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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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38년 어느 날 런던 동물원에서 오랑우탄 제니를 만났다. 제니는 보르네오에서 온 세 살짜리 암컷 오랑우탄으로 런던 동물원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오랑우탄이었다. 제니는 난방이 들어오는 우리에 갇혀 인간처럼 옷을 입고 차를 마시는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제니가 다윈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 없지만, 다윈이 본 제니는 기록에 남았다. 다윈은 오랑우탄과 인간의 공통점을 눈여겨보았다. 제니를 관찰한 다윈은 인간 어린아이와 닮은 오랑우탄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나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진화적 연속성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노트에 적었다. 후일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에서 유인원 관찰이 흥미로운 이유는 감정 표현이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기쁨, 즐거움, 애정을 표현할 때면 인간도 유인원도 입술을 내밀고 웃는 소리를 내고 눈을 반짝일 뿐만 아니라 고통, 슬픔, 고민,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까지도 똑같다고 했다.   오랑우탄은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에서만 서식하는 대형 유인원이다. 오랑우탄이란 말은 고대 말레이어로 ‘숲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얼굴과 몸이 털로 가득 덮여 있고, 숲속 나무 위에 살며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한 이 유인원을 고대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현지인들은 ‘uraŋutan’, ‘wuraŋutan’, ‘uraŋuta’ 이라 불렀다. 이를 들은 유럽인들이 ‘Orang Outang’, ‘Ōran ootan’이라고 적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성성(猩猩)이’이라고 불렀다.   오랑우탄이란 말은 1630년대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왔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오랑우탄은 당시까지 유럽에 알려진 모든 대형 유인원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였다. 놀랍게도 pygmy, Indian satyr, pongo, jocko, barris, drill, smitten Quioias Morrou, salvage 같은 용어가 오랑우탄과 같은 의미로 쓰였고, 오랑우탄과 침팬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오랑우탄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오랑우탄을 부르는 이름이 여럿일 뿐만 아니라 유럽어, 아시아어, 아프리카어가 혼재하는 언어적 혼란과 동남아시아에 사는 오랑우탄과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가 구분되지 않는 지리적 혼동은 오랑우탄이 유럽에 던진 충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오랑우탄이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이유는 유럽인의 인식체계에 들어온 이 낯선 동물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몹시 곤란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를 불길하게 상기시키는 이 생명체를 늑대소년 같은 야생인간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원숭이에 가까운 종이라고 하면 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18세기는 ‘오랑우탄의 세기’라고 할 만큼 오랑우탄 연구는 이 시기 자연사와 비교해부학 분야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프랑스의 과학자 니콜라 클로드 파브리 드 페이레스크(Nicolas-Claude Fabri de Peiresc)는 아프리카와 지중해 여행을 통해 오랑우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 동물은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제3의 종”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오랑우탄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구분선을 명확히 그음으로써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오랑우탄이 쏘아 올린 질문이 계몽주의 시대 자연학과 인간학을 관통하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오랑우탄은 어떻게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네덜란드동인도회사의 상업 네트워크는 유럽에 아시아 오랑우탄에 관한 지식이 전해지는 주요 루트였다. 오랑우탄이란 말을 책에 써서 처음 소개한 학자는 야코부스 본티우스(Jacobus Bontius)였다. 레이덴 태생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의사로 바타비아에서 활동했던 본티우스는 저서에 오랑우탄에 관한 묘사와 삽화를 남겼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이 놀라운 괴물이 직립해 걸어 다니는 것을 자신이 직접 여러 번 목격했으며, 자바인들에 의하면 오랑우탄은 말을 할 줄 알며, 혐오스러운 욕정을 만족시키려고 유인원이나 원숭이와 관계하는 인도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Jacobus Bontius, Engraving of a orangutan, 1658, Wellcome Collection L0032838 출처: Wikimedia Commons   유럽 최초로 살아있는 유인원을 관찰하고 책에 쓴 사람은 네덜란드 의사이자 암스테르담 시장이었던 니콜라스 튈프(Nicolaes Tulp)였다. 『의학적 관찰』(1641)의 한 장(章)을 할애해 오랑우탄에 관해 썼다. 오랑우탄을 ‘호모 실베스트리스(homo sylvestris)’라고 표현하고, ‘인디언 사티로스(Indian satyr)’와 같은 존재라고 적었다. 이런 동일시는 고대 로마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와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Claudius Aelianus), 16세기 스위스 의사 콘라드 게스너(Conrad Gesner)로 이어지는 유럽 박물학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튈프가 관찰한 오랑우탄은 1630년 한 네덜란드 상인이 들여와 헤이그의 오라녜공 프레데릭 핸드릭(the Prince of Orange Frederick Hendrick)의 메나주리에서 사육한 개체였다. 튈프는 신체적 특징을 조사했을 뿐 아니라 컵을 사용해 물을 마시고 잠잘 때 베개와 담요를 사용하는 것 같은 행동에 주목해 마치 ‘가장 교육받은 사람’ 같았다고 적었다. 튈프는 오랑우탄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면서도 고전 문헌에서 읽은 ‘호모 실베스트리스’, ‘인디언 사티로스’라고 판단하고, 전통에 기대어 신빙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택했다. 계몽의 시대라고 하지만 경험적 관찰은 아직 고전의 권위를 이기지 못했다. 튈프의 책은 한 페이지 전면을 할애해 오랑우탄 판화를 실었고, 이 판화 덕분에 유명한 텍스트가 되었다. 판화에서 오랑우탄은 늘어진 젖가슴에 다소곳한 태도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있는 여성화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튈프의 판화는 과학 논문과 대중 여행기에서 수없이 복제·유통되었다.   Nicolaes Tulp, Homo Sylvestris, Observationes Medicae, 1641 출처: 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84.   사체 해부를 통해 오랑우탄의 정체에 대해 해부학적 결론을 내놓은 학자는 페트루스 캄퍼르(Petrus Camper)였다. 네덜란드 의사이자 해부학자 캄퍼르는 여러 마리의 오랑우탄을 해부해 밝혀낸 결과를 1779년 영국 왕립학회 학술지 『철학논문집』에 실었다. 캄퍼르의 논문 「오랑우탄의 발음기관에 관한 설명」은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과 차이에 관한 답이 되었다. 이 논문에서 캄퍼르는 오랑우탄의 언어사용과 인간과의 교접 가능성을 전면 부정했다. 후두부의 구조상 언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생식기도 인간보다 개와 유사하다고 밝힘으로써 인간과 오랑우탄의 성교와 번식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캄퍼르가 여러 마리의 오랑우탄을 해부할 수 있었던 배경은 1770년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네트워크를 통해 네덜란드 총독의 메나주리로 공급된 아시아 오랑우탄의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서 오랑우탄은 과학적 관찰과 해부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호기심 많은’ 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오랑우탄에 관한 기사는 정기적으로 신문에 실렸고, 런던의 커피하우스 같은 새로운 사교와 공론의 공간에 오랑우탄이 전시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오랑우탄은 살아서는 왕과 귀족의 메나주리, 커피하우스, 동물원에서 사육·전시되었고, 죽어서는 해부대 위에 올랐다가 표본이 되어 자연사박물관에 안치되었다. 오랑우탄의 본성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되고, 유럽 동물원에 대중의 구경거리로, 자연사박물관에 해부학 표본으로 안치되는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동물성과 인간성에 관한 논쟁은 유럽과 비유럽 사이에 구축된 수많은 연결망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유럽과 비유럽의 연결은 인간과 인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유인원의 글로벌 교환으로도 드러났다. 인간과 같은 ‘사람과(Hominidae)’의 친척 오랑우탄이 아직도 동물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Charles Darwin, Notebook, 1838. Lines 79 & 196–197. http://darwin-online.org.uk/content/frameset?eywords=boast%20of%20his%20proud&pageseq=69&itemID=CUL-DAR122.-&viewtype=text 2)찰스 다윈, 김성한 옮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사이언스북스, 2020), 206-211쪽. 3)Wayan Jarrah Sastrawan, “The Word ‘Orangutan’: Old Malay Origin or European Concoction?,” Bijdragen tot de taal-, land-en volkenkunde/Journal of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of Southeast Asia 176.4 (2020), pp. 536-539. 4)성성(猩猩)은 전근대 한자문화권의 고전들에 기록된 인간을 닮은 동물의 통칭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침팬지를 흑성성(黑猩猩), 보노보를 왜성성(倭猩猩), 고릴라를 대성성(大猩猩), 오랑우탄을 홍성성(红猩猩)이라고 한다. 5)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The Orangutan, Savagery, and the Borders of Humanity in the Global Enlightenment,” History of the Human Sciences 32.4 (2019), p. 82. 6)M. C. Meijer, “The Century of the Orangutan,” New Perspectives on the Eighteenth Century 1 (2004), pp. 62–78. 7)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83. 8)튈프는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1632)의 주인공이다. 9)라틴어로 호모 실베스트리스(homo sylvestris)는 ‘숲(sylva)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야만(savage)과 숲(sylva)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다. ​ 10)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p. 82-83. 11)Petrus Camper, (1779) ‘Account of the Organs of Speech of the Orang Outang’, Philosophical Transactions 69 (1779), pp. 139–159. 12)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93 13)사람과(Hominidae)는 사람,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을 포함하는 영장류의 한 과이다. 대형 유인원이라고도 부른다. 이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는 침팬지와 보노보다. 14)Jacobus Bontius, “Historiae naturalis et medicae Indiae orientalis [Natiral and Medical History of East Indies],” in W. Piso, De Indiae utriusque re naturali et medica libri quatuordecim [On the Natural and Medical Things of Both Indies in Fourteen Books]. (Amsterdam: Lodovicum et Danielem Elzevirios, 1658).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염운옥 #오랑우탄이쏘아올린질문 #칼럼
