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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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윤 / 경찰관 언어적 징후가 답변 내용 안에서 거짓말을 찾기 위한 단서라면, 준언어적(paralinguistic) 징후는 말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어조, 음성, 시간 등과 관련된 단서다. 정치인 등이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중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잘 나타난다. (1) 늦은 답변 가까운 과거의 구체적 사실에 대한 질문을 받은 진실한 사람은 질문 직후 바로 대답을 하겠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은 질문과 대답 사이에 상당한 시간 지연이 있을 것이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전에 답변한 내용과 모순되는 것은 없는지, 생략이나 회피를 해야할 지 그 시간 동안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의견이나 오래전 일을 묻는 질문에는 오히려 시간을 두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기억을 떠올리는 노력을 하는 사람을 더 신뢰할 수 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답변이 늦어지면 위와 같은 이유로 의심받을 것을 알기에 침묵의 시간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질문과 대답 사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①“음... 어...”와 같은 의미없는 소리를 내거나, ②상대의 질문을 동일하게 반복해서 말하거나 ③오히려 상대에게 반문하여 시간을 버는 전략을 사용한다. 상대의 질문을 반복하거나 반문하는 것은 인지적 부담이 거의 없으면서도 답변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어서 답변하기 곤란한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다. (2) 답변 길이 잘못이 없는 사람은 잘못이 있는 사람보다 질문에 더 길게 대답한다. 결백한 사람은 그의 생각이나 기억에 대해 완전히 설명하길 원하고, 자신에게 불리해 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다. 반면 내면적 감정이나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 짧은 대답은 사건의 범인과 같이 잘못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3) 대답 일관성 진실한 대답은 논리적이고, 생각과 기억이 일정한 흐름과 맥락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숨기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의 대답은 흐름이 일정치 않고, 계속 주제와 방향을 바꾸며 일관성 없이 흘러간다. 원래 말하던 흐름으로 계속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 성량 변화 리드테크닉에서는 피면담자의 성량 증가가 답변의 거짓 여부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고 한다. 다만 특정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성량이 평소의 습관적인 정도보다 갑자기 감소하는 것은 자신감이나 확신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뭔가 숨기고 있을 가능성을 높인다고 한다. (5) 속도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것 역시 거짓 여부와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실제 기억이 되살아날 때 답변 중 감정이입이 일어나면서 속도는 빨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진다면 늦은 답변과 같이 새로운 사실을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는 중이거나, 답변 내용에 자신감이 결여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6) 지우기 행동 사람들은 진실 아닌 말을 한 직후에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거짓임을 지우는 표시를 하게 된다. 지우기 행동에는 ①소리내어 웃기(미소 아님), ②목청 가다듬기(음...음...), ③헛기침(콜록 콜록) 등이 있다. 답변을 마친 직후(3초 이내) 위와 같은 지우기 행동을 하면 앞의 진술이 거짓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TV를 보며 위 징후들을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예전에 이 내용을 수사관들에게 강의하면서 YTN ‘돌발영상’을 예시로 보여주며 찾아보라 했다. 국회에서 기자들이 따라가며 묻는 즉석 질문에 반응하는 정치인 모습에서 위 징후들이 잘 나타난다. 정치인 기자회견 때는 미리 준비되지 않은 즉문즉답 방식의 생방송을 해야 국민이 그 사람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24-05-21 | hrights | 조회: 284 | 추천: 4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증죄는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기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할 때 성립한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려는 국가의 사법기능을 방해하는 범죄로서 매우 중한 죄에 해당한다. 이런 단순위증죄 보다 더 중하게 처벌되는 죄가 있다. 바로 모해위증죄이다. 이 죄는 피고인을 형사처벌 받게 하려는 모해목적으로 위증하는 경우에 성립하는데, 단순위증죄 보다 두 배 중하게 처벌된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허위의 내용을 진술하는 경우 대부분 모해위증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모해목적으로 위증하는 사람을 사주하는 사람은 이 죄의 교사범으로 처벌된다. 그런데 만약 뒤에 숨어서 모해위증을 교사하는 사람이 검사라면 기함(氣陷)할 일이 아닌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범죄인을 수사ㆍ기소할 책임을 갖고 있다. 검사는 피의자ㆍ피고인의 적이 아니기 때문에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찾아내어 신중하고 공정하게 판단함으로써 무고한 시민이 억울하게 유죄 판결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검사가 특정인을 표적 수사하고 유죄로 만들기 위해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조작한다면 이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중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최근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검찰에 의한 모해위증교사가 있었다는 의혹을 폭로하여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수원지검이 자신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방용철 전 부회장 등을 검사조사실에 모아 놓고 여러 차례 연어회, 요리, 술을 곁들인 식사자리를 열어주고 진술을 맞추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실제 술자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수원지검과 이화영 측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여론은 검사조사실에서 피의자들이 술을 마셨다는 자극적인 내용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 사건의 심각성은 피의자들이 실제 검찰청에서 술을 마셨는지 여부에 있지 않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다 보면 식사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설렁탕 등을 시켜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때문에 거기에 술 한잔이 곁들여졌다고 해서 특별히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검사실에서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는 피의자들에게 외부와의 통화, 가족과의 면담 등 다양한 편의가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비밀 아닌가. 이 사건의 심각성은 이화영의 주장에 드러난 김성태의 진술에 있다. 이화영의 전언에 따르면 김성태는 검찰 수사의 목적이 이재명을 감옥에 보내는 것에 있기 때문에 모두가 입을 맞추어 수사에 협조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검찰의 선처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이화영을 회유했다고 한다. 함께 입을 맞추어 이재명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나머지는 빠져나가자는 취지인 것이다. 거기에 검사의 소개로 고위직 검사 출신 변호사가 이화영을 찾아와 선처를 미끼로 이재명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회유하였다는 사실도 추가로 폭로되었다. 만약 이화영의 폭로 진술이 사실이라면 수원지검이 공범들을 한 자리에 모아 진술을 맞추면서 사건을 조작하도록 자리를 깔아준 셈이 된다. 사안의 진위 여부에 따라서는 명백히 모해위증교사와 사건조작에 해당할 수 있다. 현재 수원지검이 검사조사실의 회유 목적 술파티 의혹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사건의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언론보도를 보면 일부 법률전문가들, 법조 출입 기자들, 심지어 현직 검사도 이화영 측의 술파티 주장에 개연성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기도 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현실에서는 검사가 허위진술을 교사하며 사건을 조작한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한다. 특히 물증 확보가 쉽지 않고 사건관계인의 법정 진술이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 사건들이 타깃이다. 대표적으로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을 들 수 있다. 지난 2010년 한 전 총리는 중소 건설회사 한신공영의 대표 한만호로부터 9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당시 한만호는 회사부도에 대한 형사책임이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였다. 검찰의 소환조사에서 한만호는 자신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으로 제공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1심 법정에서는 이를 전면 번복하여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정치자금 제공 사실은 부인하였다. 이에 1심은 한만호가 불법적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한만호가 법정에서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검사실에서는 검찰의 협조를 받아 부도난 회사를 되찾겠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거짓자백한 것이라고 의심되기 때문에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2심은 변호인측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만호에 대해서 직접 증인신문을 하지 않은 채 – 따라서 2심에는 필요한 증거조사와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인정된다 – 검사 작성 조서에 기재된 한만호의 자백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진술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대법원도 2심의 판결을 수용하여 결국 한 전 총리에게는 최종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런데 수사단계에서 검사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만호를 73차례나 검찰청에 불러 조사하였는데 실제 작성된 조서는 5회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68차례 소환조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한만호는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였던 것일까?