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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기념관도 좋지만...' 박정기 옹 통해서 본 남영동분실(시민의신문, 200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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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ights
작성일
2017-06-29 16:16
조회
380

[경찰개혁] 박정기 옹 통한 되새김질


“한국 민주화운동의 성과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독재정권을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만큼 이뤄낸 것은 민초들의 힘이자 우리 사회의 자산이지요. 앞으로 들어설 인권기념관이 한국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경찰, 공무원, 시민운동가, 자라나는 학생들 모두 이곳을 찾아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되새기기 바랍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이던 박종철군이 고문 끝에 숨지고 18년이 흘렀다. 지난 4일 남영동 보안분실 509호 조사실을 찾은 박정기 옹은 보자기에 싸온 아들의 영정과 꽃을 세면대에 올려 놓으며 회한에 잠겼다. 그로서는 지난 2001년 고 박종철군 14주기 위령제 이후 4년만이자 두 번째 방문이다.

그는 “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은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경찰이 잘못을 분명하게 국민에게 사죄하고 기억하고 반성하는 공간으로 만드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지금도 경찰의 의도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비롯해 의견수렴을 많이 해서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나처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지요.”


<시민의신문> 주선으로 남영동 보안분실 509호 조사실을 다시 찾은 박 옹은 “종철이는 납치당해 살해당한 것”이라며 “그 때 심정을 회상하려니 힘들고 어렵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종철이는 우리 집의 희망이자 민중의 희망이었다”며 “고문으로 종철이가 죽고 나서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스러워 했다.

“고문을 당한 사람에게는 ‘고’자 얘기도 꺼내지 않는 법입니다. 저는 독재정권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날의 아픔을 어찌 꿈에라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이 한두명이겠습니까. 그들의 가족들이 겪은 고통이 저보다 결코 작지 않겠지요. 꽃다운 젊은이였던 내 아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아픔이 나에게 왔습니다. 세상의 끈이 끊기고 홀로 남겨진 심정을 어디에 비하겠습니까. 질긴게 사람 목숨이라 죽지 못해 사는 게 원통할 뿐이지요.”

박 옹의 인생을 굳이 나눈다면 1987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종철이가 떠난 이후 잠자는 것 말고는 민주화운동만 생각했다”는 박 옹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활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지켰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살아있는 가족들이 대신 해야겠다 생각했지요.” 박 옹은 언론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는 “종철이 얼굴에 먹칠이라도 하게 될까 항상 조심스럽다”며 “기자들은 자꾸 나에게 묻지만 기자들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활짝 열린 남영동 보안분실 철문으로 들어오니 감회가 새롭다”는 박 옹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그만큼 이뤄졌다는 걸 상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에도 한달에 한두번씩 남영동 보안분실을 찾곤 했습니다. 애절한 심정으로 굳게 닫힌 정문을 바라보기만 했지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갈 때는 마치 자석처럼 이 곳으로 오게 되더라구요. 나중에는 정문을 지키는 의경들도 제 얼굴을 알 정도였지요.” 박 옹은 “20년 전에도 남영동 보안분실 옆을 지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 건물이 뭘 하는 곳인지 짐작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 옹은 이날 “경찰은 509호에서 아들이 죽었다고 하지만 이곳은 내 아들이 죽은 곳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들의 사체에선 전기고문 흔적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좁은 조사실에서 어떻게 전기고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적당한 선에서 덮어버리려고 509호에서 물고문을 했다고 축소 은폐한 겁니다.” 경찰청이 남영동 보안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지만 박 옹의 가슴에 쌓인 경찰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깊은 듯 했다.

강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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