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단편3막 추기급인(推己及人) (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34
조회
286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제1막 내 방이 밝으니 어머니 방도 밝은 줄 안다

아내의 성화에 결국 수퍼엘 갔다. 베란다의 전구가 망가진 지 한 3년쯤 되었는데 뭔 바람이 불었는지 오늘은 꼭 갈아 끼워야 겠다는 것이다. 동그란 백열전구를 고르면서는 먼저 몇 촉짜리인가를 확인 한다. 백 촉짜리와 육십 촉짜리 두 종류가 있다. 아쉽다. 나는 제일 전기소비량이 적은 삼십 촉짜리 백열등을 사고 싶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요즘도 그런거 나와요?”라고 내게 반문한다.

전기 배선이 엉망인 방두칸짜리 초가집에서는 꼭 삼십 촉 백열등을 사용했다. 필라멘트가 너무 잘 끊어지고 때론 터지기까지 해서 전기 소켓트의 스위치를 돌리기도 두려울 정도였지만 어머니는 밝기가 두 배인 육십 촉짜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그 이유는 당연히 다달이 거두어 가는 전기세 때문이었다.

실제로 어쨌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전기세의 반을 줄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게 틀림없다. 전구가 금방 소모되는 탓에 나는 아버지의 술심부름보다 더 많이 어머니의 전구 심부름을 한 것 같다. 날 저무는 산길을 넘어 심부름을 다니면서 나는 지금처럼 늘 몇 촉짜리 전구인가를 확인하곤 했다.

전구 한 알을 사려고 들른 슈퍼에서 삼십 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보다 나는 너무 밝은 곳에 산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고향집에서 짧은 형광등 한 알에 밤을 의지하고 계신 어머니의 밤을 생각해 보지만 그 방이 얼마나 어두침침한지는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밝게 살고 있으니 어머니의 방도 필요한 만큼 밝겠지 하는 생각으로 산다.

 
  제2막 제 등이 따시니 백성등도 따신 줄 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중동산 두바이유의 현물 시세가 이미 130달러를 넘어섰고 갖가지 이유 때문에 200달러까지 치솟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화물연대의 파업이 시작 되었고 노선버스의 운행도 줄일 예정이다. 각종 원자재 값의 상승으로 물가는 치솟고 심지어 목욕탕의 온수마저도 데우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이 세계의 거의 전부를 움직이는 에너지인 석유 값의 폭등이 불러온 결과이다. 지난해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적어도 지구가 망하기 전까지 한번 오른 석유 값이 제자리로 환원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국제 유가의 폭등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니 적절한 대책도 있었어야 마땅하고 앞으로도 한참 치솟을 일을 생각하면 당연히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근데 지금의 mb정부, 뭐가 없다.

화물연대의 파업이후 물류가 세상을 멈추게 할 조짐을 보이자 긴급하게 대책회의라는 건 하는데 특별한 알맹이는 없다. 고통을 분담하자고 화주들을 회유 하거나 불법파업 엄단한다고 노조원을 협박 하는 거 외엔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노선의 감축을 예정한 지역 버스운송조합의 발표에도 역시 은근한 협박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어쩌랴 치솟는 물가를 협박과 회유할 대상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허긴 정부와 청와대의 구성을 보면 이해할 만은 하다. 자기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혹은 부동산 재테크를 위해 위장 전입 몇 번쯤은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 것이다. 자기가 논문 표절을 하거나 농지법 위반을 관행처럼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 것이다. 자기가 한 30억쯤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쯤은 다 있겠지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관행처럼 행한 깜도 안 되는 탈법을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애초 얘기꺼리도 되지 않는 불쌍한 백성들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하는 기름 값에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원성에도 고작 몇 십만 원쯤 더 소요되는 그들의 고급승용차는 멈출지를 모를 것이고 인상률 7%에 다다른 서민물가 상승의 원망도 어린아이의 칭얼거림 쯤으로 들을 것이다.

4.15 교육대책을 내놓았던 교과부의 수장께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쌈빡하게 아이들 공부 시킬 텐데 왜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서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하지 않던가. 오죽하면 그들이 미국 가서 대접받는 쇠고기가 값 싸고 질 좋다고 박수치며 수입협상 해놓고는 어린학생들 촛불 들게 만들까. 누군가의 전언에 의하면 아직도 그분들 촛불의 의미를 전혀 감 잡지 못하셨다고 한다.

 

080619web01.jpg

사진 출처 - 세계일보


 

 

  제3막 추기급인 제 마음을 표준삼아 남의 마음을 추측한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눈 내리는 한 겨울 따스한 방안에서 여우 털을 입은 임금이 신하에게 묻는다. “올해날씨는 참 이상하다 사흘 동안이나 눈이 쌓였는데도 날씨는 봄처럼 따뜻하니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신하가 정중하게 직언을 한다.

“현명한 군주는 자기가 배부르면 누군가 굶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자기가 따뜻하면 누군가 추위에 떨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자기 몸이 편안하면 누군가는 지쳐 피곤하지 않은가를 걱정 한다”고.

호랑이 담배 한참피고도 남을 2500년 전 중국의 춘추시대의 얘기이다.

그나저나 지금 청와대에는 이런 말을 대통령에게 건네줄 참모나 제대로 있는 것일까?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