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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에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37
조회
368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입만 열면 “야 내가 나이 마흔에…”라고 너스레를 떠는 선배가 있었다. 경상도 사람이어서 사투리가 심했는데, 내게는 꽤나 희극적으로 들렸다. 나이 마흔을 한참 넘기고도 한동안 그 말을 애용하던 선배는 어느 날 갑자기 신문사를 그만뒀다. 무슨 개인 사업을 한다는데 만나보질 못해서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불현듯 그 선배가 생각난 건 내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서였다. 이젠 만으로 쳐도 꼼짝없이 넘어버린 그 숫자의 무게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생각해보면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있고,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도 있지만, 나이 마흔을 주제로 뭔가 그럴듯하게 읊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막 30대에 접어든 이들의 감수성이 막 40대에 접어든 이들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멋대로 추측하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가는 세월이 쏜살같이 느껴진다는 말 속엔, 감수성이 무뎌진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기성세대가 됐나봐.”
휴게실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한 입사 동기가 지나가며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촛불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는 말이었다. 그렇지, 나이 마흔이면 이제 확실히 기성세대가 됐다는 뜻이지. 이미 만들어진 세대라는 뜻이니까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세대라는 함의가 담겨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가진 것이 많아지고, 가진 것이 많아지면 지키고 싶어진다. 보수화한다는 뜻이다. 나이가 많은데도 보수화하지 않는 사람은 몸으로든 머리로든 특별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잘 늙을 수 있을까. 나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촛불집회의 불을 처음 지핀 것은 10대들의 감수성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0교시 수업에 시달리다 겨우 대학에 들어갔지만 취직도 못하고 빌빌거리다 10년 전 학교급식으로 먹은 쇠고기 때문에 광우병에 걸려 대운하에 뿌려질 세대”라며, 이 사회의 하층민으로서 처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080619web02.jpg사진 출처 - 한겨레



  아이들이 시위를 하다니, 좌우 할 것 없이 기성세대들은 모두 놀랐다. 우리의 상식 속에서 그건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유관순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투옥된 것이 17살 때였고, 김구가 동학의 ‘아기접주’가 된 것이 18살 때였다. (픽션이지만) 로미오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 줄리엣의 나이는 14살이었다. 4·19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중·고생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10대들을 시장에 내다 팔 상품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완성품이 될 때까지 10대들을 끊임없이 닦달한다. 모든 판단과 행동은 대학 입학 이후로 유예된다. 요즘엔 대학에 입학해서도 상품화 과정이 계속되기 때문에 취직 이후로 유예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30대가 되도록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10대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육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10대들의 매체인 인터넷 덕분이다. 자기들이 정권을 교체했다고 우쭐했던 조중동은 혼쭐이 났다.

잠깐, 더 이상 옆길로 새지 말고 다시 나이 얘기로 돌아와 보자. 나이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심각한 지체현상과 조기퇴출 현상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미 육체적으로 성인인 아이들을 애 취급하며 사회 진출을 막고 있는 반면, 어른들은 40대가 되면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배우로 치면 늦깎이로 어렵사리 데뷔했는데, 조기 은퇴를 강요당하는 꼴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 인간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치를 우려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겠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이 마흔에…”를 입에 달고 다니던 선배도 이 점이 억울했을 것이다.

※아직 어린놈이 웬 나이 타령이냐고 생각하신 분들께는 삼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