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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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연구원),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행정사),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홍세화/ 대학생  월요일 아침 아홉시, 대학 동기들이 있는 단톡방이 시끄럽다. 방학 중에는 아침부터 단체 톡방이 활성화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일이 잦아졌다.  ‘아 상한가다. 저번 주에 추매했어야 했는데 못했네…’, ‘예약 매도해두는 거 깜빡했다 망했다…’, ‘이번에 알바비 들어와서 예수금 두둑이 넣어둠…’ 등등 아직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젠 20대 초중반의 청년들도 주식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주변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급을 받으면 그중 일부는 적금통장에 입금하여 그저 돈을 안정적으로 차곡차곡 모았다. 이것이 일반적인 청년들의 재테크 방식이었다. 그러나 점차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비나 월급을 받으면 그중 10~20% 정도의 금액은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주식을 한 주씩 사는 등의 방법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게티 이미지 뱅크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을 바라기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과,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나빠진 경기로 인해 은행의 금리는 더욱 낮아지게 되었다. 옆 나라 일본은 이미 은행 금리가 마이너스를 찍은 시점에서 이제는 은행 적금에 돈을 쏟으면 뒤처진다는 인식이 생긴 듯, 청년들 또한 너도 나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며 주식시장의 주 소비자층이 ‘밀레니얼 세대’로 교체된 것이다. 한국경제의 조사 1) 에 따르면 청년 주식 투자자들의 증가 원인에는 ‘부동산 막차’를 놓쳤다는 좌절감이 어려있다고 한다. 주변의 아파트나 부동자산 등은 급등하는 중인데 예·적금으로만 자산을 운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되는 것이 당연하다. 원금 회수 수준의 은행 예·적금으로는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따라잡아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한국경제의 기사 속 “가만히 있으면 근로소득이 전부인 무주택자는 꾸준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란 인터뷰 내용을 통해 주식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을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보이지 않게 형성된 계층 사회에서 계층의 상승을 꾀하기 위해서는 근로소득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주식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입장도 있었다. 이제는 ‘노오력’만으로는 성공한 인생을 얻기 어렵게 됐다. 그러니 비교적 수익이 많이 불어날 수도 있는 주식시장에 청년 개미들 또한 자연스레 불어날 뿐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강남의 한 대로변을 걷다 나눈 대화 중 인상 깊은 대화가 있었다. 오늘은 그 대화 내용으로 씁쓸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이 많은 건물들의 소유주는 실상 얼마 안 된대.” “그럼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이 많은 건물을 다 갖고 있다는 거네?” “그렇지.” “요즘 자취하면서 느낀 건데 집세,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이런 거 다 내면서 엄마 아빠는 어떻게 우리까지 키우신 건가 싶어.” “그러니까. 예전에는 성인 되면 우리 부모님들처럼 평범하게 결혼하고 집 얻고 아이 낳고 사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 “그러게. 요즘에는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거 같다.” 1) ⌜부동산 막차 놓친 2030…"주식은 생존수단"⌟, 한국경제, 2020.09.25.,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0091346211
2021-03-09 | hrights | 조회: 1230 | 추천: 2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저, 제가 살던 곳에서는”, 앨리스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처럼 오래 달린다면, 당신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을 거예요.” “게으른 나라군”, 여왕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네가 보다시피, 같은 장소에 머물기 위해서는 네가 할 수 있는 한 달려야 돼. 네가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것보다는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지.” - 루이스 캐롤, ⌈거울나라의 앨리스⌋  4학년 때, 과학실이 생겼다. 학교 뒤편 별관 끝으로 가려면 늘 꼴찌였다. 기다란 계단을 버정거리며 휘젓휘젓 갔다. 그 때부터 다른 아이들은 나를 공룡이라 불렀다. 티라노사우르스라고 했다. 멸종해야 하지만 살아남아 쿵쿵거리며 걸었기 때문이다. 과학실에서는 자주 용해 실험을 했는데 물에 녹은 황산구리가 결정을 이루는 것에서 기간제 뽀글뽀글 과학 선생님은 위험하니 청산가리와 헷갈리지 말라 하셨다. 하얀색의 청산가리는 일본 표현이다 하셨다.  회색 고무 따꿍(뚜껑의 사투리) 작은 시약병에 그 결정을 넣었다. 겉면에 청산가리라 적었다. 몇몇이 티라노! 뭐라노? 와그라노? 라며 부를 때마다 왼쪽 주머니 시약병을 만지작거렸다. 눈물처럼 녹아서 멸종되지 않으리라. 저 멀리 아름다운 대지가 천방지축 흔들 때까지 땅을 힘껏 박차고 달리리라.  중학교 때는 따라다니며 쿵쿵하던 그들에게 아침마다 복수를 상상했다. 오늘, 지금에도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햄에 파란색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조커가 되는 상상도 했었다. 굵은 목에 걸고 등교한 보온 도시락에서 비싼 햄 반찬만을 골라 날쌔게 도망갈 때마다 바람돌이에게 소원을 빌고 싶었다. 알고도 자연스럽게 내게 죽은 사과씨 냄새가 나서 그들에게 발견되기를 원했다.  사춘기가 수두처럼 왔던 중학교 때까지 그 시약병을 품고 다녔다. 사람들이 나를 따라 걸어오면서 넘어뜨릴 때마다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저녁놀 질 때까지 하늘을 보았다. 다른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과 체육관으로 떠나면 집으로 왔다. 사람 말을 듣는 것은 라디오와 TV밖에 없는데 ‘2시의 데이트’ 라디오 방송이 끝나면 밖에서 돌아다니는 또래들 이야기뿐이었고 TV 화면은 온통 은회색으로 지글거리거나 화면조정을 할 뿐이었다. 5시 반까지는 그랬다.  유일하게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채널 2번 AFKN(AFN Korea) 미국 방송이었다. 날은 몹시 맑았지만, 집에 형도 어머니도 없었다. 