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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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동호 /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짝사랑이 지속적 괴롭힘(스토킹)으로 바뀌지 않는 한 형벌을 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신체접촉이 형벌을 부를 수 있다. 격하게 공개적으로 하면 공연음란죄다.  은밀한 육체적 사랑은 형법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권장되어야 한다.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와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단다.  그러나 형법이 금지하는 은밀한 육체적 사랑이 있다. 서로가 원하는 신체접촉을 사랑이 아니라 간음, 유사간음, 추행으로 부르고 형벌을 준다.  배우자 있는 사람과 그 배우자 아닌 이성의 성교를 간통죄로 부르고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했으나 형법에서 2016. 1. 6. 62년 만에 사라졌다. 헌법이 보장하는 성(性)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헌재)의 위헌결정의 이유다. 이제는 혼외성관계로 부른다. 그렇다고 혼외성관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민법의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13세 미만 사람과 신체접촉도 그가 원할지라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13세 미만 사람이 동의하더라도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그와 어떠한 신체접촉도 금지한다. 형법은 강간죄, 유사강간죄, 강제추행죄로 간주한다(제305조). 그 이유는 13세 미만 사람은 외부의 부적절한 성적 자극이나 물리력의 행사가 없는 상태에서 심리적 장애 없이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9세 이상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 사람과 신체접촉을 하는 것도 2020. 5. 19.부터 새롭게 금지되고 있다. 13세 이상 16세 미만 사람도 13세 미만 사람처럼 성적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올바로 인식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행사하기 어렵다고 간주한 것이다. 19세 이상 사람이 16세 미만 사람과 친밀감을 쌓아서 심리적 의존관계를 형성한 후 이를 이용해서 동의를 얻어 신체접촉을 할 수 있고, 이는 육체적 사랑이 아니라 그루밍(grooming) 성범죄라는 것이다.  13세 미만 사람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려고 옷을 벗다가 멈춘 사람은 물론 13세 이상 16세 미만 사람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려고 옷을 벗다가 멈춘 19세 이상 사람 모두 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고(2006도9453의 취지), 이들이 육체적 사랑을 나눌 목적으로 서로 마음을 먹거나 준비하면 예비·음모범(3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  군인 간 육체적 사랑도 군형법은 추행으로 부르고 금지한다(제92조의6). 그 법정형도 무겁다. 폐지된 간통죄의 법정형과 같다. 그런데 남성 군인의 동성애만 처벌한다. 아무런 문제없이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다가 다른 군인의 동성애 조사 중 파헤쳐지기도 한다. 헌재는 2023. 10. 26. 네 번째 합헌결정을 했다(2017헌가16).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 생활과 군기가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18세 사람과 16세 사람의 육체적 사랑은 금지하지 않는 것에 견줘보면, 성(性)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군인이라는 이유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동성애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허용하면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처벌한다면 모순이다. 성적 건강의 문란 내지 군 기강의 해이와 동성애는 무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과 싸운다면 오히려 동성애가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동성애자의 입양도 유효하다. 민법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입양신고를 마친 사람이 단지 동성애자로서 동성과 동거하면서 자신의 성과 다른 성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입양이 선량한 풍속에 반하여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은 봤다(2012므806).  최근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성) 동성애자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도 인정되었다. 대법원은 다른 사실혼과 달리 동성 동거인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봤다(2023두36800전합).  육체적 사랑을 나눈 장소가 병영 외부의 사적인 공간인 경우도 처벌해오다가 대법원은 최근 사적 공간의 육체적 사랑은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2019도3047전합).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육체적 사랑은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공개된 장소에서 육체적 사랑은 공연음란죄로 처벌된다. 군형법 제92조의6의 추행죄를 둘 이유가 없다. 다시 헌재의 심판대에 오르면 위헌결정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간통죄처럼. 그 전에 국회가 없앴으면 더 좋겠다.
2024-08-27 | hrights | 조회: 298 | 추천: 4
이윤 / 경찰관 公과 私를 구분한다는 것이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은 참 어렵다. 하루 생활의 시공간을 딱 잘라 공/사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직장과 집이 공/사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으나, 그러면 ‘직장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것은 공인가, 사인가?’ 또 ‘퇴근 시간 후 집에서 같은 부서 사람들과 업무상 단톡방 대화를 나누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 공적 또는 사적으로 소요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과 공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사회가 점점 예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공/사 구분도 어렵다. 한국에는 좀 친해지면 반말하는 문화가 있다. 반말을 하면서 점점 서로 간 공적 공간은 좁아지고 사적 공간은 넓어지며, 공/사 경계가 모호해진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선배가 두어 번 술자리를 거친 후 ‘앞으로 나에게 말 놓고,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라고 호형을 허하면 동생 된 사람은 형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부하 노릇을 해야 하는 단점도 생긴다. 집에 있는 친동생에게도 시키지 않을 것 같은 담배 심부름이라든지, 은행 가서 돈 찾아오기 등을 해야 한다. 업무적으로도 마치 하인 부리듯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맡기면서 형 동생 사이에 그런 것도 못 해주느냐는 태도를 보인다.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이다. 동생 된 입장에서는 사적 심부름이나 업무 전가에 문제를 제기하면 인간적으로 선배와 멀어질 것 같고, 속 좁은 놈이라는 평가를 받을까 봐 속을 끓인다. 물론 나중에 모든 고생을 보상받는 은혜를 입는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형이 자신에게 잘 해준 동생에 대한 사적 감정만으로 승진이나 보직 등에 혜택을 주는 것(사내 정치 또는 줄서기) 역시 공사 구분을 못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혈연, 지연, 학연, 군대연 등 사적 인연에 의해 공적 의사결정이 좌우되는 것도 공/사 구분하지 못한 경우다. 요즘은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점점 심각한 부정행위로 보는 추세다. 회사 탕비실에 있는 과자와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는 직원을 일컫는 탕파족(탕비실 파먹는 사람)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그 비난 가능성에 대해 인터넷에서 논란이 일 정도다. 30년 전에는 경찰서 과장도 의경이 운전해 주는 관용차로 출퇴근했는데, 요즘 경찰서장은 대중교통이나 자차를 이용하여 출퇴근한다. 휴가 때 관용차를 사용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예전에는 판공비가 현금으로 지급되어 집 앞에서 떡을 사 먹더라도 괜찮았겠지만, 요즘 업무추진비는 법인카드로 사용 후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고, 그 용도와 시간 및 사용 장소가 제한되어 있으며, 누구와 무슨 이유로 사용하였는지 명시해야 한다.