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더 큰 폭력 (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0:36
조회
351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로 인해 세계가 시끄럽고 불안하다. IS는 기존의 ‘원리주의자’들 중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은 방식으로 폭력을 구사한다. SNS를 적절히 이용하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는 방식이 교묘하고 잔인하다. 기존 무슬림들도 혀를 내두르며 IS의 폭력성과 반이슬람성을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IS는 시리아 등에 걸쳐 일부 영토까지 장악하고 있어서 기존의 탈국가적 무장 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무슬림 학자 126명이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에게 IS의 행위가 이슬람적이지 않은 이유를 세세하게 담아 테러 행위를 멈추라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IS를 보며 IS와 같은 비이성적 집단이 사라진 평화 세상을 상상해보게 된다.

141291287628_20141011.JPG
민간인 학살과 납치 등 만행을 저지르는 이슬람국가(IS)는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지난 9월15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유엔 청사 앞에서 이라크계 쿠르드족 주민들이
IS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러면서 왜 IS 같은 집단이 힘을 얻게 되는지 근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IS의 폭력적 행위를 전적으로 IS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그보다 더 큰 구조적 폭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령 2001년 9.11 사건은 이른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미국에 저항하며 벌어진 일이다. 그들은 왜 미국의 심장부에 테러를 가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적’ 행위를 구미 열강이 편들던 역사로 이어진다.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근대 국가의 기초를 이루는 ‘시초의 범죄’가 영웅담과 같은 ‘고귀한 거짓말’로 포장되면서 근대 국가 권력이 정당화되었는데, 이스라엘이 국가 형성 과정에 남겨둔 ‘시초의 범죄’의 폭력적 흔적에 대해 이슬람권 일부가 저항하면서 테러 같은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저항에 폭력적 테러라는 딱지를 붙여놓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행했던 서구적 폭력의 역사가 놓여있다는 사실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대단히 불편해한다:

“(이스라엘은) ‘불법적 기원’이라는 ‘시초의 범죄’의 흔적을 아직 지우지 못한 곳이며, 그 흔적을 영원한 과거 속에 억압해둔 곳이라는 느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모든 국가권력의 지워진 과거이다.”

이 말의 속내인즉, 이슬람 원리주의 현상은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과정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에 대한 이슬람권의 불편한 심정은 나폴레옹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방적으로 공격받으며 시작되었던 이른바 ‘십자군전쟁’도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제국주의적 서구가 보여준 폭력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 뒤 서구의 침탈의 역사를 경험해온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무언가 서구의 세속주의적 정복주의 같은 것이 내내 불편하다.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IS 같은 무장 단체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다. IS는 끔찍한 행동을 멈춰야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왜 남들이 다 끔찍하게 여기는 일들을 자처해서 더 적극적으로 벌이는지는 그 역사적 원인과 속내까지 드러날 때에야 알려지고 또 해소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