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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소중한 것 (김대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14
조회
265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험설계사로 이직한 분이 있다. 사회복지사들의 박봉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정에 여러 일이 겹치며 늘어난 가계의 부담을 해결할 길이 없어 고민 끝에 다른 길을 찾은 것이었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며 묵묵히 일해 왔던 모범적인 일꾼이었기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직 이후 그 분을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보험설계사 교육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가치관이었다.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로 꿈을 잠시 접기는 했지만 인생의 성패를 경제력으로만 설명하려는 것에 꽤나 마음이 상한 눈치였다.

이 어찌 보험회사 직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성공과 실패만 존재하는 단순한 로또식의 인생, TV만 켜면 나오는 드라마의 진부한 세계관이 아니던가.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국민들이 허망한 욕망의 바벨탑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난 4월 9일 총선이라는 한 편의 어이없는 드라마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돈 몇 푼 쥐어주고 표를 구걸하던 소박한(?) 돈 선거는 옛말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표 먼저 주어 당선되면 돈 벌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진보(?)한 뉴타운 공약을 보라.

 

080430web04.jpg사진 출처 - 노컷뉴스



  사람이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가난과 사랑, 그리고 재채기란다. 하나 더하자면 ‘무식’이 아닐까? ‘무식’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지혜의 부족, 철학의 부족을 의미한다. 기술자의 기능, 회계사의 계산능력, 변호사의 법전 암기능력이 탁월하다 해서 지혜롭다 하지 않는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철학과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치판단 없이 얻은 평화와 행복은 거짓이다.

젊은이들에게 욕먹을 일이겠지만, 나는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우리사회가 좀 더 성숙한 민주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집값이 올라 손에 몇 푼 쥐는 것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넓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굴리는 것보다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빈민지역에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나눔의 집’이라는 단체가 있다. 최근 그곳에서 20대 실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실무자에게는 성장과정 내내 자신과 비교되었던 사촌형제들이 있는데,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때마다 곤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올 해 초 명절에도 친척들은 대학 졸업 뒤 대기업에 취직한 그 사촌형제들을 칭찬하던 끝에 자신에게도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 물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물음이었지만 거침없이 사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적은 액수의 연봉을 밝혔고, 어릴 적 내내 자신을 옥죄던 자격지심 같은 것은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당당할 수 있었던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 정치권의 향방과 무관하게 진보적 가치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소수자들의 신음소리 역시 여전하며,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그 세상을 향해 다른 질서를 외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