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한만호가 옥중에서 남긴 비망록에서 대강의 사건 경과를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전문을 입수해 보도한 한만호의 비망록에 따르면, 한만호는 자신이 다른 죄로 추가 기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사업의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사의 약속 때문에 거짓진술을 했다면서 자신을 검찰의 ‘개’로 표현했고, 또한 검찰이 처음 약속과는 달리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한 전 총리를 떨어뜨리기 위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고 서울시장 선거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보면서 진술번복을 결심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한만호는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을 때 “실수 없이 잘하면 칭찬해주고 저녁(식사). 그 능멸, 모멸감을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한만호가 소환조사를 받았던 대부분의 시간이 검사에 의한 회유와 협박, 진술 맞추기, 편의 제공 등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검사에 의한 모해위증교사 및 사건조작이 있었음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종 대법원 판결에 의해 한명숙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었다고 하여 검찰수사에 문제가 없었다거나 법원의 판결이 옳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명숙에 대한 유죄를 확정한 양승태 대법원은 당시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 문제로 박근혜 정부와 모종의 사법거래를 하고 있었음이 후일 드러났고 따라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에서도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개입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의 눈에는 삶이 파탄 난 한 기업인을 검찰이 회유ㆍ협박하여 모해위증을 하도록 함으로써 사건을 조작하고 유력 야당 정치인을 억울하게 감옥에 보낸 사건으로 명확하게 읽힌다. 이런 검찰의 악의적인 탈법수사를 대법원이 고의든 실수든 바로 잡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법원도 공범의 죄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허위진술을 사주함으로써 사건을 조작하면 그 누구든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권한과 영향력,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 현재의 거대권력 검찰이다. 이런 점에서 이화영을 회유하여 위증을 끌어내기 위한 수원지검의 진술조작모의 술파티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사건으로 받아 들여진다. 검찰에 의한 이런 사건조작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가. 첫째, 재소자 관리를 검찰 및 법무부의 영향력에서 독립 시켜야 한다. 회사부도로 유죄를 선고 받은 한만호는 원래 통영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런데 통영 교도소에 간지 21일 만에 갑자기 서울구치소로 이감되었고, 한 달 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출정을 나가 조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검찰 특수부에 의한 사건조작 의혹의 시작이었다. 교정본부가 법무부에 속해 있고 법무부가 검사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한 재소자를 통한 사건조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교정청을 설립하여 교정본부를 법무부로부터 독립시켜 구치소ㆍ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의 관리에 검찰의 입김이 미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독립된 교정청이 설립되기 전이라도 구치소ㆍ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는 즉시 중지되어야 한다. 현재 경찰을 비롯한 다른 수사기관은 재소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 경우 교정기관에 출장수사를 하고 있다. 반면 검찰만 재소자를 검찰청으로 소환하여 조사하고 있다. 검찰의 권위적이고 오만한 수사관행이다. 검찰청 소환조사는 법적으로도 근거가 없다. 구속되어 있는 재소자가 검찰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경우 호송을 위해 동원되는 교정 인력의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검사실에서 회유ㆍ협박을 통한 진술조작과 사건조작, 불법적인 편의제공이 있어도 외부에서 이를 감시ㆍ예방할 방법이 없다. 검찰의 소환조사 관행은 즉시 금지되어야 한다. 셋째,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검사에게서 수사권을 분리하여 기소업무만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면 검찰이 범죄의 실체가 있어서 수사ㆍ기소한 것인지 아니면 실체가 없는데 수사단계에서 사건을 조작하여 가짜 시나리오에 기초해 기소를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외부에서는 검찰 수사와 기소의 구체적인 경과와 내부 정보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기소가 되면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검찰은 항상 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서 판사들을 비난하고 빠져나간다. 청부 수사ㆍ기소를 한 검사는 승진으로 보답받고 - 예컨대 2023년 9월에는 고발사주 당사자 의혹을 받는 손준성 검사가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 억울한 피해자에게는 악전고투 끝에 상처뿐인 승리가 남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항상 검찰의 몫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고 있는 한 모든 시민, 모든 단체와 기관은 언제든지 검사들의 권한 남용과 거짓된 혀에 놀아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서로 분리되어 감시ㆍ견제할 때 투명성이 확보되고 남용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검찰의 사건조작을 근본적으로 근절하는 방안은 수사기관ㆍ기소기관을 완전히 분리하는 데 있다. 제22대 국회가 수사ㆍ기소 분리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검찰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4-05-08 | hrights | 조회: 399 | 추천: 6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3년은 너무 길다.” 적중했다. 창당 한 달 남짓 만에 <조국혁신당>이 열둘의 국회 의석을 확보했다. 당 대표인 조국 씨는 부산 연설에서 대통령 윤석열 씨를 향해 “이제, 고마 치아라 마!”라고 호통을 쳤다. 이 사투리는 “이제, 그만 해라! 알겠나!”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다소 강하게 더욱 직설로 해석하면, ‘이제 그따위 대통령 짓은 그만하고 내려와라!’다. 그렇다면, 이 호통은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에 담긴 뜻을 아예 노골적으로 풀이해 제시한 게 된다. <조국혁신당>과 대표인 조국 씨의 정치 행위는 이번 총선에서 크게 뜻깊다기보다는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지 싶다. 다 알다시피 그는 검찰총장에서부터 대통령에 이르는 윤석열 씨의 권력에 의해 원한이 골수에 새겨질 정도로 더없는 수난을 당했다. 그런 그가 당을 만들어 대통령 임기 최대한 단축을 목표로 내걸었는데도 국민 대다수는 그것이 정치를 통한 복수라고 여기지 않고, 정당한 정치적 행위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다. 사진: 서울신문 조국 씨의 교수에서 낭인으로, 낭인에서 정치인으로 본격적인 변신을 했을 때, 그 변신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이루어졌다고 여겨진다.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 설정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그의 입에서는 문제 상황을 비켜 갈 수 있는 적절한 말들이 나왔다. 민주당과의 경쟁 구도가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해소하는 말들이었다.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비례 의석 확보의 경쟁에서 분명히 <더불어민주연합>과 크게 다툴 수밖에 없기에 <더불어민주당>과 현실적으로 선택적인 적대관계에 있음에도 그 적대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말들을 구사했다. 이른바 검찰 독재정권을 <더불어민주당>의 거대 함선이 나서서 파멸시키는 데 먼저 나서서 완전히 얼어붙은 윤석열 정권의 두껍고 단단한 얼음판을 깨면서 나가는 ‘쇄빙선’ 역할을 하겠다거나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연합해 펼치는 학익진의 전투에서 가장 선두에 선 ‘망치선’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제시한 것이다. 특히 총선과 같은 정치 투쟁에서는 흔히 현실의 정치 구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규정하는 ‘프레임 짜기’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격적으로 지속해서 내세운 ‘정권 심판’이 그 정확한 예다. 그리고 <조국혁신당>이 내세워 ‘지민비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이 내세운 “3년은 너무 길다”라거나 “쇄빙선” 내지는 “망치선”은 그 속뜻을 보면 크고 작은 정치 구조에 따른 ‘프레임 짜기’라고 할 수 있지만, 표현 그 자체로 보면 수사학적인 정치 언어의 개발이고 구사다. 중요한 사실은 <조국혁신당>이 우리네 정치에서도 수사학적인 정치 언어가 정확하게 효과를 내면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였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의원도 수사학적인 비유를 활용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정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적중했다는 그 효과에서 보자면, <조국혁신당>의 조국 당선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언어는 여러모로 강력한 기능을 발휘한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는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형사재판에서 한마디의 말이 피고인을 더욱 죽이기도 하고 구사일생으로 살려내기도 한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가치 배분의 기술(技術)이다. 