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싶은(憑公營私)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누군가는 평소 갈고 닦은 수행과 품격으로 욕심을 억누를 수 있어 공사를 잘 구분할 뿐이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권한과 권력이 커지면서 공/사 구분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그래서 큰 권한과 권력을 맡을 사람의 수행 정도와 품격을 확인하고 검증해야 한다. 각종 선출직에 대한 경선과 본선거 과정, 장관급 고위직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에서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소명하도록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사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은 중세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국가 내 토지를 비롯한 모든 자원이 황제나 왕의 것이었고, 그로부터 봉토를 받은 영주들이 위탁관리하였으니, 황제나 왕, 영주는 공사 구분 없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었다. 심지어 결혼세를 내지 못한 신부로 하여금 영주에게 순결을 바치게 하는 ‘초야권’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들었다. 공이 곧 사였고, 사가 곧 공이었다. 왕의 음주가무 및 사냥 등 놀이 비용도 당연히 세금을 이용했다. 대한민국은 봉건 사회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다. 그래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은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아직 봉건적 사고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은 관직이나 선출직이 옛날 벼슬자리인 것처럼 생각하고,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공직 특히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성공과 그로 인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서, 또 사적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공적 권한을 사용하여 국토이용계획, 수사, 통관절차 등에서 사법적, 금전적 이득을 주는 것 역시 공사 구분을 못 한 행동이다. 뉴스를 보면 요즘에도 공사 구분을 못 하는 사람이 참 많은 듯하다. 1800년 전 ‘읍참마속’으로 공사 구분을 분명히 한 제갈량이 그리울 지경이다. 공명정대의 의미가 ‘하는 일이나 태도가 사사로움이나 그릇됨이 없이 아주 정당하고 떳떳함’인데, 이 나라에 공명정대한 사람이 그렇게나 드물어서 공사 구분 안 되는 사람에게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2024-08-16 | hrights | 조회: 325 | 추천: 6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노영방송이라는 말은 어제오늘 나온 표현은 아닙니다. 공영방송으로서 잘못 운영되고 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가깝죠. 지난주 인사청문회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연신 썼지만 그가 아니라도 십 수 년 전부터 극우 유튜버를 비롯해 MBC, KBS 등의 소수노조, 보수 정치권 등에서 즐겨 써왔던 표현 중 하나입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노골적으로 대구 MBC의 취재를 거부하고 방해하는 동안 MBC를 가리켜 “민주노총 방송으로 변질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MBC, KBS 등의 일부 사장 혹은 보도국 등 주요 인사들이 언론노조 조합원이라는 점, 언론노조의 방송 영향력이 강하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꼽곤 했습니다. 노영언론이라는 선동적 언어로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만, 그 내밀한 부분은 나중에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언론노조가 대체 무엇인지 민주노총과 관계는 어떤 건지 살펴보고 싶습니다. 사실 미리 귀띔 드리자면 민주노총은 물론 언론노조조차 사실 관계조차 맞지 않는 ‘노영방송’이라는 호칭 앞에서 민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전국언론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 중 하나로서 2000년 탄생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흔히들 ‘언론노련’, ‘언노련’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1988년 11월 출범한 언론노련이 기업별 노조들이 모인 연맹체였다면 언론노조는 전체 언론 노동자 조합원들이 하나의 노조 아래 모인 산별노조로 진화했다고 보면 편안할 것 같습니다. 실제 전국 각지의 신문, 방송, 통신사, 주간지는 물론 출판 인쇄, 언론유관기관 등까지 지부, 본부로 망라한 언론노조는 1만 3000명 정도의 노조원이 있습니다. 단일한 노조 깃발 아래 세워져 만 24년이 된 언론노조이건만 명실상부한 산별노조라 말하기에는 내용적으로 어려움이 큽니다. 예컨대 신문 소속 언론노동자와 방송 소속 언론노동자가 몸으로 공유하는 이해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 같은 노조 조합원으로서 접점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방송 부문 언론노동자, 같은 신문 부문 언론노동자라도 서로 소 닭 보듯 멀뚱멀뚱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의 기업 문화, 노사 문화가 여전히 개별 기업 단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것입니다. 예컨대 각 개별 언론사에서 임금협상 단체협상을 할 때의 노조 측 대표도 언론노조 위원장이지만 이는 형식적일 뿐, 개별 언론사 노조지부장에게 위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산별노조로 혁신 발전했다지만 여전히 개별 노조의 연맹체인 ‘언론노련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지요. 물론 노동자 권익 보호 및 평등한 노동문화 지향의 가치를 구현해야 할 산별노조가 갖고 있는 현실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별도로 필요하긴 하겠죠. 이러한 노조 문화의 후진성은 언론 환경 변화의 원인 혹은 결과물일지 모릅니다. 언론의 뉴스 컨텐츠 소비가 철저히 포털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 나비 효과로 생각됩니다. 개별 언론사로서는 컨텐츠의 차별화를 통한 매체 고유 독자의 창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고, 생산성과 경제성이 떨어지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그저 정글과도 같은 포털 내부 경쟁에서 이기고 포털의 메인 페이지에 잘 노출돼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컨텐츠만 살아남게 됐습니다. 대부분 언론 매체에서 조회수를 기사의 사실상 유일한 평가 근거로 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언론 환경 악화의 악순환의 고리 또한 심화되게 됐습니다. 상업적 경쟁을 강조하다보니 언론 노동자들의 인식 역시 소속된 매체, 회사 단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언론의 공공성, 사회적 책임성 등을 중심으로 한 언론 집단 내부의 공동 이슈가 있음에도 공동의 대응, 언론노조로서 1만 3000 노조원의 연대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소속 회사에서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조차 노조원의 노조 활동 참여도가 높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니 긴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마당에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말한들 뭐하겠습니까. 오래 전 언론노조에 파견돼 언론개혁 10대 과제를 만들기 위해 몇 달 동안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하는 회의에 참여한 언론노조 간부에게 “언론노조 동지들은 이번 총파업의 보도투쟁을 조직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언론노조의 조직 수준과 상황,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깔린 방침 전달이었습니다. 총파업에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민주노총 총파업의 의미와, 이유, 목표 등을 국민들이 잘 공유할 수 있도록 보도를 잘 해달라는 의미였겠지요. “잘 알겠다”고 답하고 돌아왔지만 언론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그럴싸하게 총파업 행동지침을 만들어서 각 지부, 본부에 전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장악했고, 또 장악하고자 하는 MBC, KBS, YTN 등 방송사 언론노조 본부, 지부의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인원이 많고 개별 본부 조직력이 조금 더 높은 정도지요. 단언컨대 노영방송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부 우파 정치인과 일부 우파 언론계 인사들이 내건 정치적 구호일 뿐입니다. 이런 표현이 나올수록 공영언론이 해야 할 사회적 책무와 역할이 함께 표류하게 되고, 정치적 유불리의 거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언론과 방송은 노조의 것이 아니었듯 정권의 전리품 또한 아닙니다. 부디 윤석열 대통령은 무조건적인 거부권 행사를 멈추고, 방송통신위 및 방송문화진흥회. KBS 이사회 등에 대한 폭력적인 방송 장악 인사를 원상 복구하기를 바랍니다.