2023-02-13 | hrights | 조회: 873 | 추천: 5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광기의 자유 권력과 광기의 결합만큼 결정적인 위험이 있을까? 여기에 돈벌이의 기회 조작까지 더해지면 타는 불에 계속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광기가 더욱 솟구쳐오른다. 게다가 거기에 현존하는 거대 정치권력의 뒷배가 작용하면 완벽하게 인간성이 소멸하고 정치가 실종된다. 2023년 2월 4일에 방영된 《뉴스타파》의 <정치깡패가 된 ‘아스팔트 유튜버’>를 시청하고 난 뒤, 예상을 뛰어넘는 사태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극우 유튜버들의 작태들을 대략 알고 있긴 했으나, 단편적이나마 정돈된 영상을 통해 그 실상을 접하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노골적이고 비합리적인 광기의 폭력에 휩쓸리고 말았는가, 하는 절망감이 일순간 나의 심정을 억누르면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불어 어떻게 만든 민주 사회인데, 하는 심정에 분노가 치솟으면서 폭력에는 폭력 외에 다른 치유책이 없다는 확신이 나의 심사를 지배하기까지 했다. 출처 - 뉴스타파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대통령 윤석열 씨의 집권이 이런 ‘정치깡패 유튜버들’의 활동에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연설 때면 대통령 윤석열 씨가 왜 그렇게 자유를 거듭 강조하는지 알쏭달쏭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뉴스타파>의 저 영상을 보고서 그 이유와 내용을 짐작하게 되었다. 내심 논리 비약이길 바라지만, 그가 말하는 자유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시체 팔이” 운운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김상진이라는 인물이 주도하는 ‘신자유연대’라는 단체의 이름에 들어있는 ‘자유’와 같다는 것, 말하자면, 극우 보수 무리가 말하는 자유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른바 민주주의를 외치는 진보 세력은 알고 보면 친북 좌파 빨갱이 간첩의 집단들이다. 그리고 그 수장은 문재인이고 이재명이다. 그 증거는 한반도 평화를 빌미로 북한과 중국에 예속되어 미국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고 친일을 범죄시한다는 것이다. 멀쩡한 우리 공무원을 탈북자로 만들어 죽이는 게 그 증거다. 언필칭 민주 세력이라는 이 집단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와 자유는 엉터리고 위장일 뿐이다. 이 세력들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예 함께 할 수 없는 적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 집단을 철저히 적으로 여겨 척결하는 길만이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이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이 적들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척결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이고, 검찰 권력을 곳곳에 정치권력으로 확대해 정확하게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검찰 공화국’이니 ‘검찰 독재’니 하는 말은 우리가 잡은 기회를 정당화하는 말이니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달가워해야 한다. 저들에게 조그마한 틈을 보여서도 안 된다. 내가, 우리가 집권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왜 영수 회담 운운하는 짓을 하지 않았겠는가. 적과 마주 앉아, 더군다나 국정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 야당의 힘을 내세워 협치 운운하는데,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어떻게든 아차 했으면 질 뻔했던 적의 두목인 이재명을 감옥에 잡아넣어야 한다. 그 인간을 살려 두면 종북 좌익의 준동을 막는 일이 힘들어진다. 만약 다음 대선에 정권을 넘겨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로지 죄를 법으로 정당하게 다스렸을 뿐 죄를 지을 수 없는 우리를 오히려 잡아넣지 않겠는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나와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걸 눈치채도록 해서는 안 된다. 무슨 실수를 했건, 무슨 일을 벌였건, 무슨 일이 벌어졌건 간에 결단코 의무를 다하지 못해 잘못했다고 사과하거나 잘못 실수를 저질렀다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딱 잡아떼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저것들이 뭐 어쩌겠는가. 의혹이니 뭐니 아무리 떠들어도 겁내지 말고 오히려 역공을 취해야 한다. 우리가 쥐고 있는 검찰과 경찰의 공권력을 활용해야 한다. 고발하고 고소해서 겁을 주고 몰아붙여 입을 다물게 하고 굴복시켜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못 살겠다고 나설라치면 전번 정권의 탓이라고 몰아붙여야 한다. 막강한 언론들이 다 우리 편이지 않은가. 재벌 기업들이란 본래 정권에 아부하기 마련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고, 게다가 그동안 내가, 우리가 많이 봐주었잖아. 언론과 재벌을 장악하면 그걸로 얼마든지 우리의 뜻을 펼칠 수 있잖아. 최대한 함께 보조를 잘 맞추도록 해야 한다. 내가, 우리가 어떻게 통치 권력을 거머쥐었는가. 국민이 나를, 우리를 선택한다고 해서 가능하겠는가, 신적인 운명이 나를, 우리를 택했으니까 가능했다. 그러니 아예 걱정해서는 안 된다. 나의, 우리의 통치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줘야 한다. 무조건 밀어붙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방해되는 자가 있으면 눈치 볼 필요 없이 틀림없이 제거해버려야 한다. 나를, 우리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놈들은 철저히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거짓말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경선 때건 대선 때건 무슨 공약을 내세웠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게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이고, 진정한 자유다. 김정은이 핵무기 좀 있다고 나를, 우리를 내놓고 함부로 욕하는데, 가만두면 도저히 안 된다. 전쟁을 겁내면 안 된다. 선제공격,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먼저 쳐야 한다. 확실한 우리 편이 있지 않은가. 미국도 있고 일본도 있고 나토도 있지 않은가. 내가, 우리가 나토에 괜히 갔겠어? 일단 미국 바이든에게 전술 핵무기 배치해 달라고 하고, 안 되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는 거야. 중국이 문제라고? 중국과의 교역? 지금 교역이 문제야? 자유가 문제지. 좌고우면하지 않는 자유, 조금이라도 나, 우리를 비방하고 말 안 듣는 놈은 안에서건 밖에서건 다 적이야. 작건 크건 적은 무조건 척결해야 해. 그게 자유야. 그게 자유 민주주의야. 진보주의적 자유 워낙 불안하고 갑갑한 마음에 잠시 흥분했다 싶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악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악이 무지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잘못된 짓인 줄 알긴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짓을 하고 말았다는 건 소크라테스에게 통하지 않는다. 잘못된 짓인 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나쁜 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짓을 할 때, 그 짓이 잘못된 것임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그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하는 짓이 잘못된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과연 제대로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만약 알 수 있다면, 그 앎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 사는데도 올바르거나 잘못된 짓이 성립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과 전혀 상관없이 올바르거나 잘못된 짓이 성립할 수 있을까? 여러 전제들을 고려해 따지게 되면 복잡하겠지만, 단적으로 보면 복잡할 게 없다. 내가 하는 행위가 남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면, 올바르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짓이 올바른지 잘못된 것인지의 기준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찾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온갖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겠지만, 올바름과 잘못됨에 관한 기준을 찾기 위해 고려해야 할 일은 일단 간단하다. 내가 하는 짓이 남에게 득이 되면, 내가 하는 짓은 올바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짓이 남에게 해가 되면, 내가 하는 짓은 잘못이다. 그렇다면 남에게 득이 되는 일이 무엇이며, 해가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문제다. 이를 정확하게 분별했다 할지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남에게 득이 되는 게 분명하다고 해서 내가 그 일을 남에게 함부로 권유하거나 심지어 강권하거나 강제로 시킬 수 있는가? 남에게 득이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내가 남에게 강제로 하도록 하는데도, 과연 그 일이 그 사람에게 득이 될 수 있을까? 남의 자유를 빼앗으면서까지 그 사람에게 득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달리 말하면, 내가 올바른 짓을 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만약 누구에게나 자유가 가장 큰 득이라면, 이는 아예 불가능하다. 묘하게도 누구나 자유를 추구한다. 자유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데 가장 근원적인 요소라 여긴다. 그래서 자유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득이고, 따라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만큼은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유조차 근원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해서만 의미 있게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자유롭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만큼 나의 자유의 폭이 더 커지지 말란 법도 없다. 실제로는 오히려 그런 법이고, 그래서 자유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남도 자유롭고, 남이 자유로운 만큼 내가 자유로우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는 자유에 관한 이상적 상황이다. 묘한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상을 포기할 자유가 없다. 어렵게 들리겠지만, 오로지 남들과의 관계에서만 나의 자유가 성립한다고 할 때, 자유롭지 않은 남들을 통해서는 나의 자유가 성립할 수 없다. 남을 마음대로 부리는 데서 나의 자유가 성립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남들을 존중할 때 나의 자유가 제대로 성립한다. 자유는 아무것도 아닌 텅 빈 형식으로서 성립할 수 없다. 자유는 실질적인 내용을 통해서만 제대로 성립한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행동의 자유지만, 자유로운 행동은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새로운 여건을 창조할 때 그 실질을 확보한다. 남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을 때, 그런 남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사는 나의 자유가 더 풍부하게 실질을 획득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과 창조적인 행위의 공동체를 통해서만 실질적인 자유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현실화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자들을 일컬어 진보주의자라 일컫는다. 그래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근원적으로 일치한다. 진보주의자는 더 나은 미래의 현재를 향해 상상한다. 이때 더 나은 미래의 현재는 창조적인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현재다. 진보주의자는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그 전제 위에서 그 제한의 폭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이런 까닭에 진보주의자는 평등을 지향한다. 평등은 자유와 전혀 대립하지 않는다. 불평등이야말로 자유를 위협한다. 