그리고 그 기술은 기본적으로 언어 구사를 통해 실현된다. 법안을 제출하고 논쟁을 통해 정당화하거나 정해진 법률을 준수하거나 위반한 것을 따지고 비판하는 일은 모두 언어 행위다. 문제는 매사의 판단이 오로지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서만 결정되고 수용되는 게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지만, 좋은 점도 많다. 어떤 표현을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당사자들의 인격적인 품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는 말을 듣는 자의 주체적이고 나아가 자율적인 인격의 자발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럴수록 말하는 자의 말이 갖는 효력이 더욱 커진다. 어차피 말은 말을 듣는 자의 행위를 향한 것이고, 행위는 행위자의 자발성이 보장될 때 이행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조국 씨의 오랜 세월 교수 일을 해왔다는 사실이 그의 수사학적인 정치 언어의 구사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부수적이다. 정작 중요한 건 그가 개발해 구사한 정치 언어가 ‘할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국민의 심정에 정곡을 찔렀다는 사실, 그리고 그 내용을 듣는 순간에 바로 아무 노력 없이 이해하고 수용하게끔 수사학적으로 간명하게 처리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채해병 사건’에 대해 “이것은 좌파나 우파의 문제도 아니고, 진보나 보수의 문제도 아닙니다. 국민의 상식에 따른 문제입니다.”라는 표현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수사학을 활용한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수사학적인 측면이 강하다. 실제 정치적인 지형에서는 ‘채해병 사건’이 좌파와 우파 또는 진보와 보수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접근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이 이른바 ‘돌풍’을 일으켜 놀라운 소기의 성과를 거둔 데는 분명 조국이라는 인물의 여러 영역에서 역량이 주된 요인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중에서 특별히 돋보인 건 그의 수사학적인 정치 언어의 개발과 구사의 역량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하게 되면, 그의 정치적인 행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로서는 급진적이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인 그의 정치적인 발언과 행동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로 실제로 힘을 발휘할지 전체적으로 궁금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히 흥미를 갖는 대목은 그가 국회 활동을 수행할 때 과연 또 어떤 정치적인 수사학을 멋지게 구사할 것인가다. 바라건대, 그의 발언 방식이 우리네 정치판에서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켰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사족 삼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그런데도 <더불어민주연합>이 14석의 비례 의석을 얻어 <조국혁신당>의 12석을 능가한 결과를 보면서, 내심 ‘이야, 그 참 민주 진영의 유권자들이 대단한 집단적 균형감각을 갖추었구나.’ 하고서 생각했다는 점이다. 다들 그러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2024-04-30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3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가성비의 대명사였던 국밥 가격에 놀라면서도 고명으로 올라간 대파 가격을 생각하면 수긍하며 조용히 지갑을 닫게 됩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가계동향 상세분석에 따르면, 2023년 4/4분기 가계소득은 1.5% 증가 한 반면 오락·문화, 주거·수도·광열, 보건 등 분야의 소비지출은 5.1% 증가했습니다. 번 돈보다 쓸 돈이 많으니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 위축은 생활 소비가 집중되는 소상공인들을 생존의 기로에 서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충북도와 중소기업중앙회 충북지역본부의 지난해 하반기 지역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조사 결과 소상공인 59.7%가 2022년 대비 2023년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고 응답했으며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매출액이 59.4%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매출액은 낮을수록(3억 원 미만 62.8%, 3억~10억 원 미만 57.3%, 10억 원 이상 54.7%), 상시근로자 수가 적을수록(2명 이하 66.9%, 3~5명 65.4%, 6명 이상 34.3%) 올해 매출액의 감소를 예상하는 응답이 높았습니다. 무엇보다 응답자의 58.1%는 2024년 경기전망도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소비위축에 따른 소상공인의 위기는 고용위기, 소득악화, 다시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는 내수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불러옵니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취하는 조치가 재정정책이겠지요. 소상공인 골목경제 대상 재정정책 중에서 최근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책이 지역화폐로 일컬어지는 지역사랑상품권 일 것입니다. 지역화폐는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의 괴산사랑상품권이 최초입니다. 최근 지역화폐와 더불어 많이 호명되는 전통시장 상품권 온누리상품권은 2009년에 지역화폐보다 늦게 시작했습니다. 특정 정치인이 2010년대 중반 최초로 시작했다, 온누리상품권이 지역화폐보다 먼저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언제부터 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지역화폐의 도입 목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지역 내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아 지역에서 순환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지자지소(地資地消, 지역의 부는 지역에서 소비)에 입각해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는 돈이 지역화폐입니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의 역외유출률은 평균 40%를 넘습니다. 지역 외로 유출된 부는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서울·수도권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지역 내수 활성화에 집중하자는 정책이 지역화폐입니다. 두 번째는 ‘역내 유입된 소비가 보다 어려운 골목상권 소상공인에게 순환’되는 것입니다. 지역화폐가 백화점, 대형점포,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출 30억 이상 업체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역화폐가 불편한 돈인 이유이기도 하고, 이 불편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구매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코로나19 시기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서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소비 자체가 메말라가던 재난의 시기에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지급된 재난지원금 지역화폐는 온라인 쇼핑몰도 대형마트가 아닌 각 지역 골목상권에 단비처럼 내려왔습니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그동안 시행했던 수많은 재정정책 중 이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촉발시킨 정책이 있었을까요? 현 시기 지속적인 내수 침체를 타개할 방법으로 앞에 인용한 충북지역 소상공인들은 정책자금(예산규모 등) 지원 확대(50.9%), 인건비·임대료 지원 등 정부의 재정 투입을 통한 지원 확대(40.9%), 그리고 지역사랑상품권, 신용·체크카드 세액공제 확대 등 소비 촉진 지원책 확대(19.4%) 등의 순으로 답했습니다.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지역화폐는 소비 촉진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실물경제에서 풀리는 광의통화(유동성 현금)는 수 천조 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유통된 지역화폐는 약 22조 원이었습니다. 한 모금의 지역화폐가 중앙으로 몰리는 소비의 발걸음을 지역으로 돌리며 목마른 지역경제에 숨통을 열어줬음을 여러 실물지표와 현장의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경제적 효과를 넘어 지역화폐라는 도구로 지역과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시도도 늘고 있습니다. 사실 ‘지역사랑상품권법’ 제1장 목적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보다 ‘공동체 강화’가 먼저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역화폐 활용 연계 정책은 어쩌면 무궁무진합니다. 마치 우리 몸의 혈관을 타고 도는 혈액처럼 지역화폐는 경제·사회의 혈맥을 타고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역화폐 정책발행이라고 일컫습니다. 초기에는 각종 복지비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형태였습니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전남의 농민기본소득 등이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진화하여 최근에는 시민건강권 증진과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하루 1만 걸음을 걸으면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경기 시흥시·서울시, 지역화폐로 결제가 가능한 공공배달앱과 골목상권 전용 기프티콘앱, 지역특산물 쇼핑몰 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천시장에 큰불이 난 후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화폐를 사용 시 추가 특별할인을 한 것이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발행의 모범사례로 떠올랐습니다. 지역화폐는 이렇게 지역경제와 골목상권 활성화의 효과적인 정책일 뿐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지역사회 변화와 개선을 위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역화폐를 둘러싼 특히 정치적 쟁점들을 살펴보면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 그 전유물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으로만 점철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역화폐는 철저하게 민생의 관점에서 다뤄야 할 정책이 아닐까요? 바라건데, 수년 전 유럽연합이 영국 브릭스턴 등 6개 지역에서 지원했던 지역화폐 시범사업(Community Currencies in Action)보다 더 많은 성과와 실험을 계속하는 K-지역화폐가 정치 테이블에서 자칫 길을 잃어 황금알을 낳다 배가 갈라진 거위처럼 되지 않길 희망합니다. 