2024-08-06 | hrights | 조회: 311 | 추천: 6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나는 나다.”라는 말이 옳을까,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말이 옳을까? 또는 이 말들은 과연 성립하는가, 만약 성립한다면 어떻게 성립할까? 둘 중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릴까? 역사에 높은 이름을 남긴 많은 이들이 이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나다.”라는 말을 애써 강조한 대표적인 인물은 실존철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하이데거이고,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느닷없는 말을 한 인물은 천재 시인으로 불리는 랭보다. 그 외에도 많다. 관련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체코의 놀라운 작가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에 깨어나 보니 자신이 커다란 딱정벌레로 변해 있음을 확인한다. 커다란 딱정벌레가 된 주인공 잠자는 아마도 “나는 나다.”라는 말보다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말을 더 신뢰하게 되었을 것이다. 딱히 할 일이 없다 보니 방향을 돌려 괜한 상상을 해 본다. 내가 나를 보면 분명히 커다란 딱정벌레인데, 주변의 아무도 나를 딱정벌레로 여기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무슨 감정으로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여전히 아내가 “일찍 일어났네요? 언제 일어난 거예요?”라고 한다거나, 나는 딱정벌레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외출했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여겨 눈길도 주지 않는다거나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먹을까? 에잇! 추하고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돌변한 나를 아무도 알지 못하니,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자, 하고서 마음을 먹게 될까? 아니면, 나는 ‘당신들이 아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알고 보면 나는 너무나 추하고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은 존재야’, 하고서 고백하게 될까? 그런데도 아무도 나의 그런 고백을 인정하지 않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갑자기 너 왜 그래? 미친 거 아냐?’ 하는 반응을 보이는 탓에,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정신 분열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이라도 해버리고 말 것인가? 이제 아예 반대로 상상해 보자. 내가 나를 볼 때에는 섬뜩한 추한 모습의 커다란 딱정벌레이기는커녕 너무나 멋있고 당당하게 여겨지는 모습인데, 주변의 누구나 나를 보면 마치 괴물을 보듯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면서 온 동네 사람들이 ‘괴물이 나타났다!’ 하고 외치면서 대동단결하여 살충제를 끌어모아 뿌리면서 나를 잡아 죽이려고 덤벼들면, 심지어 나의 어머니와 아내조차 그리고 너무나 친한 친구들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 죽이려고 덤벼들면 과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무슨 감정으로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세상이 다들 미쳐버렸구나! 아니, 내가 뭐가 어떻다고 저렇게 나를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하고서, 주변 사람들의 살인적인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이른바 보무도 당당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껏 살기로 마음을 먹게 될까? 아니면, ‘다들 나를 보고 왜 저러지? 내게 뭔가 큰 문제가 있는 모양인데, 그 이유가 뭔지 물어보려 해도 다들 저렇게 아예 나를 무서워해 도망가니 이유를 알아볼 수가 없구나. 아! 정말 괴롭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하고서 극심한 고뇌에 빠져 아예 외출도 하지 않고, 이윽고 ‘정말, 내게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과연 그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서 깊이 성찰하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잡게 될까? 인간과 딱정벌레는 서로 소통이 안 된다. 문제는 인간도 너무 많고 딱정벌레도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반쯤은 인간이고 반쯤은 딱정벌레인 중간쯤 되는 존재도 너무 많다. 그래서 누가 인간이고 누가 딱정벌레인지 좀처럼 알 수 없다. 부드러운 몸을 지닌 인간은 딱딱한 껍질을 온통 뒤집어쓴 딱정벌레가 무섭기 짝이 없어 어떻게든 힘을 모아 신종 살충제라도 개발하여 잡아 죽이려 하고, 딱정벌레는 털도 없고 부드러운 몸을 지닌 인간만큼 먹기 좋은 게 어디 있냐고 날카로운 톱니의 앞발을 치켜들고서 인간을 공격해 잡아 죽이려 한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자신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외치는데 남들이 보기에 여지없이 딱정벌레인 자들이다.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는 인간인 내가 보기에는 저 녀석이 분명 무서운 딱정벌레인데, 딱정벌레인 저 녀석이 마치 자기가 진짜 인간인 양 온갖 방도로 위장하고서 오히려 나를 딱정벌레라고 몰아세워 선전하고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어 언젠가는 반드시 잡아먹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반쯤은 인간이고 반쯤은 딱정벌레인 녀석은 오히려 편하다.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유리하다 싶으면 딱정벌레이지 싶은 녀석에게 들러붙어 살 수 있고, 불리하다 싶으면 인간이지 싶은 녀석에게 들러붙어 함께 살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인간과 딱정벌레 사이에 격렬할 수밖에 없는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 모두의 공적은 딱정벌레인 인간 즉 자신이 딱정벌레인지 모르고 인간으로 위장하고서는 급기야 자신이 인간이라고 착각하면서 인간인 상대를 오히려 딱정벌레라고 우기면서 잡아 죽이려고 덤벼든다. ‘나는 딱정벌레가 아니야! 왜 나를 자꾸 딱정벌레라고 여겨 나를 잡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냐?’, ‘네 녀석, 정말 무지하고 비상식적이고 후안무치하고 안하무인인 걸 보니 딱정벌레인 게 틀림이 없어, 네 녀석은 죽어 마땅해. 죽이기 전에 너 스스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 게 좋을 거야.’, ‘네 말이 맞아. 그래 나는 딱정벌레야,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날카로운 내 톱니의 앞발에 찔려 볼 테냐! 어차피 네 녀석도 나처럼 딱정벌레이기는 마찬가지야. 허세 떨지 마!’, ‘저는 딱정벌레가 좋아요. 인간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놈은 딱 질색이에요. 여왕 딱정벌레님 만세!’, ‘나도 인간처럼 부드러운 몸으로 남들을 감싸안을 수 있기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놈의 딱정벌레들이 나를 딱정벌레로 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어요. 미안합니다.’, ‘부드러운 몸을 가진 인간들이여! 우리는 저 딱딱하고 날카로운 톱니 앞발을 드러내고서 우리를 공격하는 딱정벌레들을 무찔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데 힘을 모아 싸워야 합니다!’ 곳곳에서 피가 낭자하다. 인간에게 거짓말이 딱정벌레에게는 삶의 진리다. 딱정벌레에게 당연한 일이 인간에게는 기만전술이고 불성실이다. 인간에게는 진실함이 딱정벌레에게는 현실을 모르는 허세다. 인간에게는 허위의 위장과 분식이고 거짓의 성형과 세탁이 딱정벌레에게는 용기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고 부러움의 대상이다. 딱정벌레가 애써 거머쥔 화려하고 강력한 부와 권력의 성공이 인간에게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허망한 꿈이다. 인간에게 부드러움으로 함께 오순도순 살아보겠다는 이상은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 딱정벌레에게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는 허황한 몸부림이다. 인간과 딱정벌레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없다. 투쟁이 있을 뿐이다.
