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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업적 7가지 플러스 알파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0:37
조회
472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을 인상한 정권으로 기억될 거라는 힐난성 농담이 시중에 떠도는 모양이다. 담뱃값 인상을 빼고는 딱히 한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만들어낸 농담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내가 만약 ‘십상시’라면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나라만 생각하며, 퇴근할 때 자료 뭉치를 챙겨가 홀로 독파하는 대통령의 ‘열공 의지’를 조금이라도 감안한다면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해서 그렇지,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실로 많은 일을 했다. 십상시의 관점에서 지난 2년의 업적을 되짚어 보자. 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별도의 자료 조사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이렇게 많다.

1. 공직자 인사의 일관성 확립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사람들은 청와대와 내각을 육법당(육사+고시 출신)으로 채우려 하느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건 박 대통령의 깊은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박 대통령이 육법당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가까스로 통과한 이완구 총리의 예를 보자. 설마 박 대통령이 단지 행정고시 출신이라고 그를 총리에 지명했겠는가. 일단 이 총리는 새누리당 정권의 공직자 필수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의혹 3종 세트’를 기본으로 장착한 사람이다. 병역면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특히 병역면제 분야에서는 자신만이 아니라 아들까지 추가해 가산점을 받았고, 부동산 투기의 경우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개발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도덕성’ 분야에서 추가점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총리는 일단 후보 추천 안정권이다. 더 중요한 건 앞서 말했듯이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다. 이 총리는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장군의 친위조직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신이다. 전두환이 누구인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총아로서, 하마터면 민간으로 넘어갈 뻔 했던 정권을 지켜냈으며, 당시 시가로 은마아파트 32채 값에 해당한다는 거액을 청와대 금고에서 찾아내 ‘인 마이 포켓’ 하지 않고 영애에게 건넨 ‘의리’의 사나이 아닌가. 바로 그런 전두환과 함께 국보위에 근무한 공으로 훈장까지 받은 진정한 애국자가 바로 이완구다. 게다가 말 잘 듣는 언론인은 대학총장도 시켜주고 까부는 언론은 김영란법 같은 신무기로 협박까지 하는 등 독재정권에 필수적인 언론 장악 신공(이건 확실히 국보위 시절 배운 기술인 듯)까지 겸비한, 문자 그대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 실무능력을 타고난 공직자 되시겠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한 이유도, 대타를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하고 받들어 모셔야 한다. 김 실장만한 관록과 충성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장기집권 토대였던 유신헌법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91년 분신정국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서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라는 구호로 동서분열과 지역주의를 확고히 뿌리내리게 했으며, 보수진영의 눈엣가시와도 같던 노무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과감한 기획을 주도했던 인물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대한민국 법조인맥의 진정한 좌장으로서 사법부와 검찰을 두루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아직 정신 못 차린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일부 판사들이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을 하고 있지만(ex: NLL 문서유출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대법원은 이미 완전히 장악했다. 검찰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상태다. 이제 김 실장이 물러나더라도 시스템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후속 인사까지 완료했다.(우병우 민정수석은 ‘리틀 김기춘’이다) 역사적으로 분골쇄신한 충신들이 없지 않지만 김 실장 만큼 대를 이어 충성을 다 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첫 번째 꼭지부터 사설이 길었다. 법무부 차관의 엽기적인 ‘별장 성접대 사건’, 무기 브로커 출신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 CIA 정보원 경력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업무추진비로 재테크의 신기원을 이룩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해외 순방 수행 중 성추행 사건 등 각종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준 공직자와 공직 후보자들이 수없이 많았는데(이게 바로 창조경제다!) 이를 일일이 섬기지 못하고 다음장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새누리당에는 이런 훌륭한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국내 인력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아프리카에서도 인재를 모셔와서 구멍 뚫린 집에서 쥐새끼들과 함께 잠을 자게하고(동물애호), 월급도 떼먹으며(근검절약) 혹사시킨 분이 사무총장을 지낸 당 아닌가.

요컨대 박 대통령은 일관된 공직 후보자 기준을 확립해 대한민국 행정부의 도덕성을 잡범 수준으로 낮춘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유명무실화해 예산 절약 기회를 마련했으며, 사표를 낸 정홍원 총리를 10달 가까이 재활용한 것도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꼭 필요한 모범을 보인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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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직원 조회에 참석,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 신뢰와 원칙 지키기

다음은 불과 한 달 전 온 나라 월급쟁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나 미완에 그친 연말정산 혁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부자들에 대한) 신뢰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증세는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 역시 신뢰의 정치인이다. 대신,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을 조삼모사 전략으로 털려고 했으나 약삭빠른 중산층의 반발로 일보 후퇴한 것일 뿐이다. 남은 3년 동안 다른 속임수로 다시 한 번 관철하면 될 일이다. 부자들에 대한 신뢰와 원칙은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담뱃값 인상을 보라.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을 확실히 세우니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 있지 않았나. 망국의 지름길인 무상복지 시리즈를 철폐하자는 본격적인 논쟁이 일어나기를 내심 기대했으나 새누리당에조차 복지필요론자들이 창궐하고 있어 일단 무위에 그친 점은 끝내 아쉽다.
3. 통합진보당 해산과 우익 꿈나무 양성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률이 낮다고들 수군대지만 다 이유가 있다. 100% 대한민국 같은 경우를 보자. 모두들 비현실적인 공약이며 대놓고 거짓말한다고 비난했지만 박 대통령은 진심이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보라. 박 대통령에게 종북 세력은 100%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다. 어떻게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북한 편을 들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공안검사 출신의 정홍원 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기춘 비서실장 등으로 청와대와 내각을 꾸릴 때부터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100% 대한민국 만들기를 위한 박 대통령의 깊은 뜻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던가를.