2024-04-23 | hrights | 조회: 413 | 추천: 3
이윤 / 경찰관 프로파일링을 다룬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FBI 행동분석팀 기드온이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The truth will set you free: 요한복음 8장 32절)라고 혼잣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본 후로 나는 간혹 잘못된 일을 해명 또는 수습해야 할 때 불리한 내용을 숨기거나 변명하고 싶은 유혹이 있어도 위 문장을 되뇌며 사건의 전모를 사실 그대로 드러내곤 했다. 행복은 자유에서 나오고, 자유는 진실에서 나온다. 정치의 계절이 왔다. 여러 매체에서 정치인들이 말을 늘어놓고 있다. 누구 말이 옳은지, 누굴 믿어야 하는지 듣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요즘은 과거의 언행과 글이 디지털 자료로 저장되어 거짓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걸 찾아서 비교‧판단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100% 정확하진 않지만 알아두면 재미있는 손쉬운 거짓말 탐지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범죄 용의자 신문기법인 미국의 리드테크닉(Reid technique)은 행동분석 징후를 알려준다. 이 방법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고 그저 오랜 실무적 경험의 결과물에 가깝다. 따라서 이 징후가 발견된다고 하여 모두 거짓말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거짓여부 확인이 필요한 곳을 알려주는 단서로 활용하면 좋다. TV에 정치인이 나와 토론하거나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징후들을 하나씩 적용하여 거짓말을 찾아내는 것도 탐정놀이처럼 은근히 재미있다. 리드테크닉 행동분석 징후에는 언어적, 준언어적, 비언어적 징후가 있는데, 이번에는 언어적 징후를 소개한다. 언어적 징후는 진술자가 말하는 ‘내용’에서 드러나는 거짓 징후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긴장 최소화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1. 부적절한 답변 질문자가 요구하는 답이 아닌 적절하지 않은 답변을 함으로써 ‘대답은 했다’는 명분도 취하고, 진실을 숨기는 이득도 챙기는 전략이다. 이때 부적절한 답변에는 부분적으로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에 거짓으로 말할 때의 긴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난주 수요일에 A에게서 사과상자를 받았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그날 A를 만난 적도 없어요.”라고 한다면 부적절한 답변이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저는 그날 사과상자를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A가 아닌 제삼자를 통해서 사과상자를 받은 사람이라면 위 답변처럼 A를 만나지 않았다는 진실 뒤에 거짓을 숨겨, 듣는 이로 하여금 ‘A를 만나지 않았으니 사과상자도 받지 않았구나’라고 해석하기를 바라는 답변을 한다. 질문자가 부적절한 답변임을 알아챘다면 그것이 부적절한 답변임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다시 질문함으로써 진실을 구할 수 있다. “저는 그날 당신이 A를 만났는지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사과상자를 받았는지 물어본 것인데 당신은 그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다시 묻겠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어떤 방법으로든 A가 주는 사과상자를 받았나요?” 2. 불필요한 답변 질문이 있으니 대답은 해야 하지만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 자체에서 발각될 우려도 있고, 앞으로 눈더미처럼 커질 거짓말을 계속 기억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래서 질문자가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는 대신 불필요한 답변을 하는 전략을 쓴다. 예를 들면 “지난주 수요일에 A에게서 사과상자를 받았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A와 그다지 친하지 않습니다. A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도 늘 저를 만나면 뭔가 부탁을 하곤 해서 저는 참 불편합니다. 그날도 A가 저에게 사업 관련 부탁을 했지만 저는 A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불필요한 TMI 답변이다. 이때에도 그 답변이 불필요한 내용에 대한 것임을 지적하고 다시 한번 반복해서 질문할 필요가 있다. 3. 생략 생략이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건너뛰어 말하지 않는 것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새로운 사실을 첨가할 필요도 없고, 이전에 말한 사실과 비교하거나 앞뒤가 모순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없으니 긴장도 적다. 그러나 생략은 단답형의 구체적 질문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지난주 수요일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세요.”와 같은 개방형 질문에 대한 긴 답변에서 잘 나타난다. 생략이 의심되는 단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소개해 드리겠다. 우리 뇌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주어진 정보만으로 무의식적 추론에 의한 빠른 결정을 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속기 쉽다. 귀찮고 힘들더라도 주의깊게 청취하고 하나씩 따져가며 분석해야 진실을 얻을 수 있다.
