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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대사가 말하는 레바논 사태(프로메테우스, 06.08.2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30 10:52
조회
262
[프로메테우스 2006-08-28 09:15]    go_newspaper.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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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caption.gif△ 후세인 람말 주한 레바논 대사 ⓒ 프로메테우스 최승덕
헤즈볼라 무장해제는 "시기상조", 한국군 파병은 "환영"

[프로메테우스 최승덕 기자]
지난 23일 인권실천시민연대의 주최로 후세인 람말 주한 레바논 대사의 강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람말 대사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갈등의 역사와 이번 사태의 경과에 대해 풀어놨다. 람말 대사는 무고한 레바논 시민과 레바논의 민간시설을 공격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레바논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프로메테우스>는 강연 중 일부를 정리했다. - 편집자 주 -
레바논은 '중동의 파리'

레바논은 한국의 경기도 면적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이다. 북쪽과 동쪽으로 시리아와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1948년 이전까지 팔레스타인이었던 이스라엘과 접해 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여러 문명의 교차로이며 기독교, 이슬람 외 여러 소수 종교 집단을 포함해 17개의 종교 집단이 모여 살고 있다. 예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주요 관문이었으면 동양과 서양 문화의 독특한 조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최근, 레바논은 그 지역에서 번영을 누렸으며 레바논 경제와 기반시설을 복구하기 위한 작업이 널리 시행되어 왔다. 베이루트 복구 작업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레바논의 리조트들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레바논은 '중동의 파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국 대부분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안정을 되찾은 시기에 지난 7월 12일 이스라엘-헤즈볼라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최근 UN 안전 보장 이사회에 의해 발표된 결의안 1701이 채택되면서 정전된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로 굉장한 군사화 민간인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사회 기반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왔으며 대량의 난민들이 발생했다.

레바논-이스라엘 대립의 역사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대립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스라엘이 수립되어 많은 팔레스타인들이 레바논으로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1948년, 1967년, 그리고 1973년 등 세 번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생하면서 11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웃 국가 레바논으로 이주해 오늘날에는 그 수가 35만 명에 이른다.

아랍-이스라엘간의 충돌은 약 85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정치적 긴장과 끝임 없는 전쟁 상태로 이어졌으며 그 시작은 벨포르(Belfor)  선언은 당시 영국 외무부 장관 벨포르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팔레스타인 내 유대 민족 국가의 수립을 약속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 정부는 볼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적극 제공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곧 아랍-이스라엘간의 충돌은 유대 민족국가로서의 근대 이스라엘의 수립과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와 관련해 일어난 충돌이었다.

충돌 상황 속에 발생했던 대표적인 전쟁들은 레바논이 간접적으로 참가했던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1967년 6일 전쟁, 그리고 1973년 Yom Kippur 전쟁이다.

한편, 이스라엘과 레바논, 두 국가간 대립으로 발생한 전쟁들로는 1978년 리타니 전쟁, 1982년 레바논 전쟁, 1996년 카나 대량 학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일어난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사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으며 그 외에 여러 작은 충돌들도 있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간 대립에 있어서 1978년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레바논을 침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1968년부터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습격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지역을 기지로 사용해 오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침입했던 것으로 이후, 리타니 작전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UN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425를 채택해 레바논 영토에서 이스라엘군의 철수, 팔레스타인군의 철수, 레바논 남부 지역에 평화유지군 배치를 요구했다. 처음으로 레바논 내에 UN 임시군이 배치됐다.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남부 레바논 군에게 레바논 남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이스라엘 지지군이 머무르면서 팔레스타인 저항군 역시 남부에서 이스라엘에게 대적하기 위해 머무르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평화 기구의 군대는 이후 계속해서 레바논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스라엘은 결의안 425를 거부하고 1982년 다시 한번 레바논을 침입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것이 바로 '갈리아의 평화 작전'이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역시 레바논 남부지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에 공급을 하고, 나아가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까지 영역을 넓혀 그곳에서 3.000명의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브라와 샤틸라 대량학살이 일어나게 됐다. 이때 팔레스타인 평화 기구 본부가 튀니지로 옮겨졌다.

헤즈볼라는 테러단체가 아니다

이 때 이스라엘군의 계속되는 침입에 맞서기 위해 레바논 남부출신들로 이루어진 저항 세력인 헤즈볼라가 구성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2000년 이스라엘 측의 공식 철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다. 1982년 팔레스타인군의 철수 이후, 헤즈볼라는 본격적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쫓아내기 위해 대규모 저항 작전을 펼쳤다.

1996년, 이스라엘은 또 헤즈볼라를 소탕하기 위해 '분노의 포도 작전'을 펼쳤고 이 작전에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카나 마을에 배치해 있던 UN군 기지를 공격했다. 당시 기지에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의 전투를 피해 피신해 있던 약 800명의 레바논 시민들 중 120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인 70명이 어린이였다. 이 사건이 바로 1996년 카나 대량학살이었다.

