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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없다 (이보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44
조회
345

이보라/ 청년 칼럼니스트


“하루아침에 영웅이 돼있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제게 교육의 방향과 대안을 물어보시더라고요.”


2012년 2월 고등학교 자퇴를 앞두고 1인 시위를 벌였던 최훈민 씨(21)와 올해 4월 고등학교 자퇴 후 피켓을 든 김다운 양(18)의 말이다. 최 씨와 김 양은 각각 광화문 광장에서 2주간, 경남 진주 시내 한복판과 주요 고교 앞에서 두 달간 홀로 피켓과 대자보를 들었다. 한국의 잘못된 교육을 멈춰달라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주장했다.


고등학생들의 반란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 양이 '여러분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고마운 것이었다. 최 씨와 김양이 시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뜻을 함께 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다리를 제공했다.


2015072021225790843_1.jpg?time=1407052012년 2월 고등학교 자퇴를 앞두고 1인 시위를 벌인 최훈민씨(21, 오른쪽)와 올해 4월 자퇴 후 피켓을 든 김다운양(18).
사진제공=김다운, 씨투소프트


하지만 집중된 관심만큼 기대도 넘쳤다. 사람들은 점차 최 씨와 김 양을 이상화하기 시작했다. 교육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처럼, 단 칼에 교육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구세주처럼 이들을 대했다. 김 양을 만나는 사람들은 김 양에게 ‘고2라는 나이에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모순을 다 파헤치고 있다’ ‘삶의 주체로 우뚝 선 김다운이 멋있다’며 우러러봤다. 최 씨에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시선들로 인해 1인 시위는 단지 특출한 인물을 조명하는 쇼로 변질돼갔다.


이 소년, 소녀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은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교육 문제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김 양이 피켓에 ‘여러분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라고 쓴 것은 자신도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한 것이었다. 최 씨가 피켓에 ‘희망의 우리 학교를 함께 만들어요’라고 적은 것은 변화를 위한 행동을 혼자가 아닌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간과한 채 최 씨와 김 양에게만 일방적으로 정답과 행동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교육의 영웅’에 모든 문제를 맡기려 했다. 자기가 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며 책임지거나 희생할 것도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영웅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약한 본성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이에 나부터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또 그런 ‘나’들이 모인 우리가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최 씨와 김 양이 춥거나 더운 길거리에서 불편을 감내하며 찾고자 했던 것은 바로 변화를 위해 함께하는 ‘우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보라씨는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머니투데이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1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