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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의 투쟁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김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22:11
조회
238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잔인한 계절이라 불리는 4월이 지나고, 화려한 외출의 5월, 5·18이 다가왔다.
5·18 민주화운동! 어언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시민은 국가폭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으며, 얼마나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묻고 싶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면서 쟁취한 소중한 우리의 자유와 권리, 그 피고름 속에서 얻은 영혼의 갈망이 지금 존중받고, 기억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법의 이름아래 처벌받아야만했던 수많은 국가폭력의 야만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엄혹한 시절에 ‘법은 법이다’, ‘명령은 명령이다’라고 부르짖으며 자의적이고 무분별하게 시민의 자유와 존엄성을 침해하였던 그 기억들로부터 이제는 자유로워졌는지 묻고 싶다. 아카시아 향기가 넘치는 계절의 광장에서 그렇게 파도쳤던 촛불이 법의 이름으로 1,500∼1,600여명이 처벌되어도,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시민의 미덕인지 묻고 싶다. 이 시대가 독재시절의 오도되고 오염된 법치주의 허울로부터 어느 정도는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도라 부르며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그 시대의 재판도 그렇게 합리화 되었었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고 싶다.

뿔난 민초들의 자발적 외침이었던 ‘촛불’ 재판에 관여하신 지체 높은 대법관 나으리께서 머리 숙여 반성하지만, 법에 따라 자신의 권한은 계속 행사하겠다는 장엄한 메시지를 보내셨다. 이것이 법대로 이고 원칙대로 인지 묻고 싶다. ‘사법행정’ 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뚤뚤 말아 사법부와 국민을 능멸하고도 그렇게 책임지지 않아도 좋은지 묻고 싶다. 이 나라 법원에 남아있는 양심을 짓밟고도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 운운하는 것이 무슨 심보인지 묻고 싶다. 이것이 문명국가 최고위직 판사의 양심인지 묻고 싶다.

5명의 시민이 사망한 끔찍한 죽음에 대해서 국가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없는 ‘용산참사’ 사건 재판이 검사들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로 인하여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게 검사가 위풍당당하게 수사기록 조차 변호인에게 제출하지 않아도 법의 이름으로 법대로 하였으니 괜찮은지 묻고 싶다. 철저한 수사, 한 점 의혹 없는 수사 결과라면 왜 수사기록을 변호인에게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러한 검사가 법률에서 말하는 ‘공익의 대표자’로, ‘인권옹호기관’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것이 법치국가 검사의 양심인지 묻고 싶다. 이러한 행위가 검찰이 휘두르는 정의의 칼인지 묻고 싶다.



090518web01.jpg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유가족과 회원들이 지난 5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진실은폐, 편파·왜곡 수사 검찰 규탄 대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한 시대 양심의 꽃들이 시들어가며 5·18 죽음의 장송곡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용산참사 사건을 바라보면서 몇 명이나 이 죽음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이제는 옛날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그리고 재판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는지 묻고 싶다. 역사의 질곡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 우리는 기억과의 투쟁에서 실패하고 있다. 기억과의 투쟁에서 패배는 불행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기억과의 투쟁에서 패배는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을 팔아넘기는 행동이다. 시대의 불감증과 건망증은 이 시대의 정의를 감옥에 보내는 행위이며, 악마와 교접하는 행위이다. 이 기억과의 투쟁을 위해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어머니회’는 오늘도 거리에서 시위를 계속하는 것일 거다.

악마들의 끊임없는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오늘 5·18의 골목길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그리고 재판’을 생각한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둥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