2024-07-25 | hrights | 조회: 207 | 추천: 3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그동안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의 운영 목표는 ‘지역 경제활성화’에 큰 방점이 찍혔었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의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소비쿠폰 역할을 지역화폐가 수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화폐의 모법인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법’의 제1장 목적에는 ‘ … 지역공동체 강화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지역화폐는 ‘경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도 크게 강조되는 것이다. 어쩌면 경제 활성화는 공동체 강화를 위한 중간 단계일 수 있다. 동네에 돈이 안 돌아 장사가 안되는 데 옆집 가게 아이가 울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반대로 장사가 잘되면 울고 있는 아이에게 용돈을 주며 달래주는 훈훈한 동네 인심이 나오기 마련이다. 공동체는 최소한의 경제 활성화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발전한다. 지역화폐는 역사적으로 공동체 강화 목적으로 출발하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처럼 지역화폐가 법정화폐와 1대 1 교환이 가능하고 예산을 투입해 구매 혜택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무래도 경제 활성화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역화폐를 공동체 강화의 도구로 쓰려는 정책적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올해 행정안전부는 175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지역사랑상품권 정책사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 정책사업 지원의 추진 배경 및 방향으로 행안부는 ‘경제 상황 및 사회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서 지역사랑상품권 활용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 추진 중이거나 새롭게 시행하는 사업을 선정, 공모를 통해 우수사례를 전국 단위로 확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기반으로 공동체를 강화하는 목적의 지역화폐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지역·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 활용하고 이를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역화폐 정책사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시흥시도 이 사업에 응모하여 3가지 정책사업이 선정되었다. 우선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에게 기프티콘 매출 시장을 열어준 골목상권 전용 기프티콘 앱 ‘두구두구’ 이용자들에게 지역화폐 결제 시 5% 추가 할인 혜택을 주는 사업, 제휴 공공배달앱인 ‘먹깨비’ 이용자들이 지역화폐 결제 시 역시 5% 추가 할인을 해주는 사업이 선정되었다. 또 하루 1만보를 걸으면 지역화폐 100원을 적립해주는 ‘만보시루’에 신규로 기부 챌린지 기능을 넣고, 기부에 참여한 이용자들이 지역화폐(모바일시루)로 가맹점에서 결제할 경우 역시 5% 추가 할인을 해주는 사업도 선정됐다. 시민건강권과 탄소중립실천, 기부문화 확산을 도모하는 ‘만보시루’, 지역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매출 증진을 꾀하려는 ‘두구두구’, ‘먹깨비’ 등 지역과 사회문제에 해결을 도모하려는 새로운 시도의 공통동점은 이들 앱이 이들은 지역화폐라는 매개로 운영이 된다는 점이다. 행안부가 제시하는 예시 사업은 매우 다양하다. △다자녀, 귀농·귀촌 가구 등이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 상품권 결제 시 추가 할인 △주요 영유아 이용시설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저출생 관련 업종(산후조리원 등)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고향사랑기부제 기부자가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 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등이 있다. 또 △활성화가 필요한 업종(지역서점 등)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활성화가 필요한 거리(전통시장, 구도심, 상권지역, 특산물 특화거리 등)에 있는 가맹점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관광객이 소외상권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전통시장 화재공제 가입업소 이용자 추가 할인 △착한가격업소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영세한 상생가맹점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지역 온라인 쇼핑몰에서 지역사랑상품권으로 결제시 추가 할인도 있다. 기존 보상방식을 대체하는 방식도 있다. △성실납세자, 우수시책 제안 주민, 유공주민이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 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걷기 챌린지, 탄소포인트제 참여자, 금연 성공자가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 상품권 결제시 추가 할인 등이다.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지역화폐는 이제 소비쿠폰을 벗어나 지역 경제+공동체 강화의 유용한 도구로 날개를 달 수 있을 것 같다.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상상력의 지역화폐 활성화 방안이 나오길 기다려 본다.
2024-07-17 | hrights | 조회: 191 | 추천: 2
이윤 / 경찰관 ‘라이투미(Lie to me)’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상대의 자세, 손짓, 표정 등으로 바로 거짓말을 밝혀 범죄사건을 해결한다. 보기에는 뭔가 그럴듯하지만, 사실 무협지에서 장풍 쏘는 것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어려운 일이다. 비언어적(nonverbal) 징후를 평가할 때는 평상시 행동습관과 비교해야 하고, 언어적 답변 내용의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해서, 분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드테크닉이 제시하는 거짓말의 비언어적 징후는 아래와 같다. (1) 자세 진실한 사람은 대화하는 동안 여러 다양한 자세를 대화 내용에 따라 적절하게 보여 주지만, 기만적인 사람은 최초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의미있는 변형을 절대 하지 않는다. 또 숨기는 것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무의식적 반응으로 의자에서 뒤로 깊이 기대거나, 발을 의자 밑으로 당겨 앉거나, 손을 허벅지나 엉덩이 밑으로 넣고 있는다. 기만적인 사람이 간혹 자세를 바꿀 때는 큰 동작으로 하며, 그 변화는 중요한 질문 중 또는 직후에 불편함을 털어버리듯이 일어난다. (2) 손 움직임 대화 중 손은 보통 무릎이나 허벅지에 고정되어 붙어있거나, 자신의 신체 여기저기를 만지거나, 몸에서 떨어져 움직인다. 고정되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세와 마찬가지로 매우 높은 거짓의 징후다. 손 움직임은 설명적 손짓과 적응적 손짓으로 구분되는데, 설명적 손짓은 진실한 사람과 관련 있고, 적응적 손짓은 기만적인 사람과 관련이 있다.   (가) 설명적 손짓 강하고 진지한 감정을 표현할 때 손은 그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움직임을 재연하는데 사용된다. 말하는 사람이 흥분하여 감정이 이입되고 진지하다면, 손은 그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해 몸에서 떨어져 다양하게 움직인다. 반면 거짓말하는 사람은 굳이 손을 움직여 거짓말과 연관시킴으로써 내적 긴장을 심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나) 적응적 손짓 적응적 손짓은 논의 중인 주제나 답변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적응적 손짓이 의미하는 바는 대화의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적응적 손짓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① 개인적 제스쳐 : 사람들은 긴장을 줄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버릇이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어떤 개인적 제스쳐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일반적인 개인적 제스쳐는 손을 꼭 쥐거나 문지르기, 손가락 꺾어 소리내기, 손가락으로 책상 두드리기, 발로 바닥 구르기, 긁기, 문지르기, 머리카락을 치거나 꼬기, 안경 고쳐 쓰거나 벗기 등이다.    ② 다듬기 제스쳐 :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상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므로 이미지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 다듬기 제스쳐를 하게 된다. 이런 특정 행동은 대답하기 직전이나 대답 중에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인 다듬기 제스쳐는 옷의 실밥을 뜯어내거나 먼지 털기, 옷매무새 바로잡기, 악세사리 고치기, 손톱 정리하기 등이다.    ③ 방어적 제스쳐 : 범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방어”한다. 말하는 중에 손이 입 주변에 닿아 있다면 입을 막고 싶은 마음을 반영한 방어적 제스쳐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한 유형은 대답을 하면서 눈 주변에 손을 대는 것이다. 이는 마치 피곤하여 두 눈을 부비거나, 한쪽 눈의 눈썹을 긁거나, 눈썹을 두드리는 것과 같은 형태다. 이 세 가지 손동작은 대답하는 동안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 데 대한 미안함 또는 눈을 가리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 (3) 시선 접촉 보통 범죄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을 받을 때, 또는 그에 대해 대답할 때 시선을 회피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므로, 그 사람의 평소 대화습관이 시선접촉을 유지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파악한 후 그와 비교할 것이 요구된다. 때로 기만적인 사람은 일부러 시선 접촉을 유지하기도 한다. 또 결백한 사람도 수사관과의 시선접촉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소 대화습관 및 질문, 답변의 맥락에서 시선접촉을 평가해야 한다. 지난 6. 21. 국회 법사위 입법청문회에 참석한 증인 중에도 자세나 손 움직임, 불필요한 답변, 회피반응(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등)에서 거짓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징후를 찾으면서 인터뷰나 청문회를 보면 내용에 더 집중하게 되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거짓탐지를 잘하려면 질문을 잘해야 하는데, 청문회를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과거 질문하는 직업에 있던 분들조차 아마추어로 보였다. 각종 청문회나 조사에 참여하는 사람을 위한 질문 훈련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07-03 | hrights | 조회: 272 | 추천: 5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일부 언론을 가리켜 “검찰의 애완견”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 받아서 열심히 왜곡·조작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쌍방울 그룹 대북송금 관련 사건의 보도에 대한 평가의 일환이었지요. 국민의힘은 말 할 것도 없고, 언론협업단체인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등도 앞다퉈서 성명서를 내며 비판하고 이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양문석 의원은 한술 더 떠 “그냥 보통 명사가 된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하시지 왜 그렇게 격조 높게 '애완견'이라고 해서 비난을 받는지 모를 일”이라고 가세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이 대표는 며칠 뒤 자신의 SNS를 통해 “시간 제약 등으로 일부 언론의 문제임을 좀 더 선명하게 표현하지 못해 언론 전체 비판으로 오해하게 했다면, 이는 저의 부족함 탓이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진은 쉬 가시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언론들도 이 대표를 사설, 기사 등으로 비판했고, 개혁신당에서 이 대표와 양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습니다. 정치적 논의의 틀을 바꿔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만큼 얼마나 오래 가기야 하겠습니까만 정치적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전공은 아니었지만 몇 권 들여다 본 언론학 관련 책은 일관되게 기자의 역할을 가리켜 ‘와치독’(watch dog)이라는 표현으로 일컬었습니다. 사회의 감시자로서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뜻이었겠죠. 기자의 역할과 책임에는 충분히 공감되지만 표현 자체에는 궁금함이 남았습니다. 왜 하필 언론학자들은 기자를 굳이 개에 비유했을까요. 요즘에야 개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처럼 느끼는 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사람을 개로 비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기 위한 일일 때가 많으니까요. 뭔가를 지키고 감시하는 역할이라면 그냥 경비원도 있고, 경찰, 군인 등도 있는데 이것은 실제적인 현실 직업군의 영역과 맞물리기에 비유적인 표현을 쓴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혼자 좀 그럴싸하게 한 해석은 우리 사회에서 기자가 개처럼 낮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라는 의도라고 생각하며 그냥 뭉개고 넘어갔습니다. 아무튼 개의 어떤 특성이 기자의 존재 혹은 존재론적 속성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을지 궁금했는데 말끔히 풀지 못했습니다. 신문 기자 생활을 시작하던 25년 전 초년병 시절 누군가 술자리에서 “기새님”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게 뭐냐고 물으니 ‘기자새×님’을 줄인 말이라 합니다. 기업 등의 홍보 관계자들끼리 하는 말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요. 면전에서야 “박 기자님, 이 기자님, 김 기자님” 등으로 깍듯이 부르던 이들이었지요. 이 직업군의 이들은 절대갑으로 관계 맺을 수밖에 없는 출입기자들로부터 받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이지요. 차마 ‘님’자를 빼지는 못하지만, 대신 중간에 ‘새×’를 넣어서 부르는 식이었겠지요. ‘기레기’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연예 관련 기사 댓글에서 가끔씩 등장하곤 했던 표현이었습니다. SNS 베끼기 기사나 취재 없는 ‘카더라 기사’ 등을 비판하는 댓글에 달렸지만 대중적인 용어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적으로 거의 모든 언론에 대해 공공연히 쓰이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좌우,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동의할 수 없는 기사를 쓴 기자를 비판할 때면 거의 빼먹지 않고 쓰이게 됐습니다. 실제로 조회수 경쟁에 내몰리며 조회수 획득에 이로울 법한 SNS, 인터넷 등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쓰는 기사는 더 이상 스포츠, 연예 관련 기사뿐 아니라 거의 모든 매체에서 목격할 수 있는 컨텐츠가 됐습니다. 자초한 측면이야 없진 않지만, 기자 입장으로서는 움찔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는, 혹은 스스로 자조하게 하는 멸칭임에 분명합니다.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호칭임 또한 분명합니다. 언론학에서는 최근 들어 기자의 역할을 분류하며,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자를 비판하기 위한 학술적인 용어로 ‘랩독’(lap dog)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와치독, 가드독 등으로 분류하며 나열했죠. 우리말로 번역하면 ‘무릎 위에 있는 개’, 즉 애완견인 셈이지요. 애완견은 주인이 주는 밥 먹고, 함께 산책하며 뛰놀고, 주인에게 재롱 부리며 사랑만 받는 존재이니 이는 언론에 바라는 사회적 역할이나 책무와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지독하게 모욕적인 비판이지만 엄연한 언론계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에, 또 학술적으로 통용된다는 이유로 이 자체로 논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 대표가 인용한 4년 전 동아일보의 외부 칼럼 ‘애완견이 넘치는 세상’에서 언론에 권력과 유착하지 않는 감시견의 역할을 주문할 때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8년 전 jtbc 손석희 앵커의 ‘랩독’ 발언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이 대표가 몹시 억울해하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랩독이라고 영어로 말 하지 않고 애완견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한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사법적 리스크로 죄어오는 데 대한 화풀이처럼 말한 탓이었을까요. 이번 논란을 보면서 여전히 씁쓸합니다. 언론인 현업단체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쐐기에나 쏘인 듯 발끈하며 일제히 성명서를 내는 것은 상황의 실체와 격에 맞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기자집단 내부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비판받을 대목에 대한 자정과 혁신을 위한 성찰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그저 ‘기새님’, ‘기×기’, ‘애완견’에 머물며 자성하지 않는 동료들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내부 비판하며 스스로 바뀌고 혁신할 때 비로소 다시 겨우 온전한 개, ‘감시견’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히 기자들의 맹성을 바랍니다.