불평등한 자유는 텅 빈 형식에 따른 자유일 뿐, 실질적인 자유가 아니다. 실질적인 자유에서 실질은 배타적인 소유와 처분을 통한 향유를 넘어서는 데서 주어진다. 함께 향유 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결과물들, 예를 들어 예술과 문학, 학문과 기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종교 등을 향유 하는 데서 자유의 실질이 주어진다. 배타적인 나의 자유를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하는 자는 제대로 된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는 누구든지 나의 적이라고 여기는 자의 입에서 발설되는 자유에 대한 강조는 무지와 확증 편향에 따른 것으로서 자유의 실질을 파괴한다. 남들을 지배하는 권력만이 자유를 가능케 한다고 생각하는 자의 자유는 남들은 물론이고 저 자신마저 노예로 만든다. 이러한 자의 생각이 뭉쳐지게 되면 자신만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자유를 자신에게 일관되게 맞추어야 한다는 파쇼적인 사상이 된다. 파쇼는 자유주의의 적이고, 더욱이 진보주의의 적이다. 최대한 보편적인 실질의 평등을 통해서만 실질적인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그런 만큼 자유를 훼손하는 자다. 현행법은 현실 권력의 충돌과 타협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갖는 현행법의 권위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등과 자유의 일치를 방해하는 법은 그런 만큼 배타적인, 자유 아닌 자유를 위한 것이기에 수정되어야 하고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법의 궁극적인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의 한계를 무시하고 현실 권력의 법을 절대적인 양 내세우는 자는 실은 법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거머쥔 현실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고자 법을 악용하는 것이다. 그 증거는 자신의 배타적인 유불리를 따져 배타적 · 선택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데서 나타난다.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수요산책 #조광제 #자유 #민주주의 #광기 #칼럼
2023-02-08 | hrights | 조회: 403 | 추천: 3
석미화 / 평화활동가   새해가 밝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풍경은 언제나 회한과 기대가 교차한다. 해가 바뀌는 그 시간엔 눈썹이 하얗게 셀까봐-물론 그 말을 믿는 나이는 지났지만-왠지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늘 자정을 넘겨 잠을 청한다. 하긴 음력 섣달그믐날 밤 풍속이니 상관없겠다만. 밤을 밝히며 지난해에 미처 못한 일들을 꺼내 본다. 그중에는 주변에 감사 인사 드리기도 있고, 또 그해에 꼭 쓰겠다고 마음먹은 글쓰기도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미처 하지 못한 글쓰기 숙제 하나를 꺼내 보기로 한다. 비록 해를 넘겨 쓰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2022년 한베수교 30주년에 대한 짧은 생각을 이제야 긁적여 본다.   출처 - 아주경제 2022년은 한국과 베트남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지난 12월 초에는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이 최고 수준의 협력관계로 나갈 것을 합의하기도 했다. 수교일인 12월 22일 기념 리셉션과 정부 행사가 이어지며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협력과 교류가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거창했지만, 정작 ‘한베수교 30년’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려는 노력은 찾기 어려웠다.   1975년에 전쟁이 끝나고 한국은 베트남과의 교류를 끊지만 91년 소련 붕괴 후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북방정책’으로 92년 다시 수교를 맺는다. 나는 지난 활동 속에 수교와 베트남전쟁을 키워드로 과거 어떤 기사가 등장했는지 검색해 본 일이 있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 관계에 베트남전쟁과 수교가 상호 어떤 영향을 미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구였다. 수교는 한베 과거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수교 협상 테이블에 양국의 과거사가 주요 의제로 오른 것은 아니었다.   99년 이후 베트남전쟁은 한국군의 전쟁 범죄에 대한 기사가 자주 등장하지만 수교 전후 시기에는 달랐다. 라이따이한, 국군포로, 그리고 난민에 대한 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라이따이한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가난과 동정, 이산의 슬픔을 강조하는 신파가 많았다. 베트남에 한국군 생존 포로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수교가 이루어짐으로써 부산 ‘월남난민보호소’ 표정을 다룬 기사도 보였다. 보트피플로 한국에 들어온 남베트남인들이 수교 후 송환될 것을 걱정하는 기사였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고엽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장시간 고속도로를 점거한 사건이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양 국가 간 정상회담과 공식적인 외교 행보가 이어질 때마다 과거사 문제는 항상 언론에 등장했다.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은 한국과 베트남의 꾸준한 교류와 수교로 인한 공식외교 속 과거사에 대한 조명, 사회 민주화와 참전군인의 기억 투쟁이라는 복잡한 지형 속에서 그 흐름을 타고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사회적 성찰의 기회로 만든 것은 지속적인 후속 보도와 시민사회의 관심이었다.   그보다 앞선 90년 월간 <말>의 ‘민간인학살’ 보도로부터 불과 2년 후 한베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양국의 과거사가 폭넓게 조망되지 않은 점은 의아하면서도 아쉽다. 민주화 이후 참전군인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속에도 언론들은 베트남전쟁의 어두운 유산에 대해 외면했다. 참전군인의 기억투쟁은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소외되어 온 그간의 과정을 보상받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반사적으로 ‘보상’과 ‘명예’에 집중해왔다. 지금도 대한민국 방방곡곡 ‘월남참전기념탑’이 세워지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만든 공법단체 ‘월남참전자회’ 소속 참전군인 40여 명은 베트남을 방문해 한국과 베트남 전사자에 대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 58주년 월남참전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참전기념식’이라니... 종전과 더불어 평화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6.25도 전쟁 발발일로, 월남전도 전쟁 참전일로 기억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   출처 - 네이버블로그 수교 이후의 보도를 모니터하며 느낀 것은 한국과 베트남이 과거사에 대해 의식하고 있으나, 해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 적으로 만났던 양 국가 간에는 역사적 성찰 없이 ‘전장에서 시장으로’라는 실리적 입장만이 난무하다. 수교 30년, 시장과 경제, 외교, 명예를 강조하는 저마다의 ‘기념’ 사이에 양국의 과거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수교 30주년에 우리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자화상이 아닐까.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석미화 #한베수교 #한국 #베트남 #단상
2023-01-10 | hrights | 조회: 604 | 추천: 5
이윤 / 경찰관 40대 중반까지는 1년에 한두 번 크게 화를 냈다. 주로 상대가 (내 기준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제 고집을 부릴 때 화가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조리함에 분노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는, 어릴 적 들었던 출처 불명의 말이 불쑥불쑥 마음을 헤집었던가 보다. 지금 생각하면 옳다는 기준이 나였다는 것부터가 부조리했다. 40대 후반부터는 철이 들었는지 그나마도 화를 잘 안 내고 있다. 화가 나려고 할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되뇌고 있다. 사람 하는 일에 한 가지 길만 옳은 것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밀어붙일 수도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출처 - yes24 아버지의 해방일지 최근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을 읽었다. 화자 아버지의 ‘오죽하면 글겄냐’, ‘긍게 사램이제’, ‘다 사정이 있겄제’라는 세 문장은 관용과 이해의 표현이었고, ‘그럴 수도 있지’보다 강력한 무기였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소설 속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로 평생을 산 사람에게서 연상되는 단단하게 날 선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념과 사상의 뿌리에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항꾼에’라는 사투리가 그 추측을 뒷받침한다. 스스로는 유물론자이며 사회주의자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박애주의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었지만, 다른 이를 돕고 보듬으며 맺은 관계의 덩굴은 장례식장에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이분의 딸처럼 냉정한 합리주의자 범주에 포함되는 나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반성도 되었다. 그래도 읽는 중에 4번 정도 눈물을 훔칠 정도면 감성이 아주 말라버리지는 않은 것 같아서 좀 안심했다.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50대 중반 갱년기 증상이라는 지적도 있긴 하다. 언론을 통해 보는 요즘 세상은 증오, 분노, 탐욕으로 가득하다. 간혹 돈쭐내는 미담기사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기사 대부분에서는 각박함을 넘어 두려움까지도 느껴진다. 이태원 참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 등에 대해서도 증오와 비난, 모욕을 표현하는 반응이 많고, 심지어는 오피니언 리더라는 분들도 부정적 반응에 동참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자식팔아 장사한다’라고 한 정치인도 있었고, 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승하차 시위에 시위 전철역을 무정차 통과하라는 서울시 결정도 있었다. 총파업을 하는 화물연대를 ‘사회 악의 축, 암적인 존재들’이라고 한 정치인도 있었다. 사람들에겐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다. 그러니 내가 불편하고 힘들다고 해서 너무 각박하게 몰아세우기보다 ‘오죽하면 글겄냐’라는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똘레랑스 프랑스에서는 파업과 시위가 무척 많다고 한다. 소방관, 교사, 판사도 파업하고, 심지어 경찰도 파업 때문에 힘들어서 파업한다고 한다. 파리 곳곳은 파업과 시위로 예상치 못한 불편과 불친절과 비효율이 넘쳐난다고 한다. 며칠 전 파리에서 쿠르드족 대상 총격 사건이 있었다. TV 뉴스에서는 이 때문에 시위대가 차량을 뒤집거나 불태우고, 경찰에 물건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최근에 한국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영상이었다. 만일 요즘 한국에서 그런 폭동에 가까운 시위가 있었다면 난민에 대한 혐오와 그들을 받아들인 정부에 대한 비난, 주동자 색출과 처벌 요구가 각종 미디어 및 SNS에 흘러다녔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의 프랑스발 기사를 아직 보지 못했다. 파업과 시위가 많아도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이 내가 될 수도 있잖아’라며 서로 감내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불평할지언정 비난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프랑스인의 가치관을 잘 표현한 단어가 ‘똘레랑스’다. 똘레랑스는 우리말로 ‘관용’이라고 번역되지만, 정확하게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ㆍ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고 한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푸는 자비나 관대한 마음이라기보다는 ‘나와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도 있겠다’라고 인정하는 마음에 가깝다.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타인의 사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이해하고 인정하려면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는데, 대화보다는 자기 주장의 목소리만 커지는 모양새라 안타깝고 불안하다.