2024-04-09 | hrights | 조회: 468 | 추천: 8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투표는 권리일까요, 의무일까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문입니다. 헌법 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밝혔습니다. 공직선거법 등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적 요건, 만 18세 이상의 연령 요건을 충족한 경우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에 대한 선거권 자격이 있음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요. 투표는 헌법적 권리일 뿐 아니라 누가 이 공동체의 주인인지 확인시켜주는 절차적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벌칙이 있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물론, 유럽의 벨기에, 그리스를 비롯해 호주, 브라질, 싱가폴 등 여러 나라에서 투표를 의무화한 곳도 있긴 합니다. 헌법에서 가장 먼저 규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입니다. 중학교 1학년 사회탐구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이니 모르는 분이 거의 없을 터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의 정신과 원칙이 일상적으로 실천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선거권임 또한 명백합니다.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여타 다른 권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권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두 차례의 선거만 돌아보겠습니다. 4년 전인 2020년 4월 21대 총선 때 4399만 4247명 유권자 중 2912만 7637명이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66.2%로 2016년 20대 총선 때(58.0%)보다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1486만 6610명은 아마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헌법적 권리 행사를 포기했습니다. 지역구 253석 중 특정 정당 쏠림 현상이 일상화한 영호남 등 지역을 제외한 서울권 충청권 등에서 투표권을 포기한 이들의 숫자보다 더 큰 표차를 드러낸 지역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등 범민주당의 의석수가 183석에 이르는 매머드 정당이 탄생하게 됐죠. 이보다 더 가까운 2022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 4419만 7692명 중 3406만 7853명이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0.73%p, 24만 7077명의 유권자의 투표가 당락을 갈랐습니다. 기가 막힐 만큼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바뀌었으니 당선자에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는 자신의 덕이라는 뿌듯함을 가질 만했고, 낙선자에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는 분통함을 삼켜야 했을 것입니다. 1012만 9839명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당선자를 지지했으면서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렸겠지요. 낙선자를 지지했지만 투표권 행사를 포기한 유권자들은 땅을 치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일 테고요. 선거 이후의 모습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사소한 차이로 결과는 바뀌지만,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압수수색이 횡행하며 언론 자유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 복판 159명 청춘들의 애꿎은 죽음과 남은 이들의 사무치는 원통함에도 제대로 책임감을 갖는 이가 없습니다. 잘못된 명령으로 숨을 거둔 해병 사망사고 조사 결과를 대통령실이 나서서 뒤집으려 한 혐의가 짙습니다. 대통령이 2년 동안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으며 ‘반(反)정치의 정치’를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더욱 극심해지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기득권 집단으로서 의사에 대한 국민의 반감에 기대서 별 계획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은 또다른 반(反)정치겠지요.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뒤집으며 국회의 역할과 기능을 무시하는 편법 정치와 더불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일상다반사로 쓰는 것은 견제와 감시를 취지 삼은 헌법 체제를 부정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예 본인의 배우자와 가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에는 아연질색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식민지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대통령이 부정하며 삼권분립을 무너뜨린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입니다. 이를 비롯해 외교 안보에서 실질적 국익에 대한 도모가 아닌 극단적 갈등의 한 축을 자임하며 냉전적 대결의 장으로 온 나라를 몰고 들어갔습니다. 한반도는 언제 포탄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는 또다른 세계의 화약고로 바뀌어가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야당이 잘한 것도 아니지요. 183석의 거대 야당이 지난 4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면 역시 한숨만 나옵니다. 입법권력은 있었지만 정부가 국회를 무시하고 야당 대표를 탄압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변명하는 것으로 결코 면책할 수 없습니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동시에 갖던 2년 동안 보여준 불완전하고 무계획한 각종 정책과 입법은 우리 사회의 진전에 별 기여가 없었습니다. 오는 10일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습니다. 2028년 4월까지 우리의 민생과 국가경제, 외교안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지고 입법 활동에 나설 254명의 지역구 국회의원과 46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선출됩니다. 누군가는 ‘네가 뭔데 가르치려 드느냐’고 기분이 나빠지실 수도 있고, 투표의 권리를 의무처럼 만든다고 생각하며 불편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시민의 윤리적 책임 정도로 이상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그 놈이 그놈’과 같은 인식을 가질 정도로 투표의 효능감이 없고,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뿌리 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표권은 단순한 개인의 권리만은 아닙니다. 행정권력, 입법권력을 대리할 이들을 뽑음으로써 공동체의 운명이, 우리의 삶과 나의 삶이 바뀔 수 있는 중차대한 결정의 첫 시작입니다. 지지정당이 어디든 한 명도 빠짐없이 투표합시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일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확신합니다. 22대 총선, 투표율 100%를 꿈꿔봅니다.
2024-04-03 | hrights | 조회: 410 | 추천: 3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총선을 앞둔 요즘 범인도피로 나라가 몹시 시끄럽다.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범인도피죄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을 은닉ㆍ도피하게 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범인 스스로가 도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처벌되지 않는다(다만 범인이 체포ㆍ구속된 이후에 도주하는 경우에는 도주죄로 처벌된다). 즉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은닉ㆍ도피케 하는 제3자가 처벌되는 죄이다. 은닉은 흔히 숨겨주는 행위를 말하고 도피하게 하는 행위는 도피자금이나 은신처를 제공하는 행위, 수사상황 등 도피에 용이한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수사기관의 추적에 혼선을 야기하는 행위 등 범인의 발견ㆍ체포를 곤란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가끔 뉴스에서 접하는,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을 때 동승자가 자신이 운전했다고 나서면서 소위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는 경우도 범인도피죄에 해당한다. 범인도피죄는 국가의 형사사법작용을 곤란ㆍ불가능하게 하는 범죄로서 그 죄책이 가볍지 않은 범죄이다. 범인도피와 관련된 사례 세 개를 살펴본다. #사례1. 지난 2019년 3월 22일 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김포공항에서 태국으로 출국을 시도하다가 법무부의 긴급출금조치에 막혀 출국이 좌절되었다. 고검장급 고위 검사였던 김학의는 건설업자 윤중천에게 뇌물을 받고 윤의 별장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피의자였다. 당시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이 김학의의 개인정보를 중점관리대상 등록시스템에 입력해 출국 동향을 감시하도록 지시하였고 그의 출국 시도를 알아챈 뒤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근무하던 이규원 검사에게 정보를 전달하였다. 이에 이 검사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작성하여 김학의의 해외도피를 막았다.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의 발 빠른 협력과 조치가 파렴치한 중범죄자의 기습적인 해외도피를 막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윤석열의 지휘하에 있던 검찰(윤석열은 2017.05-2019.07까지 서울지검장, 2019.07-2021.03까지 검찰총장이었다)은 도피를 시도한 김학의를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대신 오히려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검사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허위로 작성하였고 차 본부장은 이 검사의 위법행위를 알면서도 동조하여 불법적인 방법으로 김 전 차관의 출국을 금지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2021년 4월 기소하였다. 당시 검찰이 같은 식구인 김학의에 대한 수사를 미온적으로 하고 있던 상황에서 도주 시도가 있었고 이 검사와 차 본부장 두 사람의 빠른 대처로 해외도피가 저지되었다면 이는 오히려 상을 주었어야 할 행위였다. 돌발 상황에서 긴급하게 취한 조치에 절차상 일부 하자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정당한 목적과 공익 달성을 위한 정당한 법집행으로 평가되었어야 할 행위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오히려 중범죄자의 해외도피를 막은 두 사람을 수사하여 법정에 세웠다. 범인도피를 막은 법집행공무원을 탄압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검사가 범인인데 감히 도피를 막다니! 