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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서 희망의 싹을 보다' (홍승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18
조회
291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취임 70여일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28%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임기 초에 이처럼 지지율이 떨어진 전례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의 추세를 보건대 지지율의 하락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처럼 떨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0교시와 심야 자율학습으로 대변되는 ‘교육 자율화’ 정책과 광우병 발생 위험이 높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미국으로부터 뼈 채로 전면 수입키로 한 정책이 민심을 극도로 자극한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비롯하여 대운하 추진 등 이명박 정부가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계속 펼쳐가려는 모습에서 불안감을 크게 갖고 있었던 터에 교육자율화며 쇠고기 수입 검역주권 포기 등이 불에 기름을 얹은 격이 되었던 것이겠죠.

그런데 이 성난 민심의 표출 한 가운데에 10대 여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정당이나 단체에서 조직하지 않은 촛불시위에 1만 명에서 2만 명이 모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중에 상당수가 여중고생이라는 사실도 더욱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촛불시위 참여를 놓고 여러 집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교육 당국에서는 감시요원까지 파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선 10대들이 이처럼 행동의 전면에 나서게까지 이르게 한 어른 입장에서 너무도 부끄러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정책들이 교육이든 먹거리든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활과 건강에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인데 아이들의 안전이나 건강 등에 대한 고려가 없는 어른들의 정치적 행위 및 정책들이 너무도 한심한 수준이어서 도무지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정말 ‘오죽하면 아이들까지 나서겠는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시위에서 발언하는 10대들의 이야기는 예상 외로 야무지고 당찹니다. 그들은 절박하고도 당연한 요구를 어른들과 대통령을 향해 합니다. 너무도 쉽게 대통령을 향해 욕을 하며 탄핵을 요구하는 그들을 보며 대한민국도 이제 대통령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지난 대선 때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져서 안 된다고 학교 친구들이 이야기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어떻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상식에 기초한 전제도 당연히 깔면서 말이죠. 초등학생들이 장차 겪게 될 교육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벌써부터 갖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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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학생이 인터넷 용어 ‘2MB’
를 이용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어쨌거나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갖는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이처럼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집단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보며 ‘그런데 대학생들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소위 대학생이 되려면 일정한 경제적 능력이 되는 가정이라야 가능한 일이고 따라서 그들의 계급적 기반이 이미 상층부이며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겠죠. 대입이라는 관문을 뚫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만 하다 보니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며 또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미처 세상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죠. 더구나 앞으로 본인들의 취업문제에만 골몰하게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 놓았으니 그로부터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앞으로의 삶의 시간이 지금의 대학생보다는 조금 더 많을 10대들이기에, 그리고 교육환경 및 급식환경이 얼마나 나빠지게 될 것인지를 뼈저리게 몸으로 느낄 그들이기에 본인들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찾기 위해 구체적 행동으로 나설 수 있게 된 연유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10대들의 반란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또 앞으로 이들이 유권자가 되었을 때 어떤 투표행태를 보일지가 무척 관심을 끕니다. 본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얼마나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스스로 확인한 마당에 장차 그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이들의 등장에서 약 15년 전쯤 서태지의 등장으로 문화적 충격이 생길 무렵 ‘현실문화연구’에서 나왔던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부제-더 이상 탄원은 없다, 돌파하라)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전복적 상상력을 외치던 그때의 메시지가 약 15년의 세월의 간극을 두고서 갑자기 현실화되어 튀어나왔다는 생각에 약간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물론 지금의 10대 부모가 386세대여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이들의 정치의식이 이 상태로 발전해 나간다면 20대 투표율이 하향곡선에서 상향하여 V자를 이룰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로 암울하고 걱정거리가 많은 상황이지만 10대에게서 희망의 싹을 보니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됩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