200년 5월, 매일 헤즈볼라의 공격을 받아오던 이스라엘군은 마침내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철수가 이루어진 이스라엘은 여전히 샤바팜스를 점령하고 있고 지뢰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넘겨주지 않고 있으며 포로 석방을 거부해 오고 있다.

비록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테러 단체로 여겨지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명백한 저항세력으로 레바논 남부 사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레바논 내의 최대 종교 집단이면서 인정받은 정치 세력이기도 하다. 현재 14명의 의원들이 있으며 2명의 장관이 레바논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2000년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 레바논 뿐 아니라 아랍과 이슬람 사회에서 더욱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국제법 위반

지난 7월 12일 아침,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무장 차량들이 UN이 지정한 '블루 라인'을 넘어 온 것에 대응해 맞서 싸웠다. 이 사고로 이스라엘 병사 8명이 숨지고 포로 교환을 목적으로 이스라엘 병사 2명이 납치됐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레바논 포로 석방을 거부하고 대신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레바논 대부분의 기반 시설들을 파괴했다. 레바논 사회 기반 시설, 헤즈볼라 시설들, 민간인들에 대한 군사 작전으로 1,287명의 민간인과 병사들이 숨졌다. 이 통계는 여전히 잔해들 속에 묻혀 있는 시신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외 최소 5,000명이 부상당했으며 10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북부지역으로 대피했다.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200㎦에 이르는 지역을 공격해 16,000-30,000개의 아파트와 레바논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베이루트 국제공항이 파괴됐다. 87개의 다리와 도시와 마을들을 잇는 96개의 도로들, 학교와 수많은 공공 시설들이 파괴됐다. 우유와 직물 공장들을 포함해 300개의 공장들뿐만 아니라 2,000㎦에 이리는 레바논 남부 지방의 모든 마을들이 사라졌다.

이스라엘 공격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틀림없이 7월 30일 발생했던 카나 대량학살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군은 다른 마을로부터 가족들이 피신해 있던 한 아파트 건물을 공격했다. 이 사고로 55명이 사망했고 그 중 대부분이 어린이였다. 어린이 외 여성들과 노인들도 대량학살의 희생자가 되었다. 카나는 이미 지난 1996년 발생한 학살극으로 기억되는 마을이다.

UN 안전 보장 이사회는 카나 폭격에 대한 충격과 비통함을 나타내고 15개 회원국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협정을 통해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즉각 휴전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와 영국의 반대로 또 다시 휴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헤즈볼라의 초기 공격은 명백히 이스라엘 군사기지의 병사들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했다. 헤즈볼라 공격으로 119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숨졌고 670명이 부상당한 반면에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1150 이상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레바논 측 사망자 중 대부분이 2개월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였고 그 외 여성과 노인들도 많이 숨졌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뿐 아니라 레바논 전체를 위협하고 파괴시키는데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레바논 영토와 기반시설을 파괴시킨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들은 UN 헌장, 국제법과 국제 인도주의 법규범들을 위반할 뿐 아니라 명백한 인권 침해 행위들이다.

'영구적 정전'이 필요하다

7월 12일 시작해 레바논은 34일리라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강력한 공격으로 인해 고통받아왔으며, 마침내 8월 14일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휴전협상이 이루어진 가운데, 이스라엘은 또 다시 총격을 가해 헤즈볼라 단원 3명을 죽였다. 이스라엘 측은 그들이 위협적이라 판단해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안한 휴전에 돌입한 가운데,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상황을 '영구적인 정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 정전협상을 통해 포로 교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철수가 단행되어야 할 것이며 지뢰 지도들을 이스라엘로부터 넘겨받아야 할 것이다.

지난 2002년 열린 아랍 정상회담에서 레바논을 포함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에서 물러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을 받아들이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준다면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이런 조건들이 모두 성립이 된다면 분명 이스라엘과 레바논, 나아가 아랍 국가간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1문1답] 헤즈볼라 무장해제는 "시기상조", 한국군 파병은 "환영"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에서 람말 대사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지 않는 한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는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람말 대사는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하고 포로교환이 이루어지면 이스라엘과 평화를 맺을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평화유지군 파병에 대해서는 환영한다고 밝혔다.

- 이번 사태를 발생시킨 역사적 배경은?

1947년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국가가 양립한다는 합의가 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했다. 이스라엘이 모든 아랍 국가 영토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됐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4번째 군사력의 강대국이다. 아랍국가들이 상대하기가 힘들다.