가끔은 EBS 교육 방송이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가장 먼저 할 때도 있었지만 사람 목소리를 듣는 곳은 역시 영어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대화 소리가 아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듯 파도가 밀려오듯 조그마한 TV의 자글거리는 화면이 열렸다. 동그란 모자를 쓴 여주인공이 기타 가방과 큰 가방을 들고 길거리를 뛰어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어느 고성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멜로디는 익숙했다.  국민학교 시절, 갑자기 등장한 뽀글뽀글 머리의 젊은 영어 선생님께서 외우다시피 불러준 ‘에델바이스’였다. 머리를 뒤로 올린 멋진 배우가 기타를 치며, 독일 나치를 피하기 위해 불렀다.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오면 토요일 아무도 없는 집에 하루종일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았다. 사진 출처 - 구글  빨간 한쪽 스피커만 달린 라디오만 있으면 되었다. 두근거리고 명랑해졌다. 밤 10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에서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하고 자정이면 ‘이선영의 영화음악실’의 시그널 음악이 들려오면 갈 수 없는 영화관에 나는 이미 홀로 가 있었다. 남아공의 차별과 억압에 홀로 싸운 영화 ‘power of one’ 주제곡을 엽서로 신청하면 그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월요일 등굣길에도 왼쪽 주머니의 푸른 시약병은 더 이상 손에 잡지 않았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세상을 향해 복싱할 수 있었다. 단 한 사람의 힘으로도 비를 내리게 하듯 학교는 그저 단 한 명의 도시락을 같이 먹는 친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낌없이 주는 곳이었다. 그 한 명의 친구가 없을 때에도 어느 한구석 학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을 때 사그락거리는 낙엽과 바람들은 소리 없이 나를 지키는 무한한 힘이 되었다.  가끔은 학교 옥상에 맞닿은 계단에 걸터앉아 숨도 쉬지 않을 만큼 울음을 울 때가 있었지만,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은 다음날에도 살아있을 충분한 낭만이 되었다. 그 서러운 때에도 오히려 아이들을 피해 홀로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오롯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고 느꼈다.  학교와 몇몇 아이들은 나를 공룡처럼 멸종시키려고 했지만 난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야 했다. 내 학창 시절은 그런 멸종의 시대였다. 나의 인종과 나의 걸음걸이와 나의 몸뚱아리가 남에게 조롱당하고 혐오 되어도 나는 살아남았다. 모두가 냄새나고 꼴 보기 싫다 하여도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공룡이 되었다. 우리 모두 공룡이 되어 살아남자. 살아있자. 세상 모두에게 외쳐보자 그래서 ‘어쩌라고?!’
2021-03-03 | hrights | 조회: 1226 | 추천: 6
주윤아/ 교사  ‘지구살리기’나 ‘친환경’이라는 말을 모르거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그런데 ‘기후위기’라는 용어는 아직 생소하거나 낯선 이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빌려 쓰는 지구에 대한 부채감과 환경 운동에 대해 의무감만 지닌 채 실천을 차일피일 뒤로 미루고만 지내던 차에 작년 1월 지인의 권유로 ‘기후행동학교 활동가 양성을 위한 워크숍’에 호기심 반 의무감 반으로 참가했다. 워크숍 마지막에 모둠별 토의를 하다 보니 참가자 대부분이 전국의 환경단체나 각계각층의 기후위기 현장 활동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머리로만 알고 실제 별다른 실천은 하지 않고 있던 나는 부끄러워 제대로 발언조차 할 수도 없었다. 특히 청소년 참가자들이 기후위기를 자신의 현실로 직시하고, 그렇기에 지금 당장 행동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로서의 시급성을 이야기할 때는 기성세대로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틀이라는 짧은 워크숍 기간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적 배경, 연관된 다양하고 방대한 이슈를 고루 다루다 보니 귀갓길에 이미 내용 지식은 다 날아가 버렸다. 그저 남은 것은 시급성에 대한 불안과 심각성에 대한 충격, 그리고 코로나 블루의 나날에 우울한 이유 하나가 더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특히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개인의 노력은 빙산의 일각일 뿐, 정부와 기업, 그것도 한 국가가 아닌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위한 즉각적 법 제정과 정책적 실천 없이는 기후위기가 극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에 가장 절망했던 거 같다. 이제까지 언론 보도와 캠페인에 휩쓸려 그저 텀블러를 챙기고 친환경 제품 사용을 늘려가며 쓰레기 분리수거에 집중했던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허망하게 느껴지면서 정부나 기업의 안일함에 분노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들의 무책임과 교묘한 술수에 이용당한 거 같아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뭐라도 해야 한다는 작심도 동시에 올라왔다.  그전까지 ‘기후이상’이나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더 익숙했는데, 기후가 이상하다고 그저 의아해할 시간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 사용하던 용어부터 ‘기후위기’로 일시에 바꾸기로 하고, 관련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기후위기 책들은 이론서부터 실천서까지 주제별로 다양하지만, 기후위기에 관한 교과서로 불리는 책부터1)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역에 환경 관련 단체가 별로 없어 자치구의 환경정책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이라 같이 워크숍에 참가했던 지인과 함께 거주지역에 ‘기후위기 (지역명)비상행동’ (시민)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거주지역의 환경단체나 시민단체, 개인 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개인별 실천이나 캠페인 활동을 기본으로 마을의제사업 추진, 나아가 지자체, 국회, 정부가 기후행동을 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활동 등을 하며 보다 직접적인 해결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낮에 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의 특성상 주도적으로 활동하긴 어려웠지만, 전국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나 지역별 비상행동 모임들과 실시간 정보 공유를 하며 작년엔 학교 안팎에 심각성을 알리는 학생 주도의 캠페인 활동을 진행해 보았고, 이번 겨울 방학 기간에는 관내 교사, 학생,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온라인 연수도 실시했다. 급하다고 해서 두 걸음씩 갈 수는 없는 법, 한 걸음씩이라도 중단없이 움직이려 한다.  