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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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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나? (황미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01:21
조회
295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시 교육청 앞 농성장에서 열리는 촛불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유난히도 추운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7명의 부당 해고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모인 선생님들이 냉랭한 바람과 창백해 보이는 가로등 아래에서 집회하는 모습이 다소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 동안 온기를 제공했던 가스난로에서 정겨운 나무 난로로 바뀌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해고자가 떨고 있는 동지를 난로 가까이에 밀어 넣으면서 촛불을 드느라 언 손을 녹이라고 권합니다.

앞에서 발언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득해 지면서 내 머릿속에는 10년도 더 된 지난 과거의 일이 떠오릅니다. 나의 아득했던 해직 시절이. 그 때도 지금의 해고된 선생님들처럼 추운 겨울에 아이들과 헤어졌습니다. 6학년이 아닌 1학년 아이들과. 행여 학년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에 이사장집근처를 서성거리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현실을 깨닫고 절망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때 울부짖던 총각선생님의 눈물과 절규! 해마다 내게 주어졌던 아이들을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청천벽력 같던 느낌! 세상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충격! 횡령을 한 사람보다 그것을 폭로한 사람에게 더한 징벌을 가하는 이 사회의 비상식적 잣대가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에 대하여 절망감이 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한 젊은 해직 선생님의 반 아이들이 촛불집회에 각자의 엄마와 함께 왔더군요. 그 또랑또랑한 눈망울에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부릴 수 있는 철없음이나 치기도 없었습니다. 그저 잘못된 일이고 그래서 부르짖었음을 당연히 여기는 당당한 눈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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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된 정상용 교사의 서울 구산초등학교 6학년 8반
학생들이 지난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정상용 교사
(윗줄 중앙)와 역시 해직된 최혜원 교사(아랫줄 오른쪽)와
함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토사구팽!

현 서울시 교육감이 두려워할만한 사자성어입니다. 지속적으로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분노를 자아내게도 하지만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세 살짜리 아이도 판단이 가능한 일들을 너무나도 대담하게 비상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는 썩소(썩은 미소를 줄인 말로 비웃는 듯 한 미소를 뜻함)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그들의 운명이 보입니다. 선거를 치른 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는 승리감에 젖은 오만한 태도일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삶의 과정 속에 있으므로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하더라도 늘 지나치면 문제가 되더군요.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언제나 깨달음을 주지만 지금의 정부는 일장춘몽과 같은 이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필귀정!

이 정부에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사회는 변화해야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그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흘러가야 하는 지향점을 향해 도도하면서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요. 생뚱맞을지 몰라도 '진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또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 속에서도 이 사회는 진보되어야하고 진보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법무부 홈피에 올라온 임수빈 검사를 응원하는 댓글들이나 엄마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아이들의 결연한 눈빛에서 그들은 알아야합니다. 와야 할 미래는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온다는 것을요! 아무리 급속 후진을 하고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을 여기저기 깔아놓아도 그 방향성을 되돌릴 수 없음을 그들은 깨달아야합니다. 당신들은 과거를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미래를 살고 있고 우리 모두는 미래를 향해 살고 있다는 것을요.

2008년의 마지막 날에 타종으로써 새해를 맞이하는 보신각에서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촛불을 저마다의 손에 들고서. 그래서 누구나 한 살 더 먹어야하는 12월의 마지막 밤 북악의 누군가는 어느 때보다 두려운 새해를 맞이하게 되겠지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음을 지금의 이 정부만 제외하고 모두 다 알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게 하는 촛불을 무서워하는 코미디 같은 현실이 마음 아프지만 한 번 더 힘주어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워 눈앞을 볼 수 없어도 수사자처럼 무서워 날카로운 발톱을 고추 세워도 그 밤이 지나면 새벽은 오고, 새날이 밝아 오는 것임을요!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