2024-06-27 | hrights | 조회: 268 | 추천: 8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항명의 사전적 뜻은 “상사의 명령이나 통제에 따르지 않고 맞서서 반항한다”는 뜻이다. 하극상과 같은 개념이다. 공·사 어느 조직이든 상사에게 항명하는 하급자는 징계로 다스리는 것이 원칙이다. 때문에 형법에는 항명죄라는 죄목이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군조직에서만은 항명을 범죄로 규정하고 형벌로 다스린다. 군은 엄격한 규율, 명령과 복종을 핵심가치로 여기는 특수집단이기 때문이다.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을 거절한 혐의로 항명죄로 기소되어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이외에도 박대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허위사실을 주장하여 상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상관명예훼손죄로도 기소되어 있다. 대통령 격노라는 사실을 주장했다가 거짓말쟁이로 몰린 서글픈 세상이다). 다만 군에서도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고 예외 없이 항명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군형법 제44조에 의하면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경우에 항명죄가 성립한다. 상관의 명령이 정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복종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상관의 명령이 정당한 명령인지 여부가 죄의 성립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ㆍ성범죄사건들이 은폐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자 2021년 ‘군사법원법’이 개정되어 군인의 사망사고, 성범죄사건, 군인의 입대 전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권이 일반 경찰에게로 넘어갔다. 재판권도 일반 법원이 행사한다. 이에 따라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군사경찰은 신속히 초동수사를 실시하여 사망사고의 사실관계 및 책임자를 파악해 일정한 서식에 따라 경찰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군사경찰은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 군사경찰에 대한 군 지휘관의 지휘권 행사가 수사방해가 아니라는 맥락에서 제기되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에는 군사경찰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할 때 사용하는 ‘인지통보서’의 서식을 규정해 놓고 있는데, 이 서식에는 ‘피의자, 피의자의 죄명, 인지 경위, 범죄사실’을 적시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법령해석상 군사경찰이 사건을 경찰로 이첩하기 전 범죄사실 및 피의자를 파악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조사과정은 분명히 초동수사에 해당한다. 또 다른 주장은 군사경찰의 직무는 군사경찰이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어서 부대의 장은 지휘권 차원에서 정당하게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법 제5조는 군사경찰은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채상병 사건의 경우에는 해병대 사령관이 지휘·감독자이다. 하지만 동법 시행령 제7조는 군사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부대의 장은 군사경찰의 수사와 관련해서는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특별한 의무를 규정해 놓고 있다. 군사경찰은 경비ㆍ호송ㆍ대테러ㆍ질서 유지 등 다른 직무수행과 관련해서는 부대의 장의 지휘·감독을 받지만 수사와 관련해서는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대의 장이 군사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명백히 법령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정당한 명령이 될 수 없다. 해병대 군사경찰대장인 박정훈 대령의 책임하에 초동수사가 이루어지고 그때까지의 증거관계와 법리적 판단에 따라 내려진 수사결과를 함부로 뒤집거나 변경하는 방식의 해병대 사령관의 지휘권 행사는 군사경찰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것으로서 정당한 직무명령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 이첩을 보류하라는 군 지휘관의 명령도 정당한 명령이 될 수 없다. 국방부훈령인 ‘군사경찰범죄수사규칙’ 제21조는 "군사법경찰관은 수사과정에서 사법경찰관리 또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직무범위에 속하는 범죄를 먼저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 수사를 중지하고 군사경찰부대·수사부대(서)의 장의 지휘를 받아 해당 사법경찰관리 또는 특별사법경찰관리에게 이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군사경찰부대·수사부대의 장은 박정훈 대령이기 때문에 해병대 수사단 소속 군사법경찰관은 책임자인 박정훈 대령의 지휘를 받아 이첩하는 것이 맞다. 이첩에 관해서는 해병대의 군사경찰부대·수사부대의 장인 박정훈 대령이 최종 결재권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령의 해석상 박정훈 대령이 국방장관ㆍ해병대 사령관에게 이첩 (예정) 보고를 한 것은 군사법원법 및 관련 법령에 따른 행위에 관한 것으로서 참고보고 내지 인지보고의 성격을 갖는 것이지 승인을 받기 위한 결심형 보고는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7조는 군사경찰이 사건을 인지하였을 경우 경찰로 “지체 없이 이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채상병이 사망한 날이 2023년 7월 19일, 그 후 박정훈 대령이 7월 30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에게 ‘임성근 사단장 포함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했고 장관이 결재했으며 8월 2일 이첩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장관의 결재 이후 박정훈 대령에게 이첩 보류 명령이 내려졌는데, 이것은 이첩을 지체하라는 지시로서 사건 인지 후 “지체 없이 이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에 어긋나는 위법한 명령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해병대 군사경찰의 수사결과를 변경하거나 이첩을 보류하도록 지시한 군 상관의 명령은 법령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정당한 명령이 될 수 없고, 이러한 명령에 불복종한 박정훈 대령의 행위는 항명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수사의 독립성ㆍ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항명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덧붙여 경찰에서 사건기록의 회수도 그 사건을 이첩한 해병대 수사단이나 군사경찰이 아닌 국방부 검찰단이 하였는데, 국방부 검찰단은 채상병 사건에 대한 수사권도 없고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없기 때문에 명백한 월권행위인 동시에 위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후일 특검이 도입되면 국방부 검찰단 소속 위법행위자에 대한 엄정한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법리적 판단과는 별개로 박정훈 대령의 정당한 항명은 매우 높은 역사적ㆍ시대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종래 군수사권을 행사하던 군사경찰(옛 헌병)은 편파ㆍ불공정 수사로 악명이 높았다. 군대 내 사고를 덮기에 급급했던 군지휘관들의 충직한 수하 노릇을 하면서 수많은 군대 내 사건ㆍ사고들을 부실 수사하고 덮음으로써 무수히 많은 의문사 사건을 만들어 낸 주역이었다. 권력의 편에 섰던 군사경찰의 비겁한 작태가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군대 내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범죄를 양산했으며 군대 내 비리ㆍ부패를 조장해 왔다. 하지만 현재도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며 군수사권을 남용했던 군사경찰의 한심한 작태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번 채상병 사건수사에 개입한 군 지휘관들이나 대통령실(*현재는 대통령의 직접 개입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도 대수롭지 않게 박정훈 대령에게 초동수사 결과의 변경과 이첩 보류를 지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 수사책임자인 박정훈 대령은 군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는 것을 거부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도 소신을 지켰다. 