지역 비상행동모임을 시작한 지 1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기후위기’를 누군가에게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지도 못하고, 또 관련한 여러 주장에 대해 명쾌한 결론도 갖고 있지 않다. 입장을 온전히 정리할 때까지 행동을 주저하던 나는 최근에 읽은 책에서 ‘오십 보와 백 보는 명백히 다르다’라는 구절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15%는 가축 사육에서 나온다고 하니 채식이 지구를 살리고 동물권도 보호(나아가 동물해방)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채식이 다른 실천보다 유독 더 어렵기에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다가 할 수 있는 것부터라도 시작하는 첫걸음이 있어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더불어 이 여정은 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둘 같이 갈 사람을 늘려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식탁을 공유하는 가족 구성원이나 점심을 같이 먹는 직장 동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채식 실천에 동참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비건)가 아니어도, 혹은 시도하는 족족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한 끼 채식이라도 실천해 보려는 의지가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탄소중립/배출제로 정책을 즉각 실시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시에 무한 소비를 권장하는 자본주의의 시대를 사는 개인들의 삶의 방식도 변해야만 한다. 그래서 가족들조차 감지하기 어려운 미약한 변화이긴 하지만 내 나름의 소소한 실천을 소개하며 동참을 호소해 본다. 사진 출처 - 대학생기후행동(https://blog.naver.com/ecoaction20)  1. 구매를 망설이는 물건은 사지 않는 쪽을 택한다. 넓지 않은 집에 여기저기 들어찬 물건들이 버겁고 청소도 힘들어 막연히 미니멀리즘을 동경해 왔기에 틈만 나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정리하여 기부 단체에 보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물건은 어느새 늘어나 정리한 티가 나지 않는다. 재학 중인 자녀들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변명해보기도 하지만 사실 내 물건도 옷장이며 서랍마다 그득하다. 특히 요즘 같은 패스트패션 시대에 지인이 ‘한 해 동안 옷 안 사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해서 감동은 받았지만 나는 본받기 어려웠다. 결국, 긴요치 않은 물건은 사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지만, 작년 코로나 19로 온라인 주문을 이용하다 보니 계획하지 않았던 소비도 늘고 일회용 쓰레기가 늘어나 마음이 괴로운 한 해였다. 더구나 감염병 시대의 종식이 당분간은 요원해 보이니 비록 작심 1일이라도 계속 작심하며 계획 없는 소비는 하지 않고, 다회용품 사용을 늘리는 방법을 궁리해 보는 수밖에 특단의 대책은 없는 거 같다.  2. 자가용은 출퇴근이나 무거운 물건 운송 시에만 사용한다. 직장이 멀어 출퇴근은 부득이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나, 전철 한 두 정거장 거리는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역시 코로나19로 대중교통 이용도 자유롭지는 않지만, 부족해진 운동을 걷기로 대체할 겸 자동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여본다.  3. 환경오염 제품 사용을 줄인다. 생활용품들은 친환경 제품으로 바꿔나가고, 필수가 아닌 제품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마침 청춘을 피곤하게 했던 꾸밈노동을 많이 줄여 사용하는 화장품 종류도 별로 없고, 20여 년 만에 숏커트로 머리스타일도 바꿔 샴푸량도 줄였다. 헤어린스나 섬유유연제 등은 사용하지 않으며, 액체 형태의 세제가 흘려보내는 잔여 세제량이 월등히 많다고 하니 고체 형태의 제품으로 하나씩 바꾸는 중이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샴푸 외 헤어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매번 질겁하며 놀라곤 하는데 그것도 참 의아한 일이다.  4. 에너지 사용 제품 구매에 신중을 기한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우리가 훼손한 환경으로부터 다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전기제품을 사용하니, 지구의 온도가 더 올라가고 있다. 공기청정기, 제습기, 정수기, 연수기, 식기세척기, 의류건조기, 의류관리기 등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제품들이 필수 가전처럼 광고되고 있으며, 한집에 1대꼴이던 컴퓨터, 전화기 등 디지털 제품을 이제는 1인당 1개 이상 휴대용으로도 보유하는 등 그야말로 신속과 편리함의 욕망은 끝이 없는 듯하다. 물론 쾌적하고 편리한 용품들이겠지만 반면 굳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제품들도 많다.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 제품의 수를 늘려가면서 느끼는 죄책감이 아니라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우리의 당연한 선택이어야 할 것이다.  5. 자율적 선택이 보장되거나 혼밥을 하는 경우 채식 메뉴를 고르려고 노력한다. 외식이나 단체 회식을 하는 경우 으레 육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기나 치킨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제안해 본다. 일주일에 몇 회 채식이라던가 하는 등의 엄격한 계획을 잡기보다는 마인드를 바꾸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채식 실천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최근 채식 관련 책2)을 연속으로 읽다 보니 실제로 고기에 대한 입맛이 예전 같지 않고 조금씩 줄어드는 경험(이제 고기를 보면 음식 이전에 원래의 동물/생명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을 하고 있으며, 단체 급식 시 고기반찬을 담지 않거나 먹는 양을 줄여가고 있다. 하루빨리 공공급식에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어 도입되기를 바란다.  당신은 2019년 6개월간 이어졌던 호주의 산불, 폭염으로 유명한 텍사스에 최근 닥친 한파, 작년 여름 한반도의 최장 장마,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 등이 기후위기의 징후라는 것에 동의하는가? 이에 대해 동의하고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면, 개인의 실천은 물론 지금 당장 우리 동네와 직장에 기후위기 비상행동3)의 작은 모임을 만들어 함께 할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왜냐면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기 때문이다. 1) 『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동아시아) 2) 『비거닝』 (이라영 외, 동녘), 『나의 비거니즘 만화』 (보선, 푸른숲).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황주영 외, 들녘), 『동물해방』 (피터싱어, 연암서가) 등이 실천에 큰 도움이 되었다. 3) 전국 기후위기 비상행동 홈페이지(http://climate-strike.kr)에서 도움받을 수 있다.
