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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65호] 산에게 길을 묻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03
조회
384


한상봉/ 농부, 예술심리치료사


san02.jpg  지난 한 주일 동안은 나무와 씨름을 하였지요. 보일러 없이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 겨울을 나야 하는 산골생활이기에 땔감을 해오고, 장작을 패고 가지런히 쌓아놓는 일이 요즘 주된 과업입니다. 마침 아랫동네 어른이 간벌(間伐)을 하는 바람에 나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부쩍 산마다 나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아마도 기름값이 오른 탓일 겁니다. 기름보일러를 화목보일러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다들 경쟁심이 발동하는지 예년보다 더 많은 땔감을 얻기 위하여 야단입니다.
 때때로 숲속에서 간벌한 나무를 주워오거나 쓰러진 나무를 걷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땔감을 위해 남몰래 멀쩡한 생나무를 베어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걸 보면서 생각합니다. 산골에 들어와 산다는 것이 그렇게 생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지요. 산골은 본래 짐승들이 살던 곳인데, 시골 인구가 많을 때는 먹고 살기 위해, 화전이라도 일구려고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 살았던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부분 시골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그 자리에 이른바 ‘생태주의’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산다는 것이지요.
 저희 무주 광대정 마을의 경우에도 처음에 귀농자들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멧돼지며 고라니들이 다시 숲속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녀석들이 추수 때면 어김없이 내려와 농작물을 망치곤 합니다. 본래 그네들의 보금자리였던 땅의 일부를 빌려쓰고 있는 처지이고 보면, 그 정도 손해는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귀농자들이 재래식 구들을 놓고 땔감을 구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숲의 나무를 벨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산골에 귀농하면서 ‘생태주의’를 함부로 말하는 것은 쑥스러운 노릇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실상 한 가족이 한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면 1톤 화물차로 3대 정도 분량의 나무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정도 땔감을 구하려면 사람도 고생을 많이 해야 하지만, 사람을 위해 제 몸을 내어놓아야 하는 나무들 입장에선 억울한 느낌이 들만도 합니다.

 그나마 타협책이라면, 결국 산골에 살려면 좀 춥게 살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게 또한 이기적인 사람의 마음입니다. 당장에 아이들이 추워하고, 코에 콧물을 달고 사는 걸 보면, 아비된 자로서 분명한 난방 대책을 세워야 하는 까닭입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산골에 살면서 자연이 주는 은혜를 몸으로 느끼고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은 사실인가 봅니다. 해가 산등성이로 꼴딱 넘어가는 순간부터 산바람이 거세지고, 체감온도는 재빨리 내려가기 때문에 정말 햇빛의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나무’가 ‘관세음보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작 한 다발이 온밤 내내 구들을 데우고 사람에게 온기를 보시해 주는 까닭입니다. 밤나무는 속살이 쪽 고른 편이라 잘 쪼개지고, 참나무는 육질이 단단해서 오래 타고 불땀이 좋습니다.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길이 닿을 때마다 탁탁 소리를 내며 몸을 붉게 달구는 나무를 보면 가슴 한편이 벌써 따뜻해집니다.

 불문을 닫아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세상에 어둠이 자욱하게 깔리고 바람은 찬데 하늘엔 별이 수정처럼 빛을 내고 걸립니다. 방에선 엄마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바람이 어깨를 감싸며 이제들 하루를 접고 쉬라고 떠미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작은 죄 지었거든 덮어두고, 작은 사랑 나누었으면 묻어두고 그만 쉬라고 채근합니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한상봉님은 전북 무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좋은 글도 쓰는 분입니다. 앞으로 사람 향기 나는 글로 이 지면을 채워주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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