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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와 철학의 문제 (황미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25
조회
297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내가 가진 가치나 철학과 너무나도 다른 방식의 가치나 철학을 만나게 되어 종종 놀라게 된다. 얼마 전 학교에서 화장실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아이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사용과 관련하여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다. 내용은 아이들이 강낭콩을 심고 물을 주기 위해 화장실을 이용할 때 흙을 남성 소변기에 아무렇게나 버려 고장문제가 있으니 4학년(강낭콩을 심는 것은 4학년의 학습내용이므로) 아이들의 화장실 사용에 대하여 지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관련 과목의 수업을 진행하다가 화장실에서 강낭콩에 물을 주는 방법과 배관에 대한 설명도 하면서 우리가 잘 사용하면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힘이 덜 드니 그 분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긍하거나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 하며 웅성거리는데 한 아이가 대뜸 그 아주머니는 돈을 받지 않느냐며 마치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내게 반문을 하였다. 난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11살의 그 아이는 우리 반의 회장이고 나름 학년에서 공부를 잘하는 우수한 아이로 인정받는 아이인데 이 아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아이의 마음에 따뜻한 인간애를 심어줄 수 있을까와 돈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가치화하려는 시각 앞에서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언행은 어른이나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철학의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업적위주의 사회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돈이고 능력뿐인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한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남을 이겨서 공부를 잘 해서 1등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부자로 잘살 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는가? 그 외에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이라든가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한다든가 약하고 어려운 친구를 도와야 한다든가 나만이 아닌 남들도 모두 함께 잘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가? 사회는 또 어떤가? 대중 매체와 인터넷에서 대 놓고 돈이 최고의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1%’나 ‘부자 되세요’라는 문구는 너무나도 일반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아 덕담 정도의 말로 치부되어 버렸다.

 

080528web01.jpg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오로지 10%의 잘하는 학생만을 염두에 둔 정책만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수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뒤 교실에 남은 학생.   사진 출처 - 한겨레



   학교는 또 어떤가? 이번 4·15 학교자율화조치의 내용을 보면 경쟁을 심화하는 조치 일색이다. 자율형 자립고의 확대와 대학 입시의 자율화 방안, 그리고 말 많았던 영어공교육화와 ㅇ교시 보충학습 확대, 그리고 심야보충학습 강화와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통한 우열반 편성 등 사교육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정책만 양산하며 말로는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인다고 한다. 2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학교환경에서 학급당 인원수와 학교시설에 대한 투자에 대하여는 논하지 않고 실효성 없는 정책의 남발만을 일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체육교과서를 보면 그 학년에서 학습해야할 운동을 필수와 선택으로 구분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필수는 반드시 학습해야하는 것이고 선택은 교사의 선택에 따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데 필수에 수영을 하라고 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학교환경에서 어떻게 수영학습을 시킬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알다시피 몇 안 되는 시설 좋은 학교를 제외하고는 수영학습은 진행할 수가 없다. 개인의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것이 아닌 학교라는 공교육 체계를 통해서 한 인간이 갖추거나 누릴 수 있는 것을 배우게 하고 경험하게하고 느끼도록 해주어야함에도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OECD 국가 중 사교육비 지출 1위와 학교 교육비 가계 부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오로지 10%의 잘하는 학생만을 염두에 둔 정책만을 만들고 있다. 또 1인이 100만인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1% 안에, 우수한 그 1인이 바로 내 아이가 될 수 있다는 확률적 오류를 범하면서 사교육에 목숨을 걸도록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경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인적 자본이 가장 큰 자산인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90%의 학생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한번 가보았는가? 소수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제외한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또 이미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 말이다. 지금의 정책은 10%에게나 90%에게나 모두 지는 정책이다. 그런데 정부는 4·15 학교자율화조치를 통해 이를 더 심화시킨다고 하니 도대체 그 끝은 어디란 말인가?

우리는 종종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사건을 접하면 흥분하고 이유가 무엇인지 뜨겁게 논하다가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어떤 아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했다고 하면 혀를 차며 안쓰럽게 생각하고 남의 일로 치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일은 자식을 둔 부모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마다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다르며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각자가 지닌 능력도 다르다. 다 알고 있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다른 사람들이 경중을 따질 수 없이 모두 소중하며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할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다. 사회로의 진입을 위해 각자가 가진 능력을 겨루는 것은 삶의 목적이 아닌 살아가는 수단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과 지향하는 삶, 추구해야하는 가치와 철학에 대해서 교육을 중심으로 놓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럴듯한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인식되는 그런 철학과 가치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중심으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후 우리는 몇 가지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그 중 개인적 경험과 관심도에 비추어 눈에 띄는 것으로는 여성가족부의 보건복지부로의 편입, 기업 친화적 규제 풀기 중 성평등 관련 규정의 완화를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요구한 것, 국민의 건강권을 우리의 입장이 아닌 남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는 것과 아이들을 끊임없이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바로 그 아이들이 그렇게는 살 수 없노라고 좀 더 인간적으로 살고 싶노라고 촛불집회를 통해서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나는 이 모습에서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보았다. 그리고 한사람의 열 걸음이 아닌 열 사람의 한걸음을 중시하는 사회를 꿈꾸어도 될 것 같았다. 이 꿈의 실현은 결국 그 사회가 가진 가치와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