2021-02-17 | hrights | 조회: 1427 | 추천: 15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2020년은 지구상 모든 인류에게 전례 없는 경험을 안겨준 한 해였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팬데믹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마주한 뉴-노멀(New-Normal)의 시대는 인권의 판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지나간 2020년은 아디의 팔레스타인 현지사업 첫 해가 마무리된 해이기도 하다. 그 어느 해보다 팔레스타인 사회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깊게 고민할 수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돌아보며, 현지 사업을 진행하며 떠오른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1. 2020년 8월 16일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여성폭력중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개최했다. 대부분의 지역주민들에게 아주 낯선 광경이었을 이 집단행동은 아디의 ‘여성지원센터’ 교육프로그램 참가자 20명이 자발적으로 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해 기획한 행사였다. 이날 ‘여성들의 움직임’이 일으킨 반향은, 비록 거대한 움직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SNS를 통해 해당 지역사회를 넘어 팔레스타인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여성폭력중단’ 캠페인을 보도한 지역 언론사의 기사에는 수백 건의 찬성과 반대 댓글이 달리면서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그동안 여성폭력을 비롯한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꺼리며 쉬쉬하거나, ‘내부적으로’ 처리해온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해당 지역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오랜 시간 멈춰버린 변화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는 귀중한 동력이라는 것이 활동가들의 평가였다. 아디의 여성지원센터 참가자들이 주최한 나블루스 최초의 여성폭력반대 시위 사진 사진 출처 - 여성지원센터 페이스북  #2. 서안지구 요르단 계곡 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라쉬드에게 2020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해였다. 연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중동평화안’의 골자는 라쉬드의 터전이자 활동지역인 요르단 계곡 일대를 이스라엘에 편입 후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계획이 발표된 후 이스라엘 정부는 실제 요르단 계곡의 베두인(유목민족)을 쫓아내며 관련 건물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강제철거 위협이 있을 때 현지활동가들은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관련 사안을 알리며 연대활동을 이어왔으나,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국제활동가의 입국이 금지되며 연대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팔레스타인 국내의 많은 활동가들이 국제활동가들의 부재를 대신하여 요르단계곡 강제철거에 맞서고 있다.  #3.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오랫동안 인권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모함메트(가명)는 2019년 아디의 ‘팔레스타인 평화여행’ 한국 참가자들과 만나 팔레스타인의 내부정치체제와 리더쉽 문제를 강하게 지적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치세력인 파타당(서안지구를 실효적 지배)과 하마스(가자지구 통치세력) 모두 십년 이상 선거 없이 장기 집권하고 있으며 내부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스라엘 탓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함메트에 따르면 부정부패 또한 심각하다. 팔레스타인은 대통령과 의회총리를 선출하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사실상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이 이끄는 파타당과 이스마엘 하니야가 이끄는 하마스당으로 양분되어 있다. 2005년 1월 4년 임기로 당선된 현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고 국회의원 선거 역시 2006년 1월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4. 물론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이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민주주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적 정당성을 잃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리더쉽은 문제해결의 큰 걸림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정부는 2021년 5월 총선, 7월 대선, 8월 팔레스타인민족회의 선거를 예고했다. 이 소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지 활동가들에게 물었다. 대답은 양분됐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 국교정상화를 진행하니 지역내 고립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쇼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내부적 단합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선거임을 강조하며 반드시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006년 선거 때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명 당한 하마스가 승리하여 대이스라엘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게 될지, 아니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의성이 반영된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지, 현재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팔레스타인 현지의 주민들은 현재의 정치제도로는 이스라엘의 폭력적 영토병합정책을 막을 수도, 그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2021-01-27 | hrights | 조회: 1192 | 추천: 9
이회림/ 00경찰서  안녕하세요. 11월에 ‘잊혀진 권리’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던 이회림입니다.  가해자가 출소한 후, 예상대로 언론은 과도하게 가해자를 조명하느라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다수의 유투버들이 가해자의 집 앞으로 가서 고성을 지르고 그들의 채널로 생중계까지 할 줄은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잊혀질 권리”를 말하기 위해 말이든 글로든 그 사건을 소환했던 저나 그 유투버들이나 결과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문득 들더군요. 아예 그런 칼럼도 쓰지 말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맞았을까 하면서 자꾸만 되돌아보면서요.  올해 2월 나영이의 언니가 저희 집에 놀러 왔을 때 함께 기획했던 책이 있었는데 저의 예전 일기를 토대로 만든 에세이였습니다. 2020년 12월, 가해자가 출소하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세상에 내어 놓으면 더 이상 과도하게 그 사건과 가해자를 소환하는 현상이 줄어 들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날에 임박해서 책을 공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오고 나니 미디어에 나오는 가해자의 얼굴과 여러 유투버 등을 보면서 속이 메슥거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까지만 실질적으로 나영이를 치료했다는 주치의께서 그동안 계속해서 도움을 준 것처럼 보도가 되고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2013년 여름, 나영이의 아버지께서 주치의가 2012년까지만 나영이를 챙기고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는 이유로 진료를 중단했다며 저에게 다른 정신과 의사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하신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치의라는 분은 치료보다는 정치에 더 집중하시느라 바빴을지도 모르고 그 당시 정말로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릴 만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어찌 되었든 지금이라도 발 벗고 나서 모금 운동을 하면서 나영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시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이 책은 ‘나영’이라고 불리우던 소녀를 환한 빛 속으로 잘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 나영이 언니와 함께 고민한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잘 맞는 방법인지,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서 책을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책의 첫 부분에서 가져온 ‘첫 만남’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입니다. 