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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게 없다보니’…‘대수천’,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그림자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0:38
조회
816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정문 앞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상임대표 서석구·김현욱, 공동대표 김찬수·이계성) 소속 회원이라고 밝힌 이들 150여 명이 모여 '친북·반미·반정부 정치사제 100인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필자 앞으로도 100인 명단이 담긴 책자 두 권이 초대장과 함께 배달돼 온 것은 물론이다. 약칭해 ‘대수천’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 자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비난한 사제 3명, 친북반미 반정부 시국미사를 주도한 신부 73명, 정진석 추기경(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용퇴를 요구한 신부 25명 등 100명(중복자 제외)의 '정치사제'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치사제'들이 남남갈등을 부추겨 1년 갈등 비용이 82~246조원에 달하며 540만 명의 천주교 신자 중 420만 명을 냉담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종북성직자는 북한으로 가라' '종북신부들은 각성하라'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기자회견 내내 외친 구호다.

이제는 무덤덤하게 그저 ‘에고, 또….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대수천은 지난 2013년 9월에 결성된 가톨릭 평신도들의 모임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10년 주요 일간지 광고를 통해 느닷없이 등장한 ‘천주교나라사랑기도회’를 잇는 조직이다. 서석구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변호사,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전 서강대학교 총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 등이 대수천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인물들이다.

천주교 부산교구 김계춘 신부와 전 서강대 총장인 박홍 신부 등이 지도사제를 맡고 있으며, 서울, 대구, 마산, 춘천, 제주 등지에 지부를 두고 1100여 명의 평신도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의 대결에 두고 있는 듯 한 인상이 짙다.

서석구 대수천 상임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는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고 정의와 사랑을 위하는 교회를 위해 종북, 반미, 반정부 사제들을 척결하고자 명단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고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를 포함한 모든 사제와 평신도의 영적 대각성은 물론, 회개를 통해 교회가 거듭 태어나도록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 정치사제들은 이제라도 교회와 나라를 위태롭게 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주시기를 간곡히 기도드린다.”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거듭되는 행동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낯 뜨거울 때가 대부분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장)에 대해서도 “지난 2008년부터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국미사를 거의 매일하면서 공사를 방해해왔고 평화스럽던 구럼비 마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 폭력을 선동해 왔다. 이로 인해 공사가 5년씩이나 지연되어 국민혈세 수천억이 더 들어가게 만든 반역 정치신부”라고 말한다. 또 “주교회의 의장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방한위원장을 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5회나 만나게 하면서 탈북동포들은 만나지 못하게 하고 음성 꽃동네 방문을 방해하면서 쌍용자동차 농성장, 제주해군기지 농성장,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는 가도록 유도한 반역사제”라고 주장한다. 이 정도면 ‘막가자’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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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랑 종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정문 앞에서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 100인 명단 발표' 4대종단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취재 현장에서 몇 차례나 대수천 회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던 필자가 이들에게 품게 되는 생각은 ‘안타까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사고와 행동의 ‘과잉’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시국미사를 봉헌하는 코앞에서 항의집회를 여는가 하면, 미사 중 성당 진입을 시도해 이를 막는 이들과 소동을 빚기도 한다. 사제의 강론이 귀에 거슬린다고 미사를 방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같은 형제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마치 ‘내가 기준이고 정통’이라고 강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이 ‘과잉’만 제거한다면 우리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필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교회 안팎의 전문가나 학자들은 이른바 ‘대수천 현상’을 그리스도교 정신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부재에서 찾는다. 한 마디로 신자로서 ‘공부’가 덜 됐다는 소리다. 실제 대부분의 신자들이 6개월에서 1년 남짓한 예비신자 기간 중 배운 교리나 성경 지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 그리스도교의 실상이다. 길어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배운 것을 가지고 평생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이다. 대수천 회원들 가운데 소위 먹물깨나 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박사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의 신앙지식은 ‘거기서 거기’라고 할 만하다. ‘배운 게 없다보니’ 소아병적 발상과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나 기준을 알려주는 ‘사회교리’는 ‘정통’교리가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회교리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지만,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삶을 통해 역설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함께해야 하고 세상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 서있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수천’은 이런 세상이 주는 십자가는 멀리하고 천상의 복락만을 추구하는 이들이라고 하면 큰 모욕일까.

개인주의적 신앙, 사회적 관심이 심각하게 결여된 자기중심적 신앙의 행태는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