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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 기존의 신화를 깨는 방식으로(임아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25 16:04
조회
891

임아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떤 기억들은 몸에 새겨진 것처럼 생생하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으로 온 뒤 맞은 첫 평일이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기는 신생아실에 가 있고 혼자 방에 우두커니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산후우울증이었다.


 아기를 낳은 직후의 내 상태는 두려움과 외로움의 교차 상태였다. 아기를 낳은 이전의 나와 너무 멀어지면 어떡하느냐는 두려움과 아기를 옆에 두고서도 자꾸 외로워졌던 마음.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그래서 보고 싶지가 않았다. 우울하고 두렵고 외로웠던 그때의 감정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기묘해서 관련 영상을 추천 영상으로 띄워주고 말았다. 귀여운 신생아의 얼굴을 썸네일로 만든 영상을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나 십여 분의 영상을 끝까지 보게 된 것은 아마 산모의 표정 때문이었을 거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과 묘한 두려움이 섞인 표정. 그녀는 말했다.


 “우리만 낯설고도 이상한 세계에 남겨져버렸다.”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이상한 세계는 어디인가. 아기가 내 품에 들려져 낯선 섬에 놓여진 기분. 너무나도 예쁘게 생긴 작은 아기가 내 인생을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움. 그 두려움의 정체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엄마는 그러는 거예요.”


 처음 모유수유를 하면 피가 난다. 갓 태어난 아기가 빠는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아기는 살기 위해서 빨고 엄마는 아기를 먹이지 않으면 큰일날까봐 고통을 참는다. 그때의 내게 간호사 선생님은 말했다. 원래 엄마는 그런 것이라고. 평소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겠지만 하지 못했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 거라고 나도 배웠으니까.



사진 출처 - tvn


 엄마가 된 이후로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 것”이라는 말들과 싸워왔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다른 대꾸를 찾지 못할 때 깨달았다. 내가 태어난 80년대 이후의 여성들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배웠지만 아기를 안고 어디든 가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아기를 안고는 뛸 수도 없는데.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에 대해서 국가가 처벌할 수 있다 말하는 2020년대, 조금쯤 진보한 줄 알았는데 믿을 수가 없다.


 신생아를 키우던 시절, 너무 많이 우는 아이 앞에서 같이 울고 싶어질 때 친정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말 잠 좀 자고 싶었는데...” 이 사적인 이야기들은 너무 사적이어서 사적인 관계들 안에서만 공유된다. 엄마를 사적 존재로 규정하고 엄마의 인내와 희생을 추앙하는 세상의 모순.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가 된 이후의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취감을 느낄 때는 언제냐고. 생뚱맞게도 ‘시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제가 일해서 제가 번 돈으로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게 소중한 것 같아요.” 모성의 신화로 거짓 추앙받지 않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었다. 사적 존재가 되느라 공적 역할을 빼앗기지 않는 평범한 시민. 어쩌면 여전히 우리는 엄마를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그 사적 이야기들은 공적으로 유통되어야 한다. 이전의 논리를 깨는 방식으로. 그러다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 쩔쩔매는 드라마 주인공 산모의 생생한 묘사에서 웃어버렸다.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시도해본 여성들은 알 것이다. 그동안 매체를 통해 묘사해온 수유 장면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햇빛이 내리쬐는 방에서 아름다운 산모가 평화로이 젖을 물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수유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하면 너무 서툴고 어렵다는 것을, 다른 여느 일처럼 고통을 먹잇감삼아 훈련된다는 것을 말이다. 드라마 제목부터 신박하다. ‘산후조리원’이라니. 이 드라마를 통해 대중매체에서 출산과 모유수유의 신화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 한 발 나아간 점일 것이다.


 여성 기자들이 늘어나면서 여성 기자의 관점으로 쓰는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현장에서는 왜 여성들은 페미니즘 기사를 주로 쓰느냐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런 질문을 하고 싶다면 돌아보라.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의 일이 얼마나 발화되는지를.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 기존의 신화를 깨는 방식으로.


임아영 위원은 현재 경향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