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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시나 한 수 읽으려네 (이지상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6:22
조회
249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보는 것도 좋아하고 뛰는 것도 좋아한다. 어릴 적 동네마당에서 깡통 차는 것으로 시작했으니 나의 축구인생도 꽤 오래 지속되는 셈이다. 축구를 하다보면 다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과욕을 부려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대개는 공을 잘 못 차는 사람이 다친다. 다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승부에 집착하여 상대의 몸쯤은 거실에 널어놓은 빨래처럼 툭툭 걷어차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대개 공을 잘 찬다. 이쯤 되니 대충은 알겠다. “힘을 가진다는 건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것을.
내가 아는 한 이 땅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힘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손이 천개 달린 부처님은 그 많은 손을 사바세계에 뻗쳐 중생의 고통을 덜어낸다. 천수관음의 손엔 눈이 달렸기 때문. 그러나 극심한 경쟁의 전리품으로 힘을 챙긴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눈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 힘을 가진 자기들끼리도 밤새는 줄 모르고 싸우기만 한다.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샤를 페펭은 프랑스 공교육의 목표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자유로운 개인. 둘째 양식 있는 시민 그리고 셋째로 자격 있는 일꾼. 여기에 우리가 안고 있는 공교육의 현실을 대입하면 쪼끔 불행해 진다. 아마 이쯤 되지 않을까. 첫째 집단에 속한 개인 둘째 복종하는 시민 그리고 나서 자격 있는 일꾼. 프랑스 교육이 스스로 주인 되는 삶을 지도하는 반면 우리의 교육은 철저히 노비의 삶을 지향하니 그렇게 쌓아온 이성 없는 권력은 누구의 가슴에 큰 상처를 입힐 것인가.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 어떤 마을 (도 종환 시/ 한 보리 작곡)

이런 동네를 찾고 있다. 물이 너무 맑아 새소리와 별 그림자까지 둥둥 떠다니는 그 물에 밥을 짓고 너나없이 둘러앉아 조근조근 삶을 나누는 풍성한 저녁식탁. 그 사람들 위에 한없이 따스한 별 무리가 봄볕처럼 스며드는 그런 마을. 힘없는 사람을 제일로 치고 힘 있는 사람은 조심해서 있는 듯 마는 듯 그 힘을 쓰고 힘 많은 사람은 그 힘을 부끄럽게 여겨 이집 저집 나눠주기에 골몰하는 마을을 살고 싶다. 누구에게나 굽신대지 않고 당당하며 주인 된 권리를 누리되 이웃의 지친 발걸음을 위해 자신의 어깨를 내어 주는 착하고 순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 그러나 참 어렵다 도종환의 어떤 마을에 나오는 풍경도 사람도. 소리 없이 여린 소녀의 머릿결을 보듬고 가는 바람도 내가 사는 마을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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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참 좋은 강변을 거닐면 몇 달 후 4대강 공사로 난장판이 될 흙탕물이 떠오르고 참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봉은사 대웅전의 부처님 얼굴처럼 자비롭게 해대는 정당 원내대표의 불편한 미소를 얘기하며 참 좋은 바람을 만날 땐 교육계 3대 비리 척결을 외치는 권력자의 용트림을 기상청도 속여 가며 찾아든 황사 막 듯 입막음해야 한다. 부처님 손바닥의 눈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공동체적 이성도 갖추지 못한 힘 많은 놈들의 뉴스를 훑으며 꼭 한마디씩 읊조리는 “이런 뻥쟁이눔의 시끼들” 같은 자조 섞인 욕설도 이젠 지겨울 때가 되었는데도 그칠 수 없다. 요즘엔 씨앤 블루라는 자칭 인디밴드가 불렀다는 외톨이야의 후렴구만 귀에 쏙 들어온다. “외톨이야 외톨이야 다리다리다랏 두우” . 최근에 나는 그 부분을 “뻥쟁이야 뻥쟁이야 다리다리다랏 두우~~”로 듣는다. 진짜 인디밴드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가린다는 뉴스를 듣고 난 다음부터다. 그냥저냥 나부터 변해야 한다 같은 짜증나게 당연한 어구를 주문처럼 외워도 도대체 나를 변화시킬 구석도 찾기 어렵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니체 선생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속이 꼬여 있으니 스스로의 정화 위해 다시 어떤 마을을 읽으며 내가 찾는 마을을 꿈꾼다. 그리고 기도한다 사랑을 사랑이라 이름하면 사랑이 아니라 했으니 뻥을 뻥이라 이름 하면 뻥으로 들리지 않는 이순(耳順)의 공력을 내게 허락 하소서...


- 이글은 아침독서신문에 송고한 “노래로 듣는 시”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