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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공 영학이 형 이야기(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18 16:24
조회
56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귀책사유가 있는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당헌 조항을 개정하기로 했다. (중략)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당헌에 따르면 두 곳의 보궐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내기 어렵지만, 후보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며,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후략)


- <당헌 고쳐 박원순·오거돈 후임 낸다는 민주당>, 한겨레, 2020. 10. 29.



사진 출처 - 한겨레


 20대 중반에 잠깐 건설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건축목수의 일을 보조하는 잡부로 일을 시작했지만 이곳저곳 현장을 오가다가 나중에는 미장 조공으로 일했습니다. 조공이라고 해봤자 미장일에 필요한 사모래를 물에 개어 작업장에 나르는 일, 일을 마치고 장비들을 정리하는 일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몸에 익힌 기술이 없으니 제가 어떤 분야의 현장 일을 하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미장 일 쪽으로 기운 것은 당시 현장에 있던 미장공의 묘한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미장공(다음부터는 영학이 형이라고 하겠습니다)은 한마디로 깔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에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현장에서 오직 그날 자신이 할 일만 마치면 간단한 저녁자리를 끝으로 조용히 귀가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경험해온 건설 현장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늘 무덤덤한 표정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가 일하는 모습은 한결같았습니다.


 제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도 그는 그저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동료들이 가끔 짓궂은 농담을 던질 때도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만 지을 뿐 크게 웃거나, 대거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저 무심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나이 차가 네 살 정도였으니 저는 어렵지 않게 그를 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연립주택 공사현장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날 작업이 끝나고 타일 쪽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한잔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끝난 현장 구석에서 타일공들이 사온 김치전과 막걸리로 조촐한 술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으나 역시 그는 별로 말이 없고 수다스러운 저와 타일 쪽 사람들이 주로 웃고 떠들기만 했습니다. 간단히 한잔하자던 술자리였지만 ‘한 잔만 더’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타일공이 영학이 형에게 물었습니다.


 “그쪽 일하는 거 보니까 돈 좀 모았을 것 같은데 얼마나 모았습니까?”


 누가 보아도 그저 친해져 보려는 타일공의 별 의미 없는 상투적인 말에 그때까지 그저 조용히 술잔을 비우며 슬쩍 웃기만 하던 영학이 형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타일공에게 삿대질을 하고 온갖 욕설을 퍼붓고서는 술판을 발로 걷어차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에 갑자기 돌변한 영학이 형에게 제가 정말 놀란 것은 그날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영학이 형은 평소와 같았습니다. 그저 예의 그 무덤덤한 표정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일만 했습니다. 그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할 일만 계속하고 있으니 답답해진 제가 물었습니다.


 “형, 어제 일 기억해?”
 “응.”


 그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을 계속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기대한 것은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했다거나, 그때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학이 형은 ‘응’이라는 한마디 외에는 아무 말 없이 하던 일만 계속했습니다. 답답해진 저는 조금 화가 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제 그렇게 하고 간 거 쪽팔리지 않아?”


 그 말에 영학이 형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무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랬냐? 술이 그랬지.”


 그러고는 별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잠시 멈췄던 일을 계속 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흐트러짐 없는 그 자세였습니다.


 내년 보궐선거 기사를 보다가 왜 영학이 형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국에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저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 제 탓입니까? 제가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건 수도권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뭐 다 그렇지요. 부끄러움이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