이 책의 취지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불편하고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해당사이트로 찾아가셔서 전문을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www.bookk.co.kr/book/view/98734/preview) <우리들 푸르른 기록> ‘첫 만남’  2009년 1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전해 듣고 연락드립니다. 00서 00 형사님이시죠?”  2009년 1월, 아버님의 전화를 처음 받은 날은 제가 서울 시내 모 경찰서 형사과에서 일하고 있을 때 였어요. 저의 지인 중 평생 무료로 진료를 봐 주고 싶어하던 한 여성 의사분이 계셨는데 제가 그 분을 해바라기 아동센터를 통해 아버님에게 결하게 되었지요. 추운 겨울 날, 병원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어요. 진료를 받기 전에 먼저 카페에 모여 인사를 나누기로 했던 거죠.  “인사드려, 너 도와주러 오신 경찰언니야.”  나영이의 첫인상은 웃음기가 없고 피곤해 보였어요.  “안녕? 반갑다. 오느라 힘들었지? 언니가 선물 하나 준비 해 왔어. 사실 내가 밤샘 근무할 때마다 한 통씩 먹어치우는 건데 왠지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네 것도 사왔어.”  절대로 동정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섣불리 위로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동네 초등학생 대하듯이 편하게 말을 걸었어요.  “어~?!”  나영이의 작은 눈이 확~ 커지면서 얼굴이 환해졌어요. 얼굴에 조명이 하나 더 켜진 듯이 순식간에 밝아졌고 무거웠던 주변 공기가 명랑해졌어요. 처음 인사를 나눌 때는 내키지 않는 듯 건성으로 하느라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더니, 무당벌레 초콜렛을 보자마자 얼굴빛이 금새 변했지요.  ‘무당벌레! 다 니 덕분이다!!’  저는 마음속으로 안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영이가 타고 온 차 안에 돌고래 모양의 쿠션이 놓여 있길래 무당벌레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슬며시 했지만서도... 이렇게까지…  고마운 무당벌레 초콜렛 덕분에 다소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병원 진료실에 함께 들어갔어요. 그런데 나영이의 얼굴에서 조금 전의 그 밝은 표정은 풀썩 날아가 버리고 없더군요.  아무래도 병원이라는 곳은 꼭 필요한 공간이기는 하나 결코 편안한 장소가 될 수는 없었겠지요. 그건 저의 존재도 마찬가지. 나영이의 입장에서 오늘의 만남을 미리 상상을 해보니, 저 또한 그동안 만나 온 수많은 회색빛 공무원 어른들 중의 하나일 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에 저와 간단한 대화뿐만 아니라 인사를 나누는 것 조차 귀찮을 수도 있었구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런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고 싶어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챙겨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나영이의 취향을 전혀 모르니 아무거나 사갈 수는 없어서 그 당시 제가 즐겨 먹던 초콜렛을 들고 갔지요.  초콜렛은 형사과 야근을 할 때마다 피곤함을 이기기 위해 녹차와 곁들여 먹던 저만의 든든한 야식이었죠. 특히 하나씩 정성스럽게 포장된 무당벌레는 초롱초롱 똘망똘망한 눈빛에 미소까지 띄고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거든요. 무당벌레 초콜렛의 효과는 진료실에 들어 간 순간 스르르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요? 아주 잠깐일지언정 나영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톡! 건드리고 후다닥 귀여움을 선사하고 날아가 버린 무당벌레에게 경의를 표해요.  고맙데이~ 우리들 푸르른 기록 : ‘나영’ 이라 불리우는 소녀를 빛 속으로 떠나보내는 방법
2020-12-31 | hrights | 조회: 1353 | 추천: 14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트리에 색색의 조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징글벨을 부르는 화음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 서 있으면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 이맘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기다리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다. 아마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름, 바로 '산타'다. 사실 산타를 기다린다기보다는 집에 몰래 놓여 있을 선물을 기다린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존재하는가 아닌가로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산타이건만, 지금은 그저 추억일 뿐이다. 나는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아이 중 한 명으로 “산타는 없어! 어른들이 다 지어낸 거야”라며 산타를 믿는 친구들을 종종 울리기까지 했었다. 산타가 없다고 생각했던 이유에는 ‘굴뚝’ 때문이었다. 산타는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놓고 간다는데 당시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었다. 굴뚝 있는 집에서 살아야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니. 그 당시 그것이 너무 차별적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머릿속으로는 ‘산타는 없다’라고 믿었지만 내심 산타가 집에 찾아와 선물을 놓고 가기를 기다리기는 했었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라는 말에 12월 즈음이면 의식적으로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평소에는 신발을 벗으면 두 짝이 제각각 여행을 떠나는데 12월이면 신발 두 짝을 외롭지 않게 가지런히 놓아둔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했다. 더더욱 산타를 믿지 못했고,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산타가 준 게 아니고 부모님이 몰래 둔 거야.”라고 목소리 높였던 기억이 있다.  착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가르는 기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누가 그 척도를 잴 수 있었던 것일까? 어린이 세계의 산타 이야기는 비단 그 시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산타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선별복지’와도 닮은 점이 많다.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와 받을 수 없는 누군가의 기준은 분명해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넘쳐난다. 사진출처-freepik  올해 서울시 청년수당을 신청했다. 서류가 통과되어 6개월간 50만 원을 지원받았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풍요로운 6개월을 보냈다. 사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사고 세미나가 끝난 뒤 통장 눈치 보지 않고 뒤풀이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직장이 어떤 조건이건 간에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도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질적 풍요라기보다는 심적 풍요를 경험했다.  올해 청년수당 신청자가 다른 해보다 많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예산이 정해져 있다 보니 서류를 통과해도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신청서류에 적힌 사연들을 읽으면서 이 모두에게 지급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다는 누군가의 말도 듣게 되었다. 가끔, 가난을 선별하는 가난 테스트에 신청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청년수당을 받은 자의 여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받은 복지로 인해 누군가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50만 원의 무게감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사이에 흐르는 경계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문제는, 2021년에는, 더욱더 ‘선별’ 복지에 초점이 맞춰질듯 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코로나라는 명분으로 청년 자율예산제를 포함해 청년예산을 삭감했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서울시와 시민의 약속이었던 청년자율예산은 편성액이 18% 삭감되었고, 코로나19 관련 서울시 청년예산도 함께 삭감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취업 날개 서비스는 20%, 청년 전담부서 예산은 26% 삭감했다고 한다. 청년월세지원사업 확대 계획은 2만 명에서 5천 명으로 축소되었고 마음건강 지원사업은 3천 명에서 2천 명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2021년 서울시 예산은 40조를 넘어,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시민과 함께 시정을 운영하겠다는 시정 철학에 따라서 오랜 시간 공론화를 거쳐 확정된 자율예산을, 숙의 과정 없이 삭감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선별복지로 지급된 재난지원금도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나고 있어 그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복지로 확장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산타는 2021년에도 여전히 굴뚝만 찾아 헤맬 것인가 보다.