박정훈 대령의 정당한 항명이 없었다면 이번 사건도 과거의 사례들처럼 중한 책임을 져야 할 지휘관은 빠져나가고 현장 지휘관만 문책한 채 은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훈 대령의 정당한 항명이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군사경찰은 지금까지의 불명예를 떨쳐버리고 법과 증거, 양심에 따라 수사하는 명예로운 전통과 관행을 새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앞으로는 군지휘관들이 함부로 군사경찰의 수사에 개입하여 군대 내 사건ㆍ사고들을 왜곡ㆍ은폐하는 작태들을 벌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병사들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지휘관들은 쉽게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시발점을 박정훈 대령이 만들어 낸 것이다. 박정훈의 항명은 큰 칭송을 받아야 할 값진 공익신고이자 내부고발이다. 손쉬운 출세의 길을 버리고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 박정훈 대령의 용기와 참 군인정신에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박정훈 대령을 응원하는 5천만 국민들, 진정한 해병대 정신을 지키려는 수많은 해병대 예비역들, 그리고 이 땅에 아직은 살아 있다고 믿는 법의 정신이 박정훈 대령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 그림: 경향신문 반면 윤석열의 항명은 어떠한가? 대통령 윤석열은 행정권력의 최고 정점에 위치한 자이고 군통수권자이기 때문에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항명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일지라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지엄한 명령과 헌법의 명령에 항명할 수는 없다. 지난 5월 24일 21대 국회 마지막 시점에서 윤석열은 채상병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해 해병대 군사경찰의 수사에 부당 개입하고 또한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범인도피죄를 범한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국민들의 67%가 찬성(*반대는 19%에 불과했다)하였던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 및 가족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헌법상 거부권 행사의 내재적 한계를 일탈한 헌법위반을 저질렀다. 특검을 통해 채상병 사망사건의 책임자를 밝히고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를 방해한 권력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라는 국민과 헌법의 지엄한 명령에 불복종한 윤석열이야 말로 항명죄로 처벌을 받아야 할 당사자이다. 항명죄를 범한 윤석열 대통령은 반드시 탄핵되어야 하고 형사법정에 서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박정훈의 항명과 윤석열의 항명. 역사의 진보와 퇴보의 갈림길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의 행태.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국민들의 평가, 역사의 평가는 자명하지 않은가.
2024-06-24 | hrights | 조회: 628 | 추천: 11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말을 안 듣는다고 비판하고, 대통령은 국민이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배신감을 느낀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이겨야 마땅하다. 문제는 어쨌든 그 국민이 자기의 말을 안 듣는 대통령을 뽑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당시 대선 토론에 나서면서 손바닥에 임금 ‘王’ 자를 새기고 나온 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전제 군주제에서 왕은 원칙상 백성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백성이 왕의 말을 받들어 섬겨야 한다. 다소 억지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민주국가의 원리에 따라 법적-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랍시고 뽑았으나, ‘王’ 자를 손바닥에 새기고 나와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왕이 된다고 여긴 자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암묵적-실질적으로는 왕을 뽑은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주권을 아예 양도하고 왕에 지배되는 백성의 지위를 자임한 것이다. 그러니 인제 와서 백성이 왕이 자기의 말을 안 듣는다고 비판하는 꼴이 되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1%까지 내려앉았으니, 대선 때 그를 지지해 왕인 대통령을 만들면서 스스로 백성이기를 자임했던 국민 48.56% 중 27.56%의 국민이 이제 백성이기를 자임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국민으로 재생하겠다고 의사를 표현하는 셈이다. 22대 총선에서 대통령을 옹위하는 정당인 ‘국민의 힘’은 국회의원 300석 중 108석을 확보했다. 의석수만으로 단순 계산을 해보니, 전체적으로 36%의 국민이 지지한 셈이다. 그런데 총선 투표율이 67%이니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의 힘’을 지지한 국민은 24% 정도다. 공교롭게도 최근 대통령 국정 지지율 21%와 거의 같다. 총선 때 야권에서 ‘정권 심판’을 기치로 내걸고, ‘이채양명주’ 부정부패 무능의 비리를 그 근거로 내세웠다. 어디 그뿐인가? 거론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갖가지 문제가 있지만 ‘이채양명주’에 포함되지 않은 사안 중 가장 큰 문제는 친일과 평화 파괴의 통치 행위다. 우선 한미일 군사동맹의 선언에 적극 나섬으로써 일본군인 자위대가 한반도 유사시 자동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암암리에 열었다. 강제징용 배상에 대해 우리의 대법원이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는데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제3자 변제 해법’ 운운하면서 우리가 기부금을 모아 보상한다는 식의 고집을 전혀 꺾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우리 국민이 적대 감정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다. 그런 일본이 핵 오염 폐수를 바다에 방출하려 할 때, 국민의 세금을 악용하여 그래도 문제가 없다는 선전을 일삼았다. 국회의원이란 자가 충견인 양 그를 따라다니면서 바닷물고기를 담은 수족관의 물을 마시기까지 한 걸 떠올리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게다가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강요하는 일본 정부에 자국 기업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가져가려는 일본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자 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지나칠 수 없다. 유튜브 방송인 ‘겸손은 힘들다 뉴스 공장’을 이끄는 김어준 씨는 대통령실에 간첩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반복해서 말하면서 간첩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간첩이 있다면, 윤석열이 바로 간첩이다. 도대체 그는 성장기에 언제 어떻게 어떤 직간접의 교육을 받았기에 그런 기묘한 친일 감정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을까? 막스 베버와 함께 현대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뒤르켕은 형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범죄를 설명하면서, 특정한 행동이 범죄이기 때문에 공동의식을 손상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공동의식을 손상하기 때문에 범죄적 행동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범죄로 분류하는 행동 중 하나는 그 행동이 행위자와 집단 사이에 매우 심각한 불일치를 나타내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행동이 공동의식의 기관을 손상하는 경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때 공동의식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회가 역사를 통해 경험한 모든 종류의 상황에 관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뒤르켕의 주장에 따르면, 대통령 윤석열은 오랜 역사적 산물인, 일본에 대한 우리의 공동의식과 그에 따른 집단감정을 현저히 위반함으로써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뒤르켕은 형벌의 진정한 기능은 집단의식의 모든 활력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적 결속력을 손상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령 윤석열의 친일과 연동된다고 할 수 있는 게 남북 관계를 짐짓 경색으로 치닫도록 하는 것이다. 