2023-01-03 | hrights | 조회: 478 | 추천: 11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1. 새벽부터 아침 녘까지 내린 눈이 쌓였다. 올해는 눈 소식이 잦은 듯한데, 출근길을 걱정하는 어른과 달리 신이 난 아이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며칠 전, 걸음마를 뗀 듯한 아이 한 명에 네 명의 어른이 둘러싸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웃던 생각이 났다. 나 어릴 때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칭얼대곤 했으니까.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으며 빙판이 졌는데 그 위로 쌓이는 눈을 보자니 조금은 짜증이 났다. 그런데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이란 참,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다니…. 그래도 지금 할 일은 눈을 쓸어야 하는 것, 그렇게 서둘러 3층에서부터 쓸어내린 눈은 대문 앞에 한가득 쌓였다. 이른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차도와 학교 앞 거리는 눈이 깨끗이 치워졌다. 그런데 학교 앞 신호등 앞에 있는 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 아이는 제 몸집만큼 커다란 눈뭉치를 들고 있고 한 아이 옆에는 그만한 눈뭉치가 있었다. “쟤들이 저걸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생각하며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신호등이 바뀌니 두 아이는 낑낑대며 그것을 옮기려고 애를 썼다. 잘못해서 눈뭉치가 깨지기라도 할까 싶어 행동에는 조심스러움마저 있는 게 아닌가. 길 건너온 아이들한테 너희 몇 학년이니 물으니 3학년이요 그런다. “그거 집으로 가져가는 거야?” “네.” “무겁지 않아?” “무거워요.” 하며 웃는다. “손도 시려워요.”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오가는 어른들이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든다. “그걸로 뭐하려고?” “어디로 가져가는 거냐?” 출처 - 저자 눈이 많이 내린 아침 뉴스는 내 집 앞 눈 쓸기, 출근길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을 쉴 새 없이 안내했다. 빙판길 행동요령도 잊지 않았고, 방한 차림 얘기도 빼지 않았다. 덕분인가, 도로 주변으로 군데군데 보이는 흰눈 빼고는 눈이 왔나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데 눈이 내린 날의 즐거움을 아이들은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 운동장에서 굴린 제 몸집만큼 커다란 눈 뭉치를 집으로 가져가려는, 힘에 부친 일을 하면서도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노고는 제 집 앞에서 살아나겠지. 위아래로 눈뭉치를 잇고, “야, 눈사람이다!” 하고 환호했을까? 그런데 눈 코 입은 무엇으로 그렸을까?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도 눈사람 하나 만들어야겠다 생각하며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두 아이가 대문 앞에서 무언가에 열중해 쌓아놓은 눈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아 다시 쓸어야 할 판이다. “너희 여기서 뭐하는 거야?” 놀이에 열중하던 아이들이 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더니 저희들이 한 짓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움찔하며 대답을 못 한다. 할머니 집에 왔다 쌓인 눈을 본 아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저희들의 놀이를 즐기던 것이다. 놀 줄 아는 아이들의 예술 행위는 담벼락 위로 오리 조각상들을 올려놓았고, 한겨울의 회색빛 골목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다. 출처 - 저자 2. 엄마의 시간이 자꾸만 깜박인다. 좀 전에 한 일은 기억나지 않고 오래전 일은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딸내미는 자꾸 소리가 커진다. 예쁘고 멋쟁이던 엄마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싸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가 늙어가네 싶어서. 그런 우리 엄마가 늙었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기운이 없어 힘들다 하고, 글씨를 쓰려고 해도 자꾸만 손이 떨려 글씨가 삐뚤어져 쓰기가 싫다고 한다. 자꾸 기억이 나지 않아 밖에 나가면 흉잡힌다고 나가는 일도 싫어하는 엄마가 집에 찾아온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걸 들으니 두 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려면 “이제 죽을 나이에 무슨 병원이야!” 하면서도 의사 앞에서는 소녀처럼 말한다.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네요, 고맙습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아이들이 만드는 눈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담벼락에 올려놓은 오리 조각상을 보면서는 감탄을 한다. “아이들 솜씨가 어째 저리 좋으냐! 정말 이쁘지 않냐! 애들이 진짜다!” 3. 열 살 꼬맹이들의 삶의 속도는 어떤 걸까? 지금을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의 삶은 현재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삶의 속도보다는 천천히 갔으면 싶다. 자꾸만 옛일이 생각나는 엄마의 삶의 속도는, 지금 이 시간에 옛일을 추억하는 만큼 좀 더 느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며칠 남지 않은 2022년, 내일을 걱정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의 속도는…. 서녘으로 넘어가는 해가 자연스럽게 살라고 하는 것 같지만….