2002년도 아랍 정상회담에서 모든 아랍국가는 이스라엘과 평화를 원한다는 의견을 내세우며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철수와 팔레스타인 국가 건립을 요구했다. 받아들인다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스라엘이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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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caption.gif△ 강연을 하고 있는 람말 대사 ⓒ 프로메테우스 최승덕
중동은 3가지 지점에서 중요하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등 세 종교가 존재하는 지역이다. 또한 석유가 많은 지역이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관문이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 전체를 점령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1993년 중동의 평화로드맵이 그려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지도자는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로 서명했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돌려주고 그 안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나아가 독립국가를 창설한다는 것이다. 그 조건으로 모든 국가는 이스라엘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샤론 정부 이후 이 안은 백지화됐다.

- 국제사회가 레바논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화유지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도 파병한다고 하는데.

유엔이 과거에 비해서 힘이 약해져서 한 나라의 슈퍼 파워에 당하지 못하는 모습인데 유엔의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 28년 동안 평화유지군이 주둔하는데 레바논 입장은 주둔함으로써 안정을 찾을 수 잇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평화유지군 파병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 헤즈볼라 무장해제에 대한 입장은? UN결의안은 완충 지역을 레바논 남부지역에 설정하도록 했는데 불만은 없는가?

이번 결의안이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의견을 똑같이 반영했다고 본다. 레바논의 역사적 승리라고 할 수 있지만 양국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완충지대에 대해선 만족하지 않지만 UN결의안을 존중한다.

헤즈볼라는 저항세력으로서 이스라엘이 공격을 중지하지 않는 한 무장해제를 해서는 안 된다.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는 시기상조다. 이스라엘의 공격중지와 철수라는 조건이 충족된 이후 무장해제를 해야 한다.

- 레바논 사태와 관련해 미국의 대 중동정책에 대해 말해달라.

대답하지 않겠다.

- 이번 사태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전쟁이었다. 주권국가 레바논의 군대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스라엘은 69년 이후 남부지역에 군인이 주둔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남부지역엔 군대가 없었다. 82년 그 대신 싸우기 위해 헤즈볼라라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이후 남부지역은 헤즈볼라가 장악했다.

지금까지 피해상황을 봤을 때는 레바논군도 30명이 죽고 기지도 피해를 봤다. 따라서 레바논군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3만5000명에 불과한 병사가 있으며 이스라엘군에 상대가 안 되는 군대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본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50만 군대를 갖고 있다. 레바논군으론 베이루트 치안도 쉽지 않다. 핵을 가진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나마 헤즈볼라가 저항하므로 버티는 것이다. 우리 군은 절대적 열세가 있다.

- 왜 군대을 더 양성해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지 않나

43년 독립할 때까지 레바논은 평화로운 민족으로서 군대가 필요 없었다. 지금 군대도 국력과 인구에 비해 과도하다. 1만 5천명 정도의 군대가 적절하다. 역사적 경험으로 군대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67년 갑자기 쳐들어와서 이집트와 요르단을 다 이겼다. 제주도 만한 국가가 이들과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작은 정규군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맞서 싸울 수는 없다, 남부에서의 헤즈볼라 저항이 더 효율적인 투쟁 방법이다.

- 이스라엘의 공격은 헤즈볼라가 있는 남부 군사시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민간시설과 사회기반시설 파괴한 목적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다섯 번에 걸쳐서 레바논을 공격했다.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이 해왔다. 관광산업이 발전하는 레바논을 경쟁국가로 레바논을 보고 있기 때문에 레바논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한다.

(이에 대해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헤즈볼라를 레바논 사회로부터 분리·차단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레바논의 정치적 주도세력은 기독교인이다. 레바논 내전은 다양한 세력의 정치적 분점에 의해 봉합됐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다른 종교세력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서 레바논 전체를 초토화시켰다는 것이다.)

- 레바논은 어떻게 17개나 되는 종파간의 내전을 종식하고 하나의 국가로 갈 수 있었는지

내전에 지친 국민들이 하나의 국가 통일된 공동체라는 절대 절명의 기치 아래서 권력 분점을 통해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다. 그래서 2000년 7월 내전이 끝나고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 레바논 정부가 국제사회와 이스라엘을 향해서 요구하는 것은?

현재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은 남부지역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영토를 계속 침입해왔다. 이를 중단한다면 이스라엘과 평화를 맺을 의지가 있다. 또한 포로교환도 이루어져야 한다.

- 헤즈볼라가 계속 이스라엘 파괴를 공언하며 국경에서 공격을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대응은 정당한 것 아닌가?

헤브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 파괴를 주장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남부 영토를 강제적으로 점령하고 있고 반환되면 저항의 목표도 사라질 것이다. 철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후 헤즈볼라는 저항조직에서 순수한 정치조직으로 돌아갈 것이다.

레바논에 탱크를 주둔하고 모든 감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항을 포기하겠는가

- 레바논은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는 것이 이스라엘에 맞서는 것이 효율적일 텐데.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도 지리적 조건으로 연대가 안 된다. 이렇게 어려운데 팔레스타인까지 끌어들여서 연대하기는 힘들다.
최승덕 기자(rhyzomer@promethe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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