검사가 범인일 때에는 도피를 모른 체 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가당키나 한 사건처리인가. #사례2. "이종섭 대사 국내 비리조사에도 불구하고 호주로 출국" 호주 abc 뉴스 보도 2024년 3월 10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호주대사로 부임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종섭은 2023년 수해지역 실종자 수색작전에 투입되었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채수근 상병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되어 있는 피의자이다. 이 전 장관은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의 주범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의 외압을 밝혀줄 핵심 연결고리인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중범죄자를 호주 대사로 임명하여 법무부의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시킨 뒤 해외로 보내버렸다. 해병대 수사단의 1차 수사결과와 처리방침을 결재하였던 국방장관의 결정을 하루 만에 뒤집을 수 있는 외압은 상식적으로 대통령실 외에서는 나올 수 없다. 이종섭이 본인의 결정을 뒤집기 전 대통령실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이 통화기록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의 입에서 외압을 시인하는 진술이 튀어나올까 두려워 급히 호주로 보내 버린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국내ㆍ외에서 이종섭은 부패에 연루되어 해외로 도망간 ‘도주대사’로 비아냥을 사고 있다. 대통령이 외압을 행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연결고리에 있는 핵심 피의자를 외국으로 보냈다면 비록 대사 임명이란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범인도피죄가 성립한다. 총선을 앞두고 국내 여론이 들끓자 이 대사는 도피출국 의혹을 희석시키기 위해 3월 21일 회의참석을 빌미로 귀국하였고 공수처의 소환이 있으면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급거 귀국 쇼를 벌이더라도 이미 윤 대통령에게 성립한 범인도피죄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공수처는 즉각 법무부에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를 다시 요청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앞의 #사례1에서 윤석열과 그의 영향력 하에 있던 검찰은 도피를 시도한 중범죄자를 엄정하게 수사하는 대신 오히려 중범죄자의 해외도피를 막은 사람들을 기소함으로써 핍박하였다. 윤석열 검찰이 범인도피를 옹호한 본말이 전도된 사건처리였다. 2023년 2월 1심 형사재판에서 차 본부장은 무죄, 이 검사는 선고유예를 선고받았다. #사례2에서 윤 대통령은 한 단계 진화하여 직접 범인도피죄를 범하였다. 대사 임명의 형식을 빈 중범죄자 빼돌리기이다.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이런 식의 범인도피죄를 범하다니! 가히 상상을 초월한 신박한 범인도피와 수사방해에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평소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국정철학으로 내 세워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치주의 수호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말이 아닌 그의 행동에서는 도무지 공정ㆍ상식과 법치주의 수호의지를 찾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검사 시절 자신이 수사ㆍ기소하여 형사처벌하였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절의 수많은 국정농단 및 부패사범들을 대거 사면ㆍ복권 시켰다. 심지어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이번 총선에 나설 수 있도록 급하게 은전을 베풀었다. 명백한 사면권 남용이다. 그리고 평생 검사의 길을 걸어 온 자신의 과거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다. 그런 와중에 벌어진 이번 범인도피행위는 윤 대통령의 민낯을 드러낸 결정적인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입으로는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지만 본질은 선택적 공정론자ㆍ비상식론자ㆍ사이비 법치주의자ㆍ법치주의 파괴자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윤 정부를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한다는 염원이 간절하다. 이번 사건은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의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특검법안이 지난 2023년 10월 6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고 총선이 끝난 4월 4일 본회의에 자동 상정될 예정이다. 야당은 총선 이후 열리는 국회 첫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총선 이후에는 여당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도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특검법안의 실시는 확실한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며칠 전 민주당은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및 이종섭 전 장관의 도피성 출국과 관련한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특검법안도 이미 발의한 상태이다. 특검에서 대통령의 수사외압 및 범인도피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곧바로 탄핵으로 연결될 것이고 퇴임 후 형사처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사례3.  앞의 사건들과는 달리 미담에 가까운 범인도피 사례를 소개한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이부영 전 기자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당시 1세대 인권변호사였던 고영구 변호사의 집에 한동안 피신해 있었다. 후에 경찰에 검거된 뒤 도피처를 제공한 사람에 대한 색출이 시작되었다. 이에 원래는 고영구 변호사가 범인도피죄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같은 1세대 인권변호사였던 이돈명 변호사가 대신 허위자백을 하고 범인도피죄로 처벌을 받았다. 당시 고영구 변호사가 80대 노모를 모시고 있었고 부인에게 병이 있어서 고 변호사가 구속될 경우 그 가족들이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 변호사가 대신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었다. 이돈명 변호사는 구속되어 실형을 살게 되었고 밖에 있는 고영구 변호사는 이 변호사의 수감기간 죄송한 마음에 겨울에도 냉방에서 지냈다고 한다(김정남 회고록 <내가 겪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중). 발각될 경우 형사처벌의 위험이 있음에도 민주화 운동을 하던 수배자를 집에 피신 시켜준 고영구 변호사와 그 가족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 대신 형사처벌을 감수한 이돈명 변호사 모두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비록 범인도피죄를 범하였지만 누가 감히 이들에게 사법질서를 어지럽히고 법치주의를 파괴하였다는 비난의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자신의 중대범죄를 감추기 위해 저지른 범인도피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당한 범인도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법치주의자들이 보여준 용기와 따뜻한 정에 경의를 표한다.
2024-03-25 | hrights | 조회: 470 | 추천: 10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1. 윤석열의 권력과 자유 윤석열은 과연 이상한 인간인가? 상식을 갖춘 자라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괴이한 자인가? 심지어, 인간의 얼굴에 뱀의 몸통을 한 스핑크스처럼 괴물인가?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좀 더 의지가 강할 뿐이다. 그 강한 의지가 철저히 권력을 향해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정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오로지 권력만을 좋아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정신분석학적으로 역시 권력 지향형으로 추정되는 그의 아버지 탓이라고는 하지만, 어쨌건 흔히 권력을 얻는 지름길이라 여기는 사법 고시에 기필코 합격하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아홉 번이나 도전했다는 전대미문의 사실에서 이를 확인하게 된다. 결과론적인 진단임을 피할 수는 없지만, 기어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는 데서 이를 재확인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오로지 권력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돈은 권력을 위해 필요할 뿐이다. 억만금을 주더라도 그는 거머쥔 권력을 내놓지 않을 인물이다. 항간에 떠도는 “권력은 부자 사이에서도 나눌 수 없다.”라는 말을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생각하지 않고, 그거야말로 천상천하의 진리임을 철석같이 믿는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가 말한 것처럼 “토론의 대상이 되는 권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은 예외 없이 권력의 화신이 아니더냐, 하는 말을 동어반복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하거나, 우주적인 철리를 깨달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거나, 예술과 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치거나, 과학적인 이치를 깨닫거나 이를 기반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함으로써, 설사 그들이 성인으로 또는 천재로 추앙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내심으로는 권력을 추구하였으나 현실적으로 권력을 얻을 길이 없음을 알아 다른 쪽에서나마 권력을 얻어보리라 하여 엉뚱한 길을 찾아 밟아간 자들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결국에는 권력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라 여기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윤석열은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권력은 절대적 진리다.”라는 걸 믿는 인물이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은 권력을 얻기 위한 질 좋은 수단일 뿐이고, 도덕과 정의는 권력을 얻는 데 참으로 좋은 수단일 뿐이긴 하지만 그 질이 너무나 좋아 수단으로 쓰기에는 위험한 구석이 있다고 여긴다. 그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권력을 위한 수단은 자유다. 한마디로 그는 자유의 전사다. 그는 수시로 자유를 외친다. 