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연예인의 사회적 위치 (김창남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09:54
조회
281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이 많은 연예인들이 TV 토크쇼에 나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가운데 “예전에는 연예인이 딴따라로 불리며 천대받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는 게 있다. 이는 대체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배우나 가수 등 연예 종사자의 사회적 지위는 오래 동안 매우 낮았으니까.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달라진 건 대체로 한국 사회가 산업화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연예산업의 규모가 커진 이후다. 지금은 누구나 알듯 연예인이 한국 청소년들에게 가장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다. 부모들도 더 이상 연예인이 되겠다는 자식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떡하든 길을 열어주고 도와주고 싶어 한다. 연예인으로서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거나 화려하기만한 게 아니라는 게 어지간히 알려진 터이지만 그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동경이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연예산업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는 대학 학과들이 늘 최고의 경쟁률을 보여주는 게 그 증거라면 증거일 수 있다.

연예인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스타로서의 연예인이라는 위치가 있다. 스타는 대중의 숭배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늘 대중의 타자로 존재한다. 대중은 연예인 스타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할 뿐 그들을 정당한 시민권적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연예인도 남들처럼 똑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똑같은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스타는 대중의 숭배의 대상이 됨으로써 막강한 권력을 누리지만 동시에 대중의 탐욕스런 시선 앞에 무기력하게 발가벗겨지는 타자일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과잉 노출된 존재이다. 과잉 노출은 과잉 소외를 낳을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넘어갈 문제도 그게 연예인이라면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는 게 대중의 시선이다. 바로 이런 과잉 소외가 연예인을 쉽게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두 번째는 상품으로서의 연예인이라는 위치가 있다. 문화산업의 입장에서 연예인은 가장 손쉬운 상품이다. TV방송이 왜 연예인들로 가득 차 있는가? 그들이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사건은 연예인을 인간적, 직업적 주체가 아니라 상품으로 보는 문화산업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 스스로가 자신을 상품으로 보는 시각을 내면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기보다는 상품으로 포장된 이미지만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게 그런 거다. 연예인이 상품으로만 존재하게 될 때 그 상품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그것을 곧 그 인간적 가치가 소멸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연예 저널리즘이 온통 황색지적인 스캔들과 가십으로 점철되는 것은 단지 기자 개인의 인식 때문이 아니라 연예인을 상품으로만 간주하는 사회적 시선의 표현이다.

세 번째는 놀이 대상으로서의 연예인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연예인은 인터넷 상의 가장 손쉽고 재미있는 놀이 대상이 되었다. 치고 빠지기 쉬운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들은 아주 쉽게 특정 인물을 스타로 만들기도 하고 또한 아주 쉽게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한다. 수많은 팬카페와 안티사이트는 일종의 게임이자 놀이의 장이다. 연예인과 대중은 기본적으로 익명적 관계이고 네티즌은 자신의 개인적 행위가 연예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부담 없이 가지고 놀 대상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연예인들의 인권은 사정없이 침해되곤 한다.

IE001217527_STD.jpg
KBS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7월19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제목의 KBS 내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네 번째는 지식인, 혹은 예술가로서의 연예인이라는 위치다. 사실 연예인은 어떤 식으로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예술인이며 지식인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상품화시키는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지식인이나 예술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스스로를 상품이나 스타로서보다 자의식을 가진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연예인이야말로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사람들이다. 매카시즘 시기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험프리 보가트, 월남전 시기 반전 운동에 앞장섰던 제인 폰다, 밥 딜런, 존 레논,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정부를 비판하며 반전의 목소리를 높였던 숀팬이나 마돈나 같은 스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또렷한 주관을 드러내고 분명한 자기 담론을 가진 지식인의 풍모를 보여주는 스타들이 많아질수록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연예인의 사회적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진다.

9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자기 담론을 가진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과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것은 단지 연예인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연예인들에 의해 연예인의 사회적 역할이 부각되고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MB정권은 자기 담론을 가지고 나름의 주관과 지성을 보여주는 연예인들을 하나 둘 밖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윤도현, 김제동, 김미화 같은 연예인들에게 닥친 일들을 보면 연예인들에 대한 권력자들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들은 연예인들이 그저 타자로서, 상품으로서, 놀이대상으로서만 존재하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 곧 눈 밖에 나 프로그램을 잃고 고소고발을 당해 곤욕을 치룬다. 그렇게 지식인으로서의 연예인들을 제거하고 나면 결국 연예문화는 온통 상품과 놀이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 대중문화 전반에서 엄청난 후퇴를 의미할 뿐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