2022-12-28 | hrights | 조회: 416 | 추천: 3
: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레토릭의 운명은? 홍미정 / 단국대학교 아시아 중동학부 □ 팔레스타인 국가란 신기루 이스라엘의 정치 일정에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협상가들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언급했을 때, 그것은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 시민권 요구를 선제적으로 침묵시키고 원천 봉쇄하기 위한 장애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서안과 가자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은 이스라엘 정치의 장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합리적으로 축출하는 활용도 높은 레토릭으로 활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스라엘 협상가들이 언급하는 서안과 가자 지역에 위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신기루다. 2022년 8월 30일, 하이파대학, 지리&인구학 교수 아르논 소퍼는 이스라엘군 라디오 방송에서 이스라엘이 소수 지배 민족으로 전락할 인구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서안과 가자 포함)에 전체 인구에 대한 유대인의 비율은 47% 이하다. 평균적으로 아랍인이 유대인보다 더 젊고 더 빠르게 증가한다. 이는 민주주의에 위협 요소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소퍼 교수는 서안과 가자를 유대 국가 이스라엘 영역에 위치시켰다. 사실, 미국이 중재한 1979년 3월 이스라엘/이집트 국경 획정 협정, 1994년 10월 이스라엘/요르단 국경 획정 협정은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와 서안을 이스라엘 영역으로 규정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은 명시하지 않았다. 결국, 이 협정들로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와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 권리를 승인하였다. 2021년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서안 정착촌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들은 총 9백 44만 4천 명이다. 이 가운데 유대인 6백 98만 2천 명(74%), 아랍인 1백 99만 명(21%), 기타 47만 2천 명(5%)이다. 2021년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서안과 가자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은 총 5백 22만 명이다. 이 가운데 서안 거주 팔레스타인인 3백 12만 명, 가자 거주 팔레스타인인 2백 10만 명이다. 2022년 12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하여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UNOCHA)과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사작전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는 2020년 30명, 2021년 349명, 2022년 222명을 포함하여, 2008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18일까지 6,211명이다. 2022년 12월,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인들 사망자는 2020년 3명, 2021년 11명, 2022년 19명을 포함하여 2008년 1월 24일부터 2022년 11월 15일까지 282명이다. 위와 같이 팔레스타인 사망자와 이스라엘 사망자 수는 압도적으로 불균형하다. 이것은 1948년 5월 이스라엘 창설과 동시에 발발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75만 8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축출한 이후 계속되는 장기 지속적인 저강도 전쟁으로 진행되는 팔레스타인 인구 줄이기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유대 인구 증대 정책으로 전 세계로부터 유대 이민자들을 지속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 통계는 아래 표 [이스라엘 유대 이민자]와 같다. 2022년 12월,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로의 이민을 추진하는 유대기구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 1일~12월 1일까지 이스라엘은 유대기구와 이스라엘 알리야 통합부의 지원으로 러시아 출신: 37,364명, 우크라이나 출신: 14,680명 등 95개국 출신 유대 이민자들 7만 명을 수용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들의 장기 지속적이고 불균형적인 영토 및 인구 분쟁에 대하여 아랍국가들은 침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협력 관계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아랍, 이슬람의 대의는 없다. 2022년 12월 15일, 이스라엘 총리 지명자 베냐민 네타냐후는 사우디 소유 위성 채널 알 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목표는 2020년 체결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의 관계 정상화 협정을 확대하여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사우디 관계정상화 협정이 이스라엘과 아랍세계 사이에 전면적인 평화 구축에 비약적인 발전을 초래함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내를 변화시킬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2020년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수단을 미국의 테러 후원국 명단에서 빼기 위해서 수단을 대신해서 트럼프가 요구한 배상금을 지급함으로써 이스라엘/수단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등, 이스라엘/아랍국가들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에 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과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이끄는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출처 : reuter □ 누가 팔레스타인인들의 구심점이 될 것인가? : 파타와 마흐무드 압바스/하마스와 이스마일 하니야, 무함마드 다흘란 파타 의장 마흐무드 압바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UAE 관계 정상화 협정 추진에 반대하면서, 2020년 5월, 2020년 6월 두 차례 UAE의 코로나 의료지원을 거부하였다. 이에 대하여 2021년 1월 13일, 파타 중앙위원회 부의장 마흐무드 알룰은 “UAE의 의료지원은 이스라엘과의 정상화 합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달래고,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UAE로 도주한 무함마드 다흘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타 소속 무함마드 다흘란은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가자의 실권자였으나, 2007년 파타/하마스 내전(118명 사망)에서 하마스에게 패하여 가자로부터 축출당했다. 이후 다흘란은 서안에서 활동하던 중 자치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의 경쟁자가 되었고, 야세르 아라파트를 독극물로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아 2011년 파타로부터 축출되어 UAE로 도주한 상태에서 2016년 불출석 재판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17년 7월, 다흘란은 2007년 파타/하마스 내전에서 최대의 적이었던 하마스와 권력 공유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에 맞서 하마스와 한 편이 되었다. 이 권력 공유 협정에서 하마스는 가자의 보안 통제권을 행사하고 다흘란은 가자로 귀환하여 외교 관계를 담당하기로 약속하였다. 다흘란은 2020년 이스라엘/UAE 관계 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UAE 사이에 중요한 가교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을 비난하면서 UAE 코로나 의료지원을 거부했으나,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는 2020년 12월, 2021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UAE의 의료지원을 수용하였다. 2021년 1월 13일, 하마스 정치국 부의장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우리는 어떤 국가를 통해서든 인도적 지원을 받는 것을 환영하며, 어떤 지원도 정치적인 이유로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안보협력을 하고 있다.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핑계로 UAE의 의료 지원을 거부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다흘란은 팔레스타인 선거 출마를 강력히 원하며, 우리는 그의 출마를 개의치 않는다. 팔레스타인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다흘란의 인기와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추진되는 새로운 중동 판짜기에서 이슬람주의자 정당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의 관계 정상화에 대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유연한 입장에 선 것으로 보이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10월 13일 알제리에서 파타와 하마스가 화해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에서 파타(파타 중앙위원회 위원- 아잠 아흐마드)와 하마스(정치국장-이스마일 하니야)등 14개 파벌이 2007년 하마스/파타 내전 이후 15년 동안 계속된 불화를 종식 시키기 위하여 화해 협정, 알제 선언에 서명하고 팔레스타인 수반선거와 의회 선거를 2023년 10월 안에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 협정은 이전 파타/하마스 협정들과 마찬가지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전에도 이집트와 카타르가 중재하는 여러 차례의 파타/하마스 협상이 있었다. 2008년 사나 선언, 2012년 파타/하마스 도하 협정, 2014년 가자와 카이로 협정, 2017년, 2020년 카이로 협정 등 다양한 수준의 파타/하마스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파타와 하마스 사이의 불화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파타/하마스 협정의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수반&의회 선거를 회피하는 압바스 수반의 권력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9월/12월에 두 차례 걸쳐 실시된 라말라 소재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센터의 수반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인 69%/69%는 수반&의회 선거를 지지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 57%/63%는 수반&의회 선거가 가까운 장래에 실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상 후보 대결에서 마흐무드 압바스와 이스마일 하니야가 양자 대결한다면 압바스 지지 38%/36%, 하니야 지지 53%/54%로 대답했다. 마르완 바르구티와 이스마엘 하니야가 양자 대결한다면 바르구티(2002년 이후 이스라엘 감옥, 종신형)지지 65%/61%, 하니야지지 33%/34%로 대답했다. 다자 대결 구도에서 마흐무드 압바스가 출마하지 않는다면, 마르완 바르구티지지 41%/39%, 이스마엘 하니야지지 17%/17%, 무함마드 다흘란지지 5%/5%, 야히야 신와르지지 4%/4%, 무함마드 시타야지지 3%/3%다. 압바스 수반의 업무 수행에 대한 만족도는 26%/23%인 반면, 불만족도 71%/73%라고 대답했다. 압바스 수반에 대한 사임 요구는 서안에서 73%/73%이고 가자에서 77%/79%였다. 위의 수반 선거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로 볼 때, 팔레스타인 대중들은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 뿐만 아니라,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하니야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절대 다수 대중들은 압바스 수반의 사임 요구하며, 하니야는 종신형을 받고 20년 이상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있는 파타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상황이다. 결국, 마흐무드 압바스와 이스마일 하니야가 각각 파타와 하마스를 대표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합 구심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22년 9월/12월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 여론 조사는 다음과 같다. 모든 파벌이 참여한 가운데 의회 선거가 실시된다면, 34%/34%는 파타에 투표, 32%/34%는 하마스에 투표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공정한 선거가 실시된다면, 어느 파벌도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2022년 9월/12월 여론조사에서 2국가 해결안(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지가 37%/32%였으나, 64%/69% 이상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으로 인해 2국가 해법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단일 국가, 즉 2민족 1국가 해결안 지지가 30%/26%였으나, 67%/71%는 2민족 1국가 해결안을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팔레스타인인들 46%/48%는 자치정부 해체를 지지하였다. 