하지만 그 자유의 정체와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지는 않는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가 생각하는 자유를 나열하면 이렇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라도 활용할 수 있는 자유, 확보한 만큼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자유, 더 많은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필요에 따라 때로는 한껏 아첨하고 때로는 강력하게 협박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권력을 편드는 자들을 끌어모아 활용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 자신이 거머쥔 권력을 조금이라도 좀 먹으려는 자라면 누구나 벼랑 끝까지 쫓아가 몰아붙여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자유,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한 모두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로 여길 수 있는 자유, 자기보다 분명히 강한 자라면 위대한 자라고 여긴 나머지 그 앞에서 납작 엎드려 고개 숙여 그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받기를 앙망할 수 있는 자유, 항간에 떠도는 합리를 추구하는 지성이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양심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위선적이고 천하에 몹쓸 쓰레기 같은 자라고 여길 수 있는 자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으려 하거나 행복을 얻으려는 다른 사람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에 관한 말에서 행복을 권력으로 대체해서 해석할 수 있는 자유, 그래서 남의 권력을 빼앗거나 방해하지 않고 나의 권력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존 스튜어트 밀이야말로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임에 틀림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유,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는데 무슨 간섭이냐고 내놓고 떠들 수 있는 표현과 실행의 자유 등등. 요컨대 윤석열은 “인생은 권력 투쟁의 과정이고 산물이다.”라는 제1 명제와 “자유는 근본적으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모든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자유다.”라는 제2 명제를 굳건히 믿는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를 믿는다고 해서 이상한가? 철학자 스피노자는 “각각의 사물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한에서 자신의 존재 안에 남아 있으려고 한다.”라는 이른바 코나투스(conatus)를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존재 안에 남아 있으려 한다는 건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면 더욱 강하게 유지하려는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남들을 적대적으로 이용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의 본성으로 보자면, 권력을 진리로 삼고, 권력을 위한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여긴다고 해서 윤석열을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과연 그러한가? 2. 윤석열의 우둔한 권력의지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딜레마가 있다. 인간들이 신(神)을 창안하고 절대권력을 그 핵심적인 특성으로 삼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권력은 무한할뿐더러 한 인간에게서 생겨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인간이 거머쥘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쉽게 말하듯이,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끝없이 권력의 노예가 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헌법에 명시해 놓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어리석게도 권력이 자신에게서 생겨나고 따라서 권력을 자기가 마음대로 휘둘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여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기에, 이렇게 아예 헌법에 명기해 못 박아 놓은 것이다. 권력을 지니고서 지배하는 자는 자신의 권력에 예속되어 지배받는 자를 애용할 뿐 결단코 사랑하지 않는다. 권력관계만으로 일관하는 인간관계에서 토사구팽은 상례다. 하지만, 권력에 지배받는 자는 그 때문에 자기가 권력을 나누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자기가 권력에 지배받는다는 사실을 흔쾌히 여기지 않는다. 신이 인간들로부터 칭송을 받기 위해서는 권력 외에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모순되게도 신은 무한한 권력과 아울러 무한한 사랑을 갖춘 존재로 정의된다. 권력과 사랑은 모순 관계다. 신은 존재의 원리에 따라 모순을 충분히 감당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권력을 위해서는 그만큼 사랑을 저버릴 수밖에 없고, 사랑을 위해서는 그만큼 권력을 저버릴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권력과 사랑을 적절히 섞어 살고 있지만, 윤석열에게 사랑은 오로지 권력을 향한 것일 뿐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도 그는 자신에 대한 이 진단을 흔쾌히 승인할 것이다. 한 나라의 통치 권력을 거머쥔 대통령이 되려 하거나 된 자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외친다. 이는 자신이 권력을 추구해서 대통령이 되려는 게 아님을 선포하는 행위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명예도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위마저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내놓을 거라는 다짐을 내보이는 행위다. 윤석열 역시 대통령 취임사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맨 앞에 내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는 소명”을 운위했고, “반지성주의”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닥쳤고, 그래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역설하고,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바탕으로 한 “과학과 진실을 통해 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말을 한 지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전부 다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왜 그 말을 하는지는 알지만, 그 말이 진정 무슨 뜻인지를 모를 수가 있고, 모르고 하는 거짓말은 정작 거짓말이라 할 수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으로서는 참말일 수도 있다. 그라면 거머쥔 권력을 빼앗기지 않고 강화하기 위해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참말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그가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전부 다 거짓말이다. 다들 아는 일이어서 새삼 그 실질적인 증거를 일일이 들이댈 필요조차 없다. 대선 후보 시절 손바닥에 임금 ‘王’ 자를 뚜렷이 새기고 나와 그 무속적 반지성주의로써 온 국민을 창피하게 만든 때부터 이미 그 싹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에 관한 일련의 과정에 관해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지만,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을 꿈꾸는 당시에 한시도 그치지 않고 자행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권력의 발판인 검찰 조직을 거머쥐고서 그 사법적 위세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휘권자인 법무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마저 어쩔 줄 모를 정도로 한껏 자의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국민 모두의 비극이 순식간에 절정에 올랐다. 용산 대대통령실 이전에서부터 시작해 어이없이 이루어지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게다가 파괴적인 국정의 운영과 그 틈틈이 드러나고 생겨나는 갖은 부정과 부패의 이력들에서 이제 그의 통치를 반(反)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이고 반국가적이고 무엇보다 반(反)민생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반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기만의 권력과 자신의 권력을 위한 자기만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가 대통령이라는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자리에 올랐을 때 과연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가를 우리 국민은 물론 심지어 세계인 모두가 여실히 목격하는 중이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은 그가 권력을 추구하는 데 전혀 현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선출되기까지는 어떻든 나름 최대한의 요령을 발휘해 불행하게도 국민을 잘 속여 넘긴 셈이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누구나 그 어이없는 속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무자비한 권력욕을 무식하게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겉과 속이 함께 썩어들어가는 방식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취임 초기부터 <촛불 행동>의 시민들이 주말마다 거리에 나와 ‘윤석열 하야’을 외쳤고 급기야 ‘윤석열 탄핵’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3. 총선 민주 진영 대승리, 탄핵만이 답이다.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총선이다. 신생 정당인 <조국 혁신당>에서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총선 구호를 내걸었고, 대다수 국민이 이를 ‘윤석열 조기 탄핵’으로 읽고서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조국 혁신당>이 이른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4월 10일 심판의 날’ 총선 구호 역시 이재명 대표가 “이제 너희는 해고다.”라고 역설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윤석열 정권에 대한 ‘최후의 심판’과 그에 따른 ‘탄핵을 통한 조기 종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탄핵’은 그야말로 불행이다. 하지만 실현한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정말이지 어떻게 만들어 온 나라인가! 민주화를 위한 무수한 희생은 물론이고 그 와중에 죽으라고 열심히 일한 탓에 불과 2년 전만 해도 ‘자고 나니 선진국이다’라는 말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지 않았던가.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배우겠다고 형형색색의 많은 젊은이가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자고 나니 후진국이구나’ 하는 한탄이 들린다. 한국이 민주국가의 모범에서 독재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세계적인 진단이 나오고 있다. 속된 말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그런데 드디어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믿는다.