2020-12-15 | hrights | 조회: 1302 | 추천: 6
홍세화/ 대학생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어느새 12월을 맞이하여 저물어가고 있다. 2020년을 되돌아보았을 때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는가 하면, 나는 ‘기후변화’를 꼽을 것이다.  기후변화가 일어나 곧 인류에게 심각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사실 그동안 환경보호에 대한 나의 의식은 점차 무뎌져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다큐멘터리 등에서 머나먼 북극의 빙하들이 모두 녹아 북극곰들이 발 딛을 곳조차 사라져 헤엄을 치다가 지쳐 죽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것에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올해 여름은 확실히 평년과는 달랐다. 6월부터는 이른 폭염이 찾아오더니 이내 전국적으로 50여일이 넘는 기록적인 장마가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섬진강 일대에는 홍수가 발생하였고, 1500건이 넘는 산사태를 불러왔으며 4개의 태풍이 연달아 우리나라를 강타하였다. 이러한 이상기후는 농수산업에 큰 영향을 미쳐 우리가 자연스레 접하던 음식들을 먹을 수 없게 하기도 했다. ‘토마토 없는 버거’가 대표적이다. 이상기후로 인해 전국적으로 많은 토마토 농가들이 피해를 입어 토마토 공급이 부족해졌고,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음식인 햄버거에서 토마토가 일시적으로 빠지게 되었다. 기후변화의 재앙이 조금씩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2020년에 이상기후를 겪은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었다. 시베리아에서는 섭씨 38도의 이상 고온현상이 일어났고, 미국의 콜로라도주 덴버에서는 지난 5월 연일 폭염이 지속되다가 하루아침에 폭설이 내린 일도 있었다. 이러한 기후변화가 나타난 원인은 단순히 빙하기와 간빙기와 같은 자연 순환의 일환인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이 지구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19의 역설적인 면모들로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사그라들자 생태계에는 점차 변화가 일어났다. 작게는 베네치아의 운하가 60년 만에 맑은 물을 되찾은 일부터 인도 동부 오디샤주 해안에서 멸종위기종인 리들리 바다거북이 다시금 모습을 보인 일 등이 그 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중국 연안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올해 봄, 가을에는 미세먼지 없는 쾌청한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다. NASA에서 제공한 항공화면, 중국이 봉쇄에 들어가기 전 1월과 그 이후의 대기오염도 차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줄어들고, 차량 이동이 제한되면서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량이 크게 감소하며 올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6% 감소한 것으로 세계기상기구는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만큼의 탄소배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일부에서는 ‘지구멸망’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기후변화에 의해서는 ‘인류멸망’만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일으키는 환경변화는 언젠가 지구의 자정능력으로 원상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동안 환경보호를 지구환경과의 ‘공생’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면 이제는 한단계 더 나아가 인류의 ‘생존’을 위한 활동이라 생각하고 기후변화에 더욱 경각심을 가지며 환경보호에 임해야 할 것이다.
2020-12-02 | hrights | 조회: 1286 | 추천: 4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폭력 학대 신고로 일이 많고 욕을 많이 먹어 힘들다는 경찰 아저씨 당신께 .  먼저 피신고자에게 욕을 먹고 과한 업무에 시달리는 당신께.  직급 낮은 다른 직원의 근무 환경도 챙기셔야 하고 상사의 위신도 챙겨야 하는 당신께.  '요즘 일이 너무 많아 고생이 심하십니다. 욕을 너무 들어 자존감이 많이 상하셨군요'라고 위로와 감정 읽기를 미처 못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건 당신이 지적한 대로 제가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학교에서 부모교육을 강제할 방법이라도 없느냐는 어느 교사의 교육청 문의에 제가 학대 정황이 보이는 대로 족족 신고하는 방법이 첫 번째 라고 말하는 순간, 제 말을 자르고 역정을 내셨습니까?  논쟁하는 자리도 아닌 교육청의 장애인 학생의 인권지원단 논의 자리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 제 말을 그렇게 역정 내듯 자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50대 팀장급 남성이 가지고 있는 '발화 권력'이랍니다.  평소에 가해자를 보고도 그렇게 노려보지 않는데 저는 정말 분을 삭이지 못해 20초 이상 칸막이 너머로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좀 더 매너있게 정리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쓰기 권력'이 있답니다. 쓰기 권력은 당신처럼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아요. 독자들이 선택하고 해석할 수 있거든요.  당신의 말을 들을 때 너무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모두를 정확하게 듣지 못해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신고가 들어온 집을 찾아가서 조사해도 많은 경우 '무혐의이거나 오해일 경우가 너무 많다. 신중한 신고가 필요하다. 현장 경찰이 너무 힘들다.' 이런 취지의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실이라 하더라도, 가정폭력과 장애인 학대에 대하여 '신중한 신고', '무혐의', '오해'라는 단어를 인권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당신의 그 '공권력'에 매우 화가 났습니다. 사진 출처 - SBS  우리가 당신의 지위와 직무에 공권력이란 힘을 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피해자나 개인이 함부로 가해자나 다른 개인을 조사하거나 수사하거나 검거하거나 구속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합의에 따라 대신 부여한 막강한 권력입니다.  그런 공권력을 부여 받은 당신이 공적인 자리에서 '가해자'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변명을 하다니요. 그렇게 바로 말씀하실 수 있었던 건 아마 저를 제외하면 인권 단체 활동가는 아무도 없었고 죄다 경찰 관계자들 분들밖에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경찰의 입장을 더욱 대변해 주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인원수가 '발화의 힘'을 주었겠지요.  물론 당신이 그렇게 하소연하기 전에 행자부와 국회에 경찰 인력을 늘리라고, 근무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혹시나 대통령을 만나거나 국회의원들을 만나면 꼭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현장을 잘 아시고 실무 경험이 많으시면, 격무에 시달린다 하시더라도 ‘언제든지 신고해 주셔라, 사전에 교육청에 문의하지도 말고, 관리자 눈치 보지도 말고 즉시 신고자의 의무를 다하시라, 나라도 부모에게 전화 한 통 해서 인권교육 받으라고 하겠다’고 해야 수사 경력 몇 십 년에 걸맞은 전문성이 발휘되는게 아닐런지요?  가정폭력과 장애인 학대 신고의 본질 취지가 가해자를 벌하는 겁니까?  당신의 실적과 위신을 위해서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를 살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학대와 폭력을 우리가 미리 막을 수 없다니요? 당신을 출동시키는 신고가, 가해자를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것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당신들의 권력이자 직무입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초인종 소리 한 번에도 가해자의 폭력을 잠시나마 멈춰,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피해자에게 있어 가정 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를 제 맘대로 대할 때 사람들이 너를 도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것은, 신호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신호란, '당장 학대를 멈춰라!', '우리가 너를 항상 감시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늘 당신 주위에, 바로 뒤에 공권력인 경찰이 당신의 편에 있다고 격려하고, 연대해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며 폭력과 학대에 대항할 힘을 주기 위해 당신은 신고를 받고 가해자를 만나는 겁니다.  