.

이는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 간척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 곳곳이 간척과 매립을 통해 지형 자체가 상당히 변했다. 이에 따라 당진시와 평택시 간의 분쟁과 같은 갈등이 일어날 곳이 너무나도 많다.

헌법재판소가 수백 년간 이어져온 관습법상의 경계를 이미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 산하의 위원회가 법리적 판단을 무시한 결정을 내린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훼손한 것이다.

지역민들이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단지 이번 사안 때문만은 아니다. 당진시는 ‘철탑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다. 그로인한 지역민들의 건강상·재산상 피해는 상당하다. 몇 해 전부터 정부에서는 당진 송악부터 아산 탕정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더 이상의 송전탑 건설은 반대한다며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5.5km 구간만이라도 지중화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전력은 비용 문제로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평택시 고덕산단에 조성될 삼성전자 반도체 단지에 필요한 전기 공급에 대해서는 38km 전 구간을 지중화(해저터널 포함)할 예정이다. 특히 이 구간 송전을 위해 변환소를 새로 짓고 발열과 전력손실이 적은 직류 방식으로 송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이처럼 일관성 없는 지역 차별적인 정부 정책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 완화로 기업유치가 둔화돼 경제적 피해를 크게 입고 있는 것 역시 지역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여전히 지역의 자치단체는 정부의 법과 예산에 손발이 묶여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는 송전탑이나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의 환경 유해 시설들을 지역에 건설함으로써 지역을 계속해서 소비한다. 이 같은 지역의 현실을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지역과 함께 가는 정책을 펼치길 바라는 건 이 정부에 대한 너무 큰 기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