취임 때부터 자신이 마치 이른바 반공하는 자유 진영의 지도자라도 되는 듯 ‘자유’라는 말을 아무 맥락 없이 수시로 내뱉으면서 문재인 정권의 유일한 치적이라 할 수 있는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을 뿌리부터 제거해 버리고자 한다. 평화를 위한 대화를 일절 끊어버리고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전면 중지하고 전군을 비상대기하도록 하는 등 강 대 강의 태도를 강화하면서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몰아간다. 그런데 최종건 전 외무부 차관의 말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의 최고 치적이라 할 수 있는 남북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으로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점진적으로 비핵화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미국의 전술적인 비협조로 결렬되고 말았다. 그런데 일본의 총리 아베가 남북 및 북미 평화 관계의 진전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와 관련해 아베 정권은 미국 조야에 북미 간 그리고 한미 간 불신을 조장함으로써 방해 공작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베에 충실한 현 일본 총리 기시다가 이러한 일본의 남북 및 북미 간 평화 프로젝트를 방해할 것은 당연하다. 친일의 경향이 농후한 대통령 윤석열과 기시다의 알 수 없는 밀월 관계를 고려한다면, 윤석열의 대북 반평화 강경 노선의 강화 역시 친일의 변수가 작동한 결과라고 보지 않으란 법이 없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이른바 ‘이채양명주’의 부정부패를 중심으로 그리고 ‘대파 파동’을 상징으로 한 민생의 추락을 중심으로 정권 심판론이 선거 민심을 파고들어 야권이 200석 확보에 못 미쳐 ‘아쉬운’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친일 행각이나 이념 갈등을 조장하면서 남북 평화를 파괴한 것은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다. 국가적인 사안들이 어느 하나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 내지는 상호 부작용을 낳지 않는 건 없지만, 친일 일변도로 볼 수밖에 없는 대일 굴종 외교와 무엇보다 남북의 평화를 완전히 파괴하여 불가역적으로 만들어 국민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게 만드는 건 제아무리 합법적으로 주어진 대통령의 권한을 자의적으로 발휘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공동체의 도덕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큰 죄악이다. 더군다나, 친일과 평화의 파괴가 배후에서 암암리에 연결되어 작동한다는 게 진정 사실이라면, 그 죄악의 정도는 훨씬 더 심각하다 할 것이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을 위한 정치적인 전략 전술로써 직권 남용에 해당함으로써 헌법 정신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이 날 수 있는 ‘대통령에 의한 채 해병 수사 외압’ 사건을 특별히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 60% 이상이 천공이란 해괴한 작자가 대통령의 국사에 개입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엄중히 여겨 대통령실 이전을 비롯하여 R&D 예산의 급작스러운 삭감이나 의대 정원 조정에 3:7 우주 법칙 운운하는 등에 관한 국정조사와 특검법 발휘 등을 통해 그 분명한 사실을 밝혀낸다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과 같은 반헌법적인 행위에서 탄핵의 요건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위법에서 탄핵의 요건을 찾아 탄핵함으로써 형식적 합법성을 내세워 국민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공동체의 도덕 감정을 현저히 손상하는 대통령의 행위를 늦게나마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이다.
2024-06-11 | hrights | 조회: 352 | 추천: 4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드르륵, 드르륵.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린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다. 누구지,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나야.”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상대방은 잘 아는 것처럼 구는데, 나는 누군지 영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누구, 신지?” “어휴, 나 몰라, 태준이.” “태준이, 글쎄…. 아, 그 태준이라구?” “응,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십여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 세월 속에 묻힌 기억 속의 한 친구를 끄집어냈다. 이제는 장년의 아저씨가 되었겠네. 새까만 얼굴에 세상 바쁠 것 없는 느긋한 말투의 주인공. “아, 그래, 태준이구나. 어휴 이게 얼마 만이냐?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세상에나 이렇게도 소식을 듣게 되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운동에 푹 빠져 있던 태준이는 자신의 삶을 단련하였다. 직장인으로서 운동을 하려니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모자랐다. 부족한 체력을 메우려고 새벽녘으로는 달리기를 하고, 부족한 운동 시간을 채우려고 잠을 줄였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고, 식단도 조절하였다. 기술적인 걸 보강하려니 책을 보는 시간도 많아졌고 잘하는 친구들한테 의견도 구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스스로 하루 일과표를 짜고 거기에 맞춰 성실하게 생활을 해나갔다. 태준이는 세상에 태어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만난 행운을 지키려고 마음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하루 일과는 마치 수도승의 기도 노동 명상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절도 있고 규칙적이었다. 그때 가끔은 “네가 무슨 수도승이라구~” 하면서 놀리기도 하였다. 그런 태준이에게 부족한 게 바로 재능이었다. 천부적인 재능, 노력이 재능을 뛰어넘는다는 건 정말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재능이 모자란 짝사랑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재능이 있었으면 태준이도 다른 친구들처럼 전업을 했을까?) 그런데 내가 태준이를 보면서 가슴을 탁 친 게 있었다. 진짜로 좋아하는 걸 할 때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준이는 그냥 그 운동이 진짜로 좋았던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어서 진심을 다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기 때문에 주위에서 누군가 비교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마음 다치지 않고 행복하게 해나갈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태준이에게 소리 없는 박수를 치곤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하려고 자신을 단련하고, 그래서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삶이 얼마나 될까. 경쟁으로 우월감으로 가짜 행복을 행복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 오늘, 내 삶의 뒤안에 있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오늘은, 뒤뚱거리며 걸어온 나의 발자국인 것을…. 또다시 봄이다. 그런 봄이 건너가고 있다. 세월을 건너뛰어 반백의 모습을 하고 있을 옛 친구를 만나려고 한다. 우리의 악수에는 세월의 무게가 얼마나 얹히게 될지, 몹시 기대된다.
2024-05-29 | hrights | 조회: 349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