미국드라마에 나오는 경찰처럼 우연히 방문한 집에서 피해자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 할 것을 종용하고 또 종용하다가 결국 폭력을 막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반성하는 모습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적어도, 회의에서 말뿐이라도 한 번 더 방문하고 한 번 더 가해자를 압박하고, 피해자의 미세한 시그널을 읽어 내겠다. 장애인 학생을 한 번 더 살피겠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고를 망설이는 교사들에게 ‘의심만 들어도, 정황만 보여도,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라. 초기 진술을 반드시 녹음하고 피해자를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히지 마라. 보건 교사라도 불러서 확인하고 같이 신고 하셔라.’고 해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신고자라도 비밀 보장하겠다고 말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키우다 보면 가르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당신의 그 무혐의와 오해라는 표현이 폭력을 더욱 증폭시키고 전염시킵니다. 가해자에게 권력을 줍니다. 죄책감도 사라지게 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당신이라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란 이름으로, 치료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어떠한 폭력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 폭력과 학대의 가해자는 언제나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늘 피해자는 피해를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폭력과 학대의 특수성을 현장 근무가 풍부한 당신께서 모르지는 않으시겠지요?  당신의 발언 저 밑에 직무의 공권력을 부여하는 우리의 '신고'를 짜증과 비하와 무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어감을 느낀 것은 저뿐일까요? 그 발언은 오히려 당신의 바람과 다르게 당신의 허세를 부풀리고 자존을 더욱 약화시킬 뿐입니다.  저는 매 강의 때마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소방 훈련처럼 훈련을 요구하고 연습을 시켜서 숙련되게 할 것입니다. 화재신고를 신중하게,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머뭇거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이 되듯이 폭력과 학대 신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나 스페인처럼 가정 폭력과 학대를 알리는 피해자를 위한 신호를 만들자고 운동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좀 더 폭력과 학대에 민감했으면 합니다. 신고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거의 습관처럼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의 폭력과 학대에 대하여서는 '장애인 권익 옹호기관'에도 신고할 수 있도록 현행법이 있습니다. 당신처럼 수사권이 있거나 예산이 많지는 않지만 그들도 신고로 부여 받은 조사권이라는 공권력이 생겼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입니다.  경찰 아저씨. 당신의 능력을, 가치를, 의미를, 전문성을, 당신의 직무로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2020년 11월 24일 장애인 인권 활동가 김형수 올림.  
2020-11-25 | hrights | 조회: 1151 | 추천: 5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청소와 정리정돈에 쓰는 시간이 어림잡아 하루 평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이다. 늘상 손에 달고 사는 핸디형 무선청소기 사용시간의 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리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날에는 청소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욕실과 싱크대 수전이나 거울에 생기는 물자국, 내 몸의 일부이기를 포기하고 중력에 순응한 머리카락들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침구와 카펫은 UV 살균청소기를 이용해 먼저 먼지를 빨아들인 후 편백수를 뿌려 2차 소독을 한다. 베란다 창틀에 쌓인 먼지도 이삼일에 한 번은 털고 닦아야 한다. 주방 한 켠의 이동식 팬트리도 매일 점검한다. 햇반이나 3분 카레 같은 식료품 포장이 일정한 배열을 이루며 각이 잡혀 있어야 보기에 좋고 흐뭇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먹고 마시는 중에도 내내 배달음식 포장용기를 정리하고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느라, 제발 좀 가만 앉아있으라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한다. 강박을 놓으면 좋겠다는 진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 강박 때문에 소비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면 책을 몇 장 더 읽을 수도, 잠을 조금 더 잘 수도, 산책을 할 수도, 상대와의 대화에 더 깊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건 다, 내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다 빠르게 달려오는 차에 치여 중상을 입거나, 깊이 잠든 사이에 집에 불이 나거나, 그도 아니면 낮은 확률로 고독사 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물건이 될지 육신이 될지 모르는 뒤처리를 해주기 위해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낡은 집에서 지저분하게 살았네’라고 한 마디라도 한다면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착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은데 지저분하다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집안의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부터였다. 전적으로 나만 통제할 수 있는 공간과 상황은 어쨌거나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게 내 존엄을 유지하고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해서다.  고독사에 대비해 청소를 열심히 하고 살자는 캠페인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오늘은 사회가 도통 신경 쓰지 않는 어떤 존재들의 작은 불행, 혹은 불편에 대해 ‘당사자’로서 말을 하고 싶다. 보통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관찰자 또는 대변자를 (감히) 자임하며 활동을 하고 말을 해 왔지만, 어쩌다 한 번 정도는 당사자 자격으로 불평해도 좋지 않나 싶어서다.  얼마 전 주택청약을 해지했다. 40대, (앞으로 당분간 결혼할 계획이 없는) 미혼, 무자녀, 1인 가구는 청약 가점에서 현실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우니, 차라리 그 기회비용으로 다른 것을 하라는 기사를 읽고 홧김에 저지른 일이다. 아주 작고 귀여운 목돈에 앙증맞은 이자가 붙어 통장에 들어왔다. 그날은 4캔 만 원 맥주를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뭐,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내 집 마련을 염두에 두고 하던 청약저축도 아니었다. 내 집을 갖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임대주택 신청 등을 고려해 막연한 마음으로 유지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집을 갖지 않고, 빚도 지지 않고, 분수에 맞게, 그러나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포부도 ‘내가 속한 집단 또는 계층’에게는 언감생심이다.  