86%/81%는 자치정부가 부패했다고 주장했고, 73%/69%는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부패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안보적, 경제적 여건 때문에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들 29%/30%가 이민을 원하고, 서안에서 23%/20%가 이민을 원한다. 팔레스타인인들 48%/72%는 자치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무장단체의 투쟁을 지지하였다. 127개 지역에서 성인 1,270명을 대면 인터뷰한 9월 여론조사와 120개 지역에서 성인 1,200명을 대면 인터뷰한 12월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3%에서 대체로 비슷하지만, 크게 다른 점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단체 지지가 24% 정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12월 여론조사는 72%가 라이온스 덴과 같은 무장단체 결성을 지지하였고, 79%는 이 무장단체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항복하는 것에 반대한다. 87%는 자치정부가 이 무장대원들을 체포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59%는 무장단체들이 서안에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12월 여론조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지지가 높아진 이유는 단기적으로 11월 1일 이스라엘의회 선거 결과 종교적 시온주의자당 등 극우파의 승리 및 카타르 월드컵에서 나타난 친팔레스타인 장면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명분과 점령에 저항할 권리 주장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장기적으로 격화되는 팔레스타인인 축출과 유대인 이주 정책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점령정책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능과 부패, 하마스의 부패 등 악화되는 정치, 경제, 사회 상황에 지쳐 팔레스타인인들이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 다수는 두 국가 해결안이든, 한 국가 해결안이든 정치적 해결안들을 성취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무장 투쟁과 자치정부 해체를 더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어느 정치인도, 파벌도 팔레스타인인 통합의 구심점을 창출하기 위한 핵심적인 내부 동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스라엘/아랍국가들의 관계 정상화 등 역내의 정치 변동과 함께 외부의 강력한 후원을 받는 파벌이나 후보자가 등장한다면, 그 파벌이나 후보자가 팔레스타인 정치에서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파 연합정부 2022년 11월 1일 이스라엘 의회 선거 결과 새로운 정부 구성권을 획득한 베냐민 네타냐후는 12월 15일 미국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주권이나 안보권이 없는 오직 제한된 자치권을 제안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치 일정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신기루를 제거하였다. 게다가 12월 21일 저녁 그는 연합정부 구성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면서, 극우파 종교적 시온주의자당에게 서안 전역에 위치한 불법적인 이스라엘 정착촌 전초기지를 합법화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제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파 연합정부는 복잡한 셈법에서 나온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레토릭 조차도 버리고, 이스라엘 정치 일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12월 21일 우파 리쿠드당 당수 베냐민 네타냐후는 120석 중 32석을 확보한 리쿠드당을 중심으로 14석을 확보한 극우파 종교적 시온주의자당, 11석을 확보한 초정통파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을 대표하는 샤스당, 7석을 획득한 초정통파 아쉬케나지 유대인을 대표하는 통합토라유대당과 함께 극우파 연합정부 구성 사실을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조그에게 통보하였다. 12월 22일 퇴임하는 총리 야이르 라피드는 “후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정부를 구성했다”라고 비난했다. 특히 이 연합정부에서 종교적 시온주의자당 소속의 극단주의 매파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내무부를 대체하는 국가안보부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이끄는 국가안보부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맞서 서안에 배치될 이스라엘 국경 경찰을 지휘하는 업무도 수행할 것이다. 그는 2022년 4월 20일, 유대교의 유월절과 이슬람교의 라마단이 겹치는 예민한 시기에 이스라엘 깃발을 든 극우파 이스라엘인 약 1천 명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외치며 예루살렘 구도시로 들어가려다가 다마스쿠스 게이트에서 이 행진을 저지하는 이스라엘 경찰과 충돌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충성하지 않는 이스라엘 시민권자 추방 등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또 2022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할 특징은 5석을 획득한 이슬람주의자 라암당이다. 2021년 1월, 라암당은 2020년 3월 선거 15석 획득하여 제3 정당의 지위를 얻었던 아랍 공동 명부에서 탈퇴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아랍 통합을 붕괴시켰다. 라암당 대표 만수르 압바스는 2022년 12월 7일 103 FM 라디오에서 네타냐후 연합정부가 제안한다면 기꺼이 우파 연합정부에 합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1년 12월 21일, 만수르는 이스라엘이 유대국가로 창설되었으며, 앞으로도 유대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가자를 통치하는 이슬람주의자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최근 아브라함 협정 등 변화되는 역내 정세의 변화에 발맞추는 이슬람주의자 라암당은 인종, 종교, 정치 이념의 경계를 넘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그 누구와도 협력 가능하다는 상당한 개방성 내지는 기회주의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파 이스라엘 정부는 이슬람주의자 라암당 및 아브라함 협정 체결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진 다흘란과 협력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 정책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와 경찰의 무장 공격 등 점령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비무장 투쟁 혹은 무장 투쟁은 확실한 외부 후원자가 없는 상태에서 뚜렷한 한계가 있으며,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에 직면할 것이다.  
2022-12-27 | hrights | 조회: 848 | 추천: 1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경기도지역화폐 카드. ⓒ경기도   2022년을 마무리 짓는 마당에 올해 지역화폐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뭔지 뽑아봤다.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지역화폐 정부 지원 논란’. 특히 하반기에는 주요 정치 이슈이기도 했다. 정부 지원 0원으로 시작된 지원 논란은 여야협의를 거쳐 그 규모가 상당히 회복되어 계묘년 새해를 맞이할 전망이다. 총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생각하면 내년 추경에서 추가 예산투입도 있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예상해 본다. 이미 지난 몇 년 간 되풀이된 패턴이다. 총선? 여기서 총선이 굳이 왜 튀어나오냐고 묻는다면, 지역화폐가 정치적 구호 또는 레토릭이 된지 한참 된 거 아니냐고 눙치려 한다.^^;; 포털 뉴스 검색에서 ‘지역화폐’를 검색하면 제목부터 정치권 정쟁의 화두로 매번 등장한다. 시흥화폐 시루를 처음 만들 때가 생각난다. 조례를 통과시켜야 하는데 시의회에서 막혀 상정도 못한 채 5개월을 묵혀 둬야 했다. 정치적 유불리 판단이 이유였다. 놀면 뭐하겠나. 그렇게 남은 시간 시민홍보에 더 박차를 가해 인지도를 올려놓았다. 어떻게 영차영차 조례를 통과시키고, 시행에 들어가자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은 그 덕분으로 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지역화폐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올 한해 중앙정치판에서 지역화폐는 뜨거운 감자였다. 언론부터 대결구도를 깔아놓았고 정치권이 작정하고 부딪쳤다. 지역화폐는 법인세 인하, 기초연금 부부수령 감액 폐지 등 최근 동시에 쟁점이 된 현안과 비교할 때 예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기 좋은 쟁점이다. 거의 모든 지자체의, 남녀노소 국민 대부분의 체감도가 큰 정책이니까. 지역화폐 지원 논쟁이 커지면서 주변에서 묻는다. 어떤 입장이 맞냐고.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자. 한쪽은 실효성 없는 퍼주기, 다른 한쪽은 맞춤형 경제 활성화 정책이라고 응수한다. 결론은 언론과 학자들에게 물어보자. 지난 2~3년간 나온 지역화폐 관련 언론보도와 연구 자료, 논문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참조를. 간단히 따져보면, 극심한 부의 서울·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에서만 돈이 도는 지역화폐는 경제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더 어려운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에게 실익이 돌아간다는 역내 균등발전 측면에서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실사구시의 관점과 특성을 외면하고 굳이 맞지도 않는 틀인 국가경제 차원에서 지역화폐를 분석하려는 일부의 시도는 역시 너무 정치적이었다. 그렇다면 타 지역이나 온라인 쇼핑몰, 대형마트에서도 못 쓰는 지역화폐를 더 쓰게 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는 인센티브(선할인, 캐시백 등)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시흥 지역화페 '시루'   시흥화폐 시루는 처음 설계할 때 평시 5%, 명절 등 특별기간에 최대 10% 선할인 인센티브를 부여키로 하고 조례에 그 내용을 담았다. 5% 정도의 인센티브가 불편한 돈인 지역화폐를 사용하면서 가계에도 보탬이 되고 지역 경제도 살리는 소비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적정한 수준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만일 10% 인센티브를 계속 유지한다면? 더 줄수록 좋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10% 인센티브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특별히 추진한 예산투입이었다. 발행액이 100억 원이라면 세금으로 10억 원이 나가야 한다. 물론 나가는 세금보다 지역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더 높을 수 있지만 부작용도 분명 있다. 세세하게는 부정유통을 억제하기 힘들다. 부정유통의 나쁜 욕망을 잠재우기에 10% 차익 실현이라는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체로 부정유통은 혼자가 아닌 결탁이 필요하다. 차익을 나눠야 하므로 적절한 인센티브는 부정유통을 근절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현실적인 난관은 재정 여력이다. 모든 지자체가 정부 지원만 바라보며 언제까지 10%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재정여력이 되고 내수 경기 부양이 반드시 필요한 지자체라면 모를까. 결국 지역화폐 인센티브 정책은 지자체의 특성과 사정에 맞게 적정한 규모를 선택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적절한 범위를 넘어선 인센티브는 자칫 지역화폐의 목적을 잊게 만든다. 「지역사랑상품권법」 제1조(목적)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보다 ‘지역공동체 강화’가 먼저 나온다. 하지만 높은 인센티브만 바라보며 혜택 많은 카드 정도로 인식이 굳어지게 되면 지역화폐는 지역 경제공동체 강화에 복무하기보다 그저 소비 쿠폰 정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지역화폐가 정치의 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호명되는 상황은 그래서 불안하다. 중요 민생 이슈임은 분명하지만 정쟁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휘둘리다 방향을 잃은 채 내팽개쳐지진 않을까 싶은 심경이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골목상권 자영업은 대책 없이 스러져 가고 있다. 지역화폐라는 도구로 목 좀 축이게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공감하지 않을 정치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그 도구를 정쟁의 도구로만 다뤄주지 말길. 아, 지역화폐는 특정 정치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 많이 알려졌지만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사실도 사족처럼 덧붙인다.    
