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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미국의 스티븐 잡스, 2015년 한국의 20대 (전세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43
조회
442

전세훈/ 청년 칼럼니스트


“1955년.” 미국 정보통신 혁명을 이끈 거물들이 태어난 시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모두 1955년생이다. 다른 미국의 컴퓨터 거물들도 1953년에서 1956년 사이에 태어났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컴퓨터 거물들이 태어난 나이가 비슷하다. 다음 카카오 김범수 사장,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의장, NXC(넥슨지주회사) 김정주 대표도 모두 1966년에서 1968년 사이에 태어났다.


이렇게 컴퓨터 거물이 태어난 시기가 비슷한 이유는 산업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컴퓨터 혁명이 1975년에 일어났다. 이 혁명의 수혜자가 되려면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나 20대 초반에 이른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다. 1950년 이전에 태어났다면 나이가 너무 많아서 새로운 일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10대였다면 학생이란 신분으로 묶여 사회로 진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IT 붐이 일어났던 시기에 컴퓨터를 접하고, 익힐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컴퓨터 분야에서 성공할 수가 있었다.


20150805web01.jpg사진 출처 - 이투뉴스


재능, 노력, 기회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맞물린 사람들만이 성공을 맛볼 수 있다. 재능과 노력은 개인의 몫이라도, 기회를 만드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없다. 미국의 컴퓨터 거물들이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물론 잠자는 시간까지 줄인 그들의 노력과 특별한 재능이 결합됐기 때문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기회가 그들의 재능과 노력의 바탕이 됐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스티븐 잡스의 경우 그가 살던 도시가 실리콘벨리로 재개발이 되면서 컴퓨터를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의 엘리트 사립학교에 들어갔고, 그 학교의 어머니회에서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보지도 못했던 ‘시간 공유 컴퓨터 터미널’을 덜컥 설치해주는 행운을 누렸다.


만약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나이가 10살 정도가 많아 1945년에 태어났다면, 이미 안정된 직장과 가정이 있어서 새로운 분야로 진출할 생각을 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청년 세대(15~29세)의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 세대들이 노력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나날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현재 청년 고용률은 41.7%에 불과하다. 청년들은 그럴수록 자신에게 투자해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높은 등록금과 물가 때문에 그럴 수만도 없다. WEF(World Economic Forum)가 발표한 우리나라 국민 평균 소득은 2010년 기준 229개국 가운데 49위 정도다. 이에 반해 등록금은 OECD 국가 중 4위 정도다. 등록금을 감당하며 공부하기만도 벅차다.


그렇게 취직하면 끝이 날까. 그나마 구한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절반 이상이다. ‘단군 이래의 최고의 스펙’을 달성할 만큼 근면했던 한국의 청년들은 지금도 고시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또 돈을 벌기 위해 일도 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이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가. 한국의 청년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1975년 청년 잡스가 잡았던 것과 같은 기회를 한국 청년들도 잡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 구조를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전세훈씨는 빈곤과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