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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학자, 사이비 민주정부(도재형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6:23
조회
36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맹자(孟子)는 사이비(似而非)가 위험한 이유를, 비난을 하려 해도 비난할 것이 없고 공격을 하려 해도 공격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이비라 하더라도 그 태도는 충실하고 신의가 있는 것 같으며 행동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그 자신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사이비와는 함께 참다운 성현의 길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맹자의 말처럼 사이비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없게 하고, 옳은 사람을 옳지 않은 사람으로 오해받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이비가 존재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영역은, 종교를 제외한다면, 학문의 세계일 것이다. 어떤 학자가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지를 일반인들이 쉽게 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이비 학자나 연구자가 득세할 때, 학자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사라지고, 단지 특정 학자의 견해가 어느 쪽에 유리한지 여부로 편을 분류할 따름이다. 이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학자들이 정책에 대해 고민한 바를 얘기해도 정치적 집단이나 언론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나 선호에 따라 비난하거나 받아들일 따름이다. 이렇듯 좋은 학자와 연구자들이 비난 속에 움츠린 사이, 공론의 장은 사이비 학자와 연구자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벌어지는 일 역시 사이비 학자로 인한 폐해를 잘 드러내는 예이다. 국가 정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연구자들은 정치적 성향을 띤 자로 간주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이 오히려 학자적 양심을 운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가 얘기했듯이 사이비 학자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양심을 들먹이며 자기 얘기가 옳다고 떠든다. 그들은 자신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그들은 혜택을 얻고 자리를 보장받는다. 사이비란 원래 그런 자라고 여기며 개인적으로 조심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사이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닥칠지를 생각하면 이런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형식상 선거를 통해 구성되었다 하여 민주정부라고 부를 수 없다. 참다운 민주정부는 헌법이 목적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회적 연대, 복지국가 등을 실현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형성된 공론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며, 시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국가가 시민들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공론을 형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헌법의 이념과 국민의 참여를 도외시하는 정부는 사이비 민주정부일 따름이다. 정부가 헌법과 법률을 따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면, 시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공론 형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시민의 관심이 사라질 때 민주주의는 위험하게 된다. 결국 사이비 민주정부는 단지 특정 기간 동안 시민을 속이는 것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민주 체제를 위협하는 단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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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은 지난 24일 오전 11시 과천 노동부청사 앞에서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를 비판했다.
사진 출처 - 문화저널 21


노동부가 공무원 노조나 청년 유니온의 설립 신고서를 반려한 것이나 검찰이 법률에 따라 공무원의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교육감을 기소한 것을 볼 때, 맹자의 사이비에 관한 얘기가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법률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을 돕지 않고 오히려 이들의 행동을 범죄로 취급하는 것은 그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법률을 지킬 필요가 없고 특정 정치 세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심게 된다. 그런 사회가 어떤 모습을 띠게 되는지를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혹시 정부가 일단 자기 뜻대로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거부하고 수사하고 기소하고선, 몇 년 후 재판 결과가 나오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요즈음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이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 마음에 들지 않다거나 어떤 세력을 빨리 몰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후에도 우리나라가 민주적 체제 하에서 법에 의해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