40대, 미혼, 무자녀인 1인 가구가 중위소득보다 아주 조금 더 번다면, 한국사회가 설계한 주거 복지망을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대학생, 신혼부부, 만 19~39세의 법적 청년, 주거급여수급자, 고령자에게 입주자격이 주어지는 ‘행복주택’도, 기초생활수급자나 국가유공자(또는 그 유족), 일제 하 일본군위안부나 북한이탈주민이 신청할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도 당연히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입주자격의 1인 가구 기준소득금액인 185만원보다는 더 벌기에, 내 생활반경 저 멀리멀리에 있다는 국민임대주택도 당연히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생계지원 국면에서 2만원쯤 지원해주던 통신비도 만16~34세, 만 65세 이상의 국민만 지원 대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바꿔 말해, 내가 속한 계층이, 대학생이나 19~39세의 청년보다는 확실히 더 누리고 있으며, 수급을 받아야 할 만큼 힘든 상황은 아니라고 사회가 판단한다는 거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할 말이 남은 이유는, 누가 더 불행하고 불편한지 겨루고 증명을 받고서야 비로소 사회 안정망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사진 출처 - freepik  202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인 가구 구성원이다. 1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156만원이지만 나이대별로 지출규모가 달라지는데, 40대 1인 가구는 평균 185만원을 생활비로 쓴다. 국민임대주택에 입주 신청이라도 하려면 중위소득에 한참 못 미치는 185만원을 벌어야하는데 그마저도 생활비로 185만원을 쓰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집을 사거나 투자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임대료를 내며 평생 무주택자로서 부동산 전쟁에 동참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불행을 증명하는 배틀에서 이기거나, 저축은 포기하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며 미래를 저당 잡히거나.  여기까지가 1인 가구 전반의 하소연인데, 조금 더 들어가 40대 이상의 ‘여성’이 되면 이야기가 조금 더 슬퍼진다. 임금근로 소득과 관련해 통계청이 배포한 가장 최근 자료인 2017년 기준으로 보자.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평균소득은 287만원이고 중위소득은 210만원이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수준을 보이는 3~40대 가운데, 40대 남성의 평균소득은 416만원이고 여성은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251만원을 번단다. 세대 불문, 파이 불문, 남성소득 대비 여성소득 수준이 60%선인 것은 너무 익숙한 이야기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저소득 중장년 여성쯤 되면, 흡사 벌을 받는 기분이 된다. 그럼에도 차마 쉽게 징징대지 못하는 것은, 더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뿐이다.  작고 귀여운 청약저축 해지금에 딸려온 앙증맞은 이자로 4캔 만 원 맥주를 사들고 들어와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티비를 끄고 분을 삭인다. 그리고 상상한다.  홀로 늙고 병들어도 나락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떨까. 이 나라 국민인 이상 어떤 경우에도,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촘촘하게 지켜주는 공동체를 경험해봤다면 어떨까.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 자손세대의 미래를 난도질하는 부동산 전쟁이 없다면 어떨까. 열심히 번만큼 납세를 하고 부의 재분배에 기여한 사람에게, 삶의 질을 구성하는 다른 요건으로 되돌려주는 사회라면 어떨까. 그 세상에서도 ‘내가 더 불행하다’고 손을 들기 위해 옆 사람의 팔을 자르거나, ‘나도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을과 병과 정들의 배틀이 이어지고 있을까.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손을 들지 않으면 아무도 보아주지 않을까. 언뜻 상상하기론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글쎄, 그런 세상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2020-11-18 | hrights | 조회: 1353 | 추천: 20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2020년을 앞두고 나는 크게 들떠 있었다. 2년 동안 진행했던 ‘팔레스타인 평화여행’과 ‘인권보고서’ 사업이 잘 마무리됐고, 신규 사업인 ‘여성지원센터’ 사업은 국내 민간재단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여성지원센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전 게시글 참조)  하지만 1월부터 코로나사태가 시작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해외 출국이 불가능해진 탓에 미리 예약한 비행기 표를 포기하고 출장을 취소했다. 신규사업이라 초기사업세팅이 중요했기에 출장포기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현지의 활동가들이 더욱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아디의 현장 부재가 무색하게 공백을 메꿔 사업을 추진했다. ‘여성지원센터’의 두 가지 주요사업 중 하나인 ‘여성활동가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은 20명의 참여자 중 단 한명의 중도포기자 없이 모두가 끝까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졸업영상작품도 제출했다. (관련 활동은 아디 홈페이지 와 유튜브 참고) 여성지원센터 수료식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문제는 ‘인권보고서’였다. 2020년 보고서 주제는 ‘여성인권’으로 결정했지만 보고서 작성에 필수적인 방문조사와 인터뷰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장의 자발성 덕분이었다.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4명의 여성 활동가들은 인터뷰 수행자(모빌라이저)를 자처하며 각 마을의 세대별 인터뷰 대상자(60대, 40대, 20대 여성)을 물색하겠다고 했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그녀들의 자원에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도 됐다. 그래서 인터뷰시 유의해야 할 사항,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 인터뷰 동의서, 인터뷰 기법 등에 대해 2차례 워크숍을 진행한 뒤 그들에게 인터뷰를 맡겼다. 그렇게 현지 인터뷰는 진행됐다.  인터뷰 진행 초반에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개인적인 어려움과 자신들이 겪었던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해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결과를 하나씩 전달받으며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전달하고자 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위해 꼭 남기고 싶어 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심각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그녀들의 증언은 다양했다.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아디가 이들의 증언을 잘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미지는 머리에 히잡을 쓴 무슬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수동적 여성상일 것이다. 아디는 ‘인권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단순한 이미지를 깨고 이들이 우리와 동등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아디는 그녀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이 건네온 답변은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는가?’, ‘그녀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준적이 있는가?’, ‘그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막상 그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현실만을 탓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11월말 최종 발표를 앞 둔 아디는 이제 전달 받은 증언들을 잘 정리하고 필요한 정보를 추가하여 보고서를 완성하려 한다. 너무도 바쁜 현실을 사는 한국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란 쉽지않다. 그럴 의무도 없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여성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현지에서 보내온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디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부담스런 의무감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해본다.
2020-11-11 | hrights | 조회: 1234 | 추천: 11