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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집값이 아니다 (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22
조회
405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온통 소고기에만 관심이 쏠린 요즘, 때늦게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얘기하려고 한다. 선거 결과에 대하여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수도권에 한정한다면 뉴타운과 집값 상승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그런 결과를 불러왔다고 설명하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란 희망이 수도권 전역을 뒤덮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70년대처럼 마을길을 넓히고 집을 없애는 방식을 택하였다. 시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자산 가치를 높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총선에서 수도권 주민들이 70년대 개발 독재 세력을 지지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멀쩡한 집 없애고 길 넓히는데 그들 보다 더 솜씨 좋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후 뉴타운 공약이 문제되자 야당은 마치 그것과는 무관한 것처럼 행세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뉴타운과 관련하여 여야의 구별이 없었다. 찍을만한 야당 후보가 없던 강남과는 달리, 강북에 있던 우리 동네에선 현역 의원이 야당 후보로 나왔고 선거전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선거 직전에 받은 홍보물에서 여당 후보의 공약과 야당 후보의 공약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집 허물고 큰 길을 내겠다는 내용은 같았다. 단지 현역 의원의 선거 공보물이 좀 더 세련되게 보였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야당 후보를 찍을 이유는 없었다. 양쪽이 똑 같은 일을 한다고 나선 마당에 그 일을 잘할 것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080520web04.jpg노동을 통해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산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 머니투데이



시민들이 자산 가치의 상승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노후를 보장하고, 다음 세대의 생계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강남에 집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유 역시 그걸 통해서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은 사라졌다. 정규직의 평균 근무 기간도 10년을 넘지 못한다. 30대에 취업한 사람은 40대 무렵에 회사에서 나와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영업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지만, 요즈음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60세가 넘어 은퇴를 하더라도,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산(資産)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집값이 계속 오르는 지역에 집을 가지게 되면, 그걸 통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집값 상승과 뉴타운 개발을 갈망하는 것을 단지 탐욕스럽다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유럽 사회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황금 등의 자산에 집착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문제는 모든 시민들이 이렇게 행동할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에 있다(집에 대한 이 열풍이 사회에 이롭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의가 떨어지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배우는데 소홀해지게 된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로서는 힘들게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몸은 직장에 있지만, 마음은 자신의 자산을 축적하고 그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에 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숙련 근로자의 수는 계속 감소하고, 그러한 근로자가 필요한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이유는 뉴타운 공약 때문이 아니다. 야당에게 뉴타운 공약 외에 다른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당의 실수에 기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한다면, 지난 10년간 여야의 정책과 지향점은 다르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고, 그로 인한 피해를 누가 입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시민들은 민주주의나 사회 진보보다는 자신의 자산을 축적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야당이 지지를 받기 위해선 시민들의 아픈 경험을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근로를 통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설혹 자산이 충분치 않더라도 은퇴 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에만, 집값에 관한 현재와 같은 과도한 집착을 없앨 수 있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진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