2024-03-19 | hrights | 조회: 303 | 추천: 7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1. 초등학교 이학년 때이다. 골목 끝에서 나는 나보다 너더댓 살은 많은, 우리가 세 살던 주인집 언니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다. 이를 말리던 아이 중에 하나가 집에 달려가 엄마를 불러왔다. 주인집 아줌마도 같이 달려왔다. 싸운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언니는 한주먹도 안 되는 조그만 애가 지지 않고 달려드는 게 몹시 분했고 나는 그런 언니한테 지지 않으려고 씩씩댔다. 달려온 엄마와 아줌마를 본 순간 우리는 아이들답게 “우왕”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와 아줌마는 각자 자식을 붙잡고 야단을 쳤다. 엄마는 나한테 조그만 게 언니한테 덤비고 그런다고, 아줌마는 언니가 돼서 동생이랑 잘 놀지는 못하고 싸운다고. 우리는 입을 내민 채 집으로 돌아가 우물가에서 울어서 꼬질꼬질해진 얼굴을 씻으면서도 눈을 흘겼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 그 집에서 우리는 일 년쯤 더 살다 이사 갔다. 엄마가 학교 다니는 나를 두고 동생들과 시골에 갈 일이라도 생기면 주인집 아줌마는 나를 데려다 밥을 먹이고 재워줬다. 잠은 미예 언니랑 잤다. 나랑 싸운 언니다. 2. 해마다 정기세미나를 기획하였는데 어느 해인가 포스터에 들어갈 내용에 ‘사회’를 ‘좌장’으로 바꾼 적이 있다. 물론 ‘사회’를 보는 분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한 정기세미나의 내용이 지난해와 특별히 달라진 게 없기에 당황스러웠다. 사회자라는 말보다는 좌장이라고 하는 것이 격조 있어 보여 그러는 걸까. 그해 세미나는 내용적으로 지난해에 미치지 못하였다. ‘좌장’은 그저 말의 허세였다. 그런 말의 허세와 허영은 우리 사회의 ‘리더’며 ‘어른’이라는 표현에서도 차고 넘쳐난다. 자격은 없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리더란다. 국회의원 3선이니 5선이니 하면서 사회의 어른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사회의 리더며 어른들이 넘쳐나는 요즘, 내가 사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비루하고 몰염치하다. 제 욕심을 채우는 일에 골몰하면서도 자기가 어른이란다, 사회의 리더란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된다. 그저 내가 리더고 어른이니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희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옷을 갈아입고 화를 낸다. 보통 사람은 내 자식이 잘못했다고 내 자식을 야단치면서도 어른 노릇을 잃지 않는데, 제 욕심 채우는 일에 골몰하는 사이비 리더는 너희가 잘못하는 거라고 큰소리치고 화를 낸다. 어찌 그리도 체면 자칠 줄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건지. 바야흐로 세상은 염치없는 이들이 득세를 하고 부끄러움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3. 오래전에 읽은 시가 자꾸만 생각나 시집을 찾아봤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신동엽, 산문시 <1>) 이토록 지독하게 몰염치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무력감은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한” 그런 세상을 간절히 꿈꾸게 한다.
2024-03-13 | hrights | 조회: 311 | 추천: 4
이윤 / 경찰관   초등학교 시절 우수상을 받아오면 어머니는 우리 삼 형제를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200원쯤 하던 짜장면을 사 주셨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며 3개만 시키셨고, 나는 이 맛있는 짜장면을 왜 싫다고 하시는지 궁금해하면서 쫄깃하고 달콤한 면발을 목젖 너머로 삼켰다. 한 친구 아버지는 우수상 받아오면 자전거를 사준다고 했다는데 그게 참 부러웠다. 만일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자전거를 사주셨으면 나는 그 후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인지부조화 이론에 의하면 자전거 보상으로 공부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짜장면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목적이라기에는 너무 하찮아서 노력-보상 간 불일치가 발생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공부가 재미있었다거나 미래를 위한 준비 등 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 태도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후 별다른 보상이 없어도 계속 열심히 공부했다. 어머니는 가정 형편 때문에 짜장면으로 보상하셨지만, 인지부조화 이론 관점에서는 정확한 보상이었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은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가 1957년 발표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 신념, 의견, 태도, 행동 간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불균형 상태(인지부조화)를 불편해하므로 이를 해소하여 조화상태를 이루려 한다는 이론이다. 불균형 해소를 위해 주로 변경하는 것은 변화나 조작이 간단하고 쉬운 의견이나 태도이다. 친구들과 나가 뛰어놀고 싶은 것도 참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억지로 공부한 노력에 비하면 짜장면은 너무 소소한 보상이라 노력-보상 간 불균형이 생긴다. 이미 해버린 노력과 시험 결과와 먹어버린 짜장면은 변경할 수 없는 상수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태도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나 자신도 잘 몰랐기에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공부가 재미있어’ 또는 ‘공부 별로 어렵지 않네’라는 태도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포도를 따 먹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익지 않아서 신맛이 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인지부조화 해소를 위한 자기합리화의 일례다. 3천 회 이상 엄격한 심리학 실험을 거쳐 검증된 인지부조화 이론은 많은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인지부조화가 있을 때 보통은 태도를 쉽게 바꾸지만, 정치적‧종교적 신념은 바꾸기 어렵다. 살아오면서 정치적‧종교적 신념에 대해 남들에게 여러 번 말했거나 그에 맞는 행동을 많이 하여 이미 상수가 되어서 변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그 신념이 자신의 정체성 또는 존재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신념과 불일치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에 대해 부인하고, 분노하고, 신념과 일치하는 쪽으로 왜곡 해석하려 한다. 신념에 배치되는 사실‧증거‧가설은 애써 외면하고, 일치하는 것만 찾아다닌다. A정당에 투표한 사람이 있는데, 선거 결과 B정당이 승리하여 다수당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지지 정당이 정권 잡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온 정치적 신념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A정당이 패배한 선거 결과 자체가 자신의 신념 및 투표행위와 배치되므로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이 사람은 B정당이 틀렸다거나 부정하게 승리했다는 태도를 형성하고, 그 증거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정당 간 정강이나 정책이 서로 다르기는 해도 틀리기는 쉽지 않으니 다른 데서 B정당의 흠을 찾으려 한다. 전통적으로 뇌물과 성추문은 한 인간을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데 청산가리만큼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A정당은 약발 좋은 추문을 여기저기 흘리거나 만들고, 이 사람은 B정당 사람들의 뇌물과 성추문 그리고 기타 여러 자질구레한 잘못을 찾으려 애쓴다. 지저분한 사람들 모인 곳이 B정당이라는 증거를 보며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B정당이 틀렸다는 신념을 확인시켜 주는 온갖 지저분한 증거에 젖다 보면, B정당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혐오감이 증가한다. 자극적인 뉴스 헤드라인과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 과정을 더 쉽고 빠르고 강하게 해 준다. 게다가 정치인의 언행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조롱하고 멸시하는 컨텐츠에 많이 노출될수록 시청자의 마음속에는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인간적 혐오감이 증폭된다. 증폭된 혐오감은 정치 테러로 발전할 수 있다. 내가 지금 힘들고 괴로운 이유가 모두 그 사람 탓이니 악마화된 그 사람을 없애야 나와 사회, 나라가 편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인들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 발생한 이유도 이런 과정으로 자라난 혐오감이 원인일 것이다. 물론 사생활이 난잡하고, 거짓말 잘하고, 부정축재하는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격이니 공익 목적으로 널리 알려야 하지만, 이런 네거티브 전략이 주가 되어 혐오감만 부추긴다면 정치는 사라지고 수치와 경악만 남게 된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유권자들은 인지부조화가 혐오로 발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도 틀릴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고, 내 신념과 반대되는 의견도 경청하고, 정보를 검토할 때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해야 한다. 개인이 깊이 생각하고 알아보기에는 너무나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 되어버려서 정보를 빨리 처리하는 게 편하겠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혐오정치를 멀리할 수 있다.
2024-02-28 | hrights | 조회: 330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