2022-12-14 | hrights | 조회: 471 | 추천: 1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2022년 6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아프리카박물관(the Africa Museum)’에 갔다. 브뤼셀 근교 테르뷰렌에 있는 이곳으로 가려면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30분쯤 가야 한다. 트램이 시가지를 벗어나면 좁은 길 양옆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역에서 내려 숲길을 따라 테르뷰렌 공원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웅장한 건물의 박물관이 나온다. 이 박물관의 원래 이름은 ‘왕립중앙아프리카박물관(the Royal Museum for Central Africa)’이었다. 2018년 재개관하면서 ‘아프리카박물관’이 되었다. 2013년 문을 닫기 직전 처음 방문했을 때, 노골적으로 식민지 문명화 사명을 찬양하는 조각상들과 낡은 디오라마 전시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5년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마지막 남은 식민박물관’이라는 오명을 벗고, ‘탈식민화’를 시도한 결과가 현재의 아프리카박물관이다. The Africa Museum ⓒ 염운옥 파리의 케브랑리미술관부터 런던 영국박물관과 옥스퍼드 피트리버스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는 아프리카 유물을 수집·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많다. 유럽이 수집 대상으로 삼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보여주는 곳들이다. 아프리카만을 대상으로 하는 박물관은 네덜란드에도 스위스에도 있다. 네덜란드 니메헨 아프리카박물관과 스위스 취리히 리트베리트 박물관이 그곳이다. ​​테르뷰렌의 아프리카박물관은 그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이다. 굳이 벨기에까지 가서 아프리카박물관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 박물관이 식민주의를 제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었고, 지금은 탈식민주의 실천의 곤경을 말해주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박물관이 자리 잡은 테르뷰렌 공원은 브라반트 공작의 사냥터였다. 귀족의 사유지에서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소유지가 되었던 곳이 이제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내려앉은 구름 탓에 한결 부드러워진 초여름 햇살 아래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즐기고, 달리기하는 시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게 빛났고, 나무 옆을 지날 때마다 풍겨오는 짙은 숲 냄새는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식민박물관이 어울리기나 하단 말인가? 하지만 멀리 보이는 박물관 건물을 향해 걸어가다가 만난 어떤 표지판은 이곳이 식민주의의 현장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중앙아프리카 콩고를 개인 식민지로 만들고 고무 채취를 위한 노예노동을 강제한 것으로 악명높은 레오폴드 2세는 1897년 브뤼셀 세계박람회 개최 용도로 현재의 아프리카박물관 건물을 건립했다. 레오폴드 2세는 파리의 쁘띠팔레(Petit Palais)를 설계한 건축가 샤를 지로(Charles Girault)에게 설계를 맡겼다. 파사드에는 그리스 신전처럼 열주를 세웠고, 중앙에는 로툰다가 있는 메인 홀을 배치한 왕궁식 건축물이다. 건물 전경이 반사되는 연못과 분수를 둘러싸고는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진다. 레오폴드 2세는 세계박람회를 위해 신축 전시장을 왕궁처럼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267명의 콩고인을 데려와 전시했다. 당시 유행하던 인간동물원(human zoo)의 벨기에 버전을 실현한 것이다. 인간전시에 동원된 콩고인들 중 7명이 이듬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 인간전시를 고발하고 7인의 사망자를 추념하기 위해 인간동물원이 있었던 자리에 명판을 세운 것은 2018년 재개관 때였다. 명판에는 사망자 7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1897 Human Zoos in Tervuren Commemoration of the Congolese victims ⓒ염운옥 1897 Human Zoos in Tervuren Commemoration of the Congolese victims (부분확대) ⓒ 염운옥 1910년 레오폴드 2세가 사망한 후 왕령 식민지는 벨기에령 콩고(the Belgian Kongo)가 되었고, 박람회장으로 썼던 이 건물은 식민지박물관이 되었다. 왕립중앙아프리카박물관 시절의 전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2013년 방문했을 때 노골적인 식민주의 서사를 그대로 내보이는 박물관이 21세기에도 존재하는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툰다 홀에는 콩고인을 원시인으로 묘사하는 동상과 아프리카인을 힘으로 제압하는 백인 동상이 있었고, 벽면에는 벨기에의 자애로운 문명화 사명으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부조가 가득했다. 상설전시도 아프리카 동물 박제와 디오라마가 지겹도록 이어지면서, 아프리카인은 없이 아프리카 유물만 전시되었고, 이로써 아프리카 역사는 ‘자연사’와 동일시되었다. ‘역사 없는 대륙 아프리카’라는 관념을 진심으로 구현한 전시 앞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악명높은 사례가 레오퍼드맨(Leopard Men)이었다. 표범 가죽을 쓰고 표범 발톱을 양손에 단 레오퍼드맨이 잠들어 있는 남자를 공격하는 모습의 조각상이다. 레오퍼드맨은 콩고 식민지인을 표범으로 재현함으로써 ‘흑인’을 ‘동물화’, ‘비인간화’한다. The Leopard Men, 2013 ⓒ 염운옥 레오퍼드맨은 마블의 영화 〈블랙 팬서〉에 영감을 준 콩고의 남성 비밀결사의 주인공이다. ‘아뇨토(Anioto)’, ‘아뇨토 레오퍼드맨’이라고도 불리는 이 결사는 표범의 신비로운 힘과 상징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표범은 부족장의 권력과 마술의 힘을 상징했다. 전통적인 부족장지배 관념 속에서 부족장은 자신의 공동체를 보살피는 존재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적이나 같은 공동체 성원을 해칠 수 있는 오컬트적 권력을 소유한 자로 여겨졌다. 1910년대에서 1930년대 벨기에 식민지 시절 콩고에서 식민당국은 표범의 공격을 가장한 콩고인의 저항에 시달렸다. 표범의 움직임을 흉내 내 시신의 사지를 절단하고, 시신에 일부러 표범 발톱 자국을 남겼다. 시신의 머리나 팔을 없앰으로써 신원 확인을 불가능하게 훼손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야만의 관습이 아니라 지역주민을 장악하려는 비밀결사의 힘의 행사인 동시에 벨기에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으로 정치적 기능을 갖는 것이었다. 레오퍼드맨은 벨기에 제국의 종주권 팽창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확장하려는 남성 비밀결사의 투쟁 방식이었고, 벨기에는 동물적 폭력을 자행하는 식민지 야만인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조장하는데 활용했던 것이다. 2018년 12월 8일 재개관한 아프리카박물관의 전시는 얼마나 변했을까? 박물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리노베이션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탈식민화’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주 건물과 떨어진 곳에 출입구 건물을 따로 마련하고 박물관과 지하를 통해 연결되도록 했다. 상설전시는 전면 개편했다. 벨기에 연방 정부가 부담한 리노베이션 비용은 약 6천6백만 유로에 달했다. 탈식민화를 표방하면서 박물관 측은 자문기구 콤라프(Comité de Concertation Musée Royal de L’Afrique Centrale)를 구성했다. 박물관 큐레이터들과 벨기에 거주 콩고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가 참여한 콤라프는 탈식민화가 무엇인가를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2017년 협의는 결렬되고, 콩고인 디아스포라 참여자들은 침묵 속에 퇴장하고 말았다. 박물관 측은 노골적인 식민지 미화 서사를 중화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벨기에 식민지 역사를 조망하는 것으로 탈식민화를 이해했던 반면, 콩고인 커뮤니티는 식민지 학살과 유물 반환 문제를 거론했고, ‘반성없이 탈식민화 없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콤라프에 참여했던 콩고인 인사들이 개관식 행사에서 참여하긴 했으나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고, 더 급진적인 콩고인 활동가들은 항의하는 의미로 앞서 언급한 인간전시 희생자 추념 명판 앞에서 따로 기념식을 거행했다. The Africa Museum New Entrance Building ⓒ 염운옥 지하 출입구로 들어가 화이트 큐브 형태의 긴 연결통로를 지나면 처음 만나는 공간에 과거 로툰다 홀에 있던 낯뜨거운 동상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악명높은 레어퍼드맨도 여기로 옮겨졌다. 로툰다 홀에 있던 문제의 부조는 천으로 가려놓았다. 부조는 정면에서 보면 천가리개에 가려지지만 측면에서 보면 그대로 다 보인다. 가려진 부조는 ‘식민주의의 신전’이었던 이 박물관을 ‘탈식민화’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시도였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무언가를 가리는 방식으로 ‘반성’과 ‘성찰’을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상설전시에서 콩고와 아프리카의 현재를 과거와 함께 전시한다는 원칙을 세워 따르고 있고, 악기, 무기, 가면, 의례용품 같은 과거 유물을 맥락 없이 유리 케이스에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용도와 의미를 현대 콩고인이 설명하는 내레이션 영상을 함께 배치한 것, 관객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시낭송 퍼포먼스가 열리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박물관이 내세운 탈식민화를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탈식민화는 ‘가리기’와 ‘균형 잡기’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Sculptures at the Introduction Gallery ⓒ 염운옥 Sculptures at the main rotunda hall ⓒ 염운옥 Birth, Rituals and Ceremonies Gallery ⓒ 염운옥 1) Vicky van Bockhaven, “Leopard-men of the Congo in Literature and Popular Imagination,”Tydskrif Vir Letterunde 46.1(2009), p. 91. 2)Jeremy Cyrier, “Putting a Paw on Power: Anioto Leopard Men of the Eastern Uplands, Belgian Congo, 1911-1936,” Ufahamu: A Journal of African Studies 28.2-3(2000), p. 75. 3)Hugo DeBlock, “The Africa Museum of Tervuren, Belgium: the Reopening of ‘the Last Colonial Museum in the World’: Issues on Decolonization and Repatriation,” Museum & Society 17.2(2019), pp. 272-273.