100% 대한민국은 착착 진행 중이다. 이제 아무나 종북으로 걸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하거나 외국으로 추방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이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언론이 그렇다고 보도만 해주면 끝이다. 시간도 없는데 사실 여부 확인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이제 조금만 삐딱하면 좌파서적으로 몰아서 출판시장에서 고사시킬 수도 있다. 언론에서 ‘종북종북’ 떠들어주고, 일베 같은 사이트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고등학생도 애국 테러를 감행하는 시대가 됐다. 여자가 싫어 IS 요원을 자처한 고등학생까지 출현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이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이런다고 설마 종북세력이 척결되지는 않겠지만 무수한 우익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하고 있다는 얘기다.
4. 통일대박 뻥카 날리고 반대로 행동하기

2년 동안의 업적 중 가장 복잡 미묘한 분야다. 전임 이명박 정부가 워낙 죽을 쑨 대목이기도 하다. 통일의 헛된 꿈을 깨고 대화를 중단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명박 정부는 너무 서툴렀다. 괜히 북한을 자극해 연평도 포격을 자초하는 등 인기 떨어질 일을 골라 했다. 무엇보다 말로는 통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하거나 반대로 행동하는 기만술이 부족했다. 박 대통령은 일단 말실수를 가장해 ‘통일대박’을 화제의 키워드로 만들었고, 실제로는 대북전단 살포를 용인하는 등 중단 없는 대북 심리전을 전개했다. 실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신의 기술이다. 결과적으로 통일이든 남북대화든, 경제교류든, 이산가족 상봉이든 모든 분야에서 한 치의 진전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 미국과 일본 등 주변 열강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요, 아무것도 안하면서 친미친일 외교의 성과를 거두는 일이다.
5.세월호 뭉개기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박 대통령이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7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게 아니었다. 더 큰 실수는 서둘러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유족들과의 대화를 직접 진행한 것이다. 7시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처사였겠지만, 이로 인해 세월호 관련 모든 논의는 박근혜라는 깔때기로 수렴되고 말았다. 검찰이 국민의 눈길을 유병언과 구원파로 돌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번 고정된 시선은 돌리기 어려웠고, 의혹은 꼬리를 물었다. 정윤회와 대통령의 밀회 의혹도 세월호와의 관련성 속에서 뜨거워졌다. 결국 외신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해외토픽성 망신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도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빼앗기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제 7시간 의혹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저 검은 바다 밑에 영원히 수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깨에 손까지 올려가며 유족들이 원하는 모든 걸 해주겠다고 했던 다짐을 깡그리 모르는 척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강인한 아버지에게서 퍼스트레이디 수업을 받은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6.월드 패션쇼

취임 초기에 재미 좀 봤던 이벤트였다. 너무 자주 하면 약발이 떨어지므로 적당히 시차를 두고 써먹어야 한다. 비록 외교적 성과를 낸 순방은 한 번도 없었지만 한국의 미를 알리는 구실은 톡톡히 해냈다. 하루 만에 이렇게 여러번 옷을 갈아입은 대통령은 아마도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대통령이 일을 열심히 한다는 증거 아닌가. 국내에서 방송을 보던 노인 팬들은 “우리 영애 아가씨 참 곱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마다 지지율이 오르는 효과는 덤이었다. 말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대통령의 옷이 얼마나 많은지 필리핀 이멜다와 비교해 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택도 없는 얘기다. 티브이에 나올 때는 막걸리 먹고 안가에서는 시바스리갈을 즐겨 마시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검약정신이 어디 갈쏘냐. 다음 달에 중동에 간다는데 또 얼마나 많은 옷을 싸들고 갈지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다.
7. “나쁜 사람” 쫓아내 공직기강 바로 세우기

박 대통령은 “나쁜 사람”을 수첩 왼쪽에 적었다가 나중에 혼내준다(수첩 오른쪽에 적힌 ‘착한 사람’에게는 벼슬을 준다). 정윤회 딸을 괴롭힌 승마협회를 혼내주라고 했더니, 정윤회 쪽도 승마협회도 둘 다 잘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보고를 했던 문체부 공무원들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장관을 집무실로 불러 “나쁜 사람”을 혼내주라고 지시했다. 인사에서 확실히 물을 먹여서 공직기강을 바로 세웠다.

자식을 숨겨두고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한 검찰총장도 자리에서 쫓아냈다. 눈치 없이 박 대통령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검찰총장이었다. 사생활에 관한 문제니 만큼 청와대가 직접 나서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조선일보에 슬쩍 흘려줬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들여다본 일이 있어 일부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이 무슨 민주주의 시대도 아니고 웬 참견들인가. 어차피 국가가 관리하는 정보인데 필요하면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채 총장과 달리 소리소문 없이 가방을 싼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게 다 “나쁜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신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박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앞서 거론한 모든 업적을 뛰어넘는 게 하나 있으니 다름 아닌 ‘의리 지키기’다. 천금 같은 지지율을 까먹으면서도 측근들을 비호하는 눈물겨운 의리를 보여줬다. 조폭들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을 모셔서 회당 천만 원짜리 강의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살려고 친구에 마누라까지 팔아넘기는 가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보기 드문 미담이다. 특히 사대부의 유교정치 탓에 이 나라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던 ‘환관정치’를 조정에 뿌리내리게 한 공로는 조선 건국 이래 최대 업적이라 할 것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