2022-12-07 | hrights | 조회: 671 | 추천: 3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누가 누구의 이름을 지운단 말인가? 누가 그들의 이름을 지우고자 하는가? 누가 그들의 안타까운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법의 딱지도 모자라 패륜의 딱지를 붙이는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깡그리 지운 채 위선의 분향 나들이에 나선 대통령이란 자의 잔인무도함이야말로 위법한 패륜임을 과연 모른단 말인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황당한 정치술을 믿고 따르는 정치집단과 언론 권력의 패거리야말로 위법에 패륜을 더하는 자들임을 과연 모른단 말인가? <출처 : 시사주간> 정치적인 권력을 움켜쥐는 짓에 온통 사로잡힌 자들, 그 흉악무도한 손으로 선량한 그들의 안타까운 이름을 지운다. 증거인멸, 위선적인 분향, 모든 국민이 추도하는 장소에 황망하게 희생당한 그들 아름답고 꽃다운 청춘들의 이름들을 지웠다. 아울러 분향 추모의 검은 리본에서 추모를 지웠다. 그리하여 어리석게도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고자 하는 자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이 기어코 범죄임을 드러낸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은 아름다운 청춘의 이름에는 그/녀의 두 눈빛이 형형하게 새겨져 있다. 익명에는 눈빛이 지워지고 없다. 살아있을 때의 생기발랄한 눈빛이 지워지고 만다. 잊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음으로써 죽은 자의 삶은 산 자가 책임진다. 죽은 자들의 이름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 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 한 사람 한 사람 그 이름을 애써 밝히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이 희생자들의 삶을 대신 살고자 하는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다. 이를 짐짓 거부하고 무시하면서 재빠른 망각을 획책하는 자들은 공동체의 세상을 함께 살아갈 권리가 없는 자들이다. 참사를 예방해야 할 자들,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무지와 무능, 나태함과 무책임함, 무엇보다 유일무이한 생명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그 권력의 잔인함에 의한 아집과 독선으로 아직 너무나도 생생한 저 목숨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지우기에 동분서주, 무작정 바쁠 뿐이다. 가장 강인한 흔적, 결단코 지워질 수 없기에 심지어 흔적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눈을 부릅뜬 흔적인 이름들을 맨 먼저 지웠다. 이는 참사에 참사를 뒤덮는 이중 살인이다. 누군가의 이름은 그의 존재가 그 무엇, 그 누구로도 대신할 수 없음을 밝힌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엄마 몸속의 태아에게 일찍이 태명을 붙여 부르는 까닭은 아무 탈 없이 태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거니와, 그 존재의 유일무이함의 신비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름에는 부모의 마치 못다 해 안타까운 양 무한한 사랑이 한껏 쟁여져 빛나고 있음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윤석열, 그의 은덕을 입은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이상민이 자리를 만들어 굳이 앉혀놓은 프락치 의혹의 경찰국장 노순호, 경찰청장 윤희근, 서울경찰청장 김광호 등은 자신들의 이름들만이 빛을 잃고 더럽혀지는 일을 극구 막고자 저 희생자들의 고귀한 이름들을 아예 지우고자 노심초사 안절부절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 속에 간직한 서로의 존재를 불러올리는 것이다. 비명의 외마디가 울려 퍼졌을 그때, 이태원 그 잔인한 골목은 자신의 이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하지만, 그 절박한 마지막 음성으로 ‘엄마!’, ‘어머니!’라는 영원한 이름을 불렀다. 그랬으리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어머니, 어머니는 혼절의 비명으로 딸의 이름,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그 부르는 이름이 허공으로 날리고 마는 처절함에도 부르고 또 부른다. 그리하여 기어이 더는 직접 부를 수 없는 그들의 이름이 애써 살아남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 깊숙이 뚜렷이 새겨져, 매 순간 에밀레종 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저 잔혹한 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자들의 이름은 아예 이름이 아니라고, 불러주는 순간 귀신으로 되살아나 자신들의 잔인함을 폭로하여 불면에 시달리게 할 뿐이라고, 대통령실이니 행정안전부 장관실이니, 법무부 장관실이니, 경찰청장실이니 하는 밀실에서, 맨 먼저 그 이름들을 지워버려야 해, 국민의 입에서 그 이름들이 발설되도록 해서는 안 돼, 국민의 귀에 그 이름들이 들리도록 해서는 안 돼, 국민의 눈에 그 이름들이 새겨지도록 해서는 안 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재빠르게 속닥거렸을 것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출처 : 윈도우포럼>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고 읊었다. 살아남은 우리는 황망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이름을 뚜렷이 불러줌으로써 그들의 존재의 빛깔과 그들 삶의 향기를 끝내 기억하고 추념할 것이다. 그렇다면, 희생자들의 이름을 지워버리려는 자들의 이름, 빛깔이나 향기는커녕 칙칙한 악취를 풍기는 그자들의 이름은 아예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아름다운 꽃으로 살아있어야 할 희생자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려면 그자들의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름을 지우고자 하는 저자들의 잔인함을 비롯한 무지와 무능, 아집과 독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잊지 않고 책임지게 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저자들이 지우고자 한 희생자들의 이름들이 오롯이 빛날 것이고, 그 이름들을 죽어라 안타까워하는 우리들의 이름이 살아 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10.29 이태원 참사 넋들과 유가족들의 참혹한 심정을 대신해 불세출의 민족 시인인 김소월의 시 <초혼>을 삼가 올린다. <출처 : 경북매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2022-11-30 | hrights | 조회: 498 | 추천: 3
윤요왕 /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춘천시 퇴계동주민자치회가 지난 21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국 320개 주민자치회가 신청했고 60개 우수사례 선정, 그중 최고 영예의 대상을 받은 것이다. 본선에 오른 지역의 사례발표를 듣고 60여개 지역의 홍보부스를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전국에서 주민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발표에 홍보부스에 보이지는 않는 주민들의 애씀과 갈등, 울고 웃었을 민초들의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획기적인 아이템이 아니라 하더라도 과정이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못하더라도 ‘주민자치’란 말에 흡족하게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과 방향에서 주민자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출처 : 작성자 우리센터에서 지원하고 함께하는 춘천시 퇴계동 주민자치회도 그렇다. 대상을 받았다고 주민자치를 완전히 실현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 부족함도 많고 갈등도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렇다고 이를 잘못이라고, 아니다라고 치부하면 안된다.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고 숙의하고 결정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결사체가 아닌 일반 주민들에게 있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럼에도 각자의 시간과 에너지와 발걸음을 내어 마을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수상발표가 나고 감격과 애씀의 눈물을 흘리는 자치위원분들의 손을 잡으며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퇴계동 주민자치회의 대표 사례인 ‘새삶스런 벤치’ 사업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누구하나 무엇하나 빠졌더라면 안되었을 협력,협치의 대표적 사례였음을 느낀다. 출처 : 작성자 춘천사회혁신센터가 이 사업 아이템을 기획하지 않았더라면, 또 마을자치지원센터에 주민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우리 마을자치지원센터에서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에 사업제안과 홍보를 안했더라면..퇴계동 동장님(현 교육도시과장)이 주민자치회와 자생단체들에게 적극 독려하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퇴계동주민자치회가, 퇴계동통장협의회, 자생단체들이 함께하지 않았더라면..퇴계동주민들이 그 더운날 냄새나고 지저분한 배달용기와 병뚜껑을 그리 열심히 모으지 않았더라면..퇴계동 주무관이 또 사회혁신센터 담당 실무자들이, 마자센터 팀장과 마을지원관들이 그 현장에서 수거하고 옮기고 깨끗하게 닦지 않았더라면..분쇄하고 압축하고 가구로 제작하는 선도적인 업체가 없었더라면..   어찌 생각해보면 그 시작과 과정과 끝 그 어딘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손과 발과 지혜와 마음을 함께 모으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이 결과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상을 받은 것 보다 더 주목해야하는 건 이 많은 사람들이 협력, 협치했다는 것이다. 웃으며 서로 격려하며 늘 화기애애하기만 했겠는가. 몇 개월 안되는 짧은 시간에 이루말할 수 없는 웃픈 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모두가 포기하지 않았고 감당해 냈음에 상을 주고 싶다. 누군가 ‘협치가 잘 되면 자치로 나아간다’고 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도 있다. 여러 가지 힘든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저기서 한숨섞인 소리가 들리고 울분의 큰 소리들이 나온다. 늘 이야기하고 다짐한다. 자치는 민원이 아니다. 오늘 바로 내 발걸음을 옮기고 손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실천적인 땀방울을 흘려야하는 것이다. 또, 느끼고 깨닫는다. 작고 약한 힘들이 모여 협력, 협치하고 자치시대를 열어야 진정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행복한 마을을, 도시를 만들 수 있음을. 춘천에서 강원도에서 전국에서 이처럼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민자치 시대’를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주민자치회 주민들과 관계공무원